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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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지 받아 주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햇살이 퍼지는 날이나 구름 낀 날에도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던 사람, 그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 하면 왠지 시울이 뜨거워진다. 곁에 있을 때는 살갑지 않았던 자식의 때늦은 후회다. 그 후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그러면서 살아생전에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더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남기게 한다.
나에게는 늘 지병이 따라다녔다. 어려서부터 약골로 태어난 것도 있지만 어머니가 임신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기를 원치 않았다는 말도 있고, 가족이 늘어나면 경제적 부담이 커서 그랬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인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탄생의 기쁨도 잠시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다른 형제들보다 약골로 태어난 생명은 늘 가족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사람 구실하기 힘들겠다고 어머니가 걱정스런 눈빛을 하면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다독거리며 감싸 안았다.
그 즈막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집집마다 자식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을 하였다. 그럼에도 갑자기 고열로 실신을 하기도 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 힘든 고비를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으로 그 생명은 지탱할 수 있었고, 지금도 따뜻한 아버지의 등을 기억하고 있다. 모두가 이제는 기억에만 남은 사람들이지만 몸이 아프거나 구름 낀 하늘이 보이면 생각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늘이 맑지 않은 오전의 기온이 신경이 쓰였다. 그때 집배원의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커다란 박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지인이 직접 만들어서 보내 준 한과 박스였다. 입맛이 없고 나른한 봄날의 날씨는 사람을 지치게도 하고, 생기를 앗아가기도 하는데 선물이 준 맛있는 한과는 그런 기분을 바꾸어 놓았다.
어머니가 살아서 온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늘 자식이 먹고 싶다는 것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 당신의 몸이 아프면서도 자식 입에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어 힘겨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나의 입맛을 알았는지 지인을 통해 배달된 선물 같아 더욱 감사했다.
또한 이맘때쯤이면 옥상에서 장을 담그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해 먹을 음식을 가름하는 장맛은 맛있어야 한다며 간을 잘 맞추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런 어머니가 있어 한 해 동안 발효된 음식은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 주는 명약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한 해의 농사나 다름없는 장 담그기는 주부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그런 장을 담그거나 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메주를 구입하고, 장을 담그는 방법을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배우려 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수고를 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면 감칠맛을 내는 재료에서부터 다양한 음식들이 널려 있다. 비록 집에서 만드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 사람들은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 시장뿐만 아니라 반찬 가게도 많아졌다. 젊은 사람들은 입맛에 맞는 가게를 정해 놓고 반찬을 구입해서 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재료를 사다 음식을 만드는 수고보다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것이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젊다는 것은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그 귀중한 시간을 무엇에 쫓기듯 살아왔는지, 젊음을 소진해 버린 뒤에 깨달은 것은 헛되이 시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은 나의 신체를 덮어버리고 이제는 생생하던 청춘의 싱그러움도 없어졌다. 그만큼 세월 앞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 역시도 어머니의 자리에서 희끗거리는 머리를 하고 지나온 날들에 대해 자식들에게 넋두리 삼아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늙음을 이야기할 것이다.
늙음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다. 자연스럽게 시간을 넘기며 살아가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일이다. 나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면 그때는 서서히 삶을 정리하는 순간이 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리워 보고 싶은 얼굴인데 볼 수가 없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철이 없고 젊었을 때는 어머니가 평생 옆에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리운 어머니가 없는 긴 시간을 보내고 보니 이제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사람은 옆에 있을 때, 또는 풍족할 때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은 본인이 겪어 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모두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이다. 하여 오늘 시간의 끄트머리를 잡고 그리운 사람에게 나의 성찰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해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기억을 끄집어내어 더듬거리며 떠올리는 그림자는 마음의 병이 되었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마음과 자식을 보고파하는 어미의 마음이 어찌 다르랴. 그처럼 소중한 것들에 대해 후회 없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고, 상처가 옹이가 되지 않게 소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오는 동안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살피는 것도 자신의 인생을 잘 가꾸어 가는 것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