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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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말은 어떤 말보다 아름답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 미적 감성이 어떻게 생기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마음이 외로울 때 아름다움을 찾아 편안함을 얻는다. 예쁜 꽃과 새들이 있는 풍경을 찾아 힐링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 보라. 미소를 지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나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에 연민을 자아냄으로써 위로를 준다.
창밖을 바라본다. 새봄이다. 보드란 봄바람에 꽃은 필 채비를 하고, 까치 한 쌍이 둥지를 들락거리며 하늘 높이 날아다닌다. 풀잎과 봄나물이 쑥쑥 흙을 뚫고 나와 배시시 웃는다. 매화 꽃봉오리도 방울방울 맺혔다. 봄기운에 힘이 난다. 아름다운 봄 풍경은 겨우내 움츠리며 낮이 길어지기만을 기다리던 나에게 따스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메리골드차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다. 어두운 기사가 눈에 띈다. 한창 꿈에 부풀어 있을 많은 청년들이 밖에 나오지 않고 방에만 고립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방문 앞에서 가슴 조이며 서성거릴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벽 안에 있는 자녀에게 무슨 말로 다가가 안아줄 수 있을지 막연할 것 같다. 청년의 흐릿한 눈 속에 이 찬란한 봄을 비쳐 줄 순 없을까. “괜찮아, 네 책임만은 아니야. 희망을 가져봐.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슬픈 자아를 녹여 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필요할 때다.
요즘 들어 가슴 아픈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한 어린이가 돌봄교실에서 학교 앞에 도착한 학원 차를 타러 가다가 흉기에 찔리는 변을 당했다. 아이 아빠의 절규가 아직까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맑고 흰 국화 송이가 그 아이의 엄마 아빠에게 작은 위로의 통로가 될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주위에 고통을 함께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이로써 가족은 다시 힘내서 일어날 것이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무안 제주항공 참사는 너무나 큰 비극이었다. 이보다 더 처참한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아픔에 며칠간 비현실적 상상에 사로잡혀 힘든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무엇이라도 닥치는 대로 힘을 모았다. 급식 봉사도 하고 주변 정리를 하며 오열하는 유가족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모습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름답게 보였다.
더욱이 이 사고로 일가족 9명이 모두 변을 당해 키우던 반려견만 남았는데 한 부부가 반려견을 입양했다는 것이다. 산책을 시키며 정성스레 보살피자 이젠 재롱도 피운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안아 주고 쓰다듬고 힘을 주는 말을 해 줬을까.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위로가 필요한 시대다. 지구촌 곳곳에는 전쟁과 기후 변화로 갑자기 재난에 휩싸이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온갖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환자도 부지기수로 많다. 우리는 이런 환경에 서로서로 연결돼 있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가족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눈물과 고통이 없는 천국을 믿지만 이 땅에 사는 나는 여전히 아쉽고 마음이 아프다. 내가 별로 잘해 드리지도 못했던 분들이 내 손을 잡아 주고 안아준다. 따뜻한 손과 품안을 잊지 못한다. 그 아름다운 눈빛과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전화로 위로해 주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생생하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삶에 지친 이웃에게 ‘괜찮아요. 다 잘될 거예요.’라고 마음속 깊이 위로하는 사람의 얼굴은 세상 어느 꽃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나도 이런 꽃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