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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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온 가족이 논밭으로 나가 농사 지어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았다. 그 당시에는 농촌 지역의 농토가 부족해 한 농가에서 논밭 약 3000평 이내로 농사를 지었다.
농촌 사람들은 농사짓느라 봄부터 가을까지 밤낮 없이 농사일에 열중했다. 그렇게 노력해도 수확물은 벼 15여 가마, 밀과 보리가 7∼8가마, 잡곡, 감자, 콩 등이 전부였다. 수확한 농산물은 한 가정 5∼6명의 식구가 먹고 살아갈 정도의 일 년 양식 정도였다.
그뿐인가. 부인들은 재배한 목화로 무명베 만들고, 여름이면 누에 쳐서 명주실 뽑고, 삼베로 안동포 옷 만들어 입고 살았다. 일 년 내 하루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농사를 짓고 살아갈 때는 무엇보다 소가 꼭 필요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소가 해 주었기 때문이다. 경운기가 보급되기 이전엔 집집마다 소 한 마리를 꼭 키웠다. 농촌에서 소는 논밭을 갈고 각종 농산물을 운반하는 데 이용했다. 논밭을 오가는 길은 토끼길과 같은 오솔길뿐이었으며 우마차 길은 없었다. 손수레가 다니기에도 도로가 좁아 오직 소 등에 짐을 싣고 이동했다. 소 등에는 지로매로(소 등에 짐을 싣고 다니는 기구)를 설치했다. 짐이 많을 때는 사람이 지게로 짐을 지고 나르기도 했다. 그때의 생활은 원시시대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이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약 70%가 산이다 보니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토지는 30%뿐인 것이다. 이 중에서도 산비탈 부근 물이 있는 곳은 논으로 만들고, 물이 없는 곳은 밭으로 만들었다.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을 딛고 묵묵히 농사일을 해왔다. 소의 활용도가 높아 소의 하루 품삯은 남성의 하루 품과 같아 사람과 소를 교환하며 일을 하곤 했다. 남성의 하루 품삯은 쌀 두 되였고, 여성 하루 품삯은 쌀 한 되였다. 한국의 이런 원시적인 생활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5·16이 일어나고 박정희 대통령의 ‘5개년의 경제 개발 계획’이 추진되고 ‘새마을운동’으로 농촌마다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었다. 농촌의 초가지붕 개량과 산 곳곳마다 도로 조성 사업이 시작되었고, 논밭 주변으로는 4미터 도로를 만들기로 했다. 도로 계획에 따라 논과 밭 일부는 국가에 내어 주고, 내어 준 토지는 넓이만큼 군(郡)에서 정해진 대금으로 지급되었다.
경제 개발은 1차가 끝나고 2차로 접어들며 도시 주변으로 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 도시가 성장하며 일자리 증가했고, 농촌의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나갔다. 농촌에서는 젊은이들의 감소로 인구는 소멸하였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만이 농촌에 남아 농사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일손의 부족으로 산 밑의 비탈진 농토는 방치해 묵은밭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는 굶주림과 열악한 환경에서 삶을 살아왔다. 그 당시에도 자전거나 손수레조차 만들지 못해 일본에서 수입해 왔다. 일본 부품을 들여와 조립해 사용했고, 버스는 미국 트럭을 분해해 땜질해 이동 수단으로 만들었다. 외화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시기였다.
88올림픽이 끝나고 1989년부터 해외여행 자유화가 가능해 1990년대 초반에 나 역시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세계는 넓고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실감나는 크나큰 세계 구경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파리로 15시간 걸려 비행해 도착한 프랑스는 멋스럽고 신비로웠다.
한국에 1970년대 초반부터 보급된 경운기는 정부의 보조금 50%를 지급으로 급속하게 농촌 가구에 보탬이 되었다. 과히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소가 해 왔던 역할을 경운기가 대체하며 농가에는 능률이 상승하게 되었다. 가끔은 좁은 도로나 험한 곳을 오갈 때는 소의 도움을 여전히 필요로 했다.
2010년대부터 도시화로 인해 농촌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진 못했다. 노인들만 남게 된 농촌은 기술의 발달로 각종 농기계가 사람을 대신해 농사를 짓고 있다. 더 이상 사람의 손이 필요 없게 되면서 농촌의 빈집들과 묵은밭도 증가하게 되었다. 농촌의 빈집이 늘어나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농촌의 빈집을 활용하려면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 먼저 그곳에서 살던 농민을 생각해 보자. 노인들은 농사를 짓지 못하니 먹고 살기 힘들고, 차가 없고 운전을 할 수 없어 아프면 병원 가기도 어렵다. 대중교통 또한 많지 않아 생필품과 장 보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생활을 하려면 월 생활비가 1인 가구 200만 원, 2인 가구는 300만 원 있어야 생활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런 돈은 정부에서 인구 분산책으로 지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례를 이야기해 보겠다. 일본은 지방을 선택해 그곳에 가서 살면 400만 엔을 준다고 하며, 정책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도 생활하려면 월 300만 원은 주어야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의 빈집과 독가촌과 산지를 이용하려면 면양과 산양 그리고 염소를 사육해 도시에 내다 팔면 도시인들은 좋은 육류를 먹게 되어 좋고 면으로 좋은 옷을 만들어 입으며 좋을 것이다.
양들을 기르려면 겨울에 부족한 사료는 소먹이 사료를 구입해 먹이면 된다. 요즘 농촌에서는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도 없고 노인들만 있으니, 그들도 농토가 있어도 농사 지을 수도 없다. 농기구가 없고, 소가 있든가 경운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농기구가 있어도 힘이 없어 사용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요즘 농촌에서는 노인들은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과 정부에서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월 27만 원씩 주는 돈으로 생활에 보태고 살아간다고 한다.
요즘 농사일은 젊은이들이 협동으로 각종 농기구를 구입하여 남의 밭과 논을 구입하여 대단위로 짓고 있는 실정이다. 지주에게는 생산된 농산물의 일부를 주고, 논과 밭을 빌려 짓는 것이다. 자연히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그 집들은 모두가 빈집이 된다. 농촌 인구는 자꾸 소멸하고 빈집만 남는다. 소멸해 가는 농촌을 살리려면 위의 건의하는 대로 실행하면 될 수도 있다고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