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13
0
십 년 만이었다. 그 나무를 자세히 바라본 것은.
큰딸은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은 후 경력이 단절되었다. 첫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버텼으나, 둘째가 태어나자 결국 일을 포기했다. 나는 살림만 하는 딸이 안쓰러웠다. 마침 좋은 회사에 취직할 기회가 생겼지만, 육아가 문제였다. 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들을 돌봐 줄 수 있겠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러마 했다. 그렇게 서울을 떠났고 딸이 사는 경기도로 이사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전세를 주었다.
우리가 떠난 집은 5층짜리 아파트의 1층이었다. 1층이라 마당이 딸려 있어 단독주택 같은 분위기였다. 베란다 문을 열면 바로 잔디가 깔린 마당이 펼쳐졌고, 주위로 쥐똥나무 울타리가 단단히 둘러싸고 있었다. 마당에는 향나무, 목련, 배롱나무, 라일락이 자라고 있었으며, 철쭉과 영산홍이 봄이면 붉고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겨울만 빼고 내내 꽃이 피는 마당이었다. 감나무는 매년 풍성한 열매를 맺어 이웃과 나누기에 충분했다. 봄이 되면 목련이 마치 등불처럼 꽃을 피워 위층에 살던 친구가 그 꽃을 보며 봄이 온 것을 느낀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 집을 전세로 들어온 가족은 조부모와 부모,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당 한쪽에 채소를 좀 심어도 될까요?”
잔디를 조금 파내고 상추를 가꾸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다. 할머니는 마당을 무척 아끼셨다. 채소뿐 아니라 꽃도 가꾸며 정성을 들였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이제 그 가족이 나가겠다고 한다. 학군 때문에 이사 왔던 그들이 이제는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집. 나는 마당을 보며 말을 잃었다.
‘황무지.’
꽃과 나무로 가득했던 그 마당은 이제 메말라 있었다. 쥐똥나무 울타리는 거의 다 죽어 바깥에서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빽빽하게 들어찬 쥐똥나무 담장 때문에 예전에는 밖에서 잘 보이지 않던 마당이었다. 잔디는 사라졌고, 꽃나무들은 대부분 말라버렸다. 아마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마당은 아무 보살핌을 받지 못한 듯했다. 맞벌이 부부는 직장 일에 바빴고, 자녀들은 공부하기에 바빴던 모양이다. 그사이 마당은 버려지고 황량해져 있었다. 황량한 마당에 몇몇 나무만이 앙상한 가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보였다. 목련나무 앙상한 가지 끝에 단단히 박혀 있는 겨울눈이. 쓸쓸한 풍경 속에서도 목련나무는 여전히 서 있었다. 그리고 혹한 속에서도 조용히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은 봉오리들은 마치 따뜻한 털옷을 입은 듯 보였다.
‘아, 이 황량해진 마당에서도 목련은 해마다 꽃을 피웠겠구나.’
친구들이 하나둘씩 죽어갈 때도 목련은 살아서 봄이면 그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이다. 가슴이 저렸다. 예전에 마당에서 강아지와 뛰어놀기 좋아하던 막내가 목련꽃 봉오리들이 북쪽을 향해 일제히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목련이 마치 기도하는 것 같아요” 했던 말도 떠올랐다. 목련의 겨울눈은 꽃이 지면 늦은 봄부터 바로 싹을 틔운다고 한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햇살과 바람, 비를 차곡차곡 저장한 후, 차가운 겨울을 견뎌낸다. 그 시간을 온전히 품으며, 견디고 또 견디며.
겨울 숲에 가서 겨울나무를 자세히 보면 여러 모양의 겨울눈을 볼 수 있다. 겨울은 생물들에게 가장 혹독하고 잔인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면 죽음뿐이다. 잎이 떨어진 자리와 줄기나 가지 끝에는 추위를 견디고 내년을 책임질 겨울눈을 만든다. 우리가 추운 겨울에 두꺼운 옷이나 털외투로 몸을 감싸는 것 같이 식물도 여러 방식으로 몸을 감싸는 것 같다. 목련은 보드라운 털로 겨울눈을 감싸고 있다. 나무의 미래인 겨울눈을 그렇게 보호하는 것이다.
나는 한참을 목련 앞에 서서 겨울눈을 바라보았다.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버려진 마당에서 살아남은 나무. 그리고 그 나무가 품고 있는 작은 봉오리들. 그것은 단순한 꽃망울이 아니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더 단단해진 생명의 증거였다. 나는 목련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잘 견뎠구나. 고맙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추운 날들을 지나야 따뜻한 봄날이 더욱 소중해지는 법이다. 힘겨운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낸다면, 언젠가 꽃을 피울 날이 올 것이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변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날 목련처럼, 삶도 다시 피어날 것이다.
보증금을 내어주어야 할 날짜가 가까워지는데도 집은 쉽게 나가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한다면 나는 마당을 다시 가꿀 수 있을 것이다. 황량한 마당에서 외롭게 서 있는 목련과 감나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 다시 잔디를 깔고 꽃을 심고, 나무를 보살피며 마당을 되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공간 정리가 아니라, 지난 시간을 되찾는 일이기도 했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던, 내 젊은 날의 추억이 가득한 집에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그러나 딸네 식구들과 늘 가까이 지내며 얼굴을 볼 수 있고, 주일이면 예배를 드린 후 3대가 모여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는 즐거운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