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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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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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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카이브』는 평소 즐겨 듣는 내 팝송 목록 모음집이다. 3년째 틈만 나면 어지러이 컴퓨터 자판과 씨름한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까지 쓴 원고량이 원고지로 약 9,000매, 따져 보니 목표량의 반 정도는 채운 것 같다. 참고문헌 목록 또한 A4 용지 15매를 넘겼다.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며 일을 진행한다.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곡에 얽힌 실화에 혼선이 생긴 경우 다른 자료보다는 Wikipedia의 내용을 우선했다. 정확한 고증에 의한 기록물이라는 신뢰를 주는 까닭이다.
다만 가수의 탄생일이나 사망일 등은 https://www.britannica.com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읽는 자료들은 다양하다. 따라서 살핀 모든 목록 제목은 반드시 등재한다. 왜냐하면 곡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필요할 때는 첨부된 자료집들을 세세히 살피면 쉽게 해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추린 글의 방식보다 더욱 효과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작업이 거창하지는 않았다. 200여 곡의 노래 제목과 가수들 목록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노랫말의 해설과 음악을 들을 때의 소감을 첨가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뮤지션까지 소개하는 과정을 욕심내다 보니 방대한 작업량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지금은 팝송 사전과 맞먹는 수준이다. 어찌 보면 숙명 같기도 하다. 나이 70세를 넘기고도 여전히 팝은 내 일상을 지배한다. 나이와 무관하게 음악을 듣는 취향을 바꿀 수가 없었다. 이 같은 관점에서 그에 파생하는 내 마음들을 꼼꼼히 정리하고 싶기는 했다.
기록된 내용물의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를 소개하라면 주저 없이 Janis Joplin(1943-1970)을 내세우겠다. 내 주관이지만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블루스, 록 보컬리스트 중 최상위급에 속한다. 당대에서는 물론이었고 현재를 거쳐 후대에서까지 다시는 나올 수 없고, 나와서도 안 되는 시대적 아이콘의 처절한 산물이다. 이미 기화되어 버린 영혼의 목소리는 전설 혹은 신화로 우리 주위를 떠다닌다.
쟈니스 조플린이 실존했던 시대의 흑인 블루스의 대가들은 서슴없는 발언을 일삼았다. ‘백인은 완벽한 블루스를 할 수 있는 영혼이 없다. 그래서 겨우 흉내를 낼 뿐이다’라고. 블루스 음악의 대부로 칭송받는 비비 킹(B.B. King)이 그랬고, 현대 시카고 블루스의 아버지로 암시되는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또한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하지만 쟈니스 조플린이 공연 무대에 등장하자 그들은 침묵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블루스에 관한 언급은 피했다. 그녀가 데뷔한 후 비로소 백인 블루스에 대한 편견을 거두었다고 알려진다. 그만큼 쟈니스 조플린은 당대의 비교 대상이 불가한 부동의 블루스 싱어 그 자체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물론 나의 젊음도 포함된다) 기꺼이 그녀를 화이트 블루스 마마로 칭송하며 떠받들었다.
지금도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그녀가 부르는 Ball and Chain의 공연 실황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다 못해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인류의 어떤 주술사라도 대중을 향해 그와 같은 광기를 토해낼 순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선동적 지도자일지라도 대중을 압도할 메시지를, 위압적 태도의 격렬한 몸짓으로 과감히 표출할 순 없다는 경외감마저 든다. 그것은 불사조처럼 우리의 뇌리에 박힐, 이 여성 록커를 숭배하라는 선언적 용트림과 다름없었다. 향후 다가올 성대한 히피 문화의 서곡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옹골차듯 뜯기며 온 천지를 향해 포효한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내 가슴을 두드리듯 마음으로 울리는, 그녀를 향한 직역의 언어가 있다.
‘아, 이것이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소리인가. 사람의 영혼이 어디까지 찢기면 이런 목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중략) 어떻게 하면 그처럼 타오를 수가 있는 거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처럼 온몸으로 살아 숨 쉴 수가 있는 거지?’(『씨네 21』, 내 인생의 영화, 2003. 10. 2. 정안나)
여담으로 박기영이라는 여성 보컬을 소환한다. 그녀가 김어준이 초대한 대담 프로에서 본인도 쟈니스 조플린의 생애를 흉내 내고 싶었던 젊음이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훗날 2015년 2월 28일 188회 <불후의 명곡>이란 음악 프로그램에서 커버곡 <멍에>로 우승을 거머쥔다. 그녀만의 독특한 편곡 방식과 보컬 스킬은 압권이었다. 특히 2절 중반부부터 D5음을 연속으로 보여 주면서 F#5, G5음들을 뿜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전율이었다. 그러면서도 마무리 파트에서 D5음을 15초간 끌고 가는 긴 호흡법을 보일 때는 차라리 기가 막혔다. 그 장면을 보며 TV 앞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있었다. 항상 내 젊음의 한으로 박혀 있던 쟈니스 조플린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실을, 늦게나마 ‘박기영’ 그녀가 대체시키듯 마음 깊숙이 채워 주고 있었다. 이렇듯 팝과 같이하는 내 생의 에피소드는 여전히 황홀하고 절정의 순간들을 맛보게 한다.
음악을 얘기하는 오늘의 기분으론 BAND Rainbow의 <Stargazer>가 제격이다. 러닝타임 8:26 다소 긴 곡이지만 도입부에 코지 파웰(Cozy Powell)의 짧은 드럼 솔로만으로도 이내 감정은 부풀어 오른다. 몇 번의 희열 끝에 이윽고 6분 08초에 다다른다. 괴팍한 천재 기타리스트 Ritchie Blackmore의 현란한 기타 리프(노래 2절 이후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 솔로는 B 프리지아의 지배적 음계로, ‘그의 최고 중 하나’로 꼽힌다) 뒤에 터지는 리드 싱어 Ronnie James Dio의 폭발하는 음색은 숨죽인 본능을 일깨우며 삶을 향해 불끈 일어서게 만든다. <Stargazer>는 이 밴드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Rising』(1976) 중 다섯 번째 트랙으로 발매됐다. 롤링 스톤 매거진은 2023년 기사에서 <Stargazer>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메탈 노래 100곡’ 중 14위로 선정했으며, 이 곡에 대한 디오의 공연을 ‘기록상 남자의 최고 보컬 퍼포먼스’라고 칭했다. 아직도 곧추선 열정으로 스트롱거 에브리 데이(Stronger Every Day)를 외치고 싶은, 빳빳한 기상을 원하는 이에게 무조건 추천할 만한 곡이다. 믿어 보자. 절실히 원하면 응당 그리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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