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두릅과 옻나무 순

한국문인협회 로고 한옥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조회수23

좋아요0

봄나물을 먹었다. 지난겨울 몰아치는 칼바람과 혹독한 냉기에도 묵묵히 견디며 연약하게 보이지만 야무지고 단단한 꿈을 품고 나오는 새싹이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했던 내가 어린 시절에 겨울 동안 기다리던 일용할 양식이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하늘을 이불 삼아 잔디에 누우니 사나이 가는 길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봄나물을 먹을 것이 없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식이나 별미로 먹는다.
어느 시인은 봄날 양지쪽에 쏙쏙 올라오는 고사리를 보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하면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을 따로 하는 어느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며 똑똑 꺾는다”고 시를 썼다.
봄에 나온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고 할 정도로 좋은 건강식품이다. 나는 나물을 먹는 것보다 이것저것 뜯는 걸 더 좋아한다. 누군가는 가을 산에 들어가면 가난한 친정집에 들어가는 것보다 먹을 것이 많다고 했는데, 봄 산이나 들에도 가을 못지않게 먹을 것이 지천이다.
남편이 두릅나물을 가지고 왔다. 다른 나물 같았으면 다듬고 물에 한 번 씻어서 끓는 물에 삶겠지만, 나무에서 따온 연한 순이고 가지런하고 깨끗해 보여서 다듬지 않고 그냥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찍어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 보니 분명 옻나무순 두 잎이 보인다. 남편은 옻나무순과 두릅나무순을 구별 못하고 무심코 따온 것이다. 나도 별생각 없이 옻나무순은 버리고 두릅순만 먹었다.

 

사타구니가 가려웠다. 소금물을 타서 씻었다. 시간이 갈수록 가려움증이 심해져서 박박 긁어서 상처가 났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어디서 들은 말이 있어서 남편을 의심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니 남편과 살을 맞댄 게 한 달도 훌쩍 넘었다. 그래도 시간이 이만큼 돼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 티를 내거나 뭐라 말을 할 수도 없다.
조금 그러다 나았겠지. 금요일부터 일어난 가려움증이라 병원도 약국도 못 가고 소금물로 가려운 부분만 열심히 닦았다. 그러나 상태는 점점 더해졌다. 양쪽 겨드랑, 손가락, 발가락, 심지어 발바닥, 손바닥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다. 온몸에 복숭아꽃, 살구꽃이 만발이다.

 

두릅나물! 문제는 두릅나물이었다. 옻나무순을 고소하다고 날로 쌈 싸서 먹는 사람도 있다. 옻나무순이나 진을 사용하기 위하여 옥천에는 옻나무 단지를 만든 사람도 있다. 사실 옻의 진은 한약재뿐 아니라 방부제 역할로 가구에 칠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옻나무순 딱 두 개, 두릅나무순 삶는 데 들어간 옻나무순도 아니고 두릅나무순을 먹은 것이 온몸에 제일 약한 부분부터 순서대로 온통 가려움 증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긁어 상처가 났다. 차라리 아픈 것은 참아도 가려운 것은 참을 수 없다.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소동을 벌이고 나서야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지인은 여름에 보양식으로 옻닭을 먹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 지인은 간이 안 좋아서 치료 중인데 옻닭을 먹고 죽었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고 죽을 때가 돼서 죽었지, 설마 옻닭을 먹었다고 죽기까지 했을까 귓등으로 들었다. 독버섯을 식용인 줄 잘못 먹고 죽었다고 하고 해산물을 잘못 먹고 죽었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두릅나무순에 섞인 옻나뭇잎 두 개를 같이 삶아 먹은 고통이 이렇게 심하다면 죽을 수도 있겠다. 세상에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남의 일만이 아니라 어쩌면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의심했던 남편 보기가 민망하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남편을 의심하며 까불러댔다.

 

요즘은 먹을 것이 없다고 봄나물로 배를 채우지는 않는다. 길바닥에 널려 있는 자동차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올라가는 아파트나 빌딩이다. 누구나 손에 들고 다니는 전화기, 로봇이 음식을 나르는 식당도 낯설지 않다. 빨래와 청소, 밥은 기계가 척척 하는 세상에서 누가 뭐라 해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 배가 고파 죽는 것이 아니라 배가 너무 불러서 비만으로 죽는다. 마음이 병들어 화병으로 죽는 것이다.
많이 배운 사람이, 많이 가진 사람이,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이 온 국민을 배가 고픈 시절보다 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치를 한다고 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옻나무순 속에 같이 삶아진 두릅나물처럼 같이 있다 보니 물이 들고 독이 스며들어 환경에 따라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악하게 태어나지만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서 착해진다고 했고, 태어날 때는 착하게 태어나지만 환경에 따라서 악해진다고도 했다. 둘 다 상반된 말이지만 공통된 말은 자라나는 환경이다. 어디서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자라는가는 더 중요하다.
이제는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우는 것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고 배워야 덜 아프고 덜 슬프게 살 수 있다. 정치라면 이제 눈 가리고 귀 막고 싶다. 염불은 대충하고 젯밥에만 눈이 멀어 날마다 말장난만 하는 정치는 앞으로 사람 말고 로봇이 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본다.
얼음장 밑에도 물이 흐르고 냉기의 강철보다 더 꽁꽁 얼어 있던 땅속에도 새싹이 나오는 이 땅에 정치의 봄도 분명 온다. 정치인도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잘 골라서 선택해야 한다. 두릅나물 속에 옻나무잎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봄나물을 삶아야 하듯이.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