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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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경북 문경을 오가는 고속철도가 생겼단다. 내 생활 터전이 대체로 수도권과 충청권이니 그 철도를 이용할 일이야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고속열차란 따로 지은 역과 반듯한 선로로만 다니는 것인 줄 알았더니 의외다. 더욱이 여기는 지하철역이 촘촘히 있고, 전철이 연락 부절하는 곳이니 더욱 그렇다. 언제 한 번 수안보 온천이며 문경새재 등 오지를 여행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친구도 이를 알고 같이 여행하잔다. 차표도 예약했으니 간단한 행장만 차려서 주말에 다녀오잖다. 고마운 친구다.
수도권 전철 판교역에 내리니 반대편 승강장에 늘씬한 KTX 열차가 벌써 대기하고 있다. 꼬리가 보이지 않는 긴 뱀이다. 고속철도는 역사가 전철과는 사뭇 다르고, 초고속으로 내달리니 걸리적거릴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전철 승차장에 서 있으니 정말 고속열차인지 긴가민가하다. 출입문이 한 칸에 두 개밖에 없는 것이 다르고, 객실에 들어서니 가운데로 통로가 있고, 좌우로 4열 좌석이 배치되어 있으니 열차가 분명하다고 비로소 의심을 거두었다. 완행열차가 빈번히 내왕하는 철도에 어찌 KTX를…. 가히 혁신적인 길 구상이다.
문경역까지는 1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경부고속철도보다는 좀 느리다. 일부 구간은 선로를 일반열차와 공유하고, 7개 역을 모두 정차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거리의 대전까지 경부선은 한 시간여 걸린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나라라면 아마도 더 빠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통일이 되어 회령 중강진까지 내달려야 한다면 모르지만.
반세기 전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이곳을 오가는 것은 며칠 길이었다. 그보다도 더 옛날 영남 사람들이 한양에 올 때는 새재나 추풍령 등 험한 고갯길을 한 달여를 걷거나 말을 타고 넘어 다녔다. 어디 여기뿐이랴. 전라도는 평야지대니 조금 나았지만, 강원도는 고을마다 높은 산에 가로막혀 외부와의 소통과 내왕이 쉽지 않았다. 한양은 물론, 대처와의 내왕도 참으로 멀고 험한 길이었다. 반반한 길도 변변한 교통수단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의 애환을 떠올리다 보니 어린 시절의 통학길이 생각난다. 중고등학교에서 집까지는 이십 리 길이다. 주중에는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다니는 통근열차를 타지만, 토요일엔 시간이 맞지 않아 버스를 타든지 걸어와야 했다. 버스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타기가 쉽지 않으니, 친구들과 어울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두 시간이 더 걸린다. 어린 걸음에는 지치고 지칠 먼 거리였다. 하긴 어머니는 그 거리의 초등학교를 걸어다니셨다고, 때론 덩치 큰 동급생들이 업어주기도 했다니 내가 힘든다고 말하는 것은 투정이다.
이후 전국에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지며 조국 근대화의 기치가 펄럭이더니 고갯길은 깎아내고 개천은 다리를 놓고 아스팔트로 포장하였다. 차량 통행이 더욱 많아지니 어느덧 천안까지의 거리는 한결 가까워졌다. 그나마도 이십여 년 전에는 우리 마을 앞에서 시청에 이르는 왕복 8차로의 아주 큰 도로가 생기니, 우리 마을은 졸지에 천안의 외곽지역의 하나가 되었다. 차로 달리면 불과 십여 분이면 시내 중심가에 이를 수가 있다. 길이 이토록 중요한지 몰랐다.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더니 과연 국가나 사회의 발전은 교통의 발달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난을 무릅쓰고 건설하던 국가지도자가 있었음에 재삼 감사드린다.
십여 년 전 강원도 오지 인제의 자작나무숲과 은행나무숲을 보러 간 일이 있었다. 산길을 한 삼십여 분 승용차로 달릴 때 골짜기 강줄기 따라 낸 2차선 도로 외에는 논은 물론, 변변한 밭도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이다. 그래도 여기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외지 대처로 나가기 위해서는 뗏목이나 나룻배가 유일하였으리라. 인제 원통이 함양 산청과 함께 남한 최고의 오지요, 삼수갑산이 북한지역의 최고 오지라 한다.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쌀 한 말을 못 먹고 죽는다는 속설도 있다.
그런 인제에도 자작나무숲을 조성하고 광고하니 전국에서 구경꾼들이 구름같이 몰려온다. 도로와 산촌의 길이란 길은 모두 관광객의 주차장으로 변해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이것도 다 길이 있어 외지인들이 연락 부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도 신사임당이 며칠을 걸려 넘던 대관령도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사람의 욕심이 한이 없는가. 한계령과 함께 강원도 관광명소의 하나였던 두 고갯길은 산 하부에 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터널을 뚫어 노면의 기울기가 완만해졌다. 동해안을 가느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고개다운 고개도 없이 그냥 강릉과 양양 등 동해안에 닿는다. 행복에 겨운 투정인가 대관령 옛길이 그립기도 하다.
몇 년 전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는 반대 현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연 보호에 충실하고자 한다지만, 얼핏 부자나라의 교만으로도 비치는 빈약한 도로교통망. 남섬의 중심도시 퀸즈타운에서 직선거리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관광명소 밀포드사운드가 있다. 유일한 교통수단인 관광버스로 이동해야 하는데 약 4시간이 걸린단다. 이는 사각형의 세 변을 돌아가기 때문이란다. 질러갈 수 있는 한 변은 도로가 없단다. 자연 보호를 위해 개발을 최소화하려는 국가 정책 목표를 우선시하다 보니까 그리 됐단다. 그나마 한 60∼70%를 가더니 자연재해로 길이 막혔다며 되돌아왔다. 여기서 관광객은 을(乙)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고속도로뿐 아니라 철도까지도 전국을 거미줄처럼 수놓고 있다. 부산에서는 일본 쓰시마까지 지하철도를 구상한 지도 오래다. 제주도 해저터널도 그렇다. 거기에 국내 교통은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서울-부산을 16분에 내달릴 하이퍼루프라는 기묘한 이동수단까지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 빠름도 느림도 과유불급은 아닌지.
세상일이 어이 외골수처럼 고집을 부릴 수만 있으랴. 때론 타협도 필요한 것이니 우리의 과도한 욕심은 좀 내려놓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래도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에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관광객들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도로 개설을 상담한다면, 아마도 최단시간 내에 최고 품질의 고속도로를 가장 싼값에 지어 바치겠다고 엄지를 치켜세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