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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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당신이 이 세상에 소풍 왔다가 하늘나라 가신 지 60년여 세월이 흘렀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경칩이 지난 이곳은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곧 봄이 오겠지요. 제 나이 어느덧 칠십을 넘었는데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8년간이라는 짧은 시간이 저에겐 영원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은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당신이 남기고 간 유년기의 흔적을 그리움에 실어 보내드립니다.
기억하시나요? 노송 우거진 두메산골 고향집 말입니다. 포근한 남풍이 골짜기를 깨우고 지나가면 얼음 계곡 아래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지요. 한나절이면 숲속에서 꾀꼬리 노랫소리도 들렸습니다. 당신은 마당 한편의 양지바른 장독대에서 흰 수건 곱게 머리에 두르고 분주히 봄 단장하셨지요. 앞마당에 매화꽃 피고, 뒷산 바위틈에 진달래 필 때면 여동생과 산에 올랐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달래 따 먹고 다람쥐 쫓으며 놀았지요. 해가 저물어 저희를 부르는 소리에 급히 산에서 내려오곤 했습니다. 당신의 사랑 속에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뛰놀던 꿈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엔 너나 할 것 없이 보릿고개 넘느라 신음하던 때였지요. 그 흔한 건답과 밭뙈기 하나 없는 소작농 형편에 교과서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아랫마을 부잣집에서 교과서를 빌려다가 매형께 도화지에 베끼도록 하셨지요. 그 책으로 공부하여 일학년 마칠 때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저 상 받았어요!” 하고 외치며 마당에 들어설 때 놀라운 표정으로 부엌에서 나오셨지요. 상장을 보시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것이 이듬해 여름, 불의의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기 전에 드린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였습니다.
늦은 봄날이었던가요. 반려견 누렁이가 죽었을 때 슬퍼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누렁이와는 실과 바늘처럼 늘 함께했지요. 강아지 때부터 논두렁과 밭이랑 사이로 졸졸 따라다녔으니까요. 보기 드물게 매우 영리했습니다. 외출하시면서 “누렁아, 집 잘 지키고 있어. 나갔다 올게.” 하고 집을 나서면 돌아올 때까지 다리 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지요. 지금도 명절 때면 ‘우체부가 편지 배달하러 왔다가 누렁이한테 쫓겨 줄행랑쳤다’라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답니다. 학교에서 귀가할 땐 멀리서 조그만 인기척이 있어도 쏜살같이 달려와 얼굴을 핥아주었지요. 누렁이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누렁이가 쥐약을 먹고 괴로워하며 집 주위를 맴돌다가 안타깝게 죽고 말았지요. 충격과 슬픔이 컸습니다. 요즘도 공원 산책길에 반려견을 보면 당신과 누렁이 생각이 납니다.
여름엔 비가 억수로 내렸지요. 밤새도록 번갯불 천둥소리에 무서워 덜덜 떨어야 했습니다. 산비탈의 허름한 초가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기세였지요.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잣집에 모내기하러 갈 때면 항상 저를 데려가 주셨지요. 모내기를 마치고 저녁 식사 때는 집에서 볼 수 없는 흰 쌀밥이 나왔습니다. 그때 먹었던 음식이 어찌 그리 맛있었던지요. 막내 아들에게 쌀밥 먹게 해주시려고 사래 긴 논에 모를 심느라 허리가 휘는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설레는 날이었습니다. 이제라도 철없던 저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싶습니다.
당신은 인정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이웃에 일손이 부족할 때나 어려운 일이 있는 경우엔 몸이 고달파도 집안일처럼 나섰지요. 가진 것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몸으로 돕는 일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는 못했어도 몸소 보여준 그 모습은 제 삶에 소중한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우리 집에 부족하지 않은 먹거리는 빨간 고구마였습니다. 고구마 캐는 날이면 항상 이웃집에 가져다주라고 심부름을 보내셨지요. 훗날 동네 사람들은 “값없는 농산물이라도 꼭 나눠주고 싶어 하던 인정 많은 분이었다”라고 얘기합니다. 가을걷이 후 고요한 산길을 따라 귀가할 때였지요. 그때 노송 사이로 쏴 하며 지나가던 갈바람 소리는 당신의 한숨이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그 시절엔 겨울이 유난히 추웠지요. 문고리에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는 엄동설한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학교 갈 땐 언제나 부뚜막 위엔 검정 고무신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지요. 누나와 그 신발을 신고 눈보라 치는 언덕길을 신나게 내달리면, 산마루에 올라 한참 동안 손을 흔들며 바라보셨지요. 지금도 흰 눈발이 흩날리는 날이면 당신의 시린 손으로 신겨주신 그 따스했던 검정 고무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추운 줄 모르고 찬 바람 부는 들판을 지나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십리 길을 걸어 다녔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매서운 추위도 당신의 무한한 사랑의 온기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슴의 상처도 흐르는 세월 속에 점차 아물어 갔습니다. 나무의 나이테가 더해질수록 단단해지듯이 제 마음의 결도 탄탄해졌습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교를 마치고 은행에 취직하였지요. 은퇴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들과 딸에게 당신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만간 말할 날이 오겠지요.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땀과 눈물, 조건 없는 희생 덕분이란 걸 말입니다.
어머니! 이제 편지를 끝내렵니다. 삶이 힘들 때마다 가장 먼저 부른 이름이 당신이었고, 그때마다 꿈속에 다가와 용기를 주신 분도 당신이었습니다. 세상이 다 변하여도 변하지 않은 분은 오직 당신뿐이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