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6월 6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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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창밖은 시뻘겋게 타오르고 방 안을 점령한 매캐한 연기는 코와 목을 거쳐 숨통을 조여 온다. 코를 막고 캑캑거리며 발버둥을 치는데 눈이 떠졌다. 꿈이었지만 기분이 영 개운치 못하다.
보일러 창고 문을 열고 작동 버튼을 누르니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이상 없고 가스통 계기판 바늘이 붉은 구역에 갇혀 있다. 가스통을 교체하고 나서 길 건너편 연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꽃이 피어야 사람들이 몰려들 텐데. 두렁에 주춤 앉아 꽃잎을 펴기 시작한 꽃대를 살피다가 연근을 캐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옮겨 물에 잠긴 옆밭의 물꼬를 텄다. 도랑으로 물 빠지는 소리가 시원하다.
저수지 제방 위로 오르니 먼 산너머로 태양이 비쭉 얼굴을 내민다. 잔잔한 수면 위로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하모니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저 멀리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달려와 명상에 잠긴다. 푸른 하늘 떠가던 구름도 수면에 비친 제 모습에 겨워 잠시 멈춰 선다. 수변으로 이어진 데크길에서 만나는 능수버들, 불두화, 찔레꽃, 개망초, 창포에 마음이 정화된 사람들은 연꽃 펜션의 단골이 된다.
숲속에서 휘파람새가 울고 있다. 굳은 몸을 펴며 막 스트레칭을 하는데, 어느새 따라온 워리가 제방 아래쪽을 향해 짖는다. 빨간 승용차가 곧게 뻗은 농로를 달려온다. 수연 엄마다. 애초에는 펜션을 짓고 네 식구가 함께 살았는데 애들이 학교 다닐 때가 되면서 읍내에 집을 마련해 별거하는 처지다.
소리 지르며 달려가는 워리 뒤를 따라 제방을 내려가니 주차장에 차를 댄 아내가 짜증부터 낸다.
-왜 전화는 안 받는데?
왼쪽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나 잡히는 게 없다.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이야?
-애월 어머니가 자기 전화 안 받는다고 짜증내잖아? 일본 할망이 돌아가셨대.
일본 할망이란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눈앞이 흐려지며 기어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린다. 다시 오마고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근데, 일본에 있는 할망이 죽었는데 왜 제주에 내려오라고 하노?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것다. 빨리 전화해 봐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발걸음을 다급하게 움직였다.
-아방은 필요 없다고 막무가내다. 느가 내려와서 한번 설득해 봐라. 일본 할망이 어서시민 느 아방이 어느 고망으로 나와시크니?
갑자기 돌아가셨는지 오사카 민단에 계시는 분이 유품을 정리하다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우숙은 거실로 들어오지도 않고 현관에 서서 나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내가 일본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애. 할머니는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하셨거든.
-그럼 펜션은 어떻게 해두고? 내가 휴가라도 내?
-장례도 치러야 하니 일주일만 문 닫자. 예약 받은 거 내가 정리할게.
-지난달 대출 이자도 밀렸는데.
-연근 캐려고 물꼬 터놓았다. 다녀오고 나서 처리할게.
-아이 참, 주말에는 서울에도 가야 하는데?
-서울엔 왜?
-언니들이랑 촛불 시위 참가하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애들은?
-애들도 데리고 가야지 뭐.
-당신 미쳤어? 그런 위험한 곳에 애들은 왜 데리고 가?
-위험? 그게 다 세상 공부야. 가만히 있으면 개, 돼지 취급당해. 민주 시민 교육은 현장에서 배우는 거라고.
‘투사 나셨군’이라는 말이 목을 타고 올라왔으나, 출장 가야 하는 마당이라 꾹 눌러 삼켰다. 아내는 매주 토요일이면 광주시내로 가서 다른 지역의 조리사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한다. 아이들을 내게 맡기고 나서는 아내가 마뜩잖았으나 가정의 평온을 위해 모른 척했다.
-어머 어머, 당신 때문에 늦었어.
왼팔을 올려 시계를 보던 아내는 서둘러 자동차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나는 잠시 아버지의 온실 화훼 일을 도왔었다. 공고 건축과에서 배운 조경 실력을 알아본 선후배들의 주선으로 간간이 시내 외곽에 별장을 짓거나, 부잣집 정원 조성하는 데 불려가 조경 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벌던 때였다.
어느 날, 읍사무소 공무원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조용하던 집안에 풍파가 일었다.
-혹시 일본에 계신 윤화자 씨 아십니까?
처음 듣는 이름이라, 밖거리에 있는 할머니를 불러냈다.
-할머니, 우리 집안에 일본 간 사름 이수가?
-일본? 누게?
-삼춘. 일본 오사카에 사는 윤화자 씨 마씀.
공무원의 말에 할머니는 미간에 바늘부터 세웠다.
-하나꼬? 그 사름이 무사?
-재일동포 모국 방문단으로 한국에 와수다. 친척을 찾는디, 조태보 씨가 남편되시지 양?
-그 사름 죽은 지가 언젠디.
-조종만 씨는 아드님이고 양. 지금 관광 중인디 마지막 날은 친지 댁에서 하루 묵을 거우다.
할머니는 심기가 불편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제 오랑 무신 거 허젠. 난 필요 읏다.
일본에 아버지 생모가 있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저녁 늦게 불콰한 얼굴로 귀가해서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그런 사람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4·3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 할머니 출현으로 그 아픔의 역사가 우리 집안을 관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기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아픔은 진행형이다.
조태보 할아버지는 힘이 좋아 마을에서 씨름으로 당할 자가 없었다. 듬직한 체구에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마을 처녀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 한동네에서 자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갑장으로 허물없이 지냈다고 했다. 할머니의 부친은 면장 출신으로 일찌감치 조태보 씨를 사위로 점찍고 그에게 면서기 자리까지 마련해 주었다.
윤화자 씨는 성안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장사하는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해방이 되자 귀국했다. 두 살이나 후배였으나 자유분방하고 적극적이어서 할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냈다. 고을생 할머니는 그들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았다곤 했지만, 속마음은 말투에서 드러났다.
-솔직히 그년이 오기 전에는 총각들이 나만 쳐다봤지. 헌데 그년이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바람에 콧대 높은 우리 오라방까지 눈이 돌아갔어. 그 난리에 둘이 없어져서 죽은 줄 알아신디, 혁명이 난 이듬해에 하르방이 어린 느 아방 데리고 일본에서 와서라. 나가 숫처녀로 손해 보는 일이었주만, 느 아방이 불쌍해서 혼디 살아줬주기.
아버지는 끝내 일본 할머니의 방문을 반대했으나, 할머니는 어머니의 꼬임에 한 발 물러섰다.
-어머님, 이젠 아버님도 안 계시고 다 지난 일 아니우꽈. 경허곡 오면 빈손으로 오쿠가? 일제 물건 얼마나 좋수가. 어머님 선물도 기대해 봅서.
읍사무소에서 일본 할머니를 집으로 모신다는 연락이 왔을 때, 아버지는 짐짓 친구분들과 육지 여행을 가버렸다. 난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사 경 속 좁은 행동 햄수가? 나중에 후회되어 마씸.
-넌 아무것도 모르멍 아방 하는 일에 참견 말라. 하우스에 물이나 잘 줘.
그 한마디를 남기고 아버지는 기어이 백팩을 메고 문밖으로 나섰다.
-에이고 저놈의 똥고집. ㅉㅉ.
어머니는 아버지 뒤통수에 대고 비난의 화살을 날리며 혀를 찼다.
오랜 세월 꿈속에서만 그리던 자식을 보려고 이국에서 달려왔는데, 정작 만나지 못한다면 할머니는 얼마나 서운하고 서러울까?
-예쁘게 단장허십서. 나이 어린 성님보다 젊게 보여살 거 아니우꽈?
-다 늙은 몸, 그 빨갱이년신디 잘 보영 뭐 할거라?
-어머니,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빨갱이 소리 햄수가?
-에고, 그 빨갱이 딱지 때문에 석호 아방 인생 구겨진 거 몰람시냐?
-옛날 일은 잊읍서. 이제 왕 어떵 헐거꽈?
할머니는 평소 안방 궤 속에 보관해 둔 예쁜 문양의 명주 한복을 바리바리 꺼냈다. 어머니가 선택해 준 옷을 손수 다림질하고, 정성 들여 화장까지 했다.
공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문 안으로 들어서는 일본 할머니를 보는 순간 할머니는 미동도 않은 채 얼어붙었다. 하얀 생머리 위에 자줏빛 베레모, 화사한 스카프에 자줏빛 원피스, 꽃무늬 검정 단화를 신고, 하얀 장갑 낀 손으로 붉은 장미꽃 다발을 든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70 넘은 노인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하고 젊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일본 할머니도 긴장한 듯 꽃다발만 쑥 내밀었다.
-하이고, 이런 거 우리 하우스에 많은데 뭘….
순간 할머니를 와락 껴안았다.
-성님, 오랜만이우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형님인데 정신 없기는 일본 할머니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할머니는 넋 나간 듯이 멍청하게 서 있었지만 일본 할머니는 서러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일본에서 가져온 과자와 간단하게 제수를 마련하고 할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산소는 마을 위 화훼 하우스 부근 양지바른 곳에 있다. 간편한 차림으로 환복을 하고 두 할머니가 나란히 산길을 걸을 때, 나는 하얀 장갑 속에 감추어졌던 일본 할머니의 손을 보고 놀랐다. 금가락지를 꼈으나 손마디는 굵고, 주름 많은 손등에는 검붉은 기미가 촘촘했다. 평생 물질과 밭일을 하며 살아온 할머니보다 얼굴은 매끈했으나 손은 거칠었다.
청명에 와서 벌초했는데 그 사이 할아버지 봉분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일본 할머니는 봉분 위에 두 팔을 짚고 꺼이꺼이 울었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삐쭉 솟아오른 왕소앵이(엉겅퀴) 줄기를 신경질적으로 뽑아냈다. 제물이 진설되자, 일본 할머니는 산담 위에 놓인 손가방에서 자그만 카메라를 꺼내 봉분 주변을 돌아다니며 셔터를 눌러댔다. 카메라를 가방 속에 집어넣더니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니 바라보던 할머니가 어머니의 팔을 툭 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고, 저거 보라.
일본 할머니는 한 모금 빨고 코로 연기를 길게 뱉어내더니, 불붙은 담배를 제단 위에 가로로 걸쳐 놓았다. 그 행동에 자신의 경망함이 부끄러웠던지 할머니는 입을 샐쭉하고는 돌아섰다.
일본 할머니는 신발을 벗고 돗자리에 꿇어앉아 내가 내미는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그러고는 두 팔을 돗자리 위에 세우고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여기 누워 있는 줄도 모르고 몇십 년을 오기만 기다렸수다. 내가 경 미웁디가? 무정한 사람아.
-죽은 지 오랜디 소식도 못 들읍디가?
일본 할머니는 그제야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일어섰다.
-어찌해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만날 줄 알아십주. 말도 없이 사라진 사람, 소식은 무슨….
일본 할머니가 자리를 비켜서자 어머니와 난 침묵 속에 제물 정리를 했다. 돗자리를 말고 있는데 산터 주변을 살피던 일본 할머니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참 햇볕 좋은 너른 곳에 묻혀서 좋겠수다.
할머니가 정색을 하며 퉁명스럽게 화답했다.
-옆자리에 눕고 싶단 말이우꽈?
-하이고, 살아생전 남편복 없던 년이 무슨 복력에 옆에 묻힐 생각 헌단 말이우꽈.
산소를 떠날 준비가 다 되었는데, 일본 할머니는 산담에 기대 말했다.
-이제 떠나면 다시 언제 보쿠가? 먼저 내려들 갑서.
-저녁 해 놓으크매 늦지 않게 내려옵서양.
할머니와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나는 길 안내를 위해 남았다. 해는 서산마루 멀찍이 유랑하는 나그네처럼 쓸쓸하게 떠 있었다.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할머니는 손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피를 내밀었다.
-저 담배 안 해요.
건네던 담배를 입에 물고는 라이터 불을 당기더니 입술을 오무리며 깊숙이 빨았다.
-속이 탈 때마다 의지하다 보니, 이젠….
코로 연기를 내쉬며 말을 하다가 갑자기 사레가 걸린 듯 캑캑거렸다. 얼굴이 벌개지면서 눈물까지 흘리더니 담배를 산담 위에 비벼 껐다. 나는 들고 있던 물병을 건네고 등을 도닥였다. 겨우 안정을 되찾은 할머니가 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괜찮아요?
-그래, 끊긴 끊어야 하는데….
말꼬리 여운에서 진한 회한이 묻어나왔다.
-석호라고 했지?
-예.
-내가 온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많이 노하시더냐?
난 그냥 땅을 내려다보며 얼버무렸다.
-아뇨, 그냥.
-많이 원망했을 거다. 내 얼굴은 기억하고 있을려나 몰라.
-헌데, 해방돼서 귀국하셨다고 들었는데 왜 다시 일본에 가셨어요?
할머니는 먼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처럼 숨을 길게 내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너 4·3 사태라고 들어봤냐?
-아뇨. 4자만 꺼내도 어른들은 막 화내며 말을 못하게 했어요.
-그랬을 거야. 난리도 난리도…,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매일 신탁통치 반대 데모하는 데 나서고, 순경들은 나라 일에 반대하는 사람을 모두 빨갱이로 몰았주. 장정들은 산으로 도망가고, 산 사람 잡으러 육지서 군대까지 오고, 토벌대들은 산으로 도망간 가족들을 찾아내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선선허다. 그러니 도로 일본으로 도망갈 수밖에. 에고 억울허여. 오고 싶어도 못 오고. 긴 세월 애간장이 다 녹아 없어졌다.
할머니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고, 나는 하릴없이 할머니 등만 도닥였다. 할머니는 진정된 듯 코를 팽하고 풀어내더니, 손가방에서 다른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미안하다. 늙으면 이리 주책만 남나 보다.
-아니에요. 잘 찾아오셨어요.
-그래.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억울한 건 풀어사주.
-그런데 할아버지하곤 어떻게 헤어지게 되셨어요?
할머니는 하늘로 시선을 돌리고 나서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일본어로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추억의 앨범에서 빛바랜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난 그 침묵의 짧은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 킁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할머니는 현실로 돌아온 듯 쓸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누워 있는 조태보 씨와 오사카 이쿠노에서 살았다. 전쟁에 항복을 하고서도 일본 사람들은 우리를 조센징이라고 구박하고 멸시했어. 네 할아버지는 조선인이 하는 음식점에서 시다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왔지.
난 할머니의 거무데데한 손등을 보며 물었다.
-할머닌 집안 살림만 했나요?
얼굴이 다시 환해지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고 쓸쓸하게 웃었다.
-난 종만이를 돌보다가 가끔 여행사 일을 했어. 여행객들에게 사진을 찍어 앨범 만들어주는 일이었지. 그 벌이가 쏠쏠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신혼부부를 데리고 오사카성을 거쳐서 저물녘에 난바 신사에 들러 관광을 시켰는데, 며칠 후 신사에 불이 난 거야. 경찰에서는 조센징 짓이라고 단정 지었지. 전쟁에 죽은 전범들 신주를 신사에 모시는 걸 반대하는 시위를 조총련에서 했었거든. 헌데 어느 날 종만이 학교 보내고 집을 나서는데, 순사가 들이닥쳤어. 내가 방화범이라는 거야.
어두운 역사를 살갑게 전해주는 할머니에게서 핏줄 당김을 느꼈다.
-앨범 가격에 불만 품었던 신혼부부가 고발했나 봐. 그 신사를 찍은 것이 예비 답사 증거라는 거지. 범인이 잡히기까지 억울한 옥살이 삼 년을 했다.
-할아버지도 애가 탔겠네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쓸쓸한 시선을 하늘가로 돌렸다.
-나를 구해내려고 조총련 사람들과 함께 매일 시위를 했어. 시위가 잦아지자, 소리 소문 없이 날 교토로 이감시켜 버렸지. 내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어.
가까운 나무 위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얼굴을 돌려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까마귀는 곧 산소 위로 날아와 고수레로 뿌린 음식 조각을 쪼아 먹었다. 할머니는 까마귀를 보자 눈웃음부터 지었다.
-느 할아버지가 나를 만나러 왔나 보다.
말소리가 들리자 까마귀는 경계하듯 쳐다보다가 쪼아 먹는 일에 열중했다.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이제야 왔소. 미안하오.
할머니가 움직이자, 까마귀는 동작을 멈추고 멀뚱하게 바라보다가 까악 소리치며 소나무 가지 위로 날아올랐다. 할머니가 오라는 손짓하며 다가서자 까마귀는 무정한 비행기처럼 멀리 날아 사라졌다. 내가 말을 걸기까지 할머니는 텅 빈 하늘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할머니도 일찍 돌아오시지 그랬어요?
-출감하고 이쿠노에 오고 나서야 귀국한 것을 알았다. 나도 귀향을 원했는데 조총련이라고 입국이 안 된대. 그 후에 모국 방문단 모집도 있었지만, 그땐 조태보 씨 재혼 소식을 들은 뒤였다.
저녁놀이 붉게 타오르면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한기가 몰려왔다. 할머니가 산담 위에 놓인 손가방을 챙겼다.
-참 놀이 곱기도 해라.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마련한 것 같구나.
산소를 떠나기가 아쉬운 듯 할머니는 천천히 봉분을 한 바퀴 돌며 긴 한숨을 여러 번 내쉬었다. 그리고는 비석 앞에서 합장을 하고는 허리를 숙였다.
-잘 있으소. 다시 만납시다.
집에 도착한 일본 할머니는 가지고 온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할머니에겐 코끼리 전기밥솥과 전기 다리미, 어머니에겐 고대기와 배가 불룩한 복주머니를 선물했다. 나에겐 신형이라며 디지털카메라를 주었다. 정작 아버지 선물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카메라는 아버지 몫이리라. 선물을 받은 기쁨에선지 저녁을 먹으면서도 모두 들떠 있었다. 할머니는 애초에 품었던 경계와 증오의 감정은 내다 버린 듯 살갑게 일본 생활에 대해 물었고, 고향이 좋으면 돌아와 같이 살자는 말도 했다.
풀벌레가 달빛을 받으며 목청을 돋우었다. 어둠은 많은 것을 삼키며 묻어 버리지만, 어둠 속에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나는 방 안에 앉아 카메라 조작법을 익히면서 밖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평상 위에 앉은 할머니 모습이 보였다. 날이 저물면 잠자리에 드시는데 오늘은 늦은 시간인데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흥분 때문인지, 다가오는 이별의 아쉬움 때문인지, 안거리 일본 할머니 침소를 자주 힐끗거렸다. 할머니는 왼팔로 무언가를 껴안고 있었는데 파인더로 보니 소가죽 낡은 가방이었다. 셔터를 누르자 플래시가 터졌다. 할머니가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마침내 일본 할머니가 마당으로 나왔다.
-달이 참 밝네.
-성님도 잠이 안 왐수가? 이리로 오십서.
일본 할머니는 검은색 바탕에 붉은 장미꽃 무늬가 있는 풍덩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 터지는 것에 놀랐는지 두 할머니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고향에 왔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햄수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으니 낯설어서 그럴 거우다.
-섬 전체가 너무 많이 변해서 전혀 기억을 못 허쿠다.
-이젠 자주 오십서. 아들 얼굴도 봐사 헙주. 그리고 이거 하르방이 남긴 물건인데 받읍서.
할머니는 누르죽죽한 가방을 넘겼다.
-종만이가 버린 것을 내가 주워다 숨겨 놓았수다. 맨 옛날 사진하고 필름입디다.
나는 조작하던 카메라를 책상 위에 놔두고 마당으로 나갔다.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꺼내 살피는 일본 할머니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할머니는 말없이 일본 할머니의 표정만 바라보았다. 왼손으로 한 움큼 집어 들고 한 장씩 살피며, 확인한 사진은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반복되던 행동이 어느 사진 앞에서 갑자기 중단되었다. 일본 할머니는 남은 사진을 내려놓고 한 장의 사진을 뚫어지게 내려다보더니 내 앞으로 내밀었다. 누런 시간이 내려앉은 사진에는 양복에 하얀 중절모자를 쓴 남자와 머리에 꽃을 꽂고, 화사한 코트에 털목도리를 두른 멋쟁이 여자가 교복에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아이를 가운데 세우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멋쟁이 부인이 할머니예요?
일본 할머니는 짧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종만이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지. 그게 마지막이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서 우영팟으로 시선을 돌린 할머니가 킁 하고 마른 기침을 내뱉더니 물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와서 초등학교를 다시 다녔수다. 한글도 잘 모르니 동기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아십주.
-죄송합니다. 종만이한테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밀감이 담긴 그릇을 들고 어머니가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거 드셔 봅서. 맛들어수다.
-온주 밀감이로구나.
일본 할머니가 밀감 하나를 들고 껍질을 벗길 때,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헌디, 만나면 꼭 들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수다.
일본 할머니가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는 곁에 앉은 할머니를 한 번 슬쩍 쳐다보고서는 말을 이었다.
-어떵허연 조총련에는 들어갑디가?
일본 할머니는 대답 대신 껍질 깐 밀감 알맹이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 조총련 때문에 우리 종만이가 얼마나 고통을 많이 받아신디 알기나 합니까? 공부 잘 허곡 똑똑해도 사관학교는커녕 공무원 취직도 안 돼곡. 경허난 맨날 술이나 쳐먹고….
미리 작당이라도 한 듯 일본 할머니를 몰아붙이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미웠다. 일본 할머니는 감정을 다스리려는 듯 마당으로 내려서서 하얀 달빛을 받아 찬연히 빛나는 우영팟의 파란 수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불현듯 군대 간 동생 면회 갔을 때 일이 생각났다. 동생이 행정병으로 자대 배치받았는데, 기밀 서류를 담당하는 일에서 배제됐다. 신원 조회를 하니 가까운 인척 중에 조총련에 가입된 사람이 있다는 이유였는데, 당사자가 일본 할머니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연좌제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낙인은 가린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윽고 마음의 정리가 된 듯 일본 할머니는 수국에게 말하듯 조곤조곤 말했다.
-그때는 해방된 조국을 개혁하자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강해서,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총련에 가입했다. 난 지금도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관심 없다. 종만이가 학교 갈 나이가 되어서 조선인 학교에 입학시킨 것뿐이야. 헌데 징역을 살고 나오니 난 조총련 골수분자가 되어 있더라.
징역을 살았다는 말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더니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재빨리 오른손 검지를 입술 앞에 세웠다. 그러자 곧 일본 할머니가 돌아서며 고개를 곧추세우더니 할머니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헌데 나도 궁금한 게 있수다. 그때 왜 나한테 일본으로 도망가라고 했수가?
할머니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한참을 대답 못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무사, 지서에서 잡으러 다닌다고 말해준 것도 잘못이라?
-내가 왜?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이고 참. 그때 경찰, 군인 가족 아닌 젊은이는 모두 빨갱이 취급했수다. 일본에서 온 사람들은 빨갱이 수괴엔 헙디다.
-그 말은 면사무소에 다니던 지 오라방한테 들어실 테주. 헌데 참 세상 우숩다. 우리 부친 땅이 어떻게 고동수 이름으로 돼 있을까? 아버진 그 난리에 죽었고, 상속자인 내가 살아 있는데 어찌 지 오라방 이름으로 되어 있느냔 말이야?
할머니는 즉시 발뺌했다.
-난 모르는 일이우다. 헌디 어떵 헐거라. 죽은 사람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참나.
할머니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일본 할머니는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오라방은 그 땅 빼앗을 욕심으로, 누이는 내가 사라지면 조태보를 차지할 욕심으로 오누이가 손발을 맞춘 것 아닌가?
그 말에 할머니가 버럭 소리 질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할머니가 내뿜는 섬광 같은 시선에 기가 꺾였는지 일본 할머니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아니면 되었수다. 마음 상했다면 내 사과하리다. 미안합니다.
그러고는 방으로 향했다. 난 사진을 수습하여 가방에 넣고 따라가려고 일어섰는데, 할머니가 소리쳤다.
-그거 따지러 왔구나?
-그만 헙서게. 미안허댄 해수게.
-말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거지.
-속슴.
어머니가 팔을 붙들고 할머니를 방으로 이끌었다. 일본 할머니는 댓돌 앞에 잠시 멈춰 섰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난 그때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할머니를 일본으로 도피하게 한 것이나, 조선인이라고 핍박을 한 것이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차단한 것이 분열주의 세력의 패권 놀음 때문이 아닐까? 자유를 이데올로기의 울타리에 가둔 위정자들은 가족을 갈라 놓았고, 개인의 영혼과 일생을 망가뜨려 놓았다. 이념이라는 게 이토록 무서운 것이로구나.
일본 할머니는 조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오사카 한인시장에서 우동 장사를 했다. 그렇게 자수성가해서 집도 마련하고 여유가 생기자, 시장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생각에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전시회까지 했다고 했다.
-여기 내 꿈 같은 젊음의 흔적이 남아 있었네.
할머니는 열여섯 개의 필름통을 만지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사진으로 남은 건 아주 일부분이야.
-여기에 해방 후의 제주 모습도 담겨 있나요?
-암. 제주만 아니라 오사카에 정착할 때 교포들 모습이 담겨 있지. 헌데 세월이 하도 오래돼서 다 망가졌을 거야.
-제가 흑백필름 취급하는 곳을 찾아볼게요. 인화가 가능하다면 우리 전시회 해요.
-그런 걸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요. 해방 후의 제주 모습은 역사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어요. 이참에 할머니가 아주 제주로 옮겨 오는 건 어때요? 함께 살아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너희 할머니가 허락하실까? 성질을 보아하니 종만이도 크면서 구박 많이 받았을 터인데. 그냥 너희들 보고 싶을 때 한 번씩 다녀가도록 하마.
다음 날 할머니는 제주를 떠났다. 나는 필름통 안의 사진이 궁금해서 시내에 있는 사진관을 찾았으나, 할머니의 말 그대로 곰팡이 녹이 슬어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공항에서 할머니는 매년 한 번씩 오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소식 없는 지 십 년도 더 되었다. 그 사이에 난 결혼하고, 처가가 있는 해남으로 주거지를 옮겨 펜션을 짓고, 애 둘을 돌보며 눈코 뜰 새 없이 사느라, 일본 할머니에 대한 소식은 까맣게 잊었다.
완도로 가서 제주 가는 오후 배를 탔다. 실버클라우드호는 수백 대의 화물 트럭과 승용차를 실어 나르는 페리호로 하루에 두 번 제주와 완도를 왕복한다. 배가 워낙 커서 웬만한 풍랑에도 거침없이 물결을 가르며 세 시간도 되기 전에 항구에 닿는다.
2등 의자실은 오늘따라 단체 손님으로 붐볐다. 빨간 모자를 쓴 중년 손님들은 한시도 가만 앉아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큰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몰려 나갔다가 다시 우르르 들어오는 등 부산스럽게 굴었다.
난 창가 의자에 팔짱을 끼고 앉아 출입구 옆 벽에 달아 놓은 티브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재일 동포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일본에서 제주에 와 어머니를 뵙고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연행돼 간첩죄로 옥고를 치르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소식이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는 이를 중대한 인권 침해로 보고 재심을 권고하기로 했다는 뉴스였다. 그때 뒤에서 “빨갱이 새끼들, 야 티브이 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태극 문양이 새겨진 빨간 모자를 쓴 리더인 듯한 사람이 좌중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튀어나오더니 재빨리 티브이 옆에 설치된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껐다.
-한 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지, 무슨 재심이야. 안 그래?
일행은 즉시 “맞습니다” 하고 제창했다. 그러자 리더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술 마실 사람 선미로 집합.
소리가 끝나자마자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뒷문으로 몰려갔다. 시청하던 티브이가 꺼졌을 때 욱하는 기분이 올라왔으나 그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감히 따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누구 하나 제동을 걸거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눈을 감고 자는 척하거나 위세에 눌려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아직도 빨갱이를 논하며 독단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자들이 있다니. 빨갱이라는 말은 해방이 된 나라에서 친일파들이 자신의 입지를 합리화하고 상대를 배척하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라는 건 알까? 그런데 빨간 모자를 쓰고 빨갱이를 욕하다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 의자에 깊숙하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장미꽃이 든 화병을 들고 와 문갑 위에 놓았을 때 침묵이 깨졌다. 할머니의 거듭된 강요에도 돌부처처럼 꿈쩍 않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등장에 용기를 얻은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물려받은 건 빨갱이 낙인 찍힌 육신뿐인데, 왜 내가 주검을 거두어야 합니까?
난 기회를 잡은 듯 아버지를 향해 거침없이 쏘아댔다.
-그게 어디 일본 할머니 잘못이우꽈? 원인은 아버지 때문 아니우꽈?
의외의 반격에 아버지는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부모 도리 다 허젠 소학교에 입학시킨 게 잘못이우꽈? 일본 할머닌 조총련이 뭔지도 모르고 당한 거라 마씸.
정곡을 찌르는 내 말에 돌부처의 눈두덩이 붉어지더니 기어코 눈물을 떨어뜨렸다.
-경헌디 아버진 아들 보러 온 할머니에게 어떵 헙디가?
이윽고 아버지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소처럼 거치른 호흡을 쏟아내며 꺼억꺼억 울었다. 가슴 가득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뱉어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통곡하지 않았는데…. 슬픔의 바이러스에 전염된 어머니, 할머니, 나도 훌쩍이며 눈가를 훔쳐내기에 바빴다. 일본 할머니를 조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할머니가 지곡을 명했다.
-그만하면 되었져. 세상이 어디 지 마음대로만 되느냐. 어두운 길을 걷다 보면 돌멩이에도 채이고 나뭇가지에도 눈이 찔리는 법이다. 세상이 그런 세상이었으니 누굴 탓하느니?
할머니의 지당한 말씀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할머니가 통 크게 양보했다.
-강 모셔 왕 할으방 옆에 묻으라. 묫자리 임자가 따로 이시냐?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주.
어머니가 입가에 웃음을 담고 나를 보며 독촉했다.
-재게 비행기표 알아보라. 당장 가는 게 이신지.
아버지는 퉁퉁 부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무언의 동의를 했다. 어색한 시선을 피하며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는데, 붉은 장미꽃 진한 향기에 코끝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