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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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로 접어든 산은 개혁에 들어갔다.
겨우내 짜둔 작전이 산 이곳저곳에서 펼쳐질 조짐이 일고 있었다. 혹한에 맞서 철통같이 경계를 섰던 수피는 긴장을 풀어 세상을 향한 잎눈의 길을 터주고, 조숙한 꽃들은 잎도 나오기 전에 지분대는 햇살과 눈 맞아 배시시 몸을 열었다. 지난해 떨어져 바짝 마른 낙엽은 청설모의 발걸음에도 바스러지고, 낙엽 밑에는 진격 명령 떨어진 전장의 병사들처럼 새싹들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고치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날벌레들은 우화를 시작하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곤충들도 스멀스멀 땅 위를 기며 신방 꾸릴 곳을 탐색한다. 작전의 전령 봄바람은 산속 구석구석을 휘돌아 명령을 하달한다. 얼핏 보면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과감하되 충돌이 없고 치밀하되 서둘지 않는 혁신이다.
우리의 산행 실력도 제법 진전이 있었다. 오늘 수락산 등산은 장암에서 시작했다. 이번 코스는 매번 오르던 코스보다 험하다고 알려져 서로 고무되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를 만난 건 지난달 중학교에 입학한 큰딸의 담임과 단체 학부모 면담회 때였다. 복잡해진 고등학교 형태와 입시 제도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그녀는 메모까지 해 가며 열심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 학부모라기엔 너무 젊어 보여 질문을 많이 하는 엄마들보다 더 눈에 띄었다. 이모나 고모려니 했는데 담임에게 민지 엄마라고 소개했다. 면담이 끝난 뒤 엄마들은 전쟁을 앞둔 전우처럼 호의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집이 같은 방향으로 삼삼오오 흩어졌다. 그녀는 나와 같은 방향이었다.
아이와 학습에 대해 통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큰길로 나왔을 때 한 떼의 등산객이 마주 걸어왔다. 마침 할 얘기가 동이 나 어색해지던 참이라 내가 지나는 말로, 오늘 날씨가 좋아서 산에 간 사람들 참 좋았겠다고 했다.
“등산 좋아하세요?”
그녀는 반색하며 물었다. 조금 뜨악해진 나는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건강을 위해 하고는 싶다고 했다.
“그럼 우리 같이 산에 다니지 않을래요?”
그녀가 발걸음까지 멈추며 정색하고 물었다. 싫다고 하면 무안해할 것 같은 진지한 표정이라 나는 인사성으로라도 ‘좋죠’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 태도가 건성으로 느껴졌는지 말 나온 김에 당장 실천하자며 그녀가 이틀 후로 날까지 잡아 가까운 수락산을 오르기로 했다.
처음 만난 내게 반색하며 등산을 하자기에 나는 그녀가 무척 산을 잘 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초입부터 힘들어하더니 겨우 중턱쯤 올라 더는 못 가겠다고 주저앉았다. 그녀가 인사치레로 한 말을 내가 너무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나 싶었다. 어쨌든 다시는 가자고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다음엔 더 높이 가자고 오기를 부렸다. 행여 내가 싫다고 할까 봐 아예 다음 산행 장소와 약속 시간을 정해 주며 다짐을 강요하는 바람에 나는 얼떨결에 받아들이고 말았다.
‘산도 잘 못 타면서 왜 그리 산에는 가려고 하는 걸까!’
그날 나는 산행에 대한 느낌보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만 키웠다. 그날이 수요일이었고 그녀의 적극성으로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집에서 가까운 산행을 하게 되었다.
오르는 데 급급했던 우리의 산행은 3주째가 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딛는 발 앞만 보이던 시야는 드문드문 피어나는 꽃나무들도 완상할 수 있게 되었고, 거친 숨소리 사이로 얘기도 섞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산행이 즐거움보다 고통으로 느껴지는 우리는 그 고통을 함께 이겨내며 적의 고지를 탈환한 전우처럼 기꺼워하곤 했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받으며 ‘요’라는 종결어미를 곧잘 빼먹곤 했는데 시나브로 아예 말을 놓게 되었다. 말을 놓게 되니 호칭도 민지 엄마 예진 엄마에서 그냥 민지와 예진이로 통했다.
그녀는 말수가 적은 편이고 될 수 있는 대로 긍정적으로 듣거나 말하려 했다. 산행이 참 편하다는 걸 느낀 건 둘이 말없이 걸어도 숨도 차고 주변 경관을 보느라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카페나 집에서 만났으면 둘 중 하나는 얘기를 해야 하고 하나는 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잡다한 수다로 본의 아니게 속내를 털어놓게 되어 헤어지고 나면 후회될 때가 많다. 산행은 올라가야 하는 공동의 목적이 있어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편했다. 한 달이 지나는 동안 내가 그녀에 대해 안 건, 남편이 안과 병원을 하고 있고 자신은 간호사 출신으로 같은 병원에 근무했다는 정도다. 나이가 나보다 여덟 살이나 아래라는 것은 지난주에 알았다. 그것도 내가 어쩜 그리 어려 보이느냐 도대체 몇 살이냐 집요하게 물어서 안 것이다. 그녀가 마지못해 나이를 말했을 때, 그녀는 경찰 고문에 못 견뎌 대답하는 죄인처럼 곤혹스러워했고 나는 듣지 말아야 할 고백을 들은 연인처럼 당황했다. 얼핏 스무 살도 안 돼 애를 낳았다는 생각에 나는 얼른 말을 돌렸고 그녀도 멋쩍게 내 말꼬리를 물었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라리 궁금한 걸 더 물어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후회도 되었다. 무슨 치부라도 덮어준 것처럼 말꼬리를 돌린 게 그녀를 더 무안하게 한 건 아닐까 싶어 께름했다. 다음에는 다른 코스로 가보자며 건성으로 불암산 도봉산을 들춰대는 그녀의 태도도 어쩐지 떨떠름한 속내를 덮으려고 과장을 한 것 같았다. 스무 살도 안 돼 애를 낳았다는 게 감추어야 될 치부는 아니더라도 어쩐지 예삿일은 아닌 듯했다.
오늘 수락산 산행은 이전보다 힘든 코스라 나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반면 그녀는 상기되는 듯했다. 별로 말도 없이 앞장서서 오르는 그녀는 어찌 보면 산행을 즐기는 것도 같고, 어찌 보면 무엇에 쫓기거나 무슨 결심을 다지는 것도 같았다.
‘전망 좋은 곳’이란 팻말이 붙은 작은 능선에 올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골랐다. 그녀는 내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며 아예 점심을 먹자고 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놓고 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산하를 내려다보며 후련해했다.
“건강해 보이는데 나처럼 겉으로만 그런 거야? 왜 그렇게 산에 열심히 다녀?”
“아니, 오히려 몸이 아프려고.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허리고 다리고 사정없이 아프더라고. 그러면 그 아픈 것에 신경 쓰느라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돼. 게다가 다 아는 병이고 금방 나을 병이라 걱정할 것도 없고. 기분 좋은 병이라고나 할까?”
“기분 좋은 병?”
“응, 잡념도 없어지고 고단해서 그런지 잠도 잘 오는 것 같애.”
“평소 불면증 있어?”
“불면증이라기보다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좀 있어서…. 어, 이제 날이 많이 따뜻해져서 다음 주부터는 김밥 싸 갖고 와도 되겠다. 그치?”
그녀는 내 물음에 무심코 대답하려다 아차 싶은 눈치로 말꼬리를 돌렸다.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는 일을 내가 물을까 봐 딴청을 피우는 것 같아 나는 궁금증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오르기 시작해 드디어 정상인 주봉까지 올랐다. 우리는 양팔을 벌려 정상의 공기를 음미하며 심호흡을 했다. 이제 수락산에서 더 높이 올라갈 데는 없다. 오름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다 이룬 포만감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장 길게 산행을 한 그날 이후 나는 이틀이나 끙끙 앓았다. 혹시 그녀도 드러눕지 않았을까 싶어 예진이에게 민지는 엄마 아프다는 말 안 하더냐고 물었다.
“아프지는 않은데 무척 속상한가 봐.”
“왜?”
“걔네 언니, 가출했대.”
“뭐, 민지한테 언니가 있어?”
“응, 고 1이야.”
그녀의 나이로 보아 으레 동생이 있겠거니 싶어 민지 동생은 몇 학년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동생 없다고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생뚱맞다. 꼭 동생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형제를 묻는 거란 걸 몰랐을 리 없을 텐데 곧이곧대로 동생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난 당연히 민지가 외동딸인 줄 알았다.
“아니, 그럼 도대체 몇 살에 애를 낳은 거야?”
“민지 엄마 친엄마 아니래. 친엄마는 민지 어렸을 때 이혼했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잠을 못 자고, 일부러 몸을 아프게 하려고 산을 찾는다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행여 내가 신경 쓰이는 일을 물을까 봐 얼른 말꼬리를 돌리며 머쓱해하던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여도 4월 산처럼 그녀도 개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불자는 아니라면서도 절집 대웅전만 보면 합장을 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의혹을 키웠다.
전처 소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딸이 가출했다기에 산행을 멈추거나 거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내색 없이 산행을 계속했다. 지난주에는 분홍색 연막탄이 터진 것처럼 만개한 진달래 무리를 보면서 감탄을 그칠 줄 몰랐다. 애가 가출한 마당에 즐거움에 겨워 나보다 더 환호하는 그녀가 나는 마뜩잖게 여겨졌다.
오늘 그녀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도봉산으로 가자고 했다. 꼭 도봉산에 가고 싶다기보다 심경의 변화가 있으면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어떤 결의를 다지는 것 같았다. 나도 코스를 좀 바꾸어 보았으면 하던 참이라 도봉산 성도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5월로 접어든 산은 전쟁터로 변했다. 잎은 잎대로 다투어 푸르러지고, 뿌리는 뿌리대로 다투어 발을 넓히고, 꽃은 꽃대로 다투어 피어난다. 초목의 치열한 다툼에 햇살 대주랴 물 대주랴 기후도 추웠다 더웠다 정신을 못 차린다. 초목은 몸집을 키워 숲을 살찌우고, 살찐 숲은 정기를 뿜어 산을 품는다. 다투되 상처를 입히지 않고, 경쟁하되 낙오자 없는 향연이다.
마당바위에 앉아서 오이 한 개씩을 먹고 다시 출발했을 때 당연히 경사가 완만한 우이암 쪽으로 가려니 했다. 그러려면 가던 길에서 앞으로 가야 하는데 그녀는 가파른 위쪽 길로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알고 있는 길처럼 성큼성큼 오르기에 아는 길인가 싶었는데 모른단다. 그냥 오늘은 더 힘들게 오르고 싶단다.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지면서 험했다. 돌과 바위들은 진압군에 맞서는 혁명군의 눈빛처럼 날카로웠다. 숨이 턱턱 막힌 나는 겁도 나고 현기증마저 났다. 딛기 편한 바위를 따라 이리저리 발을 옮기며 묵묵히 오르는 그녀는 나처럼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지난번 산행 때도 너무 태평하여 혹시 딸이 돌아왔나 해서 예진이에게 물으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친딸이라도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은근히 배슥거려졌다.
중학생 학부모치곤 너무 어려 보여 생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했지만, 막상 민지 생모가 사별한 게 아니라 이혼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이미지가 아리송해졌다. 이혼 후 만난 것이면 후처이고 이혼 전에 만난 것이면 첩실인데 어느 쪽일까. 지금 겪고 있는 가정불화에 대해, 후처라면 희생자이고 첩실이면 가해자일 것 같았다. 나는 드라마 몇 편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직접 구상해 보기도 하면서 그녀를 주시했다.
“민지야! 좀 쉬었다 가자.”
내가 숨을 몰아쉬며 불렀지만 그녀는 못 들은 듯 앞만 보고 발을 떼놓았다.
“민지야-아-”
내가 다시 한 번 크게 불러서야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엉, 힘들지.”
허겁지겁 눈물을 훔치고 돌아선 그녀는 코맹맹이 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주저앉자 그녀도 돌아선 그 자리에 앉았다. 얼굴을 안 보여주려 일부러 거리를 둔 것 같았다. 한사코 나를 등지고 올라간 것도 그래서였나 싶었다. 왜 울었을까. 열심히 오른 것도 진짜 몸이 더 아파지길 바라며 무리한 걸까. 궁금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드디어 철난간이 박혀 있는 바위를 기어올라 오똑하게 솟은 신선대에 올랐다. 올라서기는 했지만 지면이 좁은 데다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라 나는 오금을 못 펴고 쩔쩔매었다. 그런 나를 놀리듯 그녀는 놀이동산에 처음 온 아이처럼 신나게 오가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렇게 독하니 남의 집 꽃밭에 불을 지른 것인가. 나는 ‘너무 좋다’를 연발하며 팔 벌려 심호흡하는 그녀를 꼬장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포대능선 쪽으로 발길을 잡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돗자리용으로 큰 보자기를 펴고 김밥을 먹기 시작하던 참에 그녀가 ‘와아! 멋있다’ 하며 한 곳을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선인봉에서 사람들이 자일을 타고 있었다. 거리가 있는 데다 측면이라 마치 벽에 개미가 붙어 있는 것처럼 까마득하고 아슬아슬해 보였다.
“어유, 나는 무섭다. 위험하지 않나?”
“왜 위험하지 않겠어. 위험한 걸 아니까 그만큼 철저히 대비했겠지. 나도 해보고 싶다.”
“뭐라구? 산을 좀 잘 탄다 했더니 이제 자일까지. 너무 자만하는 거 아냐.”
“저 사람들 편한 길 놔두고 왜 저렇게 힘들게 올라갈까.”
“그러게 말야. 뭐 스릴을 즐기는 거겠지. 남이 못하는 걸 자신은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을 테고. 뭐 아무튼 뭔가 매력이 있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오르겠지.”
“그러니까 그 매력이 궁금해. 남이 안 가는 길, 아니 못 가는 길, 그래도 길은 길이잖아. 위험하고 힘든 만큼 보람도 있지 않을까?”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니잖아. 훈련도 받아야 하고. 우린 그저 안전이 제일이야.”
나는 행여라도 꿈도 꾸지 말라는 투로 일축했다.
“보기에는 목숨을 걸 만큼 아찔해 보이지만 만반의 준비만 하면 안전할 거야. 그러니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올라가지. 올라가는 도중에는 그야말로 무아지경일 것 같아. 오로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으니 잡념 같은 건 싹 없어지겠지. 또 정상까지 오르고 나면 얼마나 통쾌하겠어. 아마 자신감이 충만할 거야. 온 세상이 내 것 같지 않을까. 정말 나도 자일 타보고 싶다.”
암벽 타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김밥을 입에 몰아넣으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꺼풀이 무척 버거워 보였다. 애써 속내를 감추려고 해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무거워 보이는 눈꺼풀이 애처로워 보여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민지 언니가 가출했다며…?”
그제야 그녀는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려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체념한 듯 말을 받았다.
“민지가 예진이에게 말했나 보구나. 가출은 가출이지. 제 생모한테 가 있어.”
“생모? 민지 어렸을 때 이혼했다며?”
“응. 민지 낳고부터 산후우울증이 심했나 봐. 민지 아빠가 막 병원을 개원하고 나는 간호사로 들어갔을 때였는데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더라고. 그래도 안 낫자 도자기 공예를 다시 시작하더라. 대학 때 전공했거든. 도자기에 정신을 쏟더니 결국 이혼하고 영국으로 가버리더라고.”
“아니 근데 그 생모가 돌아온 거야?”
“지난겨울에. 제 핏줄인데 왜 안 보고 싶겠어. 애틋한 모녀 상봉이지.”
“아니 버리고 갈 땐 언제고 이제 다 키워 놓으니 찾는 건 뭐야.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 그리고 애도 그렇지. 저를 버린 엄마가 오란다고 그렇게 쉽게 가?”
“양념 냄새 풍기는 엄마보다 세련된 대학 강사 엄마가 좋잖아. 아마 제 몸속 신장이 내 것이라는 것도 안중에 없을걸.”
“어머! 신장까지 이식해 줬어?”
“엄마가 자식 위해 뭘 못 하겠어. 그때 아예 나팔관도 묶어 버렸는걸.”
“뭐? 불임 수술까지 했단 말야?”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그 것이 진정한 가족이 되는 거라고 믿었고.”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녀는 내가 다음 말을 할 때까지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하려고?”
나는 그동안 들었던 의혹을 풀어 볼 양으로 정색하고 물었다.
“몰라. 에이 재미없다. 예진이 이번 시험 잘 봤다며?”
“잘 보기야 했지. 다른 애들이 다 더 잘 본 게 문제지.”
그녀가 일부러 말꼬리를 돌리는데 굳이 캐물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점점 싱그러워지는 공기를 음미하며 망월사로 향했다. 망월사에 도착하자 그녀는 또 합장했다. 한 줄기 바람이 라일락 향기를 흩뿌리고 지나갔다.
그녀는 지금 이 5월 산에서 다투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치열한 싸움 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일 타는 걸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어느 산악회에 들어갔다. 남동생까지 동원해 나름으로 전문성을 띠었다는 산악회를 수소문해서 들어간 모양이다. 내게도 같이 가자고 권했지만 자신이 없어 사양했다. 우리의 산행은 일단락되었다.
그녀에게서 산에 가자고 전화 연락이 온 건 달포쯤 지난 후였다. 계절은 6월 하순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북한산 일정을 잡고 반갑게 재회를 했다.
비봉 능선을 타자기에 나는 구기동에서 출발해 승가사를 지나 대남문 으로 하산하려니 했다. 그런데 그녀는 오늘은 길게 산행을 하자며 불광동에서 출발해 족두리봉을 거쳐 문수봉을 올랐다가 대동문을 거쳐 백운대까지 가자고 했다. 나는 기겁하고 오늘 무슨 날 잡았냐고 펄쩍 뛰었다. 그녀는 해가 길어졌으니 충분하다고 우겼다. 낮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체력이 문제라며 나는 도리질을 쳤다. 처음에는 산악회에 들어가 조금 배웠다고 우세하나 싶어 그녀의 말을 일축했다. 그런데 몇 번 더 사정해 보다가 내가 완강히 반대하자 알았다며 힘없이 구기동으로 가자는 그녀의 표정이 어쩐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나는 선심이라도 쓰듯 일단 불광동에서 출발은 하되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말은 놓고 지내지만 그래도 내가 손위라고 대부분 내 의견을 따랐는데 오늘따라 고집을 피워 본 것도 마음에 걸렸다. 수척해진 것 같다며 산악회에서 무리한 거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썬캡을 더 눌러 썼다. 햇빛을 가리겠다는 뜻보다 얼굴을 가리겠다는 뜻이 역력했다.
내가 일부러 묻기도 했지만 그녀는 산악회에서의 일을 많이 얘기했다. 하지만 처음 경험한 일에 대한 신선함이나 꼭 해 보고 싶던 일을 해 본 설렘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그보다는 어떤 비밀을 숨기고 그걸 방어하기 위해 내게 울타리를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투나 표정으로 보아 울타리는 그리 견고할 것 같지 않았다. 그나마도 족두리봉까지 다다라서는 더 할 얘기가 없는지, 낮지만 사방 툭 터진 산 아래 경관에만 시선과 마음을 주었다. 계곡 건너편 탕춘대 능선에는 향로봉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비 오기 직전 거처를 옮기는 개미 떼처럼 고물고물 오르고 있었다. 수도에 이렇게 좋은 경관을 가진 산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느니, 같이 다닐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다느니 가벼운 얘기로 흥을 돋우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봉 능선길이 멀리 시야에 들어올 무렵이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물 몇 모금을 마시고 일어서는데 등산로 옆길로 조잡한 팻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검은색 사인펜으로 ‘등산로 않임’이라고 쓰인 손바닥만 한 베니어판 조각이 비닐 끈에 꿰여 무릎 높이로 두 나무 사이에 묶여 있었다. 팻말 뒤로는 좁은 길이 나 있었다. 등산하다 보면 흔히 있는 팻말이라 ‘등산로 아님’이라고 했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않임’이라고 써놓아 눈에 거슬렸다.
“아니, 등산로 아님에 ㄴㅎ 받침을 쓰면 어떡해. 초등학교만 나와도 알 수 있는 맞춤법인데 누가 좀 안 고쳐 주나.”
내가 물통을 배낭에 넣으며 무심히 말했을 때였다.
“우리 이리로 가자!”
그녀가 갑자기 정색하며 팻말 뒤쪽을 가리켰다.
“뭐? 등산로 아니라잖아.”
“공원 관리사무소나 구에서 붙인 게 아니라 누가 임의로 붙인 팻말이네. 길도 제법 나 있고. 우리 이리로 가 보자.”
“산악회 들어가더니 간이 너무 커진 거 아냐. 북한산이 만만한 산도 아니지만, 특히 이 코스는 우리같이 초보인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길이야. 그런데 등산로도 아닌 데로 가자고? 어떻게 된 거 아냐?”
“어쨌거나 길이 나 있잖아. 등산로는 아닐지 모르지만 길은 길이잖아. 분명히 가다 보면 비봉이나 승가봉 아니면 사모바위가 나올 거야. 이만큼 올라왔으니 조금 험해도 금방 닿을 거야. 가 보자.”
그녀는 숫제 통사정을 했다.
“글쎄, 안 돼. 그냥 이리로 가.”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하고 가던 길로 발을 떼었다.
“정 그러면 나 혼자라도 가 볼래.”
“뭐? 정말 왜 그래. 객기 부릴 게 따로 있지. 잘못했다간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어.”
“죽기밖에 더 하겠어.”
그녀는 팻말을 타넘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나는 황당해 몇 발짝 떼던 발길을 돌려 그녀를 무르춤히 바라보았다. 죽기를 각오하고라도 그 길을 가겠다는 그녀의 태도는 결코 오기나 호기심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함이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초조감이 보였다. 아니, 그런 절박함이나 초조감에서 벗어날 나름의 방법을 찾고 결행하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팻말 친 줄을 넘어간 건 나를 향해 그녀가 쳐 놓았던 울타리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리고 그 울타리로 내가 들어와 주길 바라는 뜻일 게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나는 휴대전화에 배터리가 충분한 걸 확인하고 그녀를 뒤따라갔다. 그녀는 미안하다며 빙긋이 웃었다.
길은 좁은 채로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있었다. 큰 바위에 막혀 기어 올라가기도 하고, 큰비에 쓸려 나가 생긴 웅덩이는 빠졌다 올라가야 했다. 길이 끊어졌나 싶다가도 빗물에 쓸린 자국이라도 찾아 디디며 오르다 보면 또 희미하게 이어지곤 했다. 마치 가난한 사람들 희망처럼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도 길은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다.
정신없이 걷다가 거대한 바위벽과 맞닥뜨렸다. 둥근 암벽에는 나일론 빨랫줄 두 가닥이 중간중간 매듭이 진 채 늘어뜨려져 있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 더 이상 못 가. 저 어설픈 빨랫줄에 목숨을 맡길 순 없다구.”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의연하게 줄을 탁탁 당겨 보았다.
“그렇다고 이제 조금만 가면 되는데 돌아갈 수 없잖아. 다행히 바위가 급경사는 아니네. 이 고비만 넘기면 정상 가는 길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이왕 온 거 올라가 보자. 줄만 단단히 잡고 올라가면 괜찮을 거야.”
“조금만 가면 되는지 어떻게 알아. 아무튼 싫어. 못 가.”
“실은 나도 무서워. 그렇지만 해내고 싶어. 남들이 말리는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싶지 않아. 꼭 이기고 싶어. 도와줘.”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속내를 토해내듯 말을 마친 그녀는 줄을 손에 한 번 감아 탁탁 잡아당겨 보고 나서 움켜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남들이 말리는 길’이란 말이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비로소 그녀가 울타리를 치고 변죽만 울리던 우울함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설사 나 혼자 돌아간대도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그녀의 결연함에 나는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사실 되돌아가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길도 험하지만 혼자서는 제대로 찾아갈지도 의문이었다. 할 수 없이 나도 그녀가 한 발 한 발 디디는 지점을 눈여겨보며 마음을 다졌다. 그나마 그리 높지 않아 그녀는 열댓 발짝 만에 다 올라 손을 털었다.
“와, 경치 끝내준다. 생각보다 안 무서워. 매듭만 단단히 잡고 올라오면 안전해.”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격려했다. 나는 서 있는 위치에서 위아래를 번갈아 견주어 보며 만에 하나 줄을 놓치면 어찌 되나 가늠해 보았다. 올라가다 떨어진대도 서 있는 곳에서 더 밑으로 구르지는 않을 성싶었다. 그녀의 말대로 경사도 급하지 않아 구른다 해도 치명적이진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은 계산이 섰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녀가 한 대로 줄을 탁탁 당겨 보고 매듭을 움켜쥐고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손을 옮겨 잡으며 위만 보고 올랐다. 줄을 움켜쥔 손에 땀이 차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저리는 듯했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행복감도 쾌감도 못 느꼈다. 오로지 안전하게 올라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다 오르고 나서야 해냈다는 쾌감도, 뿌듯함도 들었다. 탁 트인 시야에 대한 시원함도, 발아래로 펼쳐진 세상에 대한 만만함도, 두려움을 이겨낸 포상 같았다. 손금처럼 펼쳐진 능선과 골골이 신비를 감추고 있는 계곡, 크고 작은 봉우리들, 봉우리 못지않게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황홀함에 빠져 숨을 몰아쉬며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가 붙잡고 올라온 빨랫줄이 매어진 소나무 뒤로 움푹 들어간 바위굴이 보였다. 바위 밑에는 작은 돌제단이 놓여 있었고 타다 만 초가 뒹굴고 과일 조각도 버려져 있었다. 한켠에는 엉성하게나마 돌탑도 쌓여 있었다. 과일이 상하지 않은 걸로 보아 바로 얼마 전에 누군가 치성을 드린 듯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길도 없는 이 후미진 곳까지 찾아와 치성을 드렸을까!”
“그러게. 우리가 걸어온 희미한 길도 그 절박함이 낸 것이겠지. 지금쯤 그 절박함도 희미하게나마 난 길만큼이라도 풀리지 않았을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무연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큰애 아직 안 돌아왔어?”
“돌아오긴. 지금 우리 집은 팽팽한 신경전으로 막장 드라마 보는 것 같애.”
“신경전?”
“응. 남편은 큰애를 들어오라 설득하고, 생모는 작은애를 나오라고 설득하고. 애들은 애들대로 서로 설득하고.”
“그럼 자기는?”
“나? 나는 그냥 관중.”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자기가 가장 중심을 잡아야 하는 거 아냐?”
“글쎄. 그런데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남편도 자기만 믿으라고 하고, 작은애도 언니 몫까지 제가 효도하겠다며 나를 위로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어. 오히려 큰애가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제 아빠를 그쪽으로 기울게 하고, 작은애마저 제 엄마 설득에 넘어가면 그땐 나 뭐가 되는 거지. 피는 물보다 진하다잖아.”
“설마 그럴라구. 그동안 신장까지 떼 주고 일부러 불임 수술까지 해가며 지켜온 가정인데. 그리고 아무리 피가 진해 봤자 고작 멀건 물보다 진해. 그보다 이 경우는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더 맞아. 그동안 자기가 들인 공이 얼마인데 그게 무너지겠냐구.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힘내.”
“정말 그럴까. 결혼할 때 우리 부모님 무척 속상해했어. 민지 생모가 나간 후 애들을 돌보던 할머니마저 중풍을 맞았거든. 그러니 홀시어머니에 전실 자식이 둘이나 딸린 홀아비라니 오죽했겠어.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의사라는 신분만 보고 허영에 들떠 결혼을 한다느니, 심지어 애들 생모가 이혼한 것도 남편이 나와 바람이 나서 그랬다는 억측도 했어. 한마디로 가면 안 되는 길이었지. 하지만 그이와 나는 믿었어. 모두 안 된다는 그 길을 오히려 모두 부러워하는 길로 만들 수 있다는 사랑보다 강한 믿음.”
“그럼 됐지 뭐. 남편도 민지도 잘 이겨낼 거야. 솔직히 자기처럼 사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남편이나 애들도 그걸 모르겠어? 기운 내.”
나는 대꾸를 하면서도 진심이지만 어쩐지 뻔하고 공허한 말 같아 겸연쩍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도 진심이 통했는지 그녀는 다소 밝아진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예진아. 우리가 지금 올라온 길 말야. 여기서 치성 드린 사람들이 낸 거잖아.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그 길 없었을 거고, 또 우리도 그 길로 오지 않았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길은 났고 그 길 따라 우리가 왔으니 이제 그 길은 우리의 발자국으로 조금이라도 더 선명해지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고 보면 저 수많은 능선길도 처음에는 무언가 간절한 사람들이 낸 게 아닐까. 지금은 안전한 등산로지만 처음엔 힘들고 위험했겠지. 그 위험을 간절함으로 극복해낸 것이고. 마치 처음에는 박해를 받았지만 이제는 누구든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종교처럼.”
“그러게, 무속은 말할 것도 없고 절이나 암자, 기도원, 수도원 그런 기도처가 산에 많은 것도 그런 연유가 있는 건가 봐. 그래서 옛날부터 산을 신성시한 거고.”
“예진아, 정말 고마워. 아까 나 자기가 안 따라올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나 얼마나 무서웠다고. 그런데 이렇게 올라와 보니까 용기가 생긴다. 내가 살아온 길도 지금 우리가 올라온 길만큼은 되겠지. 오늘은 내가 누구의 간절함이 담긴 이 길을 따라 올라왔지만 앞길은 내가 낼 거야. 그래서 또 누군가 간절한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가 쩔쩔매지 않고 계속 올라갈 수 있도록.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길을 내주는 산처럼, 힘은 들겠지만 결국 삶도 그러리라 믿어. 우리 집 막장 드라마 내가 정리할 거야. 결코 내가 걸어온 길을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어. 결국 길은 내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생기는 것이니까.”
전투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지듯 결연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그럼 그럼’ 연신 맞장구쳐 주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는 꼭꼭 누르듯 산 위아래를 휘둘러보았다. 그리고 길도 없는 바위 옆으로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팻말을 타넘어 무작정 소로로 들어설 때보다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신념을 이 산이 지켜줄 것 같았다.
6월 하순을 넘어선 산은 이제 경쟁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받기 위해 공간 확보에 나섰던 여린 가지들은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만큼 꼿꼿해지고, 연둣빛 이파리들은 갈맷빛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떨어진 낙엽의 잔해들은 새로 돋아난 수풀에 덮여 거름이 되었다. 꽃들의 전쟁도 거의 끝났다. 꽃들의 희생으로 모두 승리했다. 꽃들이 스러진 자리에는 전리품으로 열매들이 맺혔다. 전리품이되 남의 것 없고, 내 것이되 남이 다 먹는 양식이다.
그녀의 예상대로 얼마 안 가 문수봉 능선길이 나와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한 애초 계획은 문수봉으로 정했다. 그녀가 처음 제시한 길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길이다. 시간이나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에게 더 이상 올라갈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의 산행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삼십 도가 넘는 기온 속을 뚫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종종 예진이에게 민지 언니 돌아왔냐고 묻곤 했다. 예진이는 모른다거나 안 돌아왔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 후의 가정사가 궁금해서 걸었다는 것이 뻔해 선뜻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혈육이라면 궁금하다는 것이 걱정일 수 있지만, 그저 같은 학부형의 관계에서는 호기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더위만이라도 지나고 나면 둘레길이라도 걷자고 전화해보리라 마음먹었다.
“뭐해?”
한창 복더위와 씨름하고 있을 때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혼자 있는 낮에는 차마 에어컨을 켤 수 없어 남편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하고 난 뒤다.
“오랜만이네. 더위에 어떻게 지내. 난 지금 전기값 아까워 에어컨도 못 켜고 선풍기와 씨름하고 있던 참이야.”
“행복하네. 난 지금 자일 타고 있어.”
“뭐? 이 더위에, 아니 더위가 문제가 아니지. 아무튼 그 위험한 걸 어디서?”
“어디긴 어디야. 당연히 바위지.”
“그러니까 어디 바위냐고?”
“우리 집 바위.”
“응?”
“놀라긴. 자일은 경사에서 타는 것이잖아. 자기도 알다시피 우리 집 경사도 만만치 않잖아. 그동안 내가 경사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같아. 이제 한 봉우리씩 자일을 타기로 했어. 쉽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을 것 같아. 성취감도 있을 거고. 응원해줄 거지?”
“응? 그럼 그럼.”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귀를 알아듣고 서둘러 응대했다.
“우선 가장 낮은 남편 봉우리부터 공약했지. 앞으로 어떤 경우든 애들 생모와 따로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냈어. 애들 일도 반드시 나를 배석시키겠다고 했지. 그다음 봉우리는 민지. 겉으로는 나만 엄마로 인정한다고 했지만 속으로야 어찌 그럴 수 있겠어. 가끔 생모를 만나는 것까지는 허락했어. 절대 밤까지 같이 지내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 했지. 무척 고마워하더라. 전에는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이젠 자신이 생긴 거 있지. 자일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고 있으면 금방 지친다는 걸 안 거지. 아무튼 이제 민지 언니 봉우리를 공격할 차례야. 두 봉우리를 올라봤으니 한결 편해. 안전장치도 해두었고. 생모도 겁 안 나. 핏줄? 난 목숨. 그저 자일만 잘 타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엔 분명 힘이 있었다. 에어컨보다 더 시원하게 들렸다.
“와 시원하다. 그래 그러면 돼. 나 은근히 걱정했는데. 역시 등산 다닌 보람 있네.”
추임새를 넣어주고 싶었다. 그녀가 흥분해서 자신 있게 말은 하지만 내심으로는 응원이 필요해서 전화를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자기암시를 하기 위해서 자초지종을 잘 아는 내게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더 발을 굳게 디딜 수 있도록 남편과 민지를 공략했을 때 일을 자세히 물으며 부추겼다. 그녀는 더욱 자신감을 보이며 생모에 대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