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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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늦가을이었다. 시 공부를 한 지 7여 년 된 제자가 경북일보 문학대전 작품 공모에서 1천만 원 고료 대상을 차지했다. 기쁜 마음에 축하와 격려를 하기 위해 시상식 날 동행했다. 시상식 장소는 마침 객주문학관이었다. 객주문학관에 가면 그 유명한 김주영 소설가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역시 그분은 거기 계셨다.
시상식이 끝난 후 그분은 축사와 함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옛 고사로 전해 오는 ‘타면자건(唾面自乾)’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내용이라 글 쓰는 한 사람으로서 큰 감명을 받았다.
김주영 소설가의 이야기는 역사에서 가장 마음이 넓고 성격이 좋기로 소문난 당나라 때의 재상 누사덕(樓師德; 630-699)에 관한 고사였다. 누사덕은 성품이 좋고 너그러워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조정에서 재상을 지냈는데 어느 날 동생도 높은 관직에 임용되자 그를 불렀다. 우리 형제가 출세를 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 남들의 시샘이 클 텐데 너는 어찌 처신할 셈이냐고 물었다. 동생은 “다른 사람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화내지 않고 그냥 손으로 닦아 내고 말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형 누사덕은 “안 된다. 네가 손으로 그 침을 닦아 낸다면 침 뱉은 그 사람이 더 크게 화를 낼 것이니 닦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침이 그냥 마를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누사덕은 동생에게 일깨워 줬다고 한다.
누가 시비를 걸어도 “절대로 화내지 말고, 핑계 대지 말고, 일(사건)거리를 만들지 말라”는 당부였단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고사의 한 대목이다. 침을 닦는다면 오히려 상대를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대가 심리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측면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 말이다.
그리고는 김주영 소설가는 이 고사를 글 쓰기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글 쓰기도 이렇게 참으면서 자신을 이겨내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는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 냉방에 엎드려 무릎이 벗겨지고 손발이 얼도록 쓰고 또 썼단다.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고 견뎌 내며 작품을 10편을 써도 한 편을 건지기도 힘들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적어도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을 이겨 냄으로써 비로소 한 작품을 건질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진솔하고 알곡 같은 말씀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 참석했던 많은 문인과 문학 지망생들은 누구나 똑같이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 정치도 사업도 학문도 예술도 이렇게 인내하면서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그 어떤 지향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인내심이자 자신을 이겨내는 극기다. 극기는 곧 성공의 지름길이다.
몇 년 전에 한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를 잊을 수가 없다. ‘뉴욕 빈민가 소녀가 대법관 되다 - 아직도 개천에서 용! 가능하다’라는 메인 타이틀이 눈길을 끌었다. 빈민가 소녀, 그녀는 기자들의 물음에 “연방 대법관(Supreme Court Justice)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뉴욕 빈민가 소녀인 제가 대법관이 됐으니 벼락을 맞을 확률에 당첨된 셈”이라며 기뻐하고 또 기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항상 나의 경쟁 상대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어제보다 혹은 1년 전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느냐가 그녀의 경쟁 상대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체육 시간에 어제보다 슛 한 개를 더 넣을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 혹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진정한 경쟁자는 언제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하고 항상 뒤에서 머뭇거리는 나 자신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