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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권남희

수필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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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면 습관처럼 나는 스마트폰을 열고 카톡에서 1대 1 채팅을 시작한다. 자투리 시간에 메모하고 글을 쓴다. 편집 주간을 맡았을 때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선 채로 A3 교정 용지를 들고 일하기도 했다.
글쓰기 장소와 도구가 전천후가 된 시대다. 나의 서재에도 컴퓨터와 노트북이 있고 출판사 작업실에도 컴퓨터가 있다. 아이들이 독립해 나가니 방마다 책상과 책장, 쓰던 컴퓨터와 노트북이 버티고 있다.
그런데도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으로 일을 하는, 장소와 도구에 구애받지 않는 일상이다. 자료를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제 구글로 검색하고 빅데이터로 무장한 AI 프로그램 도움을 받는다. 800만 권이 넘는 정보량이니 우주 도서관이다.

 

둘째가 4살 무렵 독서와 문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글쓰기는 쪽지 시험처럼 늘 달랑거렸다. 틈틈이 공부하는 중 집안 어른들의 염려도 듣고 남편의 반대가 있어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갈 때까지 내 책상은 식탁이었고 책장도 없었다. 시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아이를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 그리게 하고 나도 방바닥에 엎드려 글을 끼적이기도 했다. 오롯이 내 책상을 갖는 일은 프로 작가로 등단하는 일보다 절실했다. 나의 존재가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으니 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아줌마가 왜 책상이 필요하냐는 물음이 슬퍼 집필실을 가진 남성 작가들을 질투했다.
금수저로 태어난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에서 여자가 글을 쓰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썼다. 고모로부터 유산을 받기 전 그녀는 전업 작가로서 생활비를 걱정하며 연설문이나 현수막 문구를 써 주며 고료를 받기도 했었다.
우체국장까지 지냈던 영국 소설가 앤터니 트롤로프는 출근 전 두 시간을 자기 서재에서 글 쓰는 데 할애할 수 있었다. 남자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행복한 작가의 전형이다.

 

한 마리의 새가 날개를 펼쳐 비상을 하려면 공기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항을 없애기 위해 공기를 없애면 진공 상태가 되는데 오히려 저항력이 없어 날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나의 습작기도 버젓한 책상 하나 요구할 수 없는 ‘도움 받지 못하는 환경’이 동기 유발이 되어 반드시 작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고집으로 수없이 날개를 퍼덕였다고 해야겠다.

 

[권남희 ]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당선. 현재 (사)한국수필협회 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교과서 분배위원, 국제펜 한국본부·한국여성문학인회·대표에세이 회원, 미래수필 고문 등. 수필집 『미시족』 『어머니의 남자』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목마른 도시』 『민흘림 기둥을 세우다』 등 14권. 한국수필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구름카페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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