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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문학성과 환경의 관계—외로움과 죄책감 극복 그리고 정체성 찾기의 글쓰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권남희

수필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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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쓰기는 치유의 글쓰기에서 출발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매달린 글쓰기와 죄책감을 씻기 위한 과정, 그리고 아픔을 견디기 위해 골몰한 채 글을 써 댔기에 내 자신의 일상에 천착한 것이라고 해야 옳다. 내게 있어 문학은, 무언가 늪에 빠질 때마다 나를 건져 올리고 싶은 ‘극복 심리’가 작용했는데 그것은 글쓰기를 밧줄 삼아 나를 지탱하는 일이었다.
여고생 때 나는 문학 소녀는 아니었다. 항상 백일장에 나가서 시를 쓰고 상을 받아 전교생이 있는 자리에서 작품을 읽는 친구는 정해져 있었다. 미술반 활동을 하던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고 믿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내가 쓴 글을 인정받은 일이 있다. 국어 시험 대신에 선생님은 ‘세월’ 제목으로 시를 지으라고 했다. 글제가 십대에게 어울리지 않고 좀 낡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장난기를 섞어서 세월이 너무 빨라서 ‘이순신 장군이 쏜 화살 같구나’ 그런 탄식을 애늙은이처럼 늘어놓았다. 좀 엉뚱했는지 선생님은 그 글을 잘 썼다며 높은 점수를 주었는데 그것이 글쓰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열아홉 살이 되자 고향을 떠난 나는 지독한 외로움과 맞닥뜨리면서 일기를 쓰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받는 차별과 소외감, 인간이 지닌 ‘모순’에 좌절하며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객기를 부릴 용기도 없고, 호기롭게 돈 쓸 여유도 없던 젊음에 슬퍼하며 헤세와 전혜린, 루이제 린저의 글을 일기장에 끼적였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스스로 달래야 했던 어느 날 대도시에서 느끼는 불행감과 부조리를 꼬집으며 역설적으로 젊은이의 순수한 영혼을 말하려 140매 정도의 단편소설을 썼다. (최명희 문학관에 육팔 원고로 기증) 그 고백적이고 저항적이었던 원고를 대학 문학상에 투고했는데 오탁번 교수님이 뽑아 주셨다. 그 뒤로 나는 교내에서 글 쓰는 친구로 통했고 한동안 신춘문예병을 앓기도 했다.
결혼을 한 후 한동안 글 쓰는 일을 잊고 지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는 재미에 빠졌는데 나에게 결정적으로 글을 쓰게 만든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스물여덟쯤이었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그 죄책감은 오래 갔다. 아버지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전적으로 딸을 믿어 주고 서울에서 공부하는 딸이 대견해서 허리가 휘는 줄도 모르고 농사를 지어 학비와 용돈을 보냈던 아버지에게 나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 임신 사실이 졸업식장에서 탄로나고 그 사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충격에 빠뜨리고 폭삭 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졌다는 편지를 보낸 후 아버지는 맏딸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게는 죄의식으로 남아 늘 마음이 아팠다. 맏딸로서 만회할 기회를 잃은 나는 다시 글을 쓰며 아버지 일생을 책으로 내리라 결심했다. 아버지에 대해 써 두었던 글이 한국여성문학인회(한국여류문인회) 주최 전국 여성 백일장에서 입상을 하자 문학 공부를 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첫 수필집 『미시족』은 자전적 내용이 많았다. 부모님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 결혼생활에서 겪는 갈등,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1989년 이후 현대문학 문예대학 1기 소설반 공부를 하면서 형식이 달라졌다. 2집 『어머니의 남자』와 3집 『시간의 방 혼자 남다』에서 극적 구성과 반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국수필』(한국수필가협회 기관지) 편집주간을 13년(2005~2018) 하면서 나의 수필집은 주제와 소재 선택에서 변화를 겪었다. 순우리말을 찾아 쓰고 문장을 단련하고 서정적 표현이 중심이었다가 단조롭고 예리해졌다.
4집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은 인상파 화가 그림 60점을 넣어 화려하게 편집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념하고 싶은 마음도 담은 뜻깊은 책이었다. 5집 『육감 하이테크』부터 2∼3년마다 출간하는 수필집은 도시 생활자로 체험하고 느낀 글들이 많아지고 형식에서 실험적인 기법을 시도했다.
어느 날 나는 내 글이 냉정한 시각을 보인다고 느꼈다. 우연히 재일 작가 강상중(도쿄대 교수 역임)의 책 몇 권을 읽었는데 충격을 받았다.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사회 흐름을 간파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일까.
1987년 등단 이후 글쓰기 활동은 40년이 되고 있다. 누군가는 처음의 서정성 짙은 작품이 좋다고 말해 준다. 그런데도 변화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꾸준하고 다양한 분야의 독서 활동으로 더욱 실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럴싸하고 일반화로 포장한 글을 대량 생산하는 AI 로봇 저널리즘 시대다. 인간의 글쓰기는 치명적이고 깊이를 모르는 시퍼런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해졌다.
문학 활동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기적을 일으키는 동력이다. 일상의 격을 지키는 방법을 글쓰기와 문학 활동에서 얻게 한 시간들에 감사한 마음이다. 작가들과 문화탐방을 위해 미술관이나 문학관, 박물관, 유적지 등을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하고 추진하는 일에서 갖는 기쁨도 크다. 학기 수업에 맞는 인문학 책이나 문학, 예술 관련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에 나가면 행복감은 핏줄을 타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활동 영역을 넓혀 해외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아직도 무한대의 꿈을 꾼다.
『구별짓기(Distinction)』의 저자 삐에르 부르디에의 분류를 빌리면 ‘신흥 쁘띠 부르주아지’의 아비투스(habitus; 습관과 다른, 아리스토텔레스의 ‘hexis’ 개념으로 교육 같은 것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는 심리적 성향)이며 고도의 생성적 에너지이랄까? 나를 일으켜 세운 문학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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