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한국문인협회 로고 권남희

수필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조회수16

좋아요0

72시간이 시작되었다. 시어머니 빈소가 평소 거주했던 집에 앉혀지자 시어머니 주검은 병풍 친 안방에 모셔지고 집 안팎이 왁자하고 분주해졌다. 시아버지부터 장자, 차남, 3남과 손(孫) 등 집안 남자는 모두 베옷에 삼배 두건 삼베 완장 준비하고 여자는 하얀 소복 갖춰 입고 장보기와 음식 장만하기에 여념이 없다. 상중에도 감사한 점은 곶감 만드는 시기 상강이어서 음식은 마당까지 나가도 좋았고 안방 어머니도 꾸둑꾸둑 견디고 있다. 죽음 후에도 육체가 파괴되지 않게 기도하는 이집트 畵가 생각났다.
마당까지 천막이 쳐진 그 72시간 동안 두 명의 婦(daughter-in-law)는 조문객 맞이와 음식 대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친척 남자 형제와 직계 자손만 남고 그때부터 빠지지 않는 노숙인 몇 명이 잊지 않고 찾아온다. 그 몇 명은 육개장, 떡, 소주, 홍어초무침까지 챙기고 촌지도 주머니에 넣으며 잠시 기도까지 해준다.
인간이나 베옷, 소복은 72시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상주는 모두 음식이나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해 72시간 입어야 하는 베옷같이 구기고 지쳐 처음의 꼿꼿했던 등짝은 점점 굽어졌다. 소주에 취한 장자만 잠깐 가보고 아무도 기웃대지 않는 안방의 어머니는 스스로 더 꾸둑꾸둑해지고 영혼이 정착한다는 24시간이 남았다.
저세상에 집착하며 어머니가 틈틈이 곗돈 부어 사둔 수의까지 입히고 염(殮)이 끝나자 다시 조문객 맞이가 분주해졌다. 喪이 끝나간다는 생각은 나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방심하고 만다. 뒷담에 낚이는 시간이다. 빈소에서 친했던 상주와 마주하고 미소 짓지 않기는 쉽지 않다. 상주 또한 친한 손님 보고 반가운 마음에 미소 짓지 않기도 쉽지 않다. 조문객이 지인과 그 집에서 내놓는 식사와 소주 나누며 대화 중 제법 크게 웃지 않기도 쉽지 않다.
몇 명의 시누이는 친척과 어머니의 추억담에 빠져 간간이 웃다가 갑자기 두 명의 婦에게 분노했다. 우리 태도가 건성이고 애도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의 지인 몇 분이 오는데 잠깐 쉬겠다 싶은 반가움에 방심한 틈에 미소가 피었나 보다. 그 미소는 67세 시어머니의 죽음과 하등 관계가 없었는데도 편안한 표정에 거부감이 솟아 피 (blood)의 공분이 터졌다.
장지로 향하는 아침이 되자 몇 명의 시누이는 목욕탕과 미장원에서 매무새 가다듬고 두 명의 婦는 장지에서의 모든 과정에 손색이 없게 식사 준비까지 마쳤다. 두 명의 婦는 빗도 못 찾아 부스스한 행색인 채 옷만 간신히 입고 나섰다.
합장하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유언과 상관없이 고향 선산에 묻히기 위해 떠나는 관은 마지막에 대문 끝과 닿았다. 때맞춰 시누이의 곡이 낭자했다. 피의 진정성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눈밖에 난 두 명의 婦는 72시간 뛴 것도 부족해 장지에서 시가 친족에게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추궁당하고 코너킥 신세의 공이 되었다. 관이 묻히자 그곳은 즉시 뷔페 식사판이 되었다. 수십 명 분 육개장 뜨는 동작에 두 명 婦의 하얀 소복은 땡땡이 옷이 되었다. 평소 좋아했던 파국 대접이 흐뭇했는지 어머니가 누운 관 속이 조용하다.

 

10년간 한 집에서 시어머니와 한솥밥 먹었던 시간은 관과 함께 묻히고 72시간의 애도 흔적만이 한동안 자식의 효도 재는 잣대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ㄹ’(한글 자음)을 쓸 수 없어 장례, 울음, 눈물, 슬픔, 혈육, 딸, 아들, 며느리, 핏줄을 쓸 수가 없는 아이러니를 겪었습니다.
*‘ㄹ’(한글 자음)이 없는 산문 (조르주 페렉의 리포그람 기법 ‘E’ 없는 책 『실종』 패러디 실험 수필)
*리포그람(lipogramme) 기법: 글을 쓸 때 특정한 알파벳이 들어간 단어를 제외하는, 혹은 그 반대 방법이다. 조르주 페렉 ‘E’ 없는 책 『실종』은 프랑스에서는 가장 중요한 철자 ‘e’가 들어가지 않는 단어만 갖고 소설을 썼다.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이 리포그람 방식으로 쓰여진 것을 아무도 몰랐다.
*울리포는(잠재적인 문학의 공동작업실) 1960년대 초부터 일어난 실험적인 문학운동이다. 울리포 문학은 글쓰기에 갖가지 제약을 둔다. 특정한 제약이나 장치를 둠으로써 작가의 글을 개성에서 해방시킨다. 이 방식은 의외로 작가에게 잠재되어 있는 놀라운 글쓰기 능력을 발굴할 수 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글을 쓰면 편견에 빠지기 쉽다. (『심야책방』, 윤성근 지음, 이매진 출판, 2011년 판)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