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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을 살아도 살 것 없다던데

한국문인협회 로고 윤기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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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엷은 구름이 파도처럼 퍼져 있다. 유월이 이처럼 더웠던 적이 있었던가. 연일 뜨거운 땡볕인데 일기예보에 의하면 유월의 장마는 끝이 났다고 한다. 폭염으로 지구가 들끓고 있다는 뉴스, 중국에서는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하자 인공비를 만들기 위해 화학물질을 넣은 로켓포를 삼백여 발이나 쏘아 올렸다고 한다. 자연을 인공으로 극복할 수 있을는지.
폭염 속에 고향의 냇가를 떠올리면 강 위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청량함을 느낀다. 고향의 냇물은 엔간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서린 철교 아래 깊은 물을 사람들은 행고라 했다. 깊어서 검게 보이는 물과 냉기 때문에 조무래기들은 들어갈 엄두를 내지 않았다.
물은 돌틈을 지나면 소리를 낸다. 아낙네들의 수다와 방망이 소리가 어우러지면 냇물은 오선지가 된다. 버들치가 떼를 지어 꼬리를 흔들며 왔다 갔다 도돌이표를 그렸고, 큰 돌 작은 돌 둥근 돌 모난 돌이 자리 잡고 누운 냇가에 수양들과 버들강아지가 그늘을 만들었다.
오래전 옛날에 천둥번개 내리치고 폭우가 쏟아질 때 만어사(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이름)의 너들바위들이 물살과 함께 골짜기에 구르면서 작은 돌이 되었을까. 아니면 앞산의 산사태로 밀려온 바위였을까. 물살에 깎이고 씻기고 볕에 바래어 깨끗한 돌과 맑은 물을 보려고 세월이 많이 흐른 뒤 고향의 시냇가엘 갔다. 새로 생긴 철길과 고속도로가 지형을 바꿔 놓았다. 냇물은 추억에서만 흐르고 있다.
얼굴에 핏기가 없다며 빨간색 옷을 잘 사주셨던 어머니. 코르덴 윗도리와 바지, 코고무신 신은 발이 종종걸음을 걷는다.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러 가던 날, 옆집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을 때 중절모를 쓴 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이 꽃샘바람에 펄럭거렸다. 휴전이 된 그해 추석 무렵에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겨우 옹알이를 하는 딸을 안고 세상을 다 얻은 만큼 좋았고, 네가 말을 배워서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는 가슴이 벅찼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살아왔으니 맛보는 기쁨이었다고 하셨던 아버지. 생각만으로도 지금도 눈물을 글썽이게 한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자존감을 심어주셨던 아버지.
요즘은 저절로 “세월 한 번 빠르다”는 말을 종종 하게 된다. 증조할머니께서 “너희들도 한 번 살아 봐라. 백한 살까지 살았으나 눈 깜짝할 사이고 살 것 없더라.”고 하실 때 백 살은 아득한 세월이었다. 그랬는데 어느새 세월 한 번 참 빠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난해 손자가 겨울방학을 했다며 가방을 메고 왔다. 한겨울인데 땀으로 윗도리가 흠뻑 젖었다. 가방이 꽤 무거웠다. 교과서는 학교 사물함에 두고 집에서 공부할 책만 가지고 다녔다. 학교에 개인 사물함이 있다니 세상이 이처럼 좋아지다니. 오래 살면 더 좋은 시절이 올까. 손자가 쓰던 학용품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컴퓨터방에 모아 놓고 사용하는데 샘물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했다. 교재 종이는 영양실조 걸린 사람의 얼굴처럼 누렇고 푸석해 잘 찢어졌다. 그래도 귀하디귀한 책이 아니었던가. 교과서를 받은 날 지난 달력을 간수해 두었다 겉표지를 예쁘게 입히고 학년과 반, 이름까지 적었다. 읽을 책이 귀했다. 여고생 언니가 있는 친구 집에 가면 책꽂이의 책에 눈이 갔다. 단짝이던 아랫마을의 영희에겐 여고생 언니가 있었다. 우린 하루라도 만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만난 것은 책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루는 빨리 가려고 질러 가는 논두렁으로 갔다. 나의 출현으로 놀란 개구리가 논으로 뛰어들었다. 난 뱀인 줄 알고 더 놀라서 미끄러져 논에 빠졌다. 되돌아오면서 길이 아닌 논두렁으로 간 것을 후회했다. 지금, 어떤 날은 여러 권의 책이 배달된다.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으니 어린 날의 소원을 푼 셈이다.
해방과 전쟁, 부모님 세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그 여파가 훗날까지 이어졌으나 우리들은 부모님 세대보다는 수월하게 살았지 싶다. 4학년 가을, 다른 나라의 구호물자가 나왔다며 마을 구장네로 모이라고 했다. 인구 수에 비하여 옷이 모자라 제비뽑기를 했다. 한 가정에 보통 대여섯 명의 자녀에 삼대가 모여 살았던 대가족 시대. 어머니께서 뽑은 것은 아주 큰 미 해군의 군복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군복을 뽑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하였으나 우리 어머니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 덕분으로 군복은 나의 멋진 겨울 코트로 변신하여 두어 해를 따뜻하게 입고 동생한테 물려주었다. 풍족하지 못했던 대부분 가난했던 살림살이에도 많은 사랑을 주신 부모님과 따뜻한 이웃들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추억.
한 생명으로 태어나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대의 사랑을 받았으나 그때는 몰랐다. 인생 여행에서 쌓아둔 추억은 오롯이 나의 귀중한 재산이다. 누가 훔쳐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보물창고에 무시로 드나들 수 있다. 증조할머니처럼 1세기를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부모님한테 받았던 정을 고3인 손자에게 주려고 등교시키는 일을 자처했다. 차 안에서 짧은 대화에도 흐뭇할 때가 있다. 강보의 녀석이 어느새 이만큼 자랐나 싶어 대견하여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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