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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를 미는 천사들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이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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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 봐. 할머니가 너무 힘겨워하시네.”
학교 앞 육교 밑을 종이상자를 가득 담은 할머니의 손수레가 지나갑니다. 길은 가팔라서 할머니의 이마에는 겨울임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습니다.
“미경이랑 수완이는 손수레를 밀어주지 않고 왜 보고만 있을까?”
학교의 담벼락 위에는 제대로 먹지 못하여 배가 홀쭉한 오소리가 앉아 있습니다. 곁에 나란히 앉은 너구리와 다람쥐를 번갈아 보며 연신 입을 나불거립니다.
“먹을 수도 없는 고물을 할머니는 왜 가져가는 걸까? 나는 배가 고픈데.”
입을 쩝쩝 다시는 오소리를 어이없다는 듯 너구리가 바라봅니다.
“너는 왜 매일 배고프단 타령만 하니? 저 고물은 팔면 돈이 되잖아.”
“돈은 먹을 수 없잖아.”
“바보야,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먹을 걸 얼마든지 살 수 있어.”
“우리가 사람이냐? 그런데 저 아이들은 왜 할머니를 도와주지 않는 거지?”
말로는 너구리를 이기지 못하는 오소리가 얼른 말머리를 돌립니다.
“응, 미경이 보니까 할머니 손수레를 밀어주고 싶은 폼이네. 하지만 수완이가 선생님께 고자질할까 봐 저러고만 있는 거야.”
턱을 괴고 있던 다람쥐가 아는 척을 하며 말을 받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건 좋은 일인데 고자질은 무슨?”
오소리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육교 밑으로 건너가면 안 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겠지.”
“왜 건너면 안 되는데?”
“법이 그렇게 되어 있어. 법을 안 지키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대.”
“그럼 저 할머니는 왜 안 잡아가는데?”
“아유, 말꼬리 잡지 마. 그건 나도 몰라.”
너구리는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립니다.
“우리가 저 할머니 손수레를 밀어줄까? 육교 밑을 동물이 지나가면 안 된다는 법은 없을 것 아니야.”
다람쥐가 불쑥 말을 되받으며 쪼르르 담벼락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앗, 저것 봐. 할머니가 위험해.”
너구리가 소리치며 다람쥐를 따라 깡충 뛰어내립니다. 노란 중앙선에 다가선 할머니의 손수레가 힘에 부친 듯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로 움찔거립니다.
끼이익. 뒷걸음질치는 손수레를 보고 놀란 택시가 길 위에 그대로 섭니다.
끼이익. 택시를 뒤따르던 차들도 모두 길 위에 그대로 섭니다.
“아고 할머니, 저기 횡단보도를 이용하셔야지 이리로 가면 어떡합니까?”
택시기사 아저씨는 머리 위로 빈주먹을 휘두르며 화를 내면서 부르릉, 차를 요란하게 몰아 할머니의 손수레를 비껴갑니다.
“할머니, 이러다가 사고 나겠어요. 다음부터는 이리로 다니지 마세요. 기운도 없어 보이구먼, 그냥 집에 계시지. 내 참.”
커다란 고급차를 탄 아줌마는 색이 짙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험한 소리를 커다랗게 하며 자동차를 붕, 더 세게 몰고 할머니 곁을 지나갑니다.
“참 정신 나간 할멈이네. 노령연금이랑 다 나올 터인데 가만 앉아 놀지, 도대체 뭐 하는 짓거리야?”
1톤 트럭을 운전해 가는 나이든 할아버지가 온 동네 떠나갈 듯 큰소리를 지릅니다. 너도나도 지나가는 차마다 창문을 열고 할아버지처럼 여러 소리를 퍼부어댑니다. 심지어 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손수레는 길 한가운데에서 움찔거리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미리부터 보고 있던 미경이와 수완이는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인도에 서서 발만 동동 굴러댑니다. 용을 쓰느라 얼굴이 빨개진 할머니는 허리를 구부리며 힘을 냅니다. 그러자 조금, 아주 조금씩 할머니의 손수레는 다시 굴러갑니다.
“내가 밀어줄 거야.”
다람쥐가 쪼로롱, 담장을 따라 큰길로 달려갑니다.
“나도 밀어줄 거야.”
너구리도 쪼로롱, 다람쥐를 따라 큰길로 달려갑니다.
“애들아, 다치면 어쩌려 그래. 돌아와, 어서.”
겁 많은 오소리만 담벼락 위에서 웅크린 채로 그냥 앉아 있습니다.
“우와, 다람쥐다 다람쥐야. 시내에서 다람쥐를 다 보네.”
지나던 승용차가 길 건너는 다람쥐를 보고 놀라서 차를 세웁니다.
“저건 너구리잖아? 동물을 보호해야지. 행여나 다칠라.”
커다란 화물차도 승용차를 따라서 차를 세웁니다.
“다람쥐는 몰라도 너구리나 오소리는 겨울잠을 자는 걸로 아는데. 겨울임에도 저렇게 너구리가 설치는 걸 보면 양식이 충분하지 못해서야. 다 우리 인간이 못난 탓이지.”
혹시나 브레이크의 끼이익 소리에 너구리와 다람쥐가 놀랄까 봐 버스는 아주 조용히 섭니다. 그 사이로 달려간 다람쥐와 오소리는 할머니의 손수레를 밉니다. 다리가 짧은 다람쥐는 쳇바퀴 돌리듯 손수레의 바퀴살을 밀어재낍니다. 주둥이가 긴 너구리는 손수레에 실린 종이뭉치에 코를 박고 뒷다리에 힘을 줍니다.
“아니, 다람쥐하고 너구리 아냐? 쟤들이 저기서 뭐 하는 거냐?”
널찍한 승용차 안에서 훌륭하게 생긴 아저씨가 점잖게 말을 합니다.
“산에 과실수들이 적어서 동물들, 특히 다람쥐나 너구리가 먹을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재들이 사는 산에는 눈도 내렸고요. 그러다 보니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으러 마을로 내려왔지 싶습니다. 저렇게 위험한 줄 알면서도 쓰레기를 뒤지는 걸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앞자리의 비서 아저씨가 안됐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답을 합니다.
“음, 그러면 내년에는 저 산에 쓸모없는 참나무는 몽땅 베어내고 빨리 크는 과실수를 심어야겠구나. 동물이 살아야 사람도 사는 거야.”
훌륭한 아저씨는 측은해하며 다람쥐와 너구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그대로 서 있으라고 지시를 합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섭니다. 택시 안의 사람들도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봅니다.
“와, 자연이다. 자연, 자연 보호, 자연 보호.”
여럿의 꼬마둥이들이 함성을 지릅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어른들 시위하는 흉내를 냅니다. 사람들의 눈길이 꼬마둥이의 손짓과 함성을 따라, 너도나도 다람쥐와 너구리에게로 몰려갑니다. 아무도 손수레를 힘겹게 끄는 할머니에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어휴, 손수레가 갑자기 가벼워졌네. 어떻게 된 거야. 천사들이 와서 밀고 있나?”
큰길에는 찻소리가 들리지 않고 손수레는 수월하게 굴러가서 이상함을 느낀 할머니는 얼굴의 땀을 훔치며 뒤를 돌아봅니다. 네거리의 초록불이 왔는데도 차들은 가지 않고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멈추어 있는 차의 차창가에서 할머니의 손수레를 바라봅니다.
“에구 미안해라. 나 때문에 차들이 못 가나 봐. 바빠서 육교 밑으로 건너왔는데. 매우 부끄럽네. 다음부터는 생각을 달리해야겠어. 어서 가야지. 영차 영차.”
할머니는 손수레를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줍니다.
“우리도 힘을 내자. 영차 영차.”
할머니의 손수레를 천사들이 밀고 있습니다.
휘잉. 차가운 겨울바람이 육교 밑 큰길을 훑으며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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