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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金美廷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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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봄비가 내리자 마치 누가 불러 주기를 기다렸던 듯 벚나무 꽃망울들이 일시에 봄의 함성을 내지른다. ‘팡팡’ 소리 없는 팝콘의 행렬이 향기롭게 공중 퍼레이드를 하는 양이다. 들썩이는 첫 계절의 대지가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봄의 향기와 생기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오가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늘 올려다보는 까치 둥지가 오늘은 화사한 벚꽃들에 감싸여 꿈의 궁전처럼 근사해 보인다.
지난해 2월에 아파트 벚나무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빈 가지에 신축 건물이 자리 잡는 모습을 눈여겨보다가 이어서 신혼의 까치 부부가 깍깍거리며 들락거리는 모습에 색다른 흥미를 느꼈다. 강풍이 불거나 세찬 빗줄기가 내리면 나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까치가 걱정되는 맘으로 바라보곤 했다. 봄이면 대여섯 개의 알을 낳는다니 부부 까치가 알을 낳아서 품고 새끼를 부화시켰는지 어쨌는지 참으로 궁금했지만 그건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겨울엔 둥지에 드나드는 모습을 좀체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봄이 오는 길목에서다. 어느새 집 한 채를 더 늘인 것이다. 지난해 지은 묵은 집에 아래채처럼 잇대어서 평수를 늘인 보금자리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리고 올해도 부부 까치가 들락거리며 둥지 속에서 깍깍거리는 노래를 들었다. 까치는 어느새 내 마음의 정원에 들어와 사는 가족이 되었다. 아파트 현관을 드나들 때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일부러 까치집 나무 아래를 지나다니며 고개를 젖혀 한참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지나도 아랑곳없이 올려보기를 한동안 하게 된다. 오늘도 동리 시장에서 장을 보아 오는 길에 짐을 든 채로 화사한 벚꽃에 감싸인 둥지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까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이때 늘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웃 부인이 “꽃이 활짝 피어 참 보기 좋지요?” 하며 꽃처럼 활짝 웃었다. 만개한 벚꽃에 홀린 모습으로 비추어진 모양이라 나는 말없이 수긍하듯 미소를 띠웠다. 우리 아파트 벚나무의 까치는 나만이 몰래 간직한 유년의 비밀 구슬이거나 조금은 수줍은 짝사랑과 같았으니.
이태 전, 십오 년을 함께한 나의 반려견 코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곤 몹시 앓았다. 맘의 아픔이 몸으로 현현된 걸 몰랐으나 이를 깨닫고부터 스스로를 다스려 치유가 된 일이다. 곁에서 지켜본 가족들이 새 반려견을 권했지만 나는 선뜻 응할 수 없었다. 그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충성스러움은 내겐 더없는 마력적 유혹이지만 이제 그 생사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그 노쇠와 아픔을 온전히 내 것으로 느끼던 고통을 다시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두려웠다. 이럴 즈음, 작은딸이 앵무새를 키워 보면 어떻겠냐며 B시의 앵무새 가게로 나를 이끌었다. 말하는 커다란 앵무새를 상상했던 나는 그 작은 관상용 새들에 실망했고 말하는 새라곤 아예 없었다. 무엇보다 따스한 체온과 눈빛으로 교감하는 반려견과는 다르니 마음이 통 안 갔다.
그해에, 아파트 나무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사정없이 잘려 나갔다. 참으로 속상하고 허전하였다. 삼십여 년 나이테의 무성한 벚꽃나무였다. 그런데 그 아팠던 나무 둥치에 처음으로 까치가 날아와 둥지를 튼 것이다. 나는 왠지 빈 허공이 채워지는 조화를 느끼며 안도하는 심정이었다. 그때부터 까치는 내 맘에 생동하는 생명의 리듬이자 치유의 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며칠 전 큰딸이 찾아와 집 근처 식당에서 도다리쑥국을 사주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향할 때다. 딸이 아주 자랑스럽게 “엄마, 난 요새 뽀삐를 길러요.”라고 말했다. “어? 강아지 샀어?”라고 놀라워하자 핸드폰을 열어 ‘유튜브’ 속의 강아지를 소개했다. 날마다 보게 되는 귀엽고 영리한 강아지인데 이를 보면 즐겁고 힐링이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하였다. 나는 해맑은 딸의 얼굴을 새삼 쳐다보며 여러 생각이 잠시 오갔다. 힘든가, 아픈가, 자식들이 다 컸으니 허전한가 하고. 그리고 나도 자랑스레 말하였다. “엄마도 보여 줄 게 있단다.” 그리고는 아파트 마당에서 까치 둥지를 가리켰다. “저 집, 주인이란다.” “어머나, 집을 아주 크게 지어 놨네요.” 위아래 두 채로 이어진 까치 둥지를 보며 딸이 감탄했다. 때마침 까치가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딛고 있었다. 평화롭고 생기 찬 풍경이었다. 소유하지 않아도, 노력 없이도 무상으로 소유하고 누리게 되는 자연의 은혜였다.
아침이면 더욱 생기차게 지저귀는 까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흔히 들리는 까마귀 울음과 비교가 되었다. 까마귀는 그 울음이 마치 공중을 가르는 듯 그악스럽게 크고 길며, 까치의 것은 스타카토 템포로 그보다 낮게 스탬프를 찍듯이 끊어서 깍깍거려서 내 귀엔 귀엽게 들린다. 관심은 더 많은 걸 알고 싶게 하는데 나는 아직 까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다가 불현듯 가까이서 먹이라도 주어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까치는 어느새 다른 나뭇가지에도 조그만 둥지 하나를 별당처럼 지어 놓았다. 거기로 작은 새들이 드나들어서 혹시 새끼들인가 하고 살폈으나 몸통에 흰색이 보이지 않으니 자그만 잡새들의 손님용 별채인가 싶었다.
인간은 비상하는 새들의 날개를 부러워한다. 훨훨 무한 허공을 나는 그 자유로움을 부러워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나이 먹은 이제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곤 한다. 허공을 홀로 나는 날갯짓이 얼마나 힘든지 외로운 사투인지, 생존을 위한 날갯짓의 고단함이 느껴지며 비 젖는 둥지 속 까치가 안쓰럽곤 하다. 어쨌든 지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은밀한 기쁨을 누리는 나는 벚나무에 둥지를 튼 까치가 무척 감사하다. 까치는 해마다 묵은 집을 고쳐 쓴다니 내년에도 다시 올 것이다. 나는 또 그때면 다시 둥지에 깃드는 까치를 올려다보며 그들을 마음으로, 눈으로 쫓으며 사랑하게 되리라. 소유하지 않아도, 노력 없이도 무상으로 누리게 되는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는 오늘도 까치를 눈으로 쫓으며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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