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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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고향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향수와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필자 역시 내 고향에 대해서는 온갖 미사여구를 끌어들인다 하여도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운 추억과 향수를 지니고 있다. 마치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말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 <고향> <망향> 등을 작곡한 내 고향 출신 작곡가 채동선이 곡을 붙여 잘 알려진 가곡 <향수>는 또한 작곡가 김희갑이 작곡하여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내 고향은 바로 벌교이다. 우리 벌교는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강퍅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전임 벌교 읍장이 한 강연회에서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이나 인터넷 등을 뒤져 벌교 주먹에 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잘하면 우리 고향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수많은 자료를 파헤친 끝에 눈에 확 띄는 내용을 하나 발견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의 일이다. 벌교 지역에서 활동했던 ‘안규홍’이라는 의병장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벌교 시장통에서 한 일본 순사가 아녀자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맨주먹으로 그 일본 순사를 때려 죽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지금도 벌교에 가면 황금 주먹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또한 벌교에는 일제가 자기들이 세운 회사를 관리할 직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벌교상업고등학교’라는 명문 고등학교가 있는데 모 법대 교수도 이 학교 출신이고, 1960년대 세계 주산왕도 이 학교 출신이다.
그리고 앞에 나온 채동선 작곡가는 일제의 갖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으며 1953년 피난지 부산에서 53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한복만 고집하였다고 한다. 유학 생활할 때 잠깐 양복을 입었던 것만 빼고 말이다. 즉 그는 벌교가 낳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자존심인 것이다.
오래 전에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일본에는 벌교회도 있다고 한다. 과거 벌교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이 벌교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골집에도 어느 날 카메라를 든 일단의 무리들이 찾아와 집안 구석구석까지 찍고 돌아갔다. 그들은 아마 우리 시골집에서 살았었던 일본인인 듯하다.
조폭 문화가 발달한 일본이기에 ‘벌교’의 주먹이 무척 그리웠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