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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 한 그릇

한국문인협회 로고 명경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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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4월의 아침은 눈이 부시다. 창밖을 바라보니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꽃과 나무들의 향연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어 조용히 집에만 있기가 너무 아쉬워 벚꽃이 만개한 아파트 가로수길로 나갔다. 떨어지는 꽃잎을 두 손으로 살포시 잡으며 꿈을 향해 달려가던 학창 시절의 추억에 잠겨 본다.

 

여고 2학년, 체력장(體力章) 연습을 하기 위해 체육 시간에 넓고도 커다란 운동장을 두 바퀴 돌아야 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데 나는 저질 체력이 문제였는지 반 바퀴를 남기고 몸이 기우뚱하더니 그만 운동장 한구석에 널브러져 쓰러지고 말았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지만 그만 일어나지 못하고 야속하게도 선생님의 등에 업혀 병원 신세를 졌다.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을 부르시고 내일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어머니와 버스를 2시간 넘게 타고 장항 도선장에 내려 커다란 여객선으로 갈아타고 군산 도립병원으로 갔다. 우리 집은 충남이지만 대전으로 가려면 1박을 해야 하고 전북 군산으로 가려면 새벽에 출발해 마지막 배와 버스를 탈 수 있어 군산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지금은 전국이 일일생활권이지만 45년 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많은 수고와 고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꾸불꾸불한 돌밭길에 비가 오면 비포장도로가 물에 잠기거나 휩쓸려 떠내려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야만 했고, 눈이 오면 버스가 오질 않아 학교 가는 데 많이 힘들었다.
병원에서 CT도 찍고 피검사도 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검사한 결과는 영양실조에 류마티스 관절염이었다. 생각해 보니 자취하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많이 굶었다. 의사 선생님은 푹 쉬고 영양 섭취를 잘해 줘야 한다고 어머니께 누누이 말씀하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바닷가 마을이고 여고에 다니려면 읍에 나와 방을 얻어 자취를 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싸 주신 반찬으로 한 주간을 같은 방 친구와 나눠 먹으면 수요일 아침이면 남아 있는 반찬이 없어 꺼칠한 모습으로 다이어트 아닌 다이어트를 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병원 문을 나오셨다. 나는 풀죽은 모습으로 군산 도선장 앞을 걷고 있는데 단팥죽 쌍화차란 큰 글씨가 창문에 붙여진 장소로 어머니가 들어가시며 손짓을 하신다. 그곳에 들어가니 깨끗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차 끓이는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거렸다. 세련된 여자 분이 빨강색 쟁반에 앙증맞게 생긴 뚜껑이 있고 단팥죽이 들어 있는 예쁜 그릇을 어머니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그 그릇을 바라보시며 뚜껑을 열지도 않은 채 배 시간이 다 되었노라며 눈인사를 하고 내 손을 잡고 가게 문을 나왔다. 마지막 배라 그런지 여객선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어머니와 나는 비좁은 자리에 끼어 앉아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있다.
배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하루 종일 검사하느라 속이 비어서인지 멀미도 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저녁밥을 먹으며 어머니께서는 식당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단팥죽 그릇을 보고 깜짝 놀라서 나왔다고 하셨다. 얘야, 자고로 팥죽은 큰 그릇에 푸짐하게 먹어야지 작은 컵으로 먹으면 배가 부르지 않을 것 같아 나가자고 하셨단다. 내가 며칠 있다가 팥죽을 맛있게 끓여 줄 테니 서운해하지 말라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나이를 한 해 두 해 먹으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분의 지갑이 두둑했다면 그깟 단팥죽이 대수였겠는가. 아, 어머니.
오늘은 주일이라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에 갔다 공교롭게도 목사님께서 에서와 야곱의 팥죽에 대한 설교를 하신다. 에서가 배가 고파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교훈을 들으며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듯이 참음과 인내의 시간들이 어머니와 단팥죽의 그리움이 기억 속 저 멀리 클로즈업되면서 시간 속의 감성에 젖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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