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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묘 ‘라온’의 충성에 감동하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성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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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끝자락,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지만 요즘 날씨는 참 변덕스럽다. 낮에는 초여름의 햇살이 이글거리고, 밤에는 서늘한 공기가 두꺼운 이불을 부른다. 계절조차 혼란스러운 요즘, 사람들의 일상도, 우리의 하루도 언제든 흔들릴 준비가 된 듯하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인천 부평구의 여러 재난 현장에 24시간 동안 긴급 출동해 대응 활동을 진두지휘하는 책임자로 근무한다.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과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어깨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며 하루를 열었다.
오전 11시경, 주택가의 한 지상 주차장에서 ‘차량에 사람이 깔렸다’는 다급한 119 신고가 접수되었다. 유압잭 위에 올려져 있던 카운티 캠핑카가 갑자기 내려앉아 밑에서 수리 중이던 남성이 차량에 깔렸다는 내용이다.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를 구조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그러나 끝내 삶은 닫히고 말았다. 40대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은 임신한 아내의 오열과 초등학생 딸의 멍한 눈빛으로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주변 주민들과 119 구조대원들의 마음도 깊은 슬픔과 무거운 먹구름으로 가득 찼다. 점심시간 소방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속을 누르듯 쌓여 가는 무력감이 느껴졌다.
시간은 흘러 오후, 가스레인지 부주의로 인한 출동 신고들이 잇따랐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운동으로 땀을 흘린 뒤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긴 밤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런데 월요일 새벽 4시, 시민들이 고요히 잠든 시간, 119 사이렌이 소방 청사를 울렸다. 출동 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평온했던 마음이 긴장으로 바뀌었다. 소방차 16대가 도심을 가로질러 15층 주상복합 아파트 1415호에 도착했다. 이웃 주민이 타는 냄새를 맡고 신고한 화재였다. 이 아파트는 2008년 사용 승인 이후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었고, 다행히 스프링클러가 제때 작동하여 초기 진화에 성공했다. 주차 공간이 협소해 고가 사다리차를 전개할 수 없었기에 우리 대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까지 올라가 옥내 소화전으로 잔불을 정리했다. 건물은 복층 구조의 29m² 오피스텔로, 소화기, 옥내 소화전, 스프링클러, 자동 화재 탐지 설비가 잘 갖춰져 있었다. 비상 경보음에 놀란 40여 명의 주민들이 무사히 자력 대피했다.
그런데 잔불 정리를 하며 내부 인명 검색을 한 바, 1층 거실 소파와 벽면을 중심으로 국부적인 소훼가 있었으며 혼자 거주하는 임차인 리우챵(여, 91년생 중국인) 부상자가 현관문 앞에서 발견되었다. 팔과 다리, 얼굴에 1도 화상을 입은 채 크게 당황해 있었다.
그녀는 어눌한 한국말로 “취침 전 거실 탁자 위에 명상과 습기 제거 및 은은한 향기 유지를 위해 향초를 켜두었는데, 잠든 사이 반려묘 ‘라온’이 자신의 팔을 물어뜯으며 끙끙거리는 바람에 급히 잠에서 깨어나 베개를 이용해 소파 및 탁자에 붙은 화재를 진압하던 중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작고 어린 존재가 그녀를 위기에서 깨워 생명을 살린 것이다. 그러나 즉시 불길을 잡지 못해 연소 확대되면서 더욱 당황하여 혼자 현관문 밖으로 탈출해 있었는데 잠시 후 직상부 천장에 부착된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하면서 화재가 초기에 진압되었다는 것이다. 주인은 급히 탈출 순간에 반려묘의 생사를 확인 못해 걱정되었는데 관할 119 안전센터에서 인명 검색하며 화염과 연기로 가득 찬 원룸 안에서 반려묘 ‘라온’을 안전하게 구조 완료해서 다행이었다. 처음 농연 흡입으로 화장실 입구에서 까만 털에 재가 묻은 채 기절해 있었지만 119 구급대원의 응급처치와 산소 공급 덕분에 곧 기적처럼 간신히 소생하여 여자 주인과 감격의 재회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 버렸다. 반려묘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이 왜 나를 그렇게 가슴 떨리고 울리게 만든 걸까.
화재 원인은 발화 추정 지점에 타다 남은 향초가 발견된 점 이외의 다른 발화 열원으로 작용할 만한 전기 및 기계 설비 등이 확인되지 않아 향초 사용 부주의에 의한 발화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관할 소방서에서는 명확히 원인을 확인할 만한 증빙자료가 없어 발화 열원, 발화 요인, 최초 착화물에 대해 ‘미상’으로 처리되었다. 이는 향초 불꽃의 방치와 반려묘에 의한 전도 현상(轉倒現狀)으로 화재를 유발했다는 심증만 있고 CCTV나 홈캠과 같은 증빙자료가 없고 노처녀인 주인이 나중에는 진술을 번복해 반려묘의 향초 불꽃 전도 가능성을 부인(否認)하였는 상황이었다. 리우챵 씨는 라온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아마도 사랑하는 존재에게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귀서 후 보고서를 작성하며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며칠 전, 오후 6시 30분 화재에서 ‘코코’라는 또 다른 반려묘가 4명 가족 모두 외출한 집에서 스프링클러 덕분에 무사히 구조된 사고가 떠올랐다. 국부적으로 소훼 정도가 심한 상태인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바, 주방 전기레인지 위에 놓인 휴대용 가스버너 플라스틱 손잡이 일부가 소실되었고 싱크대 상부장 및 환기 후드 일부가 열손된 화재였다. 역시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해 초기 진화가 되었고 긴급 출동한 소방대에서 옥내 소화전 수관을 연장해 잔불 진화를 마무리했다. 검게 그을린 창문 너머로 작은 생명체가 젖은 채 이불 속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소방대원들의 신속한 구조로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최근 들어 일반 주택 내부에 반려견과 반려묘가 함께 생활하는 통계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핵가족화 현상의 증가와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사회경제적인 다변화 가운데 싱글족들이 많아지면서 반려묘는 이제 친구나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반려동물은 단순한 애완을 넘어 가족이 되었다. 그들은 우리의 삶과 공간을 나누며, 무심한 일상 속에 따스한 위로와 충성을 보여준다. 나는 자문해 본다. 만약, 어떤 재난이 나를 덮친다면 나는 라온을 지킬 수 있을까? 평소에는 반려묘를 친구라 생각하며 지내다가 위급할 때에는 내 혼자 탈출하지 않을까? 재난 현장 지휘관으로서 나를 살려준 반려묘를 배신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 질문은 나의 수필집 제목 ‘그대는 남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가’를 다시 가슴에 새기게 한다.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희생, 그 무게는 우주보다도 무겁다. 반려묘 ‘라온’이 주인을 구조한 충성스런 마음과 그를 구조한 119의 손길은 따뜻한 마음 그 자체였다. 말 없는 생명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소중한 삶을 가진다. 그리고 누군가 그 가치를 인정해 줄 때,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따뜻해질 것이다. 어느 작은 생명이 사람을 살리고 그도 살아난 이야기…. 그 속엔 인간의 책임, 사랑, 그리고 희망이 함께 있었음에 감동한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 작은 촛불을 밝힌다. 내 곁에 있는 모든 생명을 더욱 소중히 품으며, 혹시 모를 순간에도 사랑을 지킬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친구가 내게 알려준 생명의 온도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필자의 최초 수필집에서 물었듯이 오늘도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본다. 바로 “그대는 남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가?”라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선다. 하지만 작은 반려묘가 내게 가르쳐준 희망 덕분에, 나는 오늘도, 더 용감해지고 그 대답을 품으며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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