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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한국문인협회 로고 오세홍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8월 6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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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오늘따라 오지 않는다
눈은 점점 폭설로 변해 가는데 우산도 없다 
택시가 지나간다
버스비만 주머니에서 딸랑
눈보라에 어른거리는 옛 모습들
엄마 아빠 남편 아들 하느님 목사님 피아노 농약 요양보호사

 

양산 넓은 뜰이 내 것이었던 시절
서울 목동 50여 평 아파트 그리고 터진 IMF
심장까지 얼어붙은 후 내려간 김포 그리고 조치원 
굶기를 밥먹듯 했다는 내 또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던 나
하늘이 내려준 담금질일까
내려와서야 비로소 보이는 많은 것들 
피는 꽃이 있으면 지는 꽃도 있는 것을 
다시는 세상 탓하지 않으리
나를 지팡이 삼아 산 넘고 고개 넘어 
천리를 왔네 그리고 가야 하는 천리길

 

아 버스가 저쪽에서 온다
발밑이 빙판처럼 반질반질하다
오백원 동전 두어 개가 목숨이다
두어 시간을 꼼짝없이 걸어서 가야 하는 시골집
유리창에 부딪쳐 부서지는 눈송이 눈송이
지난날의 내 모습일 거야
버스가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눈은 멈추었다 하얀 벌판을 걸어 올라간다
반듯반듯한 발자국 하얀 치마에 재봉질하듯 하다

 

어쩜 발자국조차 흐트러짐이 없을까
부잣집 따님이셨대
친청어머님도 신여성이셨다지
뒤따르던 이웃 아낙네들이
앞선 발자국에 발을 포개며 조용히 걸음을 따른다 
구름을 몰래 빠져나온 햇살 하이얀 세상 더욱 하얗고 
양 어깨에 선물처럼 따사롭게 쏟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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