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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함과 호기심 사이에서 당당하게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태열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9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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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닫혔다고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전 여성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대체 학습으로 개설한 ‘나도 작가다’라는 과정을 몇 년간 이끌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온몸으로 쓴 글을 편집하고 퇴고해 『어둠도 빛이더라』라는 책을 세상에 내보였다.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지도한다는 것이 처음엔 버거웠지만, 점점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앞을 못 보는 그녀들한테서 질곡 같은 삶을 버텨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를 얽매고 있는 고민거리가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나이를 막 지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실업급여 대열에 합류했다. 앞날은 불행일지 행복일지 모르는 기나긴 궤도를 KTX처럼 쉼 없이 달려갈 터이다. 은퇴 후의 생활은 타인의 시선에서 그런대로 무감(無感)할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이방인이라도 된 듯했다. 오랫동안 팽팽했던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니 시간 개념이 일 단위로 바뀌고 주말과 평일이 그다지 구분이 없게 되었다. 헐렁한 마음 한편으로 무언가에 막혀 있기라도 한 듯 조금 막막하기도 했다. 사실 직장생활이라는 게 놓인 환경에 적응해 크기를 맞추어 사는 ‘코이’라는 물고기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껏 역할로 그어진 선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당연했다면 이제부턴 선을 넘는 용기도 내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구속받지 않은 시간 앞에 서니 그날이 그날이듯 단조로움과 권태로움이 반복된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나 홀로’의 일상이다. 신중년의 삶이란 게 부부가 함께 있어도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여 조금씩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다. 홀로 훌쩍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바람 같은 자유는 기나긴 노동에 대한 충분한 보상일 수 있다. 반면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집에서만 지내며 나를 벗하는 자유도 그 나름의 권리이겠다.
딱히 얽매여 할 일이 없기에 스트레스를 덜 받겠지만 건강, 시간, 돈은 안배에 제법 신경 써야 한다. 삶의 방식을 다시 점검해 시계추의 움직임처럼 균형 있게 맞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은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건강에 대한 정보는 너무 많아 무엇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상태를 잘 알아 몸의 회복 탄력성을 유지하게 하는 게 최우선이다. 몸을 지나치게 혹사하지 말고 음식을 절제하고 생각을 단순하게 하면 자연히 그렇게 될 듯하다. 나이 듦에 물리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그런데도 욕심대로 몸을 다그치다가 노화의 가속 페달을 밟아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이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접한다. 건강의 지향점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다. 생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먹고 배설하며, 걷거나 타고서 원할 때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사유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다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돈은 기나긴 생존에 제법 중요한 요소다. 새로운 벌이가 없다면 연금이 주된 수입원이기에 덜 소비하거나 의도적으로 아낄 수밖에 없다. 집이나 소유에 대한 상대적 비교에서 벗어나니 돈의 가장 큰 쓰임은 욕망의 추구가 아닌 사소한 일상의 영위에 있다. 사람과의 인연도 자연스레 오그라드는 관계망에다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만남이 대부분이다. 약속이 있을 때 걷거나 자전거로 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풍경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제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이다. 시간은 하얀 도화지를 펼치는 것과 같다. 매 순간 반복되는 일상에서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굳이 먼 곳을 돌아다니면서 색다른 경험을 쌓지 않더라도 그만이다. 느리게 걷다가 마주치는 소소한 풍경이나 여린 사물에서 낯섦의 의미를 찾아내면 되리.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각도도 그에 맞춰 낮추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숨어 있는 신비가 드러나리라. 일상에서 불편할 정도의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어야 나에게 주어진 날들의 그림을 나만의 색깔로 그려낼 수 있다.
사람은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관계 속에서 여물어 간다. 그동안 듣고 읽고 말하는 행위는 참 많이 가졌다. 이제 더는 읽고 싶어도 눈이 쉽게 침침해지니 꼭 필요한 책이 아니면 읽지 않게 된다. 게다가 내 말에 귀 기울여 줄 이도 별로 없다. 글쓰기는 그동안 묻혀둔 기억의 감정과 화해하며 생각의 길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는 친구와 같다. 하나의 점에 불과한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매개체다. 사회적 존재로서 유용과 무용 사이에서 번민하는 나를 점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나이가 드니 자꾸만 움츠러진다. 스스로 마음의 한계를 긋는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관념의 감옥에 갇힌 신세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고독한 글쓰기만큼 사회적 연결망을 만들 수 있는 적극적인 도구는 없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다. 나만의 콘텐츠만 있다면 가상세계와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다. 글쓰기는 불확실성이 짙어가는 나이 듦에 실존의 의미를 찾아주고 죽어가는 열정을 일깨워주는 안내자와 같다. 그렇지만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을 비워내는 글쓰기로 나아가야 마음 깊이 숨어 있는 나의 어린아이를 만나는 행운을 얻을지도.

 

한없이 존재가 가벼워지는 노을의 끝에 서 있다. 한갓 들풀 같은 삶에서 다시 무엇에 구속되어 살 것인가. 나를 나답게 키우는 시기는 고독을 친구로 삼아야 하는 지금 이후의 시간일 것이다. 엄청난 무게의 압박감으로 다가오겠지만 어차피 길들여지지 않는 들고양이처럼 호기심과 따분함 사이에서 당당하게 시치미 떼며 흘러가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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