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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기억의 숲을 걷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하인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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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먼저 길을 여는 숲 입구에 선다. 흰 줄기는 붙들던 밝음을 천천히 풀어낸다. 한 그루 나무 앞에 서서 몸을 기댄다. 나무의 숨결이 등에 스며들며, 온몸으로 나지막이 퍼져 나간다. 그렇게 온몸의 감각이 깨어날 때, 먼 빗소리처럼 아득한 소리를 들었다. 위로 올려다보니 일렁이는 바람결에 잎들이 비스듬해지며 빛의 면을 바꾸고, 그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스며든다. 껍질 한 겹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사각, 작은 소리가 오늘의 첫 문장을 연다.
강원도 인제는 내 유년이 숨 쉬던 자리다. 태를 묻진 않았어도 마음의 탯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세월의 밑바닥에서 빛을 한 줌씩 더듬어 올린다. 반짝이는 조약돌이 아니라 숨은 결을 간직한 원석의 윤기다. 몇 번의 이사를 건너도, 호주머니 속 달각거림은 나를 불렀다. 혼자 걸으면 마음이 먼저 달리곤 했기에, 이번에는 더는 마음만 앞세울 수 없어 내 곁에서 가장 천천히 걸어 주는 남편과 동행하기로 했다.
소양강댐 근처 풍경은 새 책의 첫 장처럼 달라져 있었다. 수몰지구 안내판 아래, 물빛에 씻겨 나간 마을 이름들이 얕게 흔들렸다. 그래도 남은 것들이 있었다. 일자형 교사 한 동, 창이 어두워진 미끄럼틀, 낮은 낭하. 잠긴 문고리에 햇살이 걸렸다. 한때 창살을 타고 미끄러지던 빛을 떠올리며, 그 빛처럼 희고 곧은 기억의 결을 찾아 우리는 원대리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줄기들이 길게 서서 어제와 오늘 사이에 문턱을 세웠다.
자작은 한 몸에 서늘함과 따뜻함을 함께 싣는다. 손등에 닿으면 서늘하고, 불에 타면 따뜻하다. 정갈함과 살림의 불이 한 등줄기에서 오른다. 북풍을 정면으로 받으며 흰 몸을 세운 채, 쓸쓸함과 단단함을 한 어조로 견딘다. 나는 그 양면을 배우며, 생을 건너는 법을 익혀 갔다. 비늘 같은 수피가 희어 ‘백화(白樺)’라 불린다. 자작자작, 장작이 타며 내는 그 소리는 오래된 밤의 심장 박동처럼 내 귀에 남아, 백석의 시를 떠올린다.
작품 속 산골집의 밤은 과연 어땠을까? 여우의 울음과 자작거리는 나무 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밤을 상상해 본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 (중략) /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백석, 「백화(白樺)」부분〕. 내 유년의 우물은 깊은 두레우물이 아니었다. 낮은 돌턱에 걸터앉아 바가지를 담그면 우물의 찰박거림이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물을 마시기 전에 먼저, 그 소리를 마셨다. 서느름한 쇠맛, 젖은 흙내, 바가지 나뭇결의 떫음이 이내 혀끝을 적셨다. 저녁이면 감자밥 김이 굴뚝에서 한 줄로 올랐고, 엄마는 가끔 메밀묵을 저었다. 호야등 흔들리던 밤, 엄마는 잠투정하는 동생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쉿, 자장자장, 여우 내려온다.” 장작 타는 소리와 여우 울음이 서로 꼬리를 물던 밤이면 고샅의 어둠은 그 온기로 데워졌다.
후두둑, 서늘한 빗방울이 얼굴로 곧추 떨어진다. 정오가 지나자, 붉은 띠가 숲길을 가로질렀다. 안내판에 검은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복구 공사로 임시 통제. 우회로 이용 바랍니다.” 나는 그만 가자고 했으나 그는 옆길을 따라 걸어 보자고 했다. 접힌 지도의 선이 서로의 박자를 바꾸었다. 우리는 안내도를 다시 펼쳤다. 닫힌 길, 우회로, 사라진 다리 표시에 연필로 작은 화살표를 그었다. 속도를 낮추자 그림자가 길의 뜻을 드러냈다. 잎맥을 훑던 빛이 부윰히 발치에서 모양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흙물의 냉기가 발목을 감싸고, 저녁빛의 잔열이 손바닥에 오래 머물렀다. 숨은 한 번 길게 떠돌다가 우리 사이의 고른 장단으로 수렴했다.
빈 복도의 어둠을 닮은 숲에서 오래전 교실이 떠올랐다. 종이 울린 뒤 풍금 건반이 한 번 더 내려앉던 순간, 칠판 가장자리에서 분필가루가 모래처럼 흘러내리던 장면, 종례 후에도 칠판을 한 번 더 바라보던 느린 아이의 뒷모습. 모두가 교문을 나선 뒤 가방을 챙기던 그 아이의 등 위로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그때도 길 위에 혼자 남아 있었다. 느려야, 포개진 시간의 결이 읽힌다. 길은 그런 느림을 위해 있었다.
우회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의 보폭에 내 호흡을 맞추자, 길이 한 박자 느려졌다. 진창 구간에서 끈을 조이고 배낭을 가볍게 옮겨 메고 물병을 들었다. 흙이 밑창을 잡아 떼어내는 감각, 발걸음이 어긋났다 다시 맞춰지는 틈. 그 사이를 메우는 남편의 미소와 흐르는 땀, 그리고 손바닥의 온기가 우리를 앞으로 밀었다. “조금만 더.” 그 말만으로도 속도를 낮출 근거는 충분했다. 늦음이 뒤처짐이 아니라 맞춤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석양빛이 숲으로 길게 스며들 무렵, 물속의 마을이 다시 떠올랐다. 수면 아래 지붕선 하나, 장독의 둥근 어깨. 대문 앞 말뚝 그림자가 둘을 조용히 붙들고 있었다. 잃어버림으로는 닿지 못하는 되찾기가 있다. 손을 넣어 더듬으면 매끈한 가장자리가 만져진다. 나는 보이지 않는 그 가장자리를 어루만지듯 걸었다. 줄기와 줄기 사이로 바람이 작은 통로를 만들었다. 저 끝에서 오래전의 내가 발소리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길은 천천히 우리를 앞으로 밀어냈다.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마을 학교에 들렀다. 타일은 오래 밟힌 자리마다 은근한 반들거림을 드러냈고, 문지방의 얇은 철판은 햇빛을 좁게 번쩍였다. 낡은 공기 속에 분필 냄새가 가볍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벽에 희미하게 남은 분필자국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오늘의 손과 어제의 벽이 잠깐 같은 온도를 가질 때, 시간이 오목하게 고인다. 그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자작나무는 일러 준다. 벗겨내되 베어내지 말 것, 드러내되 훼손하지 말 것, 붙들되 움켜쥐지 말 것이라고.
길 끝에서, 바닥의 얇은 표피 한 조각이 나를 불렀다. 허리를 굽혀 집어 드니 손가락 사이에서 사각, 작은 소리가 났다. 조각을 호주머니에 넣어 돌아왔다. 책상 위에 올리자, 숲의 입구에서 들었던 그 소리가 시간의 이음매를 메우듯 이어졌다. 나는 그 조각을 책갈피에 끼웠다. 다음 계절이 오면 다시 펼쳐 읽기 위해서, 그리고 잃어버린 때가 아니라 꺼내어 맞이할 순간으로 남고자 함이다. 그 작은 소리를 지키는 일, 어쩌면 글쓰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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