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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샘물(인형극)

한국문인협회 로고 곽영석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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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인물들_ 영롱이(강아지)|고양이|고슴도치(안개 숲을 지키는 욕심쟁이)|허수아비(가족을 기다리는 아버지)|느티나무(마을을 지키는 늙은 나무)|할머니|용바위(고슴도치의 어머니)|반디 요정①③|물의 요정①⑤|이밖에 무지개 연못을 지키는 하늘 병사들①②(목각인형)
때_ 현대, 봄
곳_ 숲이 있는 마을
무대_ 이 연극은 동화극으로 출연하는 인물의 개성이 뚜렷해서 무대 장치는 환상적인 분위기로 제작되어야 한다. 주 무대는 마을 입구에 자리한 할머니의 집과 느티나무, 바위가 있는 숲으로 구분되어 진행된다.

 

제1경_ 구불촌 할머니의 집
막이 열리면, 할머니의 집이다. 무대는 비어 있고 집 뒤쪽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할머니   (소리만) 이이고, 이게 다 뭐냐? 물고기가 아니야? 너희들이 다 잡은 거야?
영롱이   (소리만) 예. 저희들이 집에 없는 동안 할머니 드시라고요.
할머니   그래, 고맙다. 석 달은 먹고도 남겠구나.
고양이   (소리만) 할머니, 닭장 안에 꿩도 요리하여 드셔요.
할머니   (소리만) 네가 잡아온 거야?
고양이   예. (식구들과 집 뒤에서 나온다)
할머니   온 녀석도. 끼니를 거르긴, 조금만 기다리면 보리도 익고 튼실한 보리알을 거둘 텐데 뭘 걱정이야?
영롱이   할머니, 우리가 약을 꼭 구해올게요. 그 약을 드시고 오래오래 사셔요.
고양이   할머니의 무릎이 쭉 펴질 수 있는 신비한 샘물도 꼭 구해다 드릴게요.
할머니   에이 인석아, 그런 약이 어디 있다고?
영롱이   칠보산에 가면 신비한 약초를 구할 수 있대요. 그곳에 가면 은빛 샘물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할머니   은빛 샘물은 또 뭐냐?
고양이   그 샘물을 마시면 젊어진대요.
영롱이   할머니, 정말 신기한 일이잖아요.
할머니   너희들 그럼, 이야기 할아버지 말만 믿고 집을 떠난다는 거냐? 그런 거야? 가지 마라. 사람이 나이가 들면 늙는 것은 당연한 거야. 젊어지려고 약을 먹고 그러는 거 싫다.
고양이   할머니, 할머니를 지키는 것은 우리 책임이거든요.
할머니   말은 고맙지만 남의 이야기만 듣고 떠난다고 하니 걱정이 돼서 그래.
영롱이   할머니, 꼭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고양이   예, 할머니.
할머니   (잠시 생각) 오냐. 그래. 나를 보살피느라 답답했을 터이니 여행도 다녀오고 싶었겠지. (이때 닭들이 쫓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또 너구리 녀석이 닭장에 찾아왔나 보다.
영롱이   할머니, 제가 쫓아내고 올게요.
할머니   배가 고파 찾아온 녀석이야. 먹던 밥을 조금 나눠주면 돼.
영롱이   할머니는 인정이 많으셔서 탈이야.
고양이   그래.
할머니   집 걱정은 말고 어서 다녀오거라. 어서 가.
영롱이   (고양이와 함께 절을 하며) 예, 할머니.

 

할머니가 바라보다가 집 뒤쪽으로 퇴장하면, 영롱이 싸리문을 닫는다. 집의 형체가 사라진다.

제2경_ 마을이 보이는 벌판
무대가 밝아지면, 마을 길목 벌판이 열려 있다. 허수아비가 벌판을 내려다보다가 지나쳐 가려는 아이들을 불러 세운다.

 

허수아비  야, 너희들! 이리 와 봐.
영롱이    누구세요?
허수아비  너희들, 내가 헌옷이나 입고 새를 쫓는다고 업신여기는 거냐?
영롱이    아뇨, 아저씨가 주무시는 줄 알았어요.
허수아비  뭐? 잠자는 줄 알면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 (문득) 뭐? 칠보산에 간다고?
고양이    어머,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허수아비  아침에 까치가 듣고 와서 이야기하더라. 칠보산으로 ‘은빛 샘물’을 찾으러 간다고.
영롱이    (가까이 다가서며) 아저씨, 아저씨는 칠보산의 샘물을 아셔요?
허수아비  알면 뭘 하게?
고양이    아이참, 그럼 아저씨의 소원을 들어주면 말해 줄래요?
허수아비  소원? 너희들이 들어준다고?
영롱이    아저씨의 첫 번째 소원은 다리 한쪽을 얻는 거잖아요.
허수아비  그래. 그보다 심장이 필요해.
고양이    예?
허수아비  난 가슴이 비어 있어. 사랑할 줄도 몰라. 심장이 없으니까.
고양이    아, 어쩌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허수아비  흥, 줄 마음은 있고?
고양이    아저씨가 가슴 없이 살아오셨다는 말을 들으니까 눈물이 나요.
허수아비  그 말 진심이니?
고양이    아저씨, 우리랑 함께 그 샘물을 찾아가면 안 돼요? 그 샘물을 찾으면 아저씨에게도 나눠드리면 되잖아요.
허수아비  고맙다. 지금까지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아이는 없었는데….
고양이    아저씨, 언제인가 라디오에서 들은 건데요. 아저씨에 대한 노래도 알아요. 제목이 ‘허수아비’예요.
허수아비  나에 대한 노래가 있다고?
고양이    예. 불러볼까요? (곡② <허수아비>를 노래한다)
허수아비 알록달록 헌 옷 입고 외다리로 우뚝 서서
두 팔 들고 춤을 춰요. 흔들흔들 춤을 춰요.
산새 들새 앉지 마라. 비바람도 불지 마라
두 팔 들고 훠이훠이∼ 새를 쫓아 훠이훠이∼

 

영롱이와 고양이가 함께 부른다.

 

밀짚모자 눌러쓰고 검은 두 눈 부릅뜨고
펄럭펄럭 소리쳐요, 두 손 들고 소리쳐요.
술래잡기 하지 마라. 산새 들새 앉지 마라.
두 팔 들고 훠이훠이∼ 춤을 추며 훠이훠이∼.

 

허수아비  고양이야, 고맙다. 너희들은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구나. 그래, 지혜를 모아 할머니를 고칠 샘물을 찾아보자.
영롱이    (허수아비의 다리를 끼운다.) 아저씨, 자, 됐어요. 아저씨, 이제 높이 뛰어 보세요.
허수아비  뛰어 보라고? (뛰어 보며) 아, 하하, 다리가 생겼네? 이제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겠다. (걸어보며) 이제 나도 걸을 수가 있게 되었어. 어때, 걷는 모습이 의젓하니?
고양이    아저씨!
허수아비  고맙다. 너희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었구나.
영롱이    허수아비 아저씨, 이제 마음껏 세상 구경도 하고 사셔요.
허수아비  그래그래.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진다.)

 

제3경_ 느티나무 언덕
무대가 밝아지면, 칠보산이 보이는 느티나무 언덕이다. 허수아비와 아이들이 들어온다.

 

<산 위에 오르면>(곡③)
산 위에 오르면 너른 들과 산들이 
올망졸망 내 눈앞에 펼쳐져 있어 
새하얀 흰 구름도 파란 하늘도
가슴을 활짝 열면 담을 수 있어.

 

산 위에 오르면 예쁜 꽃과 새들이
생글생글 지지배배 노래를 하지.
초록빛 숲 마을의 파란 이야기
가만히 귀를 모으면 들을 수 있어.

 

허수아비  영롱아, 저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가자.
영롱이    아저씨가 말하던 그 느티나무예요?
허수아비  그래. 올해 오천 살이나 되는 할아버지야.
고양이    와, 오천 살? 5천 년?
허수아비  할아버지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 누구보다 지혜가 많으신 어른이니까.
영롱이    알아요. 우리를 길러주신 할머니도 말씀하셨어요.
허수아비  사실 나도 처음 만나는 할아버지야. 어르신, 편안하셨습니까?
느티나무  너희들은 누구냐?
허수아비  가을 벌판을 지키던 허수아비입니다.
느티나무  허수아비? 너는?
허수아비  예. 여행을 가기 위해 다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고양이    느티나무 할아버지?
느티나무  너는 고양이가 아니냐? 내 어깨 위에서 쉴 생각이면 그냥 가라. 나는 너를 재워 줄 수가 없어.
고양이    할아버지, 우리는 칠보산에 가야 해요. 잠잘 시간도 아까워요.
영롱이    예, 은빛 샘물을 구하러 가는 길이거든요.
느티나무  그래? 고생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거라.
영롱이    아니에요. 할머니 약을 꼭 구해 가지고 가야 해요.
고양이    예.
허수아비  어르신,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칠보산에 꼭 가야 합니다.
느티나무  허허, 고집불통 허수아비로군. 캄캄한 두더지 굴로 칠십 리를 가야 하고, 다시 강물 위에 드리워진 표주박 넝쿨을 타고 용암이 흐르는 강을 건너야 하는데도?
고양이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느티나무  너희들이 용암이 흐르는 강을 건넜다고 해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수정산을 어떻게 넘을 수 있겠니?
영롱이    할아버지가 그 방법을 알려 주시면 되잖아요.
느티나무  (흠칫) 뭐? 허허 이놈 봐라. 너는 내 마음도 모르고 어떻게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단 말이냐? 응?
영롱이    할아버지는 그 무지개 연못에서 살다가 오셨잖아요.
느티나무  (놀라서) 호, 그 코쟁이 이야기 할아버지가 그랬지? 또 무슨 이야기를 했어?
영롱이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느티나무  도와줘? 왜? 그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내 가지를 꺾어다가 불을 지피고 산에 자라는 나무를 마구 베어다 불에 태웠다. 우리에게는 원수나 다름이 없어.
고양이    할아버지도 우리가 고아가 되었을 때부터 기른 이야기를 들으시면 아마 울고 말걸요.
느티나무  뭐? (갑자기 다정히) 이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너희들이 나를 울릴 수만 있다면, 고슴도치에게 데려다줄 수 있지.
허수아비  고슴도치요?
느티나무  그래.
영롱이    캄캄한 굴이 칠십 리나 이어져 있다는?
느티나무  그래. 칠십 리 두더지 굴을 지키는 욕심쟁이 마술사야.
고양이    고슴도치가 마술사라고요?
느티나무  몸집이 작다고 얕보지 마라. 나이는 나보다 많은 7천 5백 60살이나 먹었으니까.
모두      와, 7천 5백 60살이요?
느티나무  왜 겁이 나냐? 은빛 샘물을 마시고 욕심을 내다가 지금까지 5천 년 동안 늪지대를 지키는 벌을 받고 있지.
허수아비  어르신, 칠보산에 은빛 샘물 말고 뭐 귀중한 게 있어요?
느티나무  멍청한 녀석, 그러니까 널 가슴이 텅 빈 허수아비라고 놀리는 거야. 은빛 샘물이 있는 무지개 연못에 손을 담그고 소원을 빌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거든.
영롱이    (놀라) 정말요? 와!
느티나무  자, 이제 이야기를 해 봐. 내가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 말이야.
영롱이    할아버지!
느티나무  그래.
영롱이    우리 할머니가 젊었을 때 하루는 아기를 재워 놓고 일을 하러 가셨나 봐요.
느티나무  사람들은 모두 일을 하지. 그래서
영롱이    예. 그런데 집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늑대가 살며시 찾아와 개를 물고 간 거예요. 그리고 다음 날에는 고양이를 물고 갔어요.
느티나무  저녁에는 뭘 하고 낮잠을 자고 있었단 말이냐?
고양이    아기 고양이가 아파서 잠을 못 주무셨어요.
느티나무  그래도 강아지를 물어갔으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지.
영롱이    그다음 날에는 늑대가 아기를 물고 갔어요.
고양이    할머니는 아기를 잃고 온 산을 헤매며 소리를 치셨어요. ‘아기를 돌려주세요. 우리 아기를 살려주세요.’
느티나무  어머니는 다 그래. 자식이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사랑으로 기르시거든.
영롱이    아기를 물고 간 늑대는 숲속 깊은 곳에 아기를 숨겨 놓고 엄마가 지어 놓은 아기 밥을 몰래 훔쳐 먹으며 살았어요.
느티나무  그다음 날에는 강아지를 훔치러 왔구나. 그렇지?
영롱이    할아버지, 그 늑대가요 다음 날에 찾아와서는 큰소리로 외쳤어요. (이야기의 계속을 이야기하듯 손짓을 하며) 어쩌구 저쩌구, 병따개 콩따개, 베짱이 앞다리, 아기 개미 똥구멍, 고래밥 새우밥 완두콩 콩자루….
느티나무  (울듯) 아이고, 그랬구나. 그래서 할머니 젖을 먹고 자랐구나? 아이고, 불쌍해. 부모님 얼굴도 모르고 고아로 자랐구나. 이 할아버지처럼.
고양이    할아버지!
느티나무  (울며) 아, 흐흐흑. 불쌍하신 우리 어머니도 회오리바람에 사라진 나를 생각하시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어머니, 어머니!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무대가 캄캄해진다. 회오리바람은 무서운 굉음을 내며 무대를 뒤흔들며 삼켜버린다. 아득히 들려오는 비명 소리. 무대의 불이 꺼진다.

 

제4경_ 고슴도치의 지하 궁전
회오리가 잦아지며 무대가 다시 밝아지면 고슴도치의 지하 궁전이다. 바람에 휩쓸려 떨어지듯 친구들이 나뒹굴 듯 등장한다.

 

영롱이    와, 정말 무서운 바람이었어.
고양이    그래, 그래.
허수아비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느티나무 할아버지 말씀하시던 고슴도치 궁전 아니냐?
고슴도치  (박수를 치며) 그래, 그래, 하하, 정답이다. 고슴도치 궁전! 어서 오너라.
고양이    고슴도치 궁전?
고슴도치  그래, 그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여기까지 날려온 것은 이 늪지대가 생기고 나서 너희가 처음이다. 어서 오너라.
영롱이    (모자를 보고) 와, 아저씨, 정말 나폴레옹 장군을 닮았어요.
고슴도치  너, 내가 작다고 흉보는 거냐?
영롱이    아, 아니에요. 아저씨, 그 뿔모자 말이에요. 나폴레옹 장군님이 쓰던 거 아니에요?
고슴도치  히히히, 그래? 멋있니? 오래전에 두 개를 만들었다가 용기를 구하러 온 소년에게 주었단다. 그 아이가 프랑스의 대장군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모두      (감탄한다) 와!
고양이    저도 이다음에 그런 모자를 구하고 싶어요.
고슴도치  너희들은 샘물을 구하러 다닌다고?
영롱이    예, 우리를 길러주신 할머니가 늙고 병이 들어 앓아누우셨거든요. 허리도 다치고 무릎도 아파서 걷지를 못하세요.
고슴도치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돕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인데…. 너희들은 좀 다르구나.
허수아비  저 대왕님, (가리키며) 여기 저 굴은 다 뭐예요?
고슴도치  그게 궁금한가 보구나. (손뼉을 치면 요정들이 양철북을 치며 <고슴도치 바늘장수> 곡④을 노래하며 등장한다.)

 

고슴도치 바늘장수 곡④
산밤나무 사촌인가 고슴도치 바늘장수
언덕 아래 내려갈 땐 떼굴떼굴 떼구르르
등짐장수 고슴도치 뽀죽뽀죽 바늘장수
아빠 등에 대바늘이, 엄마 등에 새 바늘이
어깨 위에 바늘 지고 소풍 가는 고슴도치.

 

밤나무밭 고슴도치 바늘장수 고슴도치
바늘 팔러 시장 가나 떼굴떼굴 떼구르르
외삼촌도 바늘장수 이모부도 바늘장수
엄마 아빠 등짐장수 뒤뚱뒤뚱 바늘 지게
산밤나무 숲길 가에 바늘장수 고슴도치.

 

반디요정들  (인사하며) 우리들은 칠보산 어둠의 길을 안내하는 반디요정들입니다.
물의요정들  (인사하며) 우리는 물의 요정들이랍니다.
반디요정①  어서 오십시오. (요정들과 늘어서며) 이 길은 ‘영혼의 길’입니다.
반디요정②  예, 과거 세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반디요정①  돌아가신 부모님도 만날 수 있고, 그리던 고향집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허수아비     와, 정말 신기한 길이네요.
물의요정①  (가리키며) ‘소망의 길’입니다. 큰 꿈을 가진 사람들이 가는 미래의 길입니다.
영롱이       소원을 생각하면 이루어질 수 있나요?
반디요정②  희망하신다면.
반디요정③  (가리키며) 여기는 ‘인연의 길’입니다. 짐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짐승을 따라 친구가 되는 세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고양이       그럼, 짐승으로 태어나는 길이네요.
고슴도치     흠, 이해가 빠르구나.
물의요정③  이 길은 바다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을 걸으면서 과거를 잊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 길이지요. ‘망각의 길’이라고 합니다.
허수아비     망각의 길? 난 다시는 바람 부는 들판에서 새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물의요정③  이 망각의 길을 선택하시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물의요정④  예, 등불 없이도 가실 수가 있습니다.
허수아비     하지만 친구들의 믿음을 잃을 수는 없어.
고슴도치     친구? 친구가 네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고민은 잊어버려!
허수아비     그것은 의리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고슴도치     의리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 허수아비야, 네가 여기 이 칠보산의 고슴도치 궁전을 맡아. 네가 대장이 되는 거야. 이름도 이제부터 허수아비 궁전으로 고치고.
허수아비     허수아비 궁전요?
영롱이        고슴도치 대왕님! 우리는 샘물과 약을 구하러 왔어요.
고슴도치     샘물과 약? 그거야 내가 구해 주지. 그럼, 구해 줄게. 그 대신 너희들 중에 누구라도 이 궁전에 남고 싶은 아이가 없냐?
영롱이        아이참, 여기는 대왕님의 궁전인데 우리가 남아서 뭘 한데요?
고슴도치     왕, 임금님이 되는 거야!
모두           임금님요?
고슴도치     그래, 임금님. (가리키며) 저 멋진 물의 요정과 반디요정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는 거야.
고양이        정말 제게 임금님 일을 물려주실 수 있어요?
고슴도치     (웃으며) 오호, 이제야 알아들었구나. 물론, 저 휘장 안에 있는 황금 의자도 금빛 침대도 네가 쓸 수 있어. 이 늪지대의 모든 어둠의 굴을 다스릴 수가 있지.
고양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고슴도치     그래. 나는 너무 늙어서 이제 쉬고 싶구나.
고양이        (시원하게) 알았어요. 좀 생각을 해보고요.
물의요정⑤  이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힘을 모아 실천하는 길이지요.
영롱이        아, 여기다! 우리가 가려는 길이.
고양이        그래. 이 길로 가면 은빛 샘물을 찾아갈 수가 있을 거야. 가자!
허수아비     야, 그럼 뭘 망설여. 빨리 가야지.
고슴도치     (막아서며) 아, 너희들 모두 이 길을 갈 수가 없다.
허수아비     예? 왜요?
고슴도치     너희들 중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으니까.
영롱이        욕심이라고요?
고슴도치     그래. 욕심이 많은 자는 이 늪지대에서 돌아나가지 못한다. 여기 오기 전에 느티나무 영감님이 이야기하지 않든?
고양이        아.
고슴도치     이제야 기억이 나는 모양이로구나. 고양이는 잠시라도 늪지대의 임금님이 되려는 욕심을 가지려고 했었다.
영롱이        그럼, 고양이는 은빛 샘물을 가지고 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고슴도치     그래.
고양이        (절망한다) 그럼 제가 이 지하 궁전에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허수아비     고양아, 우리가 샘물을 구하면 너부터 나눠 줄게.
고양이        고마워.
고슴도치     흐흐흐. 너희들이 용감하고 지혜롭다고 해도 그 길을 통과할 수는 없을 것이야.
물의요정③  이 사랑의 길을 가려는 자는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반디요정들  그래, 그래. 세 가지의 시험.
물의요정②  정말 착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지.
물의요정들  우리는 당신들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물의요정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무서운 길입니다.
영롱이        요정님, 우리는 두렵지 않으니 길이나 안내해 주세요.
고슴도치     흐흐흐, 용감하구나.
물의요정①  먼저 흡혈박쥐가 사는 굴을 지나야 합니다.
고양이        흡혈박쥐라고?
고슴도치     두 번째 시험을 하기도 전에 몸의 피를 모두 빼앗기고 말 거야.
반디요정들  그래, 그래.
물의요정⑤  박쥐들은 숨을 쉬는 동물에게만 달려듭니다.
허수아비     두렵지 않아요.
물의요정②  이 박쥐 굴을 지나면 맑은 연못이 나옵니다. 사파이어 눈을 가진 뱀들이 사는 연못이지요. 뱀들은 연못 위에 자라는 표주박 넝쿨에 올라가 잠을 잡니다.
물의요정④  여러분들은 그 뱀들을 깨우지 않고 연못을 지나야 합니다.
물의요정들  그래그래. 깨우지 않고.
허수아비     연못을 건너서는?
반디요정③  그 연못을 지나면 뜨거운 용암이 흐르는 강이 나와요.
허수아비     용암이 흐르는 강?
반디요정①  예. 화산가스에 눈이 멀지도 모르니 조심하셔야 해요.
반디요정들  따끔따끔 화산가스!
허수아비     영롱아, 이 허수아비 아저씨가 업고 건널 테니까 넌 눈을 꼭 감고 있어.
영롱이        아, 그러면 되겠네.
고양이        영롱아, 난 어둠 속을 환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거든. 내가 누구니? 박쥐 동굴은 내가 앞장을 설게.
영롱이        고마워.
고양이        그리고 뱀이 사는 연못도 겁내지 마. 여기까지 오면서 우리 음식도 잘 못 먹었잖아. 내가 뱀들을 잡아서 요리해 줄게.
고슴도치     뭐? 요리, 요리라고?
허수아비     (문득 생각이 난 듯) 얘들아, 난 뜨거운 심장을 구해도 사랑을 나눌 사람이 없어. 박쥐 동굴을 지날 때 내 팔과 다리를 떼어서 횃불을 만들어.
모두           (놀라) 뭐?
허수아비     내 팔과 다리를 떼어 어둠을 밝히라고.
고양이        허수아비 아저씨!
허수아비     슬퍼하지 마. 세상에 태어나서 남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워.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무대가 어두워진다. 천둥소리와 함께 고슴도치가 울며 쓰러진다. 그의 머리 위에 파랑의 희미한 불빛이 쏟아진다.

 

고슴도치     (울며) 어머니, 어머니, 이 늪지대 두더지 굴을 지켜온 지 3천5백60년. 이곳을 찾아올 마음 착한 이를 기다리며 다시 3천 년을 살아야만 합니다. 어머니,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생명의 ‘은빛 샘물’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했던 이 아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머니, 어머니 흐흐흑.
용바위        (울림 마이크) 어리석은 녀석.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니….
고슴도치     어머니, 어머니 저도 밝은 햇빛을 보고 싶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습니다.
용바위        (울림 마이크) 너는 그동안 너무도 많은 생명을 빼앗았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고슴도치     예, 어머니.

 

어둠 속에서 물의 요정들과 반디 요정들이 곡④ <고슴도치 바늘장수>를 부르며 아이들과 양철북을 두드리며 퇴장한다. 이어 불안한 리듬의 음악 소리.

제5경_ 칠보산 무지개 연못
무대가 밝아지면, 칠보산 무지개 연못이다. 중앙에 샘물이 있고 꽃숲 사이로 물의 요정들이 아이들을 안내하여 등장한다.

 

영롱이      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고양이      영롱아, 이곳에 은빛 샘물이 있다는 거야?
허수아비   흠,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상상도 못 했어.
용바위      어서 오너라. 나는 이 무지개 연못을 지키는 용바위 선녀란다.
고양이      안녕하셔요. 우리는 양지마을 구불촌에서 온 강아지와 고양이에요.
허수아비   저는 허수아비!
용바위      그래, 늙고 병드신 할머니에게 드릴 샘물을 구한다고?
영롱이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우리를 길러주셨거든요.
허수아비   선녀님, (가리키며) 이 샘물이?
용바위      그래, 너에게도 나눠줄까?
허수아비   아, 아니에요. (연못을 돌며) 와, 신기하기도 하지. 이 빛나는 은빛 샘물이 생명을 돌려준다니? 선녀님, 저는 할머니에게 드릴 것만 얻으면 돼요.
용바위      허수아비야. 저 샘물을 마시면 너도 사람처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싫어?
허수아비   생명을 얻으면 뭘 해요. 사랑을 나눠 줄 사람도 없는데.
용바위      그래? 농부가 되어 보고 싶은 꿈은?
허수아비   저를 업신여기던 참새들을 혼을 내주고 싶기도 하지만.
용바위      네가 소망한다면 농부가 되게 해주마. 너른 들판에서 곡식을 지키는 일보다 키우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힘든 일인가 체험해 보렴.
허수아비   선녀님이 분부라면 해보겠습니다.
용바위      두 손을 그 연못에 담가보아라.
고양이      (영롱이를 앞으로 밀며) 무서워! 네가 먼저 해.
영롱이      내가 먼저?
허수아비   뭐가 두려워? 내가 넣어볼게.

 

손을 연못물에 담근다. 연못물이 끓어오르면서 갑자기 무대가 안개로 가득하다. 허수아비 비명을 지르며 뛴다. 잠시 사이, 허수아비는 허수아비 옷이 벗겨지고 농부의 의상으로 바뀐다.

 

고양이      앗, 바뀌었다.
허수아비   어? 이게 뭐야? 내 몸이 바뀌고 있어.
모두         바뀌었다!
영롱이      (가리키며) 허수아비 아저씨?
허수아비   (가슴에 손을 얹고) 와, 내 가슴이 쿵쿵 뛴다. 나도 심장이 있어. 따뜻한 피가 흐르는 피가 흐른다고. 하하, 우와, 이런 일이 생기다니, 가슴에 지푸라기만 넣고 살던 허수아비가 심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제가 이제 농부가 된 거 맞지요?
영롱이      아저씨, 축하해요. 이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보셔요.
허수아비   그래그래. 하하하하.
용바위      (작은 종을 친다. 그 소리를 듣고 반디 요정②가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를 인도하여 나온다)
모두         (놀라서) 할머니? 어? 할머니가 어떻게?
할머니      얘, 이게 무슨 난리냐?
영롱이      할머니,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할머니      어제 목욕을 하려는데 하늘 천사들이 나타나 다짜고짜 구름 풍선에 태우지 않겠니? 내가 이제 죽을 나이가 되었나 했는데 내가 하늘을 날아서 여길 오다니 말이야.
용바위      어서 오세요, 할머니.
영롱이      할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할머니      오냐 그래, 우리 강아지 밥은 굶지 않았어? 고양이 너도?
고양이      예, 할머니. 여기가 무지개 연못이래요. 할머니의 허리도, 무릎도 이 샘물로 고칠 수가 있대요.
할머니      아이고, 인석아. 욕심부리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이가 들면 모두가 늙는 것인데 젊어지면 뭐가 달라지누?
영롱이      (병의 물을 할머니에게 드린다) 할머니, 어서 이 샘물을 드셔요.
할머니      이 샘물을 왜 마시라는 거야?
고양이      어서요, 할머니!
할머니      오냐. (마신다. ‘펑’ 소리와 함께 회오리바람 속에 할머니가 춤을 추듯 돌다가 쓰러진다.) 아이고,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에그머니나!

 

모두 할머니에게 모여든다. 그 사이 할머니는 젊은 새댁으로 바뀌어 있다.

 

영롱이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맞아요?
할머니      (머리와 가슴을 만지며) 아이고, 이게 웬일이냐? 갑자기 검은 머리가 나고 가슴, 아이고, 이 쭈글쭈글한 젖가슴이 왜 갑자기 탱탱해져서, 오, 이를 어쩔꼬. (객석을 향해) 뭘 신기해서 웃고 있어요?
허수아비   만세! 만세! 할머니가 젊어지셨다.
고양이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맞아요?
할머니      (웃으며) 이거 이걸 어쩌니? 호호.
허수아비   할머니, 제가 농사를 다 지어 드릴 테니 이제 평안히 사셔요.
할머니      우리 집 농사를? 영롱아, 이 씩씩하게 생긴 분은 누구냐?
고양이      할머니, 마음에 드세요?
할머니      믿음직하니 좋다. 얼굴도 잘생기고.
용바위      너희들 혹시 할머니의 아들과 딸이 되어 함께 살고 싶지 않니?
고양이      아뇨, 저는 할머니네 집고양이가 좋아요.
영롱이      저도 할머니 댁에서 사랑받는 강아지로 살래요. 그게 좋아요.
용바위      그래? 그럼 할머니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라.
고양이·영롱이    예, 용바위 선녀님!

 

그윽한 풍악 소리가 들려오며 등장해 있는 인물들은 주제가곡⑤ <은빛 샘물>을 부르며 춤을 춘다.

 

<은빛 샘물> (곡⑤)
하늘 북을 두드려라, 구름집 끌자
칠보산에 은빛 샘물, 젊음의 샘물
할아버지, 할머니도 젊어진대요

 

마음 착한 사람들만 복 받는 샘물
일곱 빛깔 무지개, 꿈 피는 연못
하늘나라 칠보산의 은빛 그 샘물.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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