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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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에서 일어난 산불이 경북 지역을 다 휩쓸고 있다. 화마가 미친 듯이 옮겨 다니며 불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텔레비전의 화면은 온통 검은 연기와 붉은 불길들로 가득 차 있다. 바람은 쉴 새 없이 거세게 불고 있고, 그 바람에 실린 불씨들이 이 산 저 산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화면의 지도가 바뀐다. 산청으로, 청송으로, 안동에서 지리산까지 위험하다. 이러다가 전 국토가 다 타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무얼 하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나는 그저 “이를 어째?”만 되뇌이고 있다.
산소에서 벌초를 하다가 예초기에서 일어난 작은 불씨가 이렇게 엄청난 면적의 산을 태우게 되었다고 한다. 사소한 작은 불씨가 이런 어마어마한 큰불이 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마는 불을 낸 사람이 너무도 원망스럽다.
나도 어릴 적에 불을 낸 일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우 일곱 살 때의 일이다. 읍내에서 살다가 잠시 시골 큰집에서 살던 때였다. 장에 가신 엄마가 해가 설핏해져도 오시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오기 전에 밥을 해 놓으면 칭찬을 받을 거 같았다.
쌀독에서 쌀을 퍼내어 씻고 부뚜막에 놓여 있는 큰 솥에 밥을 안쳤다. 한 번도 밥을 해 보기 는커녕, 밥하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냥 솥에 쌀을 가득 넣고 불을 때기 시작했다. 마른 나뭇가지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한없이 때기만 했다. 솥에서는 밥이 타고 냄새가 진동했을 터이지만, 어린아이는 그게 무슨 냄새인지도 몰랐다. 한참 동안 불을 때다가 싫증이 나서 나무를 그만 넣고 방에 들어가 잠시 놀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마당이 소란스럽고 방 안에 연기가 가득하였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집이 온통 시커먼 연기와 불길에 싸여 있고 어른들은 우리를 보더니 어서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왈칵 무서웠다. 온 동네 사람들이 물을 퍼부었다. 다행히 불은 쉽게 꺼졌다. 우리 집은 울타리 안에 마당으로 도랑물이 흐르는 집이었기에 바로 물을 퍼서 쉽게 불을 끌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빨리 발견하였기에 살아났지 하마터면 우리 형제들은 고스란히 불 속에 타 죽었을 것이다.
아궁이의 불씨가 부엌 한쪽에 쌓아둔 나뭇단에 붙어 큰불이 된 것이고 초가지붕까지 타고 올라 집이 순식간에 탄 것이다. 나는 겁이 났다. 무조건 밖으로 도망가서 숨었다. 해가 기울도록 숨어서 집을 내려다봤다. 멀리서 봐도 시커멓게 불탄 집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어떡하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으니 혼이 나고 쫓겨날 것만 같았다.
얼마나 지났는데 사람들이 나를 부르며 찾는 소리가 내가 숨어 있는 곳까지 들렸다. 엄마의 우는 소리도 들렸다. 동네 사람들까지 나를 찾으러 나선 모양이다. 나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가 없어 엉엉 울면서 엄마를 부르며 나왔다. 엄마는 나를 보자 펑펑 우시며 꼭 안아주었다.
“오메 오메, 내 새끼!” 소리만 연발하며 혼이 반쯤 나간 모습의 엄마가 지금도 기억난다. 엄마는 나를 업고 가면서 끝없이 우셨다. 겁에 질려 있던 나는 엄마의 울음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불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물바다가 된 집은 여러 날 고생하며 수리가 다 될 때까지 엉망이었고, 학교에서까지 집에 불 낸 아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읍내에서 전학 온 아이라고 주목을 받았는데 이젠 ‘불 낸 아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니 학교에서도 기를 펼 수가 없었다.
당시는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취사와 난방을 하던 시절이라 불조심에 대한 표어나 포스터가 학교 교실이나 복도에 많이 붙어 있었다. 그 포스터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낸 불이 생각나서 오줌을 질금거리며 경기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불을 낸 적이 있다. 한식 성묘를 갔을 때였다. 우리 선산은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시다. 대대로 내려온 선산이어서 조상님들의 산소와 시아버지의 산소까지 4기가 나란히 있다. 묘를 관리해 주는 분이 산소 바로 곁에 살지만 잡풀이 많아 조금 태우고 싶은 생각에 불을 지폈다. 불은 확 산소 앞을 퍼져 나가더니 순식간에 전체로 번졌다. 산소 주변이 주택들과 축사까지 있는 동네 바로 곁이다. 나는 급히 옷을 벗어 불길을 누르고, 가지고 간 돗자리와 물건을 집어던졌다. 가족들도 나뭇가지를 꺾어 이리저리 뛰며 불을 껐다. 정말 다행히 불은 꺼졌다. 산소가 반쯤 탔다.
온몸은 검댕이가 되고 다리와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고, 머리카락도 많이 탔지만 그게 문젠가?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산을 태울 뿐만 아니라 주변의 집들까지 큰불이 날 뻔했으니 정말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살아온 날들 가운데 뚜렷하게 기억되는 한 사건이다. 어린아이의 실수라고 넘겨버릴 수 없었던 일. 그날의 일들이 새삼 선명하게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