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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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서동처(猫鼠同處)는 본디 ‘고양이(猫)와 쥐(鼠)가 같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원래 고양이는 쥐를 잡는 게 자연이 맡긴 역할이고 천적 관계이기 때문에 이들의 오월동주(吳越同舟)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부정한 결탁을 방지하고 감시해야 할 존재들까지 한통속이 된다면 세상에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다. 인간 세상 또한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 쥐(도둑)와 고양이(관리)가 한통속이 되어 어울릴 뿐 아니라 코끼리(사정기관)까지 하나로 야합해 부당한 비리를 되풀이해 저지른다면 도저히 묵과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 이같이 썩어 빠진 사회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성어 중 하나가 묘서동처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2021년 우리 사회는 LH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성남 대장동 사건의 특혜 의혹을 위시해서 입법 사법 행정의 여러 측면에서 불공정 시비가 유난히도 많이 제기되었다. 게다가 그런 측면의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밝혀야 할 사정기관까지 의혹을 받던 현실을 개탄하여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를 선정했을 게다. 결국 고양이와 개가 한 패거리 되어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수꾼 노릇을 해야 할 사람이 도둑과 짝짜꿍이 된다거나, 법을 만들고 공정하게 집행해야 할 공직자들이 교묘하게 위장한 채 부정한 집단과 야합하는 꼴이라는 판단이 그렇게 결정했지 싶다.
이에 관련된 고사의 내용을 전하고 있는 출전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오행지일(五行志一)」이다. 이들에서 전하고 있는 관련 내용을 요약해 살피는 것으로 이 성어의 실체에 다가간다.
먼저 『구당서』에 나타나는 내용으로 당나라 제8대 황제인 대종(代宗) 시절의 일이라며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이 당시 대종의 연호는 대력(大曆)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묘서동유(猫鼠同乳)는 등장해도 묘서동처라는 말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력 13년(778년) 6월 무술일에(大曆十三年六月戊戌)
농우 견원현의 군사 조귀의 집에서(右源縣軍士趙貴家)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먹고(猫鼠同乳)
서로 해치지 않았고(不相害)
(그런 형상이 기이해서) 절도사 주차가 고양이와 쥐가 먹은 젖을 바구니에 담아 (임금에게) 바쳤다(節度使朱籠之以獻)
한편, 『신당서』의 「오행지일」에서 우선 이런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이 시절 당나라 임금은 제3대 황제 태종(太宗)으로 연호는 용삭(龍朔)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내용에서 묘서동처가 나타나니 여기서 이 성어가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용삭 원년(661년) 11월에(龍朔元年十一月)
낙주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은 곳에서 살았다(洛州猫鼠同處)
쥐는 숨고 코끼리는 물건을 절도했으며(鼠隱伏象盜竊)
고양이는 쥐를 잡아야 하는데(猫職捕鼠)
오히려 쥐와 함께 있다니(而反與鼠同)
도둑을 감시해야 할 코끼리는 임무를 방기(放棄)하고 간악한 짓을 했다(象司盜者廢職容奸)
끝으로 역시 『신당서』의 「오행지일」에서 또다른 내용이 아래와 같이 나온다. 이는 당나라 제6대 황제인 현종(玄宗) 시절로 당시 현종의 연호는 천보(天寶)였다. 이 내용에서도 묘서동유는 나와도 묘서동처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천보 원년(742년) 시월에(天寶元年十月)
위군에서 고양이가 쥐와 한 젖을 먹었다(魏郡猫鼠同乳)
한 젖을 먹는 것은(同乳者)
같은 곳에 사는 것보다 심각하나니(甚于同處)
인류의 유사 이래 쥐(도둑)와 고양이(관리)를 비롯해 감독(사정기관)이 야합해 나라를 물 말아 먹거나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만들었던 묘서동처 상황의 사례가 한둘이었을까. 그 옛날 중국 당나라 제9대 황제 덕종(德宗) 취임 초기에 그런 상황이 극심했던가 보다. 덕종이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궁핍해진 조정의 재정을 회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경제 전문가 유안(劉晏)을 간신 양염(楊炎)의 무고로 처형하는 등의 많은 악재들이 노출되었다. 이 시절 양염과 유사한 쥐 같은 고양이(간신)들이 득세하여 천하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함으로써 나라를 어지럽게 다스렸던 책임자인 덕종을 개탄할 때 묘서동처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고양이가 쥐와 같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위로는 황제와 그 신하를 비롯해서 지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벼슬아치들이 부정하게 결탁하여 악정(惡政)을 자행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이나 패거리들의 권력 유지에만 골몰할 뿐 백성들의 안위는 안중에 없게 마련이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현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어떤 모습이었기에 한 해를 보내고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묘서동처를 선정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봉사하며 받들겠다는 말을 구두선(口頭禪)처럼 입에 달고 살며 식언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붕당(朋黨)이나 패거리의 이(利) 앞에서는 원칙이나 양심도 헌신짝 내팽개치듯 하고 돌변하여 으르렁 왈왈대는 꼬락서니에서 자신들의 약속이 결국 헛소리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이런 배신감과 허탈감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진보나 보수를 막론하고 마음을 주고픈 생각이 하나도 없다. 이런 마음을 어디에 더듬이 없이 드러내고 정을 붙여야 할지 헷갈려 마냥 허둥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