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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殘像)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민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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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십시오. 저 빈집들을 확인 사살하려는 포크레인을, 무장 해제당한 침묵들이 비가 오기 전 피난하는 개미 떼의 행렬로 변하는 걸, 퇴락한 골목길 밤을 밝혔을 전주에 붙은 알전구가 한때 무수히 적멸했을 부나방 그림자를 데리고 세상 끝 바닥에 떨어져 깨어지는 소리를 포크레인의 배경으로 서서 나뭇잎 하나 피었다 지는 시간만으로 허공을 높이 기어 오른 건너편 아파트 저 차가운 벽들은 들었을까요. 잡동사니들이 연탄재를 뒤집어쓰고 있는 공터에 비가 옵니다 타버리다 만 폐목에 찢긴 상처로 걸린 빈 봉지들을 보세요 후줄그레 젖은 만장(輓章)으로 쿨룩거리자 구겨진 활자들이 만가(輓歌)로 흘러내립니다 제 나이테 무게만큼 하늘을 이고 있기로 한 빈집의 나무들 벽과 벽 사이를 위태롭게 떠받치던 생의 잔영 녹슨 잎으로 매달고, 그 아래 화려한 꽃들의 텃새에 밀려난 풀씨들이 꽃 몇 점 버려진 화분 속에서 꿈으로 피워 올린 걸 보셨나요 언젠가는 떠나고 싶어 했을 아이의 책상이 다리 부러진 꿈으로 처박혀 있는 금 간 마당, 하루살이 생들이 젖은 채 걸려 몸을 말렸을 빨랫줄이 도살당한 소의 등뼈로 걸려 있는 처마 밑은 보지 마세요 잘 우려진 곰탕으로 일어나는 날…. 보세요 저! 솥째 엎어 빈집 바닥에 묻어 버릴 포크레인을, 묻혀 버렸습니다 비 오는 날 철거민촌 침묵들 확인 사살당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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