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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방현일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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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낯선 주소가 적혀 있었다.

 

*
모두 다 내 곁을 떠났다. 말없이 떠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타인보다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여러 상황에 대해 부딪히지 않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야속할지 몰라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무뎌지므로 더는 떠나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첫 번째는 이미 오래전에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떠나보냈다. 그 떠나보냄을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알게 되었다. 무슨 정이라도 느꼈다면 모를까, 너무 짧았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많은 시간이 있었지만, 첫 번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같이 보낸 시간이 더 많다고 아쉽거나 애타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대놓고 알면서 상대방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다고 믿었는데, 나는 오늘 또 떠나보냈다. 그 사람이 내게는 마지막이었다. 더는 떠나보내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사실 나랑 같은 부류였기에 앞전의 일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견하지 못했다. 누구나 다 떠나가는 것인지, 나한테만 벌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사람에 대해 정을 주지 않기로 했다. 타인을 향한 애정을 나에게 쏟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어지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끊어내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혼자 왔어요?”
“아, 예.”
사장은 선뜻 좌대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 처음에는 다 나갔다며 환급해 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 혹시, 맞나요? 아니죠?”
떠났다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상대방이 듣기에 따라서 달랐지만, 그간 보여준 모습들이 있기에 나는 망설였다. 가뜩이나 의심 많은 사장이었는데, 이제는 더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저랑, 같이 있을래요.”
사장은 직접 예약한 좌대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비닐봉지에 바리바리 집어넣었다.
“이건, 모기약, 캔커피, 과자, 또 뭐가 있나? ”
“괜찮아요. 저녁 식사만 배달해 주세요.”
“아니, 아니요. 제가 먹을 거예요.”
강물을 가르는 보트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
두 달에 한 번, 2월부터 10월까지 공장에서 알게 된 한규와 한적한 곳에서 좌대를 빌려 각자 사색에 빠졌다. 강물에 떠 있는 좌대는 필요한 용품과 식사를 배달해 주는 보트가 지나칠 때 외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산등성 위로 새들의 움직임이 좋았다. 밤하늘에 빼곡히 떠 있는 별들도 좋았고 저녁 어스름과 새벽녘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좋았다. 잘 수 있는 공간과 화장실 하나, 사각형 안에는 자연과 둘밖에 없었다. 어쩌다, 멀리 다른 좌대에서 붕어를 잡고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외에는 조용했다. 간혹, 두꺼비 소리가 나다가 멈추면 몸서리쳐지도록 적막했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묵직하면서 비릿한 냄새가 몸을 감쌌다. 뻐금대는 잉어가 지나가면 여기저기 붕어들도 뻐금댔다. 그러다 가물치에 움직임이 있으면 여기저기서 붕어들이 튀어 올랐다가 떨어졌다. 도시와는 사뭇 다른 공기의 온도가 좋았다. 한 번씩 스쳐 지나가는 서늘함이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화장실 가려고 발자국 뗄 때마다 커다란 밀가루 반죽 위에 올라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푹신하기도 하고 중심이 흐트러질 때는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지만, 어느 삶에도 해당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했다. 뭘 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상을 보지 못했으니,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했고 그저 내가 정해 놓은 공간에서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방이 막힌 것은 아니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마치 좌대가 그러했다.
“낚시하고 싶어?”
나는 한규에게 물었다. 한규는 원체 말이 없었다. 처음 공장에 취직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한규였다. 그렇다고 사람을 꺼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같이 있어도 없는 것 같지만, 혼자 있을 때보다는 든든했다. 일은 꼼꼼하게 잘했다.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거나 족구하는 사람들 사이로 벤치에 늘 앉아 있었다. 나도 딱히 누구랑 어울리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하자고 하자면 했지만,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에 한규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벤치에 앉아 각자 사색에 빠졌었다. 처음 기술을 배울 때 말고는 각자 할 일만 하면 됐기에 서로 대화할 필요를 못 느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물량만 맞추면 됐다. 간혹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는 게 다였다.
“너는 꿈이 있어?”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이 들었을 때 꾸었던 꿈 외에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난, 꿈 이뤘어.”
한규는 무표정한 내 얼굴과 심드렁한 대답에 피식했다.
“갈 거야?”
그 물음에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언젠가는 가야 했지만, 늘 그렇듯 나에게 아버지는 무심한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그 편지의 내용은 다소 싱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편으로는 편해졌다. 아니면 그와 반대로 다소 엉뚱한 사람이었기에 생각지도 못한 봉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끝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안 가는 것이 맞았다. 내 인생은 이것이 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낚시터 사장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낚시 장비가 전혀 없었다. 같이 도착한 다른 낚시꾼들은 바리바리 낚시 장비와 좌대에 필요한 소품들, 의약품부터 옷가지, 먹을 것 등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고 그것도 모자라 주차장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씨알이 어때요?”
한 낚시꾼은 건빵을 하나 집어 들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3짜, 많이 나와요. 어제저녁 4짜 잡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래요?”
그 낚시꾼은 건빵을 하나 더 사며 싱글벙글했다.
“뭐 필요한 거 없어요?”
“괜찮아요.”
“은근히, 필요한 거 많을 텐데.”
“안 죽어요.”
사장님과 다른 낚시꾼들은 내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했다.
“비싼 좌대 빌리고 뭐 하려고.”
대부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아무튼, 한규와 나의 짐은 없었다. 낚시 장비도 옷가지와 먹을 것이 들어 있는 가방도 없이 좌대로 데려다 줄 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심하면 전화해요. 낚시 장비 대여 가능하니까.”
여전히 사장님은 이해 못하겠다는 등, 의심하듯 쳐다보았다.
“여기서 보여요. 망원경도 있고.”
“방에 들어가면요?”
사장님은 애써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좌대로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자주 왔다.
“사장님, 여기선 안 죽어요.”

 

벌써 몇 년째인데, 특이하게 사장님은 올 때마다 말과 행동에 변함이 없었다. 그런 한 번이 생길 수 있기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저녁 식사를 가져다줄 때 이제는 좌대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신의 살아온 얘기부터 최근 있었던 얘기까지 덤덤하게 때로는 웃거나 때로는 슬프게 말하였다. 변함없는 풍경이 좋았다. 여전히 저 멀리 산등성에는 왜가리가 하얀 날개를 쫙 펴고 날다가 나뭇가지로 날아들었다. 밤하늘에는 북극성을 비롯해 북두칠성 등 낯익은 별자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좌대마다 환호성이 들렸고 밤에는 두꺼비가 울어댔다. 사장님은 이야기가 끝나면 힘내라고 캔 커피 두 개를 놓고 갔다.

 

*
어렸을 적,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 온기도 없어서 들판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배도 고프고 부엌에 뭔가 있겠거니 하며 여기저기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밥도 반찬도 먹을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돈도 없었기에 대문 밖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핑 돌았다. 오줌도 마렵지 않았다.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라면을 들고 왔고, 나는 내 방에서 날라면을 먹었다.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학교를 가면서 밥 같은 밥을 먹었다. 비록 점심 한 끼였지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습관이었다. 아침과 저녁은 먹지 못했다. 날라면이 있는 날 입에 넣고 불렸다가 학교에 가면서 먹거나 자기 전에 그렇게 먹었다. 그나마 급식비는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밀리지 않았다. 옷도 신발도 변변치 않아서 학교에서도 없는 사람 취급했다. 냄새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없었기에 어울리지 못했다. 소풍이 가장 싫었다. 남들 먹고 놀 때 주변 밖에서 뱅뱅 돌다가 왔다. 나의 존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준비물 검사와 시험 끝나고 채점할 때, 항상 맨 먼저 일어나거나 교단 앞에서 벌을 서거나 복도 밖에 서 벌을 섰다. 성적표가 나오면 빠짐없이 맞았다. 학창 시절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은 선생님의 “나와!”와 아이들의 “또야?”였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없었다. 지독하게 가난하기도 했지만, 가족의 정도 없었다. 사진도 한 장 없었다. 집 안에는 가구도 없었다. 라면 상자와 비닐 옷장이 다였다. 전자제품은 오래된 소형 냉장고와 작은 라디오, 14인치 TV가 전부였다. 나는 줄곧 아버지와 살았다. 다만 초등학교까지만 같이 살았다. 사는 동안도 데면데면했다. 이럴 거면 왜 결혼했고 자식은 왜 낳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초등학교 내내 대화가 거의 없었다. 졸업식은 그렇다 쳐도 입학식 날도 혼자 갔다. 초등학교 입학식 혼자 온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학원도 갈 수 없었다. 집에 와서 동네 형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나는 마땅히 할 것도 없었기에 형들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있으려 해도 집까지 찾아왔다. 제일 하기 싫은 일은 주먹싸움이었다. 형들은 원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만한 나이대를 맞춰 싸움을 시켰다. 처음에는 멀뚱하게 서 있었다가 동네 형들한테 맞고, 그다음부터는 원 안에서 개처럼 싸웠다. 싸움 실력이 늘자, 나이와 상관없이 시켰다. 그뿐이었다. 누군가의 돈벌이가 아닌 시간 보내기였다. 괜히 걸어서 멀리까지 갔다 왔다. 목적도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모였고, 어떻게 하면 시간을 보낼까가 다였다. 한번은 공원 다리 밑에서 각자의 꿈을 얘기했었다. 뭐가 되고 싶고 뭐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돈 벌어서 고기 먹고 싶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반드시 고기 사 먹자로 끝났다.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에서 지냈다. 국가 근로장학생으로 돈이 덜 들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고대했던 꿈이 이루어졌다. 원하던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먹으며 행복했다. 기숙사의 규율도 선배들의 구타도 견딜 수 있었다. 동네 형들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개싸움으로 단련된 맷집이 도움이 되었다. 대신 맞아주고 고기 한 조각 더 먹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는 멀리서 지켜볼 뿐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졸업장을 받고 나오는데 아버지는 대뜸 중국집에 가자고 했다. 짜장면과 고량주를 시켰다. 아버지는 내게 한 잔을 따라주고, 혼자 다 마셨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으로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통장을 내밀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처분했다고 했다. 반씩 하려다 더 넣었다며 잘 살라고 했다. 자신은 배를 타며 살 것이라고도 했다. 혹시나 하며 통장을 확인해 보았다. 기대도 안 했지만, 참 어이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을 판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럴 거면 현금으로 주지. 남들 보기에 마지막은 일반 아버지처럼 흉내라도 내고 싶었나 보다. 나는 중국집에서 나오다 통장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다. 분명 통장에서 돈을 뺀 기억은 없는데, 통장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 인연 참 짧았다.

 

어느 날, 우편으로 아버지는 낯선 주소가 적힌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아버지와의 연은 그게 다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가 딸린 봉제 공장에 취직했다. 기술자는 당시 집도 사고 결혼도 할 수 있을 만큼 벌었기에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주변에서 그렇게 얘기했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 생각을 잊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보조 일만 하다가 끝나는 줄 알았다. 하나, 둘 기술을 익혀 나가면서 숙련공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돈도 제법 모았다. 비록 산꼭대기지만, 마당이 있는 작은 집을 샀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아내의 남편으로, 자식의 아버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주변에서 살다 보면 살아진다며 충고도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나에게도 사랑과 정은 없었다. 공장에서 끝나면 집에 와서 나무 가꾸기에 시간을 보냈고, 열매를 맺으면 무엇보다 기뻤다. 그러다 한규와 한적한 곳에 좌대를 빌려 멍하니 앉아 있다 오곤 했다. 공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립하기로 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비록 지하 공장이었지만, 수입이 쏠쏠했다. 공장에서 알게 된 거래처 사장의 소개를 받았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머리 쓸 일은 없었다. 남성 민소매 박음질이었다. 온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으면 지난날은 기억나지 않았다. 기계 소리가 작은 공간을 꽉 채웠다. 쉬는 시간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노랫소리가 삶의 휴식이었을 뿐이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기숙사, 군대까지 이어지는 그곳에서 나는 늘 혼자였다. 남들처럼 집으로 가거나 면회하는 일은 사치였다. 친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절 인연이었다. 그래도 한규가 있어서 좋았다.

 

*
온화한 하늘이 주는 여름의 푸름은 때론 무덥기도 했지만, 정원에서 물을 주는 나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대추나무 옆에는 가지치기 가위가 놓여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가위는 왼손으로 쓰든 오른손으로 쓰든 한 손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가지치기 가위는 양손을 같이 써야 한다. 어떻게 보면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나뭇가지가 잘라질 때 나는 소리는 경쾌하고 맑다. 그러나 무게가 무거워서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다루는 것이 좋다. 이제 두 달 후면 강 씨 할아버지의 산소에 간다. 처음에는 가는 곳이 산소인지 몰랐기에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갔었다. 산소는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아버지 같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가지치기 가위를 집어 들었다. 강 씨 할아버지와 가지치기 가위의 관계는 엉뚱한 곳에서 이어졌다.

 

*
편지에 적힌 주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짐작 갈 만한 곳이 없었다. 아버지와 대화 자체가 없었기에 유추할 수도 없었다. 편지지에는 다른 내용은 없었다. 혹시 쓰다 지운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뒤집어도 보고 이쪽저쪽 훑어봐도 깨끗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주소만 적은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하나밖에 없는 자식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편지가 달랑 주소 하나 적힌 것이라니, 헛웃음이 나왔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하나? 라는 의문도 들었다.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쉽사리 찾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쪽에 무게를 두다 보니, 선뜻 가고 싶지 않았다. 누구하고 갈 사람도 없었기에 한동안 서랍에 처박아 두었다. 전화번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주소만 봤을 때는 짐작하건대 가정집이고 도시와는 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찾아가려고 했었다. 혹시 이복형제를 만나거나 새엄마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굳이 새로운 피붙이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지 않기로 했다. 아니,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 보지 그래. 같이 가줄까?”
뜻밖이었다. 한규는 자신과 관련한 일이 아니면 나서는 일이 없었다. 산책도, 영화도, 음식점도 가지 않았다. 다만, 강물에 떠 있는 좌대 위에서의 사색은 좋아했기에 그때 빼고는 같이 쉬는 날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굳이 묻지 않았다. 상대방이 얘기하면 그 얘기는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았다.
“아직은 그래.”
살아오면서 무엇을 얻기 위해 발버둥쳐본 적이 없었다. 그저 배고픔만 가시면 만족했다. 대학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취업도 굶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목표가 없었기에 무엇을 얻는다는 의미를 몰랐다.
“혹시 알아?”
그 한마디가 묘하게 가슴 한쪽에 남아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번은 진짜 간 줄 알았다. 어쩜 꿈이 그렇게 현실적인지. 심지어 대화도 오고 갔다.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좋았다’였다. 꿈속에서 좋았다. 내내 잠에서 깰 때까지 그저 좋았다. 그래서 나는 실행에 옮겼다. 꿈은 반대라는 얘기도 무시한 채, 좋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보내온 주소로 가 보기로 했다.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못 갔었다. 워낙 정도 없고 이상한 관계여서 몹쓸 짓을 당하거나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기에 사실 찝찝했다. 여기서 더 망가질 것도 없지만, 그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주소를 검색해 보았지만, 상세한 주소는 뜨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주소 면사무소에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불안했다. 평상시라면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잠들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바깥으로 점점 자연의 풍경이 들어왔다. 도시와는 사뭇 달랐다. 동네 둘레길과도 또 다른 낯익은 때로는 낯선 곳으로 빠져들었다. 온통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마음이 갑자기 차분해졌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탔다. 묻고 물어 도착한 곳에서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집하고 많이 떨어져 있고 주변이 온통 묘지라 했다. 막상 왔지만, 서울에서 떠나올 때보다 더 가기 싫었다. 한 걸음 떼기가 싫어서 하늘 한번 보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외딴곳이었다. 나는 막차 시간을 확인했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다 돌아서 걷다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거의 뛰다시피 했다. 멀리 버스 정류장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나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멀리 버스가 보이자, 오래 전 일이 생각났다. 봉제 공장에 들어가기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시외버스를 타고 아무 데나 내렸다. 한참 걷다 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디 가? 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먹고 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눈빛 교환을 한 뒤, 나의 팔을 잡았다. 그냥 평범한 집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나의 몸 곳곳을 살펴보았다. 이윽고 할머니가 상을 봐왔는데, 된장찌개에 라면이 들어 있었다.
“연락해? 왜? 돈이 얼만데.”
그때는 그 대화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할머니가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이 길로 쭉 내려가서, 오는 버스 아무거나 타,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빨리, 빨리 가.”
나는 무슨 첩보 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길로 뛰었다. 마침 바로 버스가 왔고 나는 그냥 올라탔다. 버스 맨 뒤 창으로 가 앉았다. 방금 나온 집으로 할머니가 들어가고 낯선 사내 둘이 들어갔다. 한 사내가 밖으로 나와서 두리번댔다. 당시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한창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신매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혼자 외딴곳에 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편지 한 장을 들고 나는 시외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상이 시작되었다. 기존의 남성 민소매에서 남성 반팔과 여성 민소매, 여성 반팔 등 규모를 확대했다. 어느 날 문득 한규가 생각났고 어느 날 문득 한규가 찾아왔고 그렇게 한규와 동업했다.
“동업하자.”
“월급 받는 게 나을 텐데.”
“남 밑에 있는 거 그만.”
혼자 있을 때처럼 공장의 기계 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동일했지만, 든든했다. 처음으로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어도 혼자인 것 같지만, 사계절 내내 따뜻했다.
“말이 동업이지. 내가 다 하고 넌 지금 몸만 왔는데.”
“얼마 들었는데.”
“됐다.”
혼자 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잡스러운 일이 생기면 대처하기에 좋았다.
“앞으로 돈 들어가는 건 내가 다 할게.”

 

한규는 여느 때와 같이 점심시간에 공장 마당 벤치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햇볕이 유난히 따스하던 날, 눈이 부신데 내가 없었다고 했다. 물론 인사는 했었다. 한규는 내가 잠시 어디에 간다고 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재봉틀을 돌렸고 점심시간에는 벤치에 앉았다. 잠시나마 지하 공장에서 나와 일 분만 걸어 올라가면 교회가 있었다. 우리는 교회 앞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사색에 빠졌다.

 

*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충남 홍성, 가방 안엔 벌초할 낫과 제사를 지낼 음식들이 들어 있다. 가을이라 하기에 날씨는 너무 따뜻했다. 서울을 벗어난 도심은 공기부터 다르다. 시원한 바람과 오곡이 무르익는 거리, 나는 고속버스에서 내려서 개실면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내가 가는 곳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어서 내 나이를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의무는 아니지만, 딱히 할 일도 없고 어떨 땐 남들도 하니까, 그냥 하는 줄 알고 계속해 왔다. 그렇다고 친척과의 왕래가 있던 것도 아니고 친척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쩌면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홍성 시장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었던 참외 트럭을 그 후로 매번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가지고 간 밥과 반찬들은 먹지 않았고 참외만 먹다 왔었다. 제자리에 있는 것은 없었다. 한때는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예전에 낚시터에서 나오다가 옥수수를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었다.
“찰옥수수 한 자루 일 만원.”
“할아버지, 찰옥수수 맞아요?”
“옥수수자루에 명함 있어요. 명함에 내 얼굴 있는데 거짓말하나?” 
그때 사 온 옥수수만큼, 맛있는 옥수수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 이후로 그 할아버지를 만났으면 했는데 보지 못했다.

 

*
아버지의 편지를 손에 들고 무조건 찾아갔다. 주소의 집이 나오기까지 시행착오도 겪었다. 이 길이 맞는 건지 무작정 올라가다가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조금 내려와서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무성한 나무들과 풀들만 가득했다. 그래도 사람이 산다면 길은 어느 정도 되어 있어야지, 오지도 아니고 이해되지 않았다. 한참 오르니 등은 땀으로 젖고 다리는 풀려 그냥 이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 멀리 집이 보였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초록 대문이었다. 뭐라도 사야 했는데, 경황이 없던 터라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었다. 주변은 온통 풀이었다. 나는 계속 소리를 쳐댔고 잠시 후, 방문이 열렸다. 나는 편지를 꺼내 주소를 확인했다. 여기까지 온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와 어떤 관계인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저씨와 아버지는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 아버지 친척이 살았었는데, 다들 이사 가고 자신한테 부탁했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아저씨를 따라 산에 올랐다. 할머니의 산소였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는데 참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는 정말 나에게 어떤 사람일까, 라는 생각만 하고 왔다. 오기 전까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다. 정말 정말 많은 시간 속에서 홀로 싸웠다.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어쩌란 말인가, 할머니 묘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묻고는 싶었다, 아버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은 일이었기에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했다. 절을 하기도 뻘쭘했지만, 절을 하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에 오겠다며 터덜터덜 내려갔다. 아저씨가 있는 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일이 제법 많이 들어왔다. 일은 속전속결이었다.
“한규야, 장가 안 가냐?”
“가면 뭐하냐?”
늘 그렇듯 가끔 한 번씩 서로에게 물었고 대답은 같았다. 한규는 집 안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떨 땐 서로의 그림자 같았다.
“한규야, 혹시 가더라도 얘기는 하고 가라.”

 

*
할머니의 산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벌초가 끝난 상태였다. 할머니의 산소에서 만난 낯선 사내, 나는 처음에 그가 산소를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속마음을 물어보려고 그에게 다가갔을 땐 그는 이미 너무 취한 상태여서 나는 그 낯선 사내를 물끄러미 한 번 쳐다본 후, 담배를 한 개비 빼서 피우며 그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청명한 하늘과 깔끔해진 할머니의 묘 그리고 낯선 사내, 그렇게 몇 번 번갈아 보다가 그 낯선 사내 옆에 있는 가지치기 가위를 보았다. 나는 의아해했다. 정원에서 나무를 손질하는 가지치기 가위를 묘에서 보니 이상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낯선 사내가 말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당신 할머니와 제가 알고 있는 강 할아버지에 대해서 얘기해 드리죠. 저도 그 할아버지가 강 씨라는 것밖엔 모릅니다.”
나는 할머니의 벌초도 이미 끝났고 얼굴이 벌겋게 취한 그 낯선 사내가 내뱉는 진실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할 일도 없어 그 낯선 사내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가까이 가서 앉았다. 서울에서 사 온 술과 음식을 꺼내 놓고 맞장구를 쳐주기로 할 참으로 낯선 사내 앞에 앉았다.

 

그 낯선 사내의 얘기는 이러했다. 6·25 직후, 강 씨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면서 이장 집에 부엌 달린 방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사람이 온순하고 믿음직스럽고 일도 잘 해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으며 여기저기서 맡겨온 일을 아무 소리 안 하며 묵묵히 일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 마을에 어여쁜 여인이 한 명 들어왔는데 강 씨는 그 여인을 보자마자 농사일을 팽개치고 가슴앓이를 앓았고 마을 사람들의 중개로 강 씨와 그 여인은 마을회관에서 결혼했다. 강 씨는 더더욱 열심히 일을 했고 마을 사람들도 신이 나서 열심히 일을 해서 마을에는 항상 풍년이 들었다는 것이다. 7년을 살면서 애를 못 갖던 중 그 여인은 강 씨를 버리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강 씨는 농사일도 그전처럼 열심히 하지 않고 한 손에 가지치기 가위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서 그 여인의 묘를 다듬으며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강 씨는 가지치기 가위로 산에 버려져 있던 다른 묘까지 매일 다듬다가 내려왔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런 강 씨를 나무라는 사람들은 없고 측은하게 생각해서 여러 과부와 재혼을 시키려 했으나, 강 씨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고 한다. 3년 후, 강 씨는 그전처럼 농사일을 열심히 하고 틈만 나면 산에 가서 묘를 다듬다 내려오곤 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그 낯선 사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굳이 가지치기 가위로 다듬었던 이유는요? 그리고 저희 할머니와는 무슨 상관이죠?”
그러나 그 낯선 사내는 나의 질문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술잔만 들이켜면서 하늘을 향해 바라만 보았다. 나는 궁금증이 더해 갔지만, 그 낯선 사내의 눈빛을 보고 더 이상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얼추 추한 내 모습이 미안해서 할머니의 묘 앞에 주저앉아 할머니의 묘를 보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낯선 사내는 또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묘를 보듬던 손을 놓으며 낯선 사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저도 강 씨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강 씨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제일 가는 농사꾼이었는데 아들을 남으로 피난시키려다 군인들로부터 밭에서 낫으로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것을 강 씨가 목격했다고 한다. 그 후로 강 씨는 다시는 낫을 잡지 않겠다고 하고 남으로 내려와서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농사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묘만큼은 낫을 쓰지 않고 가지치기 가위로 다듬었다고 한다. 낯선 사내의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산에서 내려온 나는 바로 버스에 타지 않았다. 여전히 그래서? 였다. 뭐가 뭔지 머릿속도 마음도 정리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처럼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한참을 서성이다 읍내 시장에 들러 가지치기 가위를 하나 샀다.
어둑해진 거리를 따라 서울로 가는 버스엔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피곤해서 이미 잠들어 있는 사람, 이제 막 자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지난날의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있는 사람들, 나는 차창에 고개를 기댄 채 그 낯선 사내의 마지막 말을 더듬어 보았다.
‘접붙이기….’
나는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어났을 땐 서울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한 손엔 조심스럽게 가지치기 가위를 들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피하고자 나는 대추나무 아래로 가 앉았다. 강 씨라는 사람과 낯선 사내와의 만남, 강 씨는 메말라 가는 정을 이어준 사람이다. 허허벌판에 버려진 이름 모를 사람의 묘지를 정성스레 다듬으며 그 맥을 이어왔다. 강 씨라는 할아버지의 묘지를 너도나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도록 열심히 다듬어 지키고 있다. 또한 이름 모를 묘지들을 서로의 자손들이 지켜나가고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흙을 탁탁 털고 정원을 나왔다. 작렬하던 햇볕도 차츰 누그러지고 대추나무 밑으로 작은 무지개가 떴다.

 

공장에 왔을 때, 책상 위에 편지가 한 장 있었다. 내용은 없고 주소만 덩그러니 있었다. 뒤집어도 보고 이쪽저쪽 다 보아도 다른 내용은 없었다. 나는 서랍 속에 편지를 집어넣었다.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공장의 기계 소리는 공장 안을 꽉 채웠다.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맞춰 흥얼거렸다. 점심을 먹고 교회 앞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유난히 맑은 햇볕이 곳곳에 내려앉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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