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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간의 행복

한국문인협회 로고 홍정자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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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시골 언니 집에서 도라지 모종 여남은 포기를 얻어왔다. 1층 화분에 심고 서너 포기를 베란다 화분에 심었다. 1층 화분은 햇볕을 받아 싱싱하게 잘 자랐다. 더위가 지나고, 포기마다 다투어 봉오리를 맺었다. 이 애들이 언제쯤 웃어줄까? 바라보기만 해도 첫사랑만큼이나 가슴이 콩닥거렸다.
흰색일까? 아니면 보라색일까? 궁금증이 치솟는데 욕심일 것 같았다. 어떤 색이든 꽃을 피워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일인지라 동티가 날 것 같아 내색하지 못했다.
어느 햇볕 좋은 날 아침 경사가 났다. 1층 화분에서 드디어 하얀 꽃 한 송이가 봉오리를 터트렸다. 꽃 모양도 단출하였다. 가녀린 긴 대에 세 개의 잎이 피어 있고 잎마다 작은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색종이를 자로 잰 듯이 꽃잎이 반만 붙은 오각형의 꽃잎, 그 속에 다섯 개의 노란 꽃술이 누워 있고 실 같은 노란 다섯 개의 선이 꽃 수술을 받쳐 들었다. 보라색 꽃잎 안에도 가느다란 선이 조화를 이룬 조각품 같았다.
이삼 일이 지나니 다른 줄기에서도 보라색 꽃을 피우며 도란도란 연주하는 듯했다. 흰 꽃에서는 맑은 종소리가 울리는 듯하고 보라색 꽃에서는 신비하고 황홀한 꿈을 꾸며 노래하는 공주님 같았다. 이렇게 꽃들이 기쁨을 주니 내 몸도 날아갈 것 같았다.

 

처음 인간에게 들킨 아름다움처럼/ 경악하는 눈/ 눈은 그만 꽃이었다/ 애초에 빛깔보다도 내음보다도/ 안속으로부터 참아 나오는 울음/ 소리를 지른 것이 분명했다/ 수액을 보듬어 잉태하는 생성의 아픔/ 아픈 개념의 꽃이다(김광림, 「문화사초」)

 

땅이나 화분에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어 놓은 날부터 내게는 기다림이란 행복이 찾아왔다. 한데 가을이 깊어도 베란다 화분에서는 소식이 없다. 잎사귀마저 누렇게 말라 가며 스스로 존재를 지키기가 힘들다는 표정이다. 가까이에서 더 많은 눈길을 주었건만 포기할 수도 없다.
도라지꽃은 오래전부터 나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짓궂은 남동생들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꽃밭이었다. 친정집 텃밭에는 노란 장다리꽃과 도라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달착지근한 장다리를 꺾어 씹다가 싫증이 나면 도라지밭으로 갔다. 도라지꽃 위에는 잠자리가 앉았다. 그 녀석을 잡으려다 애매한 꽃봉오리만 터트렸다. 툭 하고 터지는 소리가 재미있어 일부러 터트리기도 했다. 심술궂게 상처를 냈던 철없던 그 일이 내 마음밭 한 자락에 상처로 남아 있었던가.
지금도 도라지꽃을 보면 발걸음이 멈추어지고 얼굴이 붉어져 온다. 몇 해 전인가, 길상사에 갔는데 설법 전 옆 공간에서 도라지꽃을 만났다. 흰 꽃과 보라색 꽃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부처님 전보다 꽃밭에 취했으니 그런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도 아셨으리라. 그해 여름은 꽃을 보는 즐거움으로 길상사에 자주 갔던 것 같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던 초겨울, 베란다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드디어 시들어 가던 잎사귀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따사한 햇볕을 찾아 꽃대가 허리를 돌리는 게 아닌가. 두 포기가 푸른빛이 돌더니 드디어 작은 봉오리 둘을 매달고 있었다. 궁금했다. 아기를 돌보듯 날마다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과연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잔잔한 희망을 주었다.
며칠 후 아침에 베란다에 갔다가 주춤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보라색 꽃 한 송이가 함초롬히 피어 있었다. 제철도 아닌 엄동설한에 만난 꽃은 큰 축복이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벅차오르는 기쁨을 혼자 누리기가 아쉬워 가까운 이웃을 불러들였다.
이삼 일이 지나자, 옆에 있던 꽃대에서 흰 꽃 한 송이가 더 피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어제까지 봤던 보라색 꽃이 빛이 바래진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내 몸도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사흘 후 그런 광경을 다시 보았다. 나는 한동안 베란다 쪽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인연도 오가는 시기가 있지 싶다. 만나야 하는 인연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보다. 아마도 이 꽃들은 나와 필연이어서 제철이 지난 후에도 만나게 되었던가 보다.
모든 생명의 일생은 짧은 것도 있고 긴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라질 때는 순서가 없다. 해서 떨어지는 낙엽에도 사연이 있다.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간 꽃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남겨주었다. 열흘간의 행복을 주기 위해 철이 지났어도 기어이 꽃을 피웠다. 제 몫을 해낸 생명력에 감동했다.
나는 오랜 세월을 살면서도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 기쁨을 주려고 애써본 일은 있었던가. 과연 나는 나에게 부여된 내 몫을 하고 있는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글마저 손 놓고 있다.
열흘간 내게 행복을 선사한 도라지꽃 앞에 다시 섰다. 나도 내일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내디뎌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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