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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물고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신동환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겨울호 2025년 12월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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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아 승민이는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댁에 갔습니다. 승민이가 사는 서울도 가물었지만, 할아버지가 사시는 마을은 서울보다 가뭄이 더 심각하였습니다. 밭에 심어진 배추, 무, 고추, 고구마 등 곡식들이 타들어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뭄에 지쳤습니다. 할아버지는 승민이가 반가워 힘차게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여름 가뭄에 사람들 마음이 메말라 있었지만, 할아버지 품은 포근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승민이는 할아버지 집에 오면 자주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구름은 동물 모양이나 꽃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엄마 아빠의 멋있는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하늘을 보며 매일 재미있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하느님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단비를 내려주세요.’
오늘도 승민이는 툇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었습니다.
‘비를 내려주세요. 하느님 할아버지, 제발 비를 내려주세요.’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시커먼 구름이 몰려들었습니다. 잠시 후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빗방울은 폭우로 변하였습니다. 빗소리에 놀란 어머니가 승민이 어깨에 걸칠 비치 타월을 가지고 왔습니다.
“승민아, 비가 많이 온다. 방에 들어가자.”
승민이에게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도 승민이 옆에 앉았습니다. 멀리서 번개가 쳤습니다. 하늘이 밝아졌습니다. 천둥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신비한 은빛의 물고기 한 마리가 빗물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물고기는 번갯불로 인해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은빛 날개가 달린 물고기는 무지개색 지느러미로 꼬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왔어요. 하늘에서 예쁜 은빛 물고기가 내려왔어요.”
“그래, 이상한 일이구나. 하늘에서 물고기가 내려오다니.”
은빛 물고기는 빗속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춤을 추었습니다. 승민이는 예쁜 은빛 물고기의 아름다움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은빛 물고기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듯이 땅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활주로가 짧았는지, 땅 위에 물이 부족하였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어머나, 은빛 물고기가 앉은 곳에 물이 부족하구나.”
어머니는 비가 오는데도 빗속으로 달려갔습니다. 마당 가장자리에 흐르는 도랑에서 물을 한 바가지 담아 은빛 물고기 주위에 부었습니다. 물이 쏟아지는 압력으로 은빛 물고기 주위가 조금 패이고 그곳에 물이 고였습니다. 은빛 물고기가 정신을 차리고 반듯하게 자리하였습니다. 은빛 물고기는 고맙다는 듯이 어머니에게 꼬리를 몇 번 흔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은빛 물고기의 엄마가 되어 따뜻한 얼굴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은빛 물고기에 물을 주는 동안에도 세찬 빗물은 계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머리와 얼굴과 몸은 빗물에 흠뻑 젖었습니다. 승민이는 비치 타월로 어머니의 얼굴과 옷을 닦았습니다.
“어머니, 은빛 물고기를 살려주어서 고마워요.”
“우리 아들 효자네, 내가 고맙지.”
승민이는 빗물 속으로 달려가는 어머니의 용기가 부러웠고, 그렇지 못한 자신이 못난 것 같았습니다. 다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들렸습니다. 번개는 은빛 물고기를 황금빛으로 만들었습니다. 번개 꽃은 가루가 되어 하늘에서 예쁘게 반짝였습니다.
“어머니, 은빛 물고기가 어떻게 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것일까요?”
“글쎄다. 은빛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다니,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믿을까?”
승민이와 어머니는 지금 눈으로 보면서도 은빛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상상을 좋아하는 승민이가 ‘하늘에 사는 물고기 나라에 가뭄이 들어서 은빛 물고기가 땅으로 내려왔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친구들은 ‘미친 X’, ‘거짓말쟁이’…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한참 생각하시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승민아,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 어디인지 아니?”
“모르겠는데요?”
“책에서 본 내용인데 원시 생명체의 고향은 땅이 아니고, 물이란다.”
어머니는 원시 생물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승민의 눈에 수증기가 자욱하게 끼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소리가 멀어져 갔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산소가 거의 없고 이산화탄소가 많아진 것 같았습니다.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웬일일까요? 이제까지 승민이가 살던 지구가 아니었습니다. 눈에 익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생명체는 낯설었습니다. 산 위의 나무들, 들 위의 잡초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새 종류, 개구리 두꺼비 종류, 인간이나 젖먹이들 동물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시 생명체는 물 속에서만 살고 있다.”
멀리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조그맣게 들렸습니다. 이끼가 자욱한 물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박테리아 종류가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산 위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화산 불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화산은 여기저기서 붉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원시 세계에 살고 있는 볼품없는 앙상한 것들이 승민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승민이는 원시 세계로 간 것입니다.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승민아!”
얼른 소리 나는 쪽을 보았습니다. 어머니의 희미한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졸린 눈인데, 어머니의 이야기가 듣기 싫어?”
“아니에요.”
승민이는 눈에 힘을 주었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수억 년 동안 원시 세계는 계속되었다.”
승민이는 몸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멍한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돌고래의 단단한 지느러미를 잡고 있었습니다. 원시 세계의 바다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늪지대에서 이상한 모양을 한 친구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승민이는 숨어서 그들이 회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물에 사는 친구, 지느러미로 뭍에 기어 다니는 친구, 물 속에 살고 있지만 뭍을 그리워하는 친구가 모였습니다. 이들은 뭍에 가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물에는 생명체가 너무 많아졌다. 물속 환경이 많이 오염되었다. 뭍은 우리 생명체가 살기 좋은 곳이라더라.”
회의하던 친구들이 승민이가 훔쳐보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 속 친구들은 승민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지구인들이 미래 세계의 외계인을 바라보는 눈빛이었습니다. 승민이는 얼른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전망대입니다. 이곳은 원시 세계가 잘 보이는 곳입니다. 물 속에서 수많은 원시 생명체가 살고 있었습니다. 플랑크톤, 파충류들도 보였습니다. 생명체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피나는 삶의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뭍에는 양치식물, 이끼류 등 원시 식물들이 있었습니다. 시조새와 같은 초기 조류도 아주 드물게 보였습니다. 뭍에 있는 원시 생명체들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에선 물 속의 다양한 원시 생명체가 뭍으로 올라오려고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뭍으로 올라온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는, 아가미가 지상의 공기를 받아들이는데 이렇게 지독하게 아픈 줄 몰랐습니다. 어떤 물고기는 쉴 새 없이 아가미를 벌렁벌렁하다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변화한다는 것, 발전한다는 것이 그렇게 큰 고통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의지를 스스로 기르고 있었습니다. 아가미는 지상의 공기에 적응하느라 피를 흘렸습니다. 피를 흘린 아가미가 짐승의 허파가 되었습니다. 포유류 어머니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을 이때 길들였습니다. 승민이는 변화의 고통을 인내와 죽음으로 이겨내는 강한 의지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승민아, 울고 있어?”
어머니가 불렀습니다.
“아니, 울지 않는데…”
승민이는 꿈속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1억 5천만 년 전에 물고기나 조류들이 물에서 뭍으로 옮겨 살기 시작했다. 그 후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새의 날개로, 짐승의 다리로 변했다. 이것은 화석이나 조류의 다리에 비늘이 있으므로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크게 들리자 갑자기 승민이의 눈앞이 생생해졌습니다. 방금까지 눈물과 피를 흘리며 뭍으로 기어오르던 원시 생명체의 모습도, 축축하고 위험했던 고대의 바다도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자신은 여전히 시골 할아버지 댁 툇마루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거센 빗줄기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늘게 내리고 있었고, 멀리서 천둥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승민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잔잔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우리 아들, 꿈을 꾸었구나. 무슨 꿈을 꾸었니?”
“꿈속에서 원시 물고기들이 뭍으로 올라오려고 힘들게 노력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승민이는 은빛 물고기를 보았습니다. 물고기는 여전히 신비로운 빛을 내며 숨 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은빛 물고기에 시선을 옮기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승민아, 이제 생각해 보니, 저 은빛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구나. 비가 많이 올 때, 용오름처럼 물이 하늘로 솟구쳐 오를 때 물고기들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아하!”
승민이는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 승민이는 은빛 물고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은빛 물고기는 평소에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무척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은빛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니라, 수억 년 전 고통을 이겨내고 변화를 택한 고대 생명체의 의지가 담긴 희망의 표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원시 생명체가 뭍으로 올라와 진화했듯이, 이 은빛 물고기는 하늘을 꿈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시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한 것처럼, 이 은빛 물고기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었을 것입니다.
승민이는 은빛 물고기를 품에 안았습니다. 은빛 물고기에게 마음의 소리를 전하였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원시 생명체들이 피와 눈물로 변화를 만들어 낸 용기를 기억하겠어.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용기와 인내가 있다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거야.
폭우가 그친 하늘에 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승민이는 은빛 물고기를 조심스럽게 마당 가장자리에 흐르는 도랑물에 놓아주었습니다. 물고기는 햇빛을 받아 번쩍이며 힘차게 큰 강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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