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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있네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사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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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사실 또는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소설을 통해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피고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 최초의 소설은 김시습의「금오신화」, 허균의「홍길동전」, 최치원의「최치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문학의 장르마다 작가들은 나름 자부심과 긍지를 품고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소설가를 가장 존경한다. 보따리 속에서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가의 손마디와 대뇌의 능력에 경외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미지의 세계를,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생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설의 종류도 다양해져 방대한 인생 대하소설, 예리한 탐정 추리소설, 가슴 설레는 연예 소설, 타임캡슐 여행에 빠지게 하는 역사 소설, 짧지만 삶의 교훈이 가득한 단편소설 등이 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는 인생의 의미를 새록새록 깨닫게 한다. 학창 시절 소위 연애박사란 호칭을 받던 친구들은 연애소설을 외우다시피 해 여성의 심리를 꿰뚫었다고 고백했다.
사춘기 시절, 청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빼앗은 ‘방인근’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당시 국어 선생님은 “그분은 원래 순수한 소설가였는데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계 목적으로 야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에드거 알런 포의 추리소설을 자녀들이 읽고 모방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다.
역사소설은 선대의 부끄러운 역사를 교훈 삼아 두 번 다시 침략당하지 않는 데 있다. 조선시대 류성룡은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을 『징비록』에 기록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겪은 외침의 기록을 제대로 교훈 삼았다면 백성이 강간·살육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가고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오랑캐 ‘칸’에게 삼궤구고두례의 치욕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수년간 문학을 공부하고 등단이란 관문을 거쳐 비로소 소설가가 되었건만 요즘 서점에서 책이 안 팔린다고 한다. 설상가상 소설 판매 부진에 한몫하는 분들이 있다. 국회에서 “소설 쓰고 있네∼” 하며 상호 비방 설전을 벌이는 정치인들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소설가로 추켜세우는데, 바쁘신 선량들이 언제 문학을 연마해 소설가로 등단했는지 궁금하다.
중·고 학창 시절, 말 같지 않은 궤변을 늘어놓는 친구들에게 “설(說) 풀고 있네∼” 혹은 “썰 까지 마!”라고 면박을 주었다. 소설가를 거짓말이나 일삼는 사기꾼으로 폄하 모독하는 “소설 쓰고 있네∼”라는 표현보다 차라리 “잡문 쓰고 있네∼” 혹은 “농담하고 있네∼”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요즘 모 정치인은 검찰까지 소설가로 둔갑시키며 신작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 책이 잘 안 팔릴 것 같다고 평론가 행세를 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모파상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비곗덩어리」를 읽으면 정치인들은 감히 소설 쓴다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해 프로이센의 점령지가 된 루앙 도시에서 탈출하려는 마차 안에는 교활한 방법으로 성공한 포도주 도매상, 방직계의 거물, 백작 부부,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젊은 창녀, 민주주의 신봉자와 수녀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전쟁 중이라 돈이 있어도 음식을 구할 수 없어 거부의 부인이 마차 안에서 실신해도 그들은 체면 때문에 도시락을 먹고 있는 민주주의 신봉자와 창녀에게 술과 음식을 달라고 하지 못한다. 반면에 허기를 참다 못한 포도주 도매상이 음식을 요구했을 때 창녀는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프로이센군 장교가 창녀와의 동침을 요구하며 일행이 탄 마차를 통과시키지 않았을 때 창녀는 조국 프랑스의 적이라는 이유로 요구를 거절했다. 일행은 “창녀 주제에∼”라며 비아냥거렸고 백작 부인은 동침하라고 구슬렸으며 수녀는 동기가 순수하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며 회유했다. 결국, 창녀는 장교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흐느끼는 창녀를 경멸하며 자기들만 허기진 배를 채웠다. 창녀는 인격체가 아닌, 인간 모양을 한 비곗덩어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자칭 사회 지도층 인사와 창녀 중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지, 하찮은 비곗덩어리는 과연 누구인지 냉철하게 꼬집었다. 소설은 거짓말이 아니다. 문학을 통해 자기 성찰과 혜안을 제시하는 교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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