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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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벚꽃 그늘에 앉은 그녀는 자주색 가방을 부둥켜안고 있다. 자신이 빠져나온 집을 올려다보는 듯 뚫어져라 정면을 응시한다. 하얀 머리와 분홍 스웨터가 연분홍 꽃들과 어우러져 화사하다. 미영은 그녀 앞에 차를 바짝 세운다. 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애초부터 그곳에 부착된 조형물 같다. 미영은 조수석 유리창을 내리고 ‘엄마’ 하고 부르려다 말고 차에서 내려 그녀의 손을 무작정 잡아끈다. 구부정한 자세로 엉거주춤 일어선 그녀는 멀거니 미영을 올려다본다. 아주 낯설고 생경한 표정이다.
승용차 뒷문을 열어 주며 승차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빳빳이 서서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평소에도 뒷좌석이 싫다며 타지 않더니 오늘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를 달리려면 그곳이 안전하다고 등을 떠밀어도 완강하다. 하는 수 없이 미영은 조수석에 그녀를 앉히고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워 준다. 그녀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젖혀 가며 집 쪽을 올려다본다. 103동을 완전히 빠져나와 104동 과속방지턱을 넘는 차가 울컥거릴 때서야 머리 위 손잡이를 움켜잡으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오줌.”
미영은 귀를 의심한다.
“오줌.”
좀 더 힘이 들어간 그녀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린다. 차를 되돌리기에 마땅찮은 구간이다. 그렇다고 아파트 단지를 완전히 빠져나가면 주차가 어려울 것이다. 사이드미러를 보며 후진을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옆 차와의 간격을 살핀다. 운전 경력이 어지간히 쌓여 능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후진은 늘 부담스럽다.
“급해.”
그녀가 다시 재촉한다. 미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끔 훔쳐본다. 금방 문을 열고 나가 치마를 걷어 올릴 표정이다. 차를 가장자리로 바싹 붙이고 낮은 턱에 개구리주차를 한 후 서둘러 가까운 경비실에 붙은 화장실로 줄달음친다.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작은 게 아니라 큰 건가? 낯선 경비 아저씨 눈치가 보여 화장실 도어를 잡았다 놓기를 반복하다가 슬며시 문을 열고 들여다본다. 그녀는 치마를 걷어 올린 채 우두커니 서 있다. 미영은 경비 아저씨를 힐끔 뒤돌아보고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속옷을 살피지만 모두 말끔히 올려져 있다.
“왜 이렇게 서 있는데?”
미영은 퉁명스럽게 묻는다. 그녀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훑는다.
“여가 어디고?”
요즘 들어 부쩍 그녀의 기억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금방 한 일도 깡그리 잊어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미영은 묵묵히 치마를 내려 주고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한숨을 내쉰다. 아파트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데 팔십 년 가까이 인연을 끊고 산 혈육들을 만난다 해도 알아나 볼 수 있을까?
그날의 적막은 너무나 무거웠다. 캄캄한 화면을 껴안은 공기가 숨통을 틀어막았다. 머리를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혼자라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켜 놓은 티브이에서 일본 국제예술제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보도가 연일 흘러나왔다. 채널을 바꿔도 똑같은 내용이 홍수를 이루는 바람에 소녀상 앞에서 흐느끼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질서 없는 메모를 책으로 엮어 내려면 ‘평화의 소녀상’을 직접 보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역사 지식이 짧아 일제강점기 과정 하나하나를 적당히 이어 붙이다가 벌러덩 드러눕곤 했다. 출판사 편집장이 책으로 출판하자고 매달리지 않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용기 있게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지만 미영은 막연했다. 모든 원고를 빠른 시일 내에 넘기겠다는 약속이 무색하리만큼 미적거렸다. 그것은 그녀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관통한 아픔의 과녁은 미영을 향해 있었다. 길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자신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내보일 수 있을까 묻고 또 물었다. 사실을 왜곡시키지 않으려면 직접 정리해야 한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려는 손이 떨렸다.
여태껏 묻어 놓았듯 그리 살면 그만인데 굳이 까발릴 게 뭐냐는 생각이 문득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일이 시급했다. 그래서 찾아간 어린 소녀상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말았다. 얼마를 울었을까? 길을 가던 행인들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미영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냥 운 사람처럼 얼른 눈물을 훔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미영아, 와서 엄마 좀 말려 줘. 구스 조끼를 내놓으라고 잠을 못 자게 괴롭힌다.”
지난해 늦가을 언니가 전화를 했을 때였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전화하면 또렷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구스 조끼에 대해서도 요즘 들어 허리가 서늘해서 찾는다는 것이었다. 혹시 옷 정리를 하면서 버리지 않았느냐고 물었지만 단호했다. 장롱에 얌전히 걸어 두었는데 언니가 세탁소에 맡기고 깜빡했을 거라고 했다. 그녀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건 언니의 건망증이 가져온 결과이건 미영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조금도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러려니 흘려들었다.
그녀는 말없다. 상대방이 지루하지 않게 조곤조곤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사탕 줄까?”
침묵을 깨려고 미영은 입을 연다. 그녀는 전혀 듣지 못한 사람 같다.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는 듯 회색 빌딩이 즐비한 거리에 시선을 던져 두고 있다.
언젠가부터 미영은 그녀와 모녀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버스 두 정류장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지만 자의적으로 그녀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언니가 전화로 근황을 알려 주거나 그녀가 직접 전화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의식하지 않았다.
“오줌.”
1킬로미터도 지나지 않아서다.
“화장실 간다는 건 아니지?”
설마 또 급하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하면서 반문한다.
“급해.”
미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재촉한다. 서행하면서 큰 빌딩을 힐끔거리지만 주차할 장소를 찾기 힘들다. 차들은 씽씽 달렸고, 주차 단속 구간이 길게 이어져 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한가한 곳을 기웃대다가 가까운 관공서로 가는 게 빠를 것 같아 가속페달을 힘주어 밟는다.
“급해.”
참을 수 없는 어조로 재촉하지만 사거리 경찰서로 향한다. 시내에서 좀체 내지 않던 빠른 속도다. 마음은 급한데 정문을 지키는 의경이 차를 저지한다. 미영은 유리문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전후 사정을 말한다. 신속히 차단기가 열리고 절도 있는 의경의 경례를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번에도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미영은 팔짱을 끼고 밖에서 서성이다가 화장실 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예상대로 치마를 걷어 올리고 멀거니 서 있다.
“몇 명 남았노?”
미영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뉜데, 와타나베 중사가?”
기가 막히다. 그녀는 아직도 필리핀 전선에서의 악몽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양이다.
“엄마.”
미영은 앙칼지게 부른다. 그때서야 넋이 빠진 듯한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잔뜩 겁에 질려 불안해하는 그녀를 잡아채듯 치맛자락을 바르게 내려주고 팔을 잡아끈다.
“참 이상타, 와타나베 중사 시악시가 어이 왔노! 여가 여시굴이 있는 가베.”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여는 화장실이잖아, 나는 엄마 딸 미영이고….”
“어디로 데려가실낀데예?”
“엄마, 와타나베 중사 시악시가 아니라 미영이라니까.”
미영은 그녀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민다.
“참 이상타.”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며 미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씽긋 웃는다. 참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다. 유독 미영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관여하려던 성향이 사라지면서 멍한 표정을 짓거나 잔뜩 화가 난 듯 찌푸릴 때가 대부분이었다. 한 번도 해맑게 웃은 적이 없던 것 같은 그녀의 미소가 청순하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겨우내 꽁꽁 얼었다 봄의 따사로운 온기로 피어난 봄꽃처럼.
꽃망울도 터뜨리지 못한 나이였다. 그녀는 대구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마음이 달떠 있었다. 무명치마 저고리를 깨끗이 차려입고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한 가닥으로 땋고 집을 나섰다. 군용트럭에 올라탔을 때 그 마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잔털 보송보송한 여자아이들이 열댓 명쯤 타고 있었다. 취직하면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당차고 야무진 포부를 가진 소녀들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난 그녀들이 도착한 곳은 대구 방직공장이 아닌 머나먼 낯선 나라였다. 그녀들이 이제 노인이 되었다. 생존자보다 고인이 된 사람이 훨씬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변변한 보상도 사과도 받아 보지 못하고 가슴에 한을 품은 채 이승을 하직하고 있다. 그녀는 누더기가 된 몸을 끌어안고 평생 혼자 아파했다. 처참하게 당한 억울함을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하소연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녀는 피부가 하얗고 귀여운 인상이다. 그래서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 시기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남편이 죽었으니 팔자가 드세긴 드세지 뭐야?’
사람들은 그녀의 과거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수군거렸다. 미영은 그런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이를 앙다물고 참아야 했다. 그녀의 노트를 훔쳐보지 않았다면 한바탕 맞붙어 싸웠을 것이지만 파란만장한 그녀의 과거가 들통날까 두려워 못 들은 척 외면하곤 했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내색하지 않아도 가족들은 암암리에 알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함께 지냈다는 정순이모 때문이었다. 죽을 때까지 친동기간처럼 지내던 이모는 술만 먹으면 술주정을 해대며 필리핀 전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벌이곤 했다.
서둘러 화장실을 나온다. 경찰서 어딘가에서 와타나베 중사가 튀어나와 그녀를 낚아챌 것 같다. 주차장이 천릿길인 듯 멀게 느껴진다. 어떻게 걸었는지 모른다. 황급히 그녀를 승차시킨 미영은 잠시 가빠지는 호흡을 고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경찰서를 빠져나오기 무섭게 근처 대형마트 주차장으로 차를 몬다. 기저귀를 채워주는 게 나을 거라는 계산에서다. 차들이 꽉 들어찬 주차장에 간신히 주차하고 그녀에게 차에서 내리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몇 걸음 옮긴다.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다. 알았다는 대답은 철썩같이 했지만 순식간에 돌변해 헤매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나면 여행은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발걸음을 되돌려서 차로 다가간다.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앞만 바라보고 있다. 저렇게 20분을 못 있겠어. 차문을 열고 망설이다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긴다. 그녀는 자석에 끌려 나오듯 끌려나온다. 미영은 그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낀다. 고등학교 교복을 벗고 처음이다. 언젠가부터 미영의 엄마라는 것을 모두 잊어버린 듯 무덤덤하게 반응했지만 전달되는 체온의 안온함은 여전하다. 그녀의 팔을 들어 허리에 감는다. 작은 키로 끌려가며 그녀의 허리를 붙들고 재잘거릴 때처럼 몸을 밀착시킨다. 그녀의 키가 미영의 어깨에 닿는다. 억지로라도 다가가려고 시도한 행동인데 그녀가 미영의 딸인 것처럼 서로 신장지수가 바뀌어 있었다.
억지로 흥얼거리며 시장을 본다. 기저귀뿐만 아니라 음료나 군것질거리도 주섬주섬 카트에 싣는다. 그녀는 졸졸 따라다니지만 여전히 무표정이다. 이따금 카트에 담아 놓은 물건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한다.
대형 기저귀를 채워주는 것으로 일은 수월하게 진행된다. 속도를 낸다.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내달릴 참이다. 그녀는 잠든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강하게 엑셀을 밟다가 속도를 줄이려고 브레이크로 발을 옮기려는 순간, 그녀가 도어를 덜컥덜컥 잡아당긴다. 너무 느닷없는 행동에 미영은 당황한다.
“사고 나.”
도어가 열리지 않도록 조작해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오줌.”
기저귀를 찼으니 괜찮다고 해보지만 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미영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그럴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격렬해진다.
“오줌 마렵다 안 하나.”
차체가 흔들리도록 몸을 뒤튼다.
“위험하다니까.”
미영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꽥 지르고 만다. 그녀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영을 바라본다. 그래서 가만히 있겠지 하는데 몸을 뒤틀며 이를 악문다.
그녀가 신음을 낸다. 신음이라기보다 앓는 소리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한다. 점점 정체가 심해져 차는 더디게 움직인다. 그럴수록 신음은 가팔라진다. 급기야 유리문을 심하게 두드린다.
“가만히 좀 있어.”
미영은 신경이 날카로워져 또다시 소리를 꽥 지른다. 그녀가 미영을 할퀼 것처럼 손을 벌리고 달려들다가 멈춘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다. 미영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눈을 부라리며 대들던 때처럼.
대학 입학원서를 사기 위해 돈을 달라고 할 참이었다. 식당으로 나가 그녀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계산대에서 돈을 꺼낼까 하다가 멈췄다. 그녀는 하루 수입을 결산하기 전에 꺼내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따로 챙겨 둔 지갑에서 꺼내주곤 했다. 주방을 기웃거렸다. 주방장 아저씨가 쉬는 날이라 그녀는 부주방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미영은 아무 말 없이 안채로 향했다. 간혹 파우치지갑에서 돈을 꺼내 쓰고 나중에 말을 하는 일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평소에 지갑을 놔두던 서랍을 열었다. 보이지 않았다. 어디다 뒀지 하고 돌아서는데 장식장 위에 대학노트가 놓여 있었고 그곳에 지갑이 포개져 있었다. 지갑에서 원서 살 돈을 꺼내고 돌아서려다가 무슨 노트인가 하고 뒤적거려 보았다. 빛바랜 종이쪽지가 끼어 있었다. 연필로 쓴 희미한 글씨가 적힌 메모였다. 대학노트에 옮기고 있는 듯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갓 열다섯 살이었다. 가난한 집안에 형제들이 많아 궁핍은 이루 말할 나위 없었다. 대구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면 형제들이 굶지 않고 학교에도 다닐 것이다. 그러면 허리 펼 사이 없이 일만 하는 어머니와 폐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부담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필리핀 위안소에서의 일을 적어 놓은 글이었다. 누리끼리한 메모지에 알아볼 수 없이 삐뚤삐뚤 적힌 내용을 토대로 기록해 나갔다. 근래부터 시작했는지 대학노트는 깨끗하고 두툼했다. 대여섯 장 정도에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히 들어차 있을 뿐이었다. 미영은 일제 징용이니 처녀공출이니 하는 악명 높은 일제 악행을 상세히 알지 못했다. 역사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도 흘려들었다. 머나먼 남의 일로만 여겼는데 그녀의 일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행여 누가 볼까 두려워 노트와 파우치지갑을 서랍 깊숙이 넣어 놓고 황급히 방을 나와 버렸다.
온종일 거리를 떠돌았다. 원서를 사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였다. 머릿속은 온통 그녀가 무지막지한 사내들에게 시달리는 모습만 가득 차 있었다. 저녁 열두 시가 훌쩍 넘도록 걷다가 그녀의 식당 앞에 섰을 때 실내는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지친 몸을 끌고 안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인기척에 그녀가 현관문을 열었다.
“미영이가?”
미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를 확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녀가 뒷덜미를 움켜잡고 왜 이리 늦었느냐고 물었다.
“늦었으면 어쩔 건데?”
미영은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이 가스나가 미칫나, 무슨 일이고?”
기가 막혀 벌겋게 핏발 선 눈으로 다그쳤지만 미영은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꽃이 아름다운 도로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의 신음은 미영의 신경을 불편하게 자극한다. 통증을 앙다무는 것 같은 것이다. 너무 많은 사내를 받아낸 얼얼한 아랫도리를 부둥켜안고 뒹구는 환상이 떠오른다. 그녀의 몸이 기억하는 통증은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을 터였다. 미영은 그 통증을 안아줄 여력이 없다. 노트에 적힌 기록을 책자로 정리하자고 결심하고도 마음이 수시로 흔들린다.
“엄마를 안쓰럽게 생각해야 해.”
언니는 그녀의 노트를 훔쳐보고 있는 미영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때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다. 후회스러웠다. 어린 조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함께 가라고 할 때 따라갔다면 일곱 살 위인 큰조카가 언니처럼 보살펴 주었을 것이고 작은조카와는 친구처럼 지내며 유학생활을 했을 터였다.
그녀를 진정시킬 겨를 없이 차량 흐름을 따라 달린다. 겨우 톨게이트를 지나서야 차를 세우고 간이 화장실로 그녀를 데리고 종종걸음 친다.
“숨차 죽겠데이, 어딜 가는 기가?”
그녀가 미영의 손을 뿌리친다. 미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도대체 어딜 가는 긴데?”
“엄마 오줌 눈다 했잖아.”
“야가 무신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기야. 니 마려우면 어 다녀오래이.”
숨 넘어가게 난리를 피울 땐 언제고 저리 멀쩡하게 아니라고 부인하다니. 미영은 유난히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친다.
“날씨가 참 좋데이.”
차에 탑승한 그녀가 말한다. 노인 목소리 같지 않게 카랑카랑하다. 룸미러에 비치는 표정은 사뭇 밝아 보인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꽃을 펼쳐든 산과 들은 아름답다. 지그시 엑셀을 밟는다. 속도를 낸 차가 시원하게 달리며 형형색색 손을 흔드는 꽃들을 빠르게 밀어낸다. 도로변의 풍경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주시하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차창을 두드린다.
“와 안 열리노, 오줌 마렵데이.”
“안 눈다 했잖아?”
“내 언제 그랬노?”
문고리를 잡아당기다가 주먹을 쥐고 문짝을 쾅쾅 친다.
“누랄 땐 안 눈다 하고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어쩌란 말이야.”
화장실도 없을 뿐더러 갓길이 좁아 차를 세우면 위험한 구간이다. 기저귀를 찼으니 괜찮다고 해도 진정되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변덕에 미영은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눈물이 솟구치려 한다. 꾹꾹 눌러 참을수록 응축된 울음이 복받쳐 오른다. 그렇다고 큰소리로 울어버릴 수도, 온전치 못한 그녀에게 화를 낼 수도 없다. 자신을 달래듯 아니, 그녀를 타이르듯 기저귀를 찼으니 그냥 누라며 애써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잔잔한 음악을 튼다. 창문을 두드리며 몸부림칠 줄 알았던 그녀가 잠잠하다. 이내 코를 골며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인다. 의자를 뒤로 젖혀 주고 싶지만 운전이 위험해 조수석으로 팔을 뻗는데 고개가 창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쉬지 않고 달린다. 그녀가 언제 돌변할지 몰라 휴게소도 그냥 지나친다. 피로감이 느껴지면 껌을 씹는 것으로 정신을 일깨운다. 이따금 곤히 잠든 그녀를 힐끔거린다. 세월의 골을 깊게 파놓은 주름살이 유난히 또렷해 보인다.
그녀에게 대놓고 툴툴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영은 살가운 딸도 아니었다. 식당일에 붙잡혀 평생 변변한 여행도 가 보지 못한 것을 뻔히 알면서 뻔질나게 혼자 여행을 떠나곤 했다. 어쩌면 그 뻔뻔함이 하루하루를 견디게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차오르는 울화를 세상 곳곳에 뿌리며 억지로 웃고 떠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형편없이 늙어버렸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고향을 찾아본다는 게 구실이었지만 미영은 더 늦기 전에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미안함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엄마 고향 쪽으로 여행해 보려고.”
언니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언제나 그랬다. 미영이 알기로 그녀의 뜻에 반하는 일은 한 적이 없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든 가식이든 항상 공손했고 고분고분했다.
“저년 대가리는 욕심이 똘똘 뭉쳐 있어서 깨지지도 않을 게다.”
정순 이모는 언니를 지독하게 미워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년이 친딸 행세를 하며 그녀의 영혼까지 회쳐 먹는다는 것이었다.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지. 우리는 실신 직전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내 나라에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또 집으로 돌아갈 일이 아득했지. 짐승 같은 놈들의 소굴을 탈출하면 살길이 생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정순 이모는 그렇게 말하고 눈시울을 찍어냈다. 그녀가 시원찮은 몸을 이끌고 광복동 시장으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면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차비를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자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떠날 만큼 돈을 모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었다. 그래서 정순 이모가 먼저 갈 수 있는 비용을 마련했다.
“니 먼저 가서 팬지 하그래이.”
어렵게 마련한 비용으로 고향을 향해 떠난 정순 이모는 다시 광복동 시장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는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 몰골로 돌아와 집안 망신을 시킬 거냐며 통곡을 했다 한다. 딸의 목숨보다도 처참한 삶보다도 자신과 집안의 체통만 생각하는 부모가 야속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 다시 돌아왔다. 어쩌면 그녀도 돌아온 정순 이모를 보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었는지 모른다.
단팥죽을 팔던 노포였다. 임산부가 들어와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시장통은 항상 분주했고 오가는 인파로 누가 가게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몰랐다. 그날은 가랑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그런 날은 뜨끈한 죽을 먹으려는 손님들이 더 많았다. 허름한 탁자 귀퉁이에 앉은 임산부가 죽을 한 숟갈 뜨려다가 산통을 호소했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그녀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쟁반을 든 채 붙잡혀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해도 병원비가 없다며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그녀는 산모의 강경함을 어쩌지 못해 시장 근처 허름한 주택 단칸방으로 향했다. 산모 남편의 귀가는 일정치 않았다. 늦은 저녁에 들어오거나, 일을 하지 못한 날은 근처 노동자들 쪽방에서 이삼일 동안 지내다가 일당을 벌어야 들어왔다. 그녀는 생판 모르는 여자의 아이를 받아냈다. 안집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탯줄을 자르고 더운 물에 새파랗게 떠는 갓난아이를 씻겼다. 무슨 책무 같았다. 사명 같았다. 아니, 운명이었다.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산모와 가느다랗게 눈을 뜨는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아이 아빠가 일을 나가지 않으면 끼니를 연명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가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게 가난했다.
산모는 아이를 낳은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임신 중독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갓난아이가 안쓰러웠다. 죽집 일을 하면서 꾸준히 아이를 돌보다가 부두 노동자인 사내와 부부로 살게 되었다. 아이 때문에 발목이 잡혔는지 사내를 동정하다 정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귀엽고 예쁘게 자라줬고 비록 어깨에 지게질빵 자국이 시퍼렇게 물들어 사는 사내지만 그녀를 끔찍이 사랑해 줬다.
죽집을 인수한 그녀는 전쟁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1·4 후퇴 때도 상당한 돈을 벌었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기 바쁘게 남북 전쟁이 터졌지만 영원히 행복할 것처럼 일상은 순조로웠다. 기구했던 필리핀에서의 삶을 보상하듯 술술 잘 풀렸다. 운명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다고들 한다. 남들이 굶어 죽는 전쟁통에도 돈벌이를 쏠쏠히 하는 그녀를 신이 시샘했을까. 일을 나갔던 사내는 인민군으로 몰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지병을 얻어 숨을 거두고 말았다.
“피곤타.”
화장실부터 찾을 것 같던 그녀는 모텔방에 들어서자마자 다리를 모으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버린다. 내려오던 내내 곤히 자서인지 평온한 모습이다.
“엄마 고향이 경상북돈가?”
미영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떠본다. 그녀는 대답 없이 눈을 꼭 감아버린다. 피곤할 것이다. 아흔 중반의 노인이 줄곧 차를 타고 왔으니 누울 자리만 보이는 게 당연하리라. 미영은 창가에 기대서서 밖을 내다본다. 정면에 넓은 들판이 펼쳐진 뒤로 병풍처럼 둘러선 완만한 산이 아늑하다. 알록달록한 다채로운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손에 잡힐 듯 시멘트 건물들이 우뚝 솟아 있지만 직지사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언니 말에 의하면 직지사와 가까운 곳이 그녀의 고향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순이모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 말이지만 그녀가 직지사에 가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영은 직지사 가까운 곳에 여독을 풀었다. 그녀의 뜻과 상관없이 그 주변을 드라이브해 볼 계획이다.
“씻으면 안 되나?”
잠든 줄 알았던 그녀의 말에 미영은 몸을 돌려 침대를 내려다본다. 여전히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그대로다. 피로를 푸는 데는 씻는 것도 방법이다. 속옷가지를 챙겨 놓고 욕실을 둘러본다. 다행히 넓은 욕조가 부착되어 있었다. 우선 따뜻한 물부터 받는다. 그동안 잠이 들었는지 그녀의 콧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조금 더 자게 할까 망설이다가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그녀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미영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얼른 일어나, 씻게!”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귀찮단다. 난감하다. 욕조 가득 받아 놓은 물은 차치하고라도 젖은 기저귀를 차고 자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 앉힌다.
“내 잘란다.”
“깨끗이 씻고 자야지.”
강압적으로 옷을 벗긴다. 그녀가 거부하지만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벗기려다가 멈춘다. 얼핏 봐도 젖은 것 같지 않다. 기저귀 밑으로 손을 넣는다.
“뭐 하는 기가?”
그녀가 상체를 돌려 미영의 사정없이 손을 때린다.
“기저귀 젖었나 보려고…. 자, 일어나세요.”
어리광을 부리듯 미영은 그녀를 보며 웃는다. 기저귀는 그대로 놔둔 채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
“싫다 안 하나?”
그녀가 미영의 손을 밀어내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다시 옷을 입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고 양손으로 깍지를 껴버린다. 그녀는 일어서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지만 미영은 있는 힘을 다해 일으켜 세워 욕실로 데리고 들어간다. 마지못해 끌려 들어온 그녀는 욕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이내 힘없이 모로 누워버린다.
“이를 어째.”
미영은 깜짝 놀라 달려든다.
“기운 엄다.”
속수무책이다. 몸을 완전히 부려버린 그녀를 욕조로 옮기기에는 턱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씻길 수도 없다. 바닥이 차가워 자칫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 선반에 반듯이 개켜져 있는 큰 타월을 내린다. 두 개를 포개어 바닥에 두툼하게 깔고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젖혀 펼쳐 준다.
기저귀는 보송보송하다. 그렇게 야단법석 떨더니 멀쩡하다. 와드득 뜯어내 똘똘 말아 쓰레기통에 처넣은 후 미영은 자신의 겉옷도 벗어 욕실 밖으로 내던진다. 다행히 샤워기를 끌어올 수 있는 구조다. 손으로 쏟아지는 물의 온도를 맞춘다. 샤워타월에 비누를 흠뻑 묻혀 그녀의 몸을 살살 닦아 내린다. 그녀는 잠이 든 사람처럼 잠자코 있었다. 부드럽게 미끄러져 가던 미영의 손이 아랫도리에서 멈춘다. 그녀의 아랫도리를 본 것은 처음이다. 음부가 깊이 오그라져 있어도 희미하게 보이는 게 있다. 불두덩 밑으로 허벅지를 가로지른 흉터다. 무거운 몸을 짊어진 십자가 같다. 와타나베 중사의 칼에 입었다는 상처 자국이 쉽게 아물지 않았던지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선명히 남아 있다. 노트에 적혀 있던 글귀가 생각난다.
녹초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술 냄새를 푹푹 풍기는 놈이 허리춤을 붙들고 나가면 대기하고 있던 놈이 또 들어왔다. 거칠고 무지막지한 놈들이었다. 아랫도리는 이미 감각을 잃었고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워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와타나베 중사가 일본도를 들고 들어왔지만 돌아눕기도 힘들어 멀거니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와타나베는 칼을 구석에 세워두고 서둘러 바지를 내리고 달려들었다. 그녀의 지친 몸은 아무 생각 없이 반응했다. 달려드는 와타나베 아랫도리를 거세게 걷어찼다. 더 시달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고노요나베아까이야(이런 썅간나)’와타나베는 뒤로 나가떨어진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구석에 세워둔 칼을 번쩍 들어 강하게 내려쳤다. 순간 몸이 두 동강 난 것 같은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미영은 훌쩍훌쩍 눈물을 들이키다 급기야 꺽꺽 흐느낀다. 그녀는 인간으로서 당해서는 안 될 일을 당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그 화를 어떻게 삭이며 오랜 세월을 버텼을까? 부모에게도 나라에도 기대지 못하고 혼자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악물었을까!
“니 결혼하고 나면 강제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하실 거야.”
언니는 그녀가 아픈 기억들을 정리해 놓고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순전히 미영을 생각해서라고 했다.
저 십자가를 뚫고 나온 미영의 운명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했을 때 가장 먼저 그녀의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을 받아들이려면 그녀의 과거까지 받아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엎드려 애원하며 결혼해 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독신주의자라는 말로 프러포즈를 거절하고 돌아섰다. 그 후 미영은 남자친구가 떠오를 때마다 그녀를 원망하며 밀어냈다.
입술을 앙다문다. 진즉 살가운 딸이 되어 주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그녀가 뼈가 부서지도록 번 돈을 써대면서도 양심의 가책 같은 건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씻을 수 없는 과거를 가졌으니 당연히 그 정도의 보상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삶을 정리하자 마음먹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갔을 감정이 뜨겁게 밀고 올라온다.
저녁을 먹은 그녀는 유난히 정신이 맑아 보인다. 지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눈을 반짝이며 넓은 침대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미영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안는다. 잔뜩 어리광이라도 부려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가슴에서 출렁이고 있는 서러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른다. 그녀의 따뜻한 등에 볼을 대고 비빈다.
“엄마!”
어린아이처럼 그녀를 부른다.
“할 말 있나?”
“엄마!”
“와카노?”
그녀는 목소리를 높인다.
“음, 아버지는 어떻게 만났어?”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미 정순이모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눈물을 펑펑 쏟아낼 것 같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깍지 낀 미영의 손을 꼭 감싸쥐고 조곤조곤 말을 시작한다.
“니 아버진 보기 드문 신사셨지.”
그녀는 부산에서 마련한 목돈으로 대학가에 집을 사서 하숙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 하숙을 하던 젊은 교수는 몇몇의 다른 교수들과는 달랐다.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일도 없었고 아무리 더워도 러닝셔츠만 입고 거실로 나오는 일도 없었다. 모든 행동이 반듯할 뿐만 아니라 방이나 욕실도 청결하게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식사 후에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숙업을 그만두고 식당을 차린 후에도 인연을 끊지 않은 것은 그런 신뢰와 호감 때문이었다.
“알고 지낸 지 10여 년쯤 되었을끼다. 암으로 투병하시던 그분 부인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나. 참 사이가 좋은 부부였제. 같이 식당에 와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었데이. 그러다 보니 상실감이 크시지 않았겠나. 그렇게 깔끔하시던 분이 하두 추레해 챙겨드리다 보니 니가 생겨 부부 연을 맺었다 아니가.”
그렇게 느지막이 만난 인연도 얼마 가지 못했다. 딱 5년을 살았다. 미영이 여섯 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급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녀의 나이 쉰넷이었다.
“사랑했어?”
“그런 분을 좋아하지 않을 여자가 몇이나 되겠나, 사랑했다기보다 존경했데이…. 감히 올려다볼 수 없는 나무를 니 덕에.”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돈다. 최고의 지식인일 뿐만 아니라 후덕한 인격까지 갖춘 분의 딸을 낳은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미영은 그녀를 껴안은 팔에 힘을 준다.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할 때다.
“여가 어디고?”
그녀가 갑자기 묻는다.
“직지사 근처.”
미영은 상체를 일으키려다 누운 채로 대답한다.
“여시굴이 가까운 데가?”
“여시굴?”
미영은 경찰서 화장실에서 여시굴이 어디냐고 묻던 일을 떠올린다. 흐린 정신이 붙잡고 있는 그곳. 도대체 여시굴과 그녀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혹시 그녀 고향에 여시굴이 있는 걸까? 그런데 와타나베 중사 부인은 또 뭐람! 그녀의 흐린 기억은 망상과 함께 뒤죽박죽 얽혀 있는 것 같다.
“엄마 고향에 여시굴이 있었어?”
그녀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옆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조용히 기다리지만 끝내 침묵한다. 여시굴이라는 단어가 미영에게 새로운 정보 같다. 그녀는 직지사란 말에 고향 생각이 났을 것이고, 여시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고향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른다.
미영은 더 이상의 의문을 보류한 채 눈을 감는다. 좀체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을 청하면 청할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티브이에서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뉴스가 나오면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도 나신으로 돌팔매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털어내려면 그녀의 삶을 여과 없이 정리해야 한다. 미영은 그녀와 함께한 하루를 소중히 기록하고 싶어 잠든 그녀가 깨지 않도록 살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몸을 일으킨다. 그녀의 손이 매트리스 위로 힘없이 툭 떨어진다. 희미한 불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얼굴이 창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