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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어렸을 때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여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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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창밖에는 목화송이처럼 보드랍고 탐스런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궁이가 눈이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말고는 생각났다는 듯이 아빠를 보고 말문을 열었다.
“아빠, 어젯밤에 무슨 꿈을 꾸셨게요?”
회사 일이 고단하신지 요즘 들어 유난히 일찍 잠자리에 드시고는 하는 아빠였다. 그 아빠가 어젯밤 잠결에 허공을 향해 마구 손짓을 하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궁이였다.
“맙소사! 네가 어떻게 아빠가 꿈을 꾸었단 걸 알고 있니?” 
“아이 참, 아빠도, 무슨 신나는 꿈을 꾸었는지 얼른 얘기해 주세요, 네?”
“그래, 그게 그렇게 궁금하면 얘기해 주마.”
궁이의 성화에 아빠가 드디어 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에, 또 그러니까 아빠의 어린 시절 꾸러기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지. 고향 마을에서 그 친구를 만났던 꿈이었지.”
“꾸러기 친구라고요?”
“응, 그래. 꾸러기와 아빤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었거든.”
아빠가 잠시 말을 멈추는가 했더니 이내 곧 이야기를 이었다.
“궁이 너 오늘처럼 저렇게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젤로 먹고 싶은 게 뭔지 어디 한번 말해 보지 않겠니?”
아빠가 쉴 새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었다. 
“군고구마요. 구수하고 달콤한 군고구마요, 아빠.”
“군고구마가 무척 먹고 싶은 게로구나?”
아빠의 말에 궁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빠도 침을 꿀꺽 삼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어린 시절 난로 불에 고구마를 구워 꾸러기와 나눠 먹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빠도 새삼 군고구마 생각이 간절하구나. 껍질을 벗기면 노릇노릇 구수한 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군고구마 말야. 그렇지만 아버지가 말한 군고구마는 길거리에서 파는 그런 군고구마가 아니란다. 아빠가 말한 군고구마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난로 위에 구워 먹던 고구마거든.”
“난로 위에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고구마뿐인 줄 아니?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린 도시락도 뜨끈뜨끈 데워 주는 참으로 고마운 난로였는걸.”
“아빠의 어린 시절은 아주 가난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지 뭐예요.”
“그게 다 무쇠난로 덕택이었지. 무쇠난로는 겨울이면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것이었단다. 무쇠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꽁꽁 언 손과 발을 녹이던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지 뭐니. 마치 꼭 동화 속의 이야기 같지 않니? 올망졸망 난롯가에 모여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말야. 그 무쇠난로가 아빠에게 얼마나 많은 추억과 꿈을 안겨 주었는지 궁이 넌 모를 거야.”
아빠가 지그시 한번 눈을 감았다 뜨시는가 했더니 이내 또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두메산골 마을에서 자랐단다. 양지골 마을이라고….”
“양지골 마을요? 거긴 아빠의 고향이잖아요? 지난 여름방학 때 우리 가족이 피서를 갔던 곳 말예요.”
“그래, 궁이 네 말대로 피서를 갔던 곳이란다.”
“그곳에 폐교가 돼서 낡아 쓰러져 가는 옛날 학교도 구경시켜 주셨잖아요? 아빠가 어렸을 때 다니셨다는 초등학교 말예요.”
“그랬었지. 오랜만에 가서 쓰러져 가는 옛날 학교를 돌아보니 마음이 무척 아프더구나. 참으로 추억이 깊은 학교였는데…. 요즘 학교 같으면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교실마다 스팀 장치가 되어 있으련만 아버지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나무판자가 깔린 교실 마룻바닥 한가운데 달랑 무쇠난로 하나가 놓여 있는 게 전부였지.”
“넓은 교실에 난로가 하나뿐이었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추웠을까요?” 
“천만에 춥기는…. 깨진 유리 창문으로 멋모르고 달려들어 왔던 고추바람도 무쇠난로 앞에서는 꼼짝없이 두 손을 들고 말았는걸. 그런데 그 무쇠난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니? 새까맣게 생긴 조개탄이란 것이었단다.”
아빠의 말에 궁이가 입가에 히죽 웃음을 물어 보이며 대꾸를 했다. 
“무쇠난로가 좋아하는 게 고작 조개탄이었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하긴 조개탄을 먹어야 무쇠난로가 활활 불꽃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네가 알 턱이 없지. 무쇠난로엔 조개탄이 최고였거든. 무쇠난로가 그걸 먹고 몸통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온 교실 안이 화끈화끈 달아오른 열기로 가득 차고는 했지. 그런데 난로를 피우는 날이면 아이들이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하지 않니? 주로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아이들이 도맡아 하는 일이었단다. 학교 뒤뜰 창고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조개탄을 수대에 가득 담아 오는 일이었지. 수대에 조개탄을 퍼 담다 보면 손은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엔 얼굴까지도 새까만 석탄 가루가 묻어나는 바람에 여간 고약한 게 아니었지. 한번은 내가 단짝인 꾸러기와 조개탄을 가지러 갔을 때였지. 수대에 한참 조개탄을 퍼 담고 있는데 꾸러기가 난데없이 석탄 가루를 훔쳐 들고 내 얼굴에 분칠을 해 놓고서 낄낄댔지 뭐니. 그래서 나도 질세라 꾸러기의 얼굴에 마구 석탄 가루 분칠을 해 놓고 말았지. 그러니 두 아이의 얼굴이 뭐가 되었겠니?”
“그렇게 재밌고 우스운 일이 있을 줄이야.”
“그뿐인 줄 아니? 무쇠난로는 겨울이면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데 으뜸이었지. 살을 엘 듯한 고추바람을 맞으며 드르륵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이들을 가장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게 바로 무쇠난로였으니까.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얼굴들. 모두가 무쇠난로가 불러 모은 그림 같은 모습이었지.”
“무쇠난로의 인기가 대단했던 모양이지요?”
“그럼 대단했고 말고. 무쇠난로는 아이들이 항상 많은 꿈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거든. 무쇠난로 주위에 모여들어 아이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하나같이 모두 아이들의 장래 꿈이 되어 피어났으니까.”
“무슨 꿈을 이야기했는데요?”
“어떤 아이는 의사, 또 어떤 아이는 선생님, 화가, 동화 작가, 과학자 등….”
“그럼 그 아이들 지금 모두 꿈을 이뤘나요?”
“그럼 그럼, 이루고 말고.”
“아버지의 단짝이었던 꾸러기 친구도요?”
“당연하지. 궁이 너도 그 아저씨와 인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젠가 시내 서점에서 아버지가 유명한 동화 작가 선생님이라고 소개를 했었잖니.”
“아니, 그 선생님이 바로 꾸러기였다고요?”
“그래. 그렇다니까.”
“참 기특한 무쇠난로군요. 솔방울과 조개탄을 먹고 가난한 두메산골 아이들에게 꿈을 안겨 주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예요.”
“기특하다마다. 무쇠난로가 그렇게 큰 힘을 갖고 있을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아빠가 궁이의 작은 어깨를 감싸듯 어루만지며 하시는 말이었다. 궁이는 빤히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는 무쇠난로가 무척이나 그리운 표정이었다. 그런 아빠가 별안간 허허허 하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으셨다. 문득 어젯밤 꿈이 생각난 때문이었다.
꾸러기와 함께 학교 창고에서 수대에 조개탄을 담아 들고 교실로 들어섰을 때였다. 아이들이 일제히 깔깔거리며 웃음보를 터트려댔다. 선생님도 어이가 없으시다는 듯 빙그레 웃으셨다. 영문을 몰라 하는 두 아이를 보고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너희들 거울을 한번 보려무나. 보나마나 조개탄 창고에서 장난을 친 게 틀림없구나. 에끼, 녀석들 같으니라고!”
선생님의 말씀에 두 아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약속이나 하듯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씨익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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