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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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 한 살이를 마치면 누구나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이를 뛰어넘는 삶도 있으니 신화 속 검〔神〕들의 삶이다. 신화 속의 검들은 불멸의 존재들인지라 신화를 읽다가 책을 덮어버려도 우리의 영혼을 살짝 노크해 와 자신의 존재를 알려서인지 서구의 명화와 조각상엔 비너스를 비롯한 하고 많은 검들로 싸인 찬란한 문화를 잼쳐 보여주고 있음을 본다.
그리스-로마의 신화에선 그 이름을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은 많은 검들이 등장하는데 언제부턴가 인공지능 AI의 화두가 부쩍 인구에 회자되어서인지 요즘에 와선 발명검 헤파이스토스가 나의 관심을 더욱 끌게 되었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킨 후유증으로 심한 두통이 일자 그것을 낫게 하기 위해 머리를 도끼로 내치게 했더니 거기에서 뜻밖에 아테나가 뛰어나와 그 혼자서 딸을 낳은 꼴이 되었는데, 그것에 몹시 자존심 상하고 샘이 난 헤라는 자기도 제우스와 동침하지 않고도 혼자서 수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 그 이름은 ‘불타는 이’ 또는 ‘빛나는 이’를 뜻한다. 헤라의 뱃속에서 나온 아기는 허약하고 생김새가 매우 흉했다. 헤라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아이를 죽이려고 올림포스 뫼 꼭대기에서 모질게도 바다로 던져 버렸다. 아이는 렘노스 섬에 떨어져 살아남았지만, 한쪽 다리가 부러졌고 그 때문에 영원히 불쌍한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바다의 미검〔女神〕인 테티스와 에우리노메가 아기를 거두어 바닷가의 동굴로 데려갔다. 헤파이스토스는 이 동굴에서 9년 동안 자라며 대장장이와 마법사의 일을 갈고닦았다.
옛날의 신화 등에는 대장장이를 마을에 붙들어 두기 위해, 그리고 혹시라도 적들과 협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불구로 만든 사례들이 눈에 띄는데 여기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날 헤라는 길을 가다가 브로치가 유난히 멋지게 돋보이는 미검 테티스를 만나게 돼 그 샘나는 브로치를 만든 이는 헤파이스토스로서 자신이 버린 아이가 당대 으뜸 장인(匠人)이 되었음을 알고는 더욱 테티스에게 시샘이 났고 더 훌륭한 장인으로 키우겠다고 유모인 테티스를 꼬드겨 천성(天城)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말하자면 큰 수련을 이미 끝낸 아들을 올림포스로 불러들여, 스무 개의 풀무가 밤낮으로 가동되는 누리 으뜸의 대장간을 마련해 준 것. 이 대장간에서 헤파이스토스는 금은 세공술과 마법의 걸작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때부터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의 모든 검을 위해 자기 솜씨를 발휘했으니, 제우스의 방패,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 아테나의 창 등이 그의 대표적인 공적이었다. 즉, 발명검이 되었고 나아가 불의 지배자이자 야금술과 화산의 검까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허나, 그는 자기를 더 일찍 데려오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을 삭이지 못하고, 어머니를 겨냥한 함정을 고안하니 누구든 앉기만 하면 마법의 사슬에 옥죄이는 황금 옥좌를 만든 것. 헤라는 아들이 보낸 그 옥좌에 선뜻 앉았다가 사슬에 꽁꽁 묶이는 황당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풀려나기 위해 아들을 올림포스 검족(族)의 온전한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심을 베풀었음에도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 아들에게 제우스의 승낙을 받아 으뜸 미검 아프로디테를 끝내 아내로 맞게 해주는 결혼 선물을 줄 수밖에 없었다. 추남에다 불구인 처지인데 절세 미검을 아내로 맞는 뜻밖의 행운에 감복한 그는 오롯이 정성을 다해 만든 위에서 밝힌 마법의 허리띠인 ‘케스토스 히마스’를 아프로디테에게 선물하게 되었다.
아, 아뿔싸! 헌데 이 허리띠가 정말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으니…. 아프로디테는 단 하루도 육체적 사랑이 없이는 견뎌내지 못한 색골 미검인데다가 더구나 그 허리띠를 두르니 그녀의 고혹적 유혹엔 검도 사람도 헤어날 길이 없었다고들 전해 온다. 마음에 차지 않는 남편 헤파이스토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장간 일에만 붙어 있었으니 무료한 하루하루를 그저 보내기가 너무 아쉬웠는지 금방 색골 본능이 새어 나오고 만 것. 어느 날 해검〔太陽神〕아폴론으로부터 사내 검과의 아내 아프로디테의 염문을 듣게 돼 잔뜩 화가 난 헤파이스토스는 하루는 일터인 대장간에 가는 체하고 집에 숨어 있던 중 대낮에 여느 날처럼 전쟁검 유부남 아레스를 불러내 사랑놀이를 벌이는 현장을 몰래 미리 설치해 둔 자신이 제작한 눈에 보이지 않는 청동 그물로 사로잡아서, 둘을 제우스 주재로 만천하에 응징을 다했는데에도 그 멈춤은 잠시뿐이었고 그녀의 애정 행각은 업그레이드돼 비둘기를 보초로 세우는 등 더욱 교묘해졌었다나….
그런가 하면, 헤파이스토스는 어느 날 헤라와 제우스가 다투는 것을 보고는 그 말다툼에 끼어들어 어머니 편을 들었다고 한다. 성난 제우스는 그를 올림포스 뫼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는 다시 렘노스 섬에 떨어졌고 다른 한쪽 다리마저 부러졌기에 그는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두 팔은 더욱 단련되고 힘이 붙어서 대장장이 일에는 아주 유용했던 것이다.
나아가, 금 바퀴가 세 개 달린 ‘트리포도스(Tripodos)’라는 탁자도 만들었는데 이 세발 탁자는 만든 이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림포스 신전 어디라도 혼자 굴러다닐 수도 있었으니, 이를 보면 헤파이스토스는 들머리에서 언급한 오늘날의 인공지능 AI의 선구자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리라.
나이 듦의 건강을 스스로 챙기기 위해 파크골프를 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애용하는 나는 지하철을 타 경로석에 앉게라도 되면 버릇인 양 눈을 감게 된다. 그럴 때면 올림포스 천궁의 여러 검들이 아른거리는 데, AI 시대라서인가 요즘은 헤파이스토스 검의 곡두가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지상 사람들의 으뜸 발명품 특히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의 인공위성들이 호기롭게 천상 궤도를 돌더니만, 어느 때부턴가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들이 궤도를 이탈한 채 무한정 아득히 방랑하는 우주 미아 쓰레기로 돌변하더니 이제는 올림포스 천궁에도 수시로 떨어지는 것을 망연히 쳐다보고는 배시시 알 듯 모를 듯 웃는 모습을 보이나니. 아마도 그 많은 인공위성의 잔해인 몹쓸 우주 쓰레기들을 없애버리는 그만의 기발한 청소기를 만들어 내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중에도 2025년 11월 27일 새벽 쏘아올린 극동의 한 나라 한국의 인공위성 누리4호의 안전한 길만은 오래도록 오롯이 지켜주어야 한다는 발명검 헤파이스토스만의 회심의 한 미소가 절로 내포되는 것으로 유독 느껴지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내가 하늘을 오래도록 섬겨온 배달겨레의 한 후손이어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