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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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마음이 머문 곳은 가릉빈가(迦陵頻迦)라는 유물이었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에는 국가지정문화재 흥전리 사지(興田里寺址)가 있다. 2003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흥전리사지 일대의 지표 조사를 한 결과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된 삼층 석탑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흥전리사지는 통일신라에서 고려 전기까지 존속했던 대규모의 가람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구와 유물은 고대시대 불교문화를 이해하고, 건축사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지(寺址)로 인정받게 되었다.
‘영남과 영동의 불교 문화를 잇다’라는 주제로 흥천리사지에서 출토된 57점의 복제 유물 특별전시회가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청동으로 만든 정병(淨甁)·청동향합·금동사자상 등 귀한 유물이었다.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정체도 모르고, 어둠 속에 있다가 바깥 구경을 나온 유물의 가치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행사였다.
‘가릉빈가(迦陵頻伽) 문양을 조각한 수막새는 사람 얼굴과 새의 몸으로 표현되었으며, 극락정토에 살아 극락조라고도 한다. 가릉빈가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새의 모습인데 정병을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전시장을 관람하다 보니 가릉빈가라는 유물 설명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오르지 못한 새 한 마리가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 부드러운 바람과 포근한 햇살이 반짝이는 곳으로의 날갯짓을 포기하고 어떤 연유로 이곳에 머물고 있을까. 가지런한 손으로 감로수가 담긴 정병(淨甁)을 안고 있다. 힘든 삶에 지치고 피폐해진 중생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은 게 아닐는지.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보면 새와 연관되는 설화가 많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알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남편인 금와왕(金蛙王)은 틀림없이 불길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며 들판에다 버리라고 했다. 이때 무리를 지어 허공을 날던 새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날개를 활짝 펴서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며칠 후 그 알에서 주몽이 탄생했으니 주몽의 탄생 설화는 신비롭다.
땅과 하늘, 숲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며 신(神)과 인간의 매개체 역할을 했던 새〔鳥〕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영적인 촉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시대 귀족들은 관모(冠帽)에다 새의 깃털을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다녔다. 그 깃털의 개수도 신분에 따라 달랐으니 자신을 과시하고 우쭐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날,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표현을 한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나약한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늘에서는 또 다른 삶이 있다며 애써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거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새는 인간이 두려워하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다 보니 신앙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가릉빈가는 히말라야의 극락정토에서 사람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 그렇다면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일까. 신비롭고 묘한 목소리를 가졌다 하여 묘음조(妙音鳥)라고 부르기도 한다. 귀천의 분별이 없고, 용서하며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가릉빈가가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세상 어디에서도 가릉빈가를 만나지 못했다. 만약 인연이 있었다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에서 지저귀던 새의 무리 속에 있었을까. 흥전리사지를 답사하던 날 길가에 푸릇푸릇 돋아난 새싹과 무수히 떨어진 솔방울 위를 날고 있던 새가 가릉빈가였나.
천상의 소리를 간직했다는 가릉빈가는 언제 어디에서나 중생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불러줄 것이라 믿는다.
전시장을 나와 허공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를 바라본다.
가릉빈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