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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겸손과 침묵의 가치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한섭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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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삼우제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던 2005년 1월이었다. 마음을 추스른 이후에 출근하라는 직장 상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근한 나에게 당시 상사가 해준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가족이나 친지, 직장 동료 그 어떤 사람의 이야기도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 살아 있지 않는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신을 통해서만 위로받을 수 있다”라며 종교를 통한 상처의 치유를 권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총회장이라는 과분한 직책까지 감당하고 있다.

 

얼마 전 성경에 대한 이해, 묵상과 나눔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에 대한 성찰, 만남의 중요성을 체험하는 3박 4일의 가톨릭 신앙 교육을 다녀왔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알찬 프로그램과 다른 성당 교우들과의 교류를 통해 신앙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첫째, 당연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다.
‘생명의 은총’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함에도, 더 많은 걸 바라는 건 어리석음이라는 어떤 신부님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숨을 쉬는 일,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건강하다는 것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우리는 살아간다.
언제나 건강한 것도 아니고, 가족이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당연한 걸로 세상을 살아가면 감사함을 모르게 된다.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기를 원하는 인간의 얄팍한 심성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사’의 의미는 당연한 것조차도 감사해야 한다는 인식의 바탕 위에서 출발함은 자명한 일이다.
둘째, 겸손함이다.
종교를 갖는 것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겸손함’을 배우기 위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한 소크라테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 또한 ‘겸손’을 통한 자기반성이다.
인간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겸양지심(謙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가운데 ‘겸손’을 우선으로 설파한 맹자의 현명함에 다시금 경외심을 갖게 된다.
셋째,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도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의미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 학교, 직장 등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 자라고 성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의식주 해결을 위한 분업과 협력 및 친구, 이웃,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다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일수록 더욱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는 걸 의미한다. 성당에서의 교우 간 서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가운데 바람직한 성당 생활이 가능함은 당연하다.
넷째, ‘침묵’의 가치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할 말은 해야 한다. 말은 씹어야 맛이라는 말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코 ‘말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는 ‘침묵’이어야 한다는 것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연한 것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겸손과 침묵’이야말로 종교가 추구하는 최종적 가치이자 사회 규범이며, ‘평범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것’ 첩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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