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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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 일이다.
남편이 농담 삼아 “말년에는 제주도에서 근무했으면 좋겠다” 하더니 정말 제주도로 발령받았다. 느닷없이 가족도 친척도 없는 섬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그이는 안절부절못했다. 방학이 올 때까지 우리는 주말부부로 살아갔다. 고향을 잊지 못하는 그이가 대부분 전주에 왔고, 나는 방학이 되어서야 제주에 갈 수 있었다.
산 하나만 넘으면 서귀포인데 용기가 없어서 평일에는 혼자 제주시내만 맴돌았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제주 관광은 즐겁고 행복했다. 중산간 지대의 역사적인 비극도 모른 채 우린 즐겁게 고사리를 꺾었다. 준비도 없이 한라산에 올라 깜깜해진 하산길에서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서귀포 천지연폭포를 보고 언덕배기에 올라서니 이중섭미술관이 보였다. 한국의 반고흐라 불리는 천재 화가 이중섭을 그때 처음 만났다. 황소 한 마리가 눈을 부릅뜨고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저렇게 역동적인 소는 처음 봤다. 이중섭은 소한테서 순수한 조선의 기백이 느껴진다고 하면서 소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가온들찬빛 위에 석양을 등에 진 소의 모습이 어찌 그리 당당하고 아름다운지 빨려 들어갈 듯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리기도 했다는데 그런 집념이 천재의 자양분이었을까.
조그만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 유명한 은박지 그림이었다. 왠지 따뜻하면서도 서늘함이 느껴졌다. 환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 물고기와 놀고 있는 아이들. 옆모습이지만 얼굴은 모두 앞쪽을 향해 있었다. 너무 보고 싶어서 얼굴을 모두 앞쪽으로 그렸단다. 물감도 스케치북도 살 돈이 없어서 은박지에 못으로 그렸다는 화가의 생활고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중에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에서 산 십일 개월은 가난했지만 행복이 넘친 시간이었단다.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부대낄 수 있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장인의 사망으로 마사코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에 갔으나 이중섭은 여권이 없어서 갈 수가 없었다. 잠시 머물다 올 줄 알았던 가족들은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친구 시인 구상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맙게도 선원증을 구해 와서 이중섭은 일본에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6일간의 재회였다. 마사코에게 은박지 그림을 주면서 나중에 대작으로 그릴 거니까 잘 보관하라 했단다. 일본 미술창작가협회로부터 태양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받은 팔레트도 주었다는데, 그 팔레트는 70여 년이 지난 후 마사코가 서귀포시에 기증하게 된다. 6일간의 가족 재회가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느루 먹을 곡식도 없어 게를 잡아먹고 연명했었는데 게들에게 미안하여 그림 속에다 게를 슬쩍 그려 놓았단다. 아이들의 웃음이 통통 튀고 영원한 그린내 마사코의 미소가 모든 선(線)에 사랑으로 흘렀지만, 그림을 보는 내내 이중섭 화가의 끌탕이 느껴져 가슴 아팠다. 편지 한 장에 매달린 가족을 향한 흐노니. 그 속에서 사랑의 절규를 본다. 삶이 부서질 때 예술은 사랑이 되는 것일까. 가난을 배우지 못했던 부잣집 도련님이었기에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더 힘들어했을 것 같다.
이중섭의 극한 빈곤은 영양실조로 이어졌고, 미도파 화랑에서의 개인전은 성공했으나 수금도 하지 못해 일본에 갈 경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나는 정직한 화공이다”라고 외쳤던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예술성이 사라진 그림을 그려야만 했으니 어찌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전시회에서 팔리지 않은 그림은 옆 사람들에게 주어 버리고 남은 그림은 태워 버렸단다.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하여 무연고자로 3일간이나 방치되었다는데 그때 그의 나이 겨우 마흔이었다.
남편 퇴직 후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중섭 거리에 섰다. 미술관은 수리 중이다. 소슬바람이 지나간다. 오가는 수많은 관광객.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는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이중섭의 숨소리를 찾는다. 그가 걸었을 길 위를, 남편과 내가 걸었던 그 길도 다시 찾는다. 보도블록에 새겨진 아이들이 웃고 있다. 사랑하는 마사코도 있다. 게도 물고기도 파닥거린다. 한 걸음 한 걸음 떼면서 이중섭의 마음을 읽는다. 골목 벽면에 ‘길 떠나는 가족들’이 행복해 보인다. 희망마저 애처롭다. 그림들이 햇빛에 조금씩 바래 간다.
이중섭의 거주지에 정낭 세 개가 내려져 있다. 1.4평짜리 방 안에서 이중섭과 아내 마사코와 아들 태현, 태성의 숨소리를 모아 본다. 그래도 행복이었구나. 그들은 아직도 서귀포 앞바다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을 것이다.
남편도 제주도 일 년 살면서 전주에 새로 짓고 있는 집값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었다. 하얀 집에서 십여 년을 행복하다며 잘 살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 옛것은 남아 있어도 사랑하던 그들은 없다.
모든 시간이 녹아드는 거리에서 바람이 말을 건네 온다.
서로의 그리움이 행복을 지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