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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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시의 끝에서 그는 다시 말한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타샤’가 그의 연인이었던 ‘자야’인지, 존재적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은 겨울밤의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흰 당나귀를 타고 눈 내리는 산골로 떠나는 상상을 펼치고 있다.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도 이 계절의 연서를 대필하고 있다.
한계령쯤을 못 잊을 사람하고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그래서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묶였으면∼ 하는 바람은 “오오, 눈 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하지 않았던가?
눈이 오면 세상은 잠시 말을 멈춘다. 소란하던 길목도 저마다의 사연을 쌓아 올리던 시간도 흰 숨결 아래 또 다른 행성인 양 고요해진다. 눈은 늘 그렇게, 덮고 지우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눈은 꾸미지 않는 언어이다. 자신을 주장하지도, 앞서지도 않는다. 다만 닿는 곳마다 같은 온도로 내려앉아, 세상이 본래 지니고 있던 상처와 굴곡을 잠시 감싸안는다. 그 순간 우리는 말의 속도를 늦추고, 생각의 소음을 줄이며, 오래 잊고 살았던 침묵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지난해 12월 폭설이 끝나자, 버킷리스트에 간직해 두었던 설국 삿포로를 찾았다. 항공기 결항이 해제된 첫 여정이기에 이런 눈세상의 향연을 다시 어디서 만날 수 있으랴. 설원의 침묵은 가볍지 않았다.
자작나무숲 눈밭에서 길을 물어봅니다
그리움 화등(火燈)을 들고 버선발로 오신다면
첫눈이 에인 발자국 찾을 수 있겠지요
숨겨둔 손편지가 그대 잠든 나래 위에
눈가루 사분사분 목화솜 이불을 덮는
잉걸불
겨울밤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 졸시 「눈 편지1」
모든 소리를 낮추고, 모든 흔적을 덮으며, 눈은 세상을 향해 묻는다. 지금 이 시대의 말들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하고. 감추기 위해 덮는 것이 아니라, 덮음으로써 오히려 경계를 또렷이 긋는다. 넘쳐나는 말들, 쉽게 던져진 문장들, 상처를 남기고 떠나는 언어들 앞에서 눈은 말한다.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속도와 무게로는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이 경고 앞에서 문학은 비켜설 수 없다.
얼마나 지우고 나면
배꽃 흩는 봄이 올까
여의도 비행장(卑行場)
모란봉 궁전에도
폭설이
주먹을 쥐고
어퍼컷을 날릴까
— 「눈 편지2」
여의도는 우리나라의 최초의 공항이 있던 곳 아니던가? 상전벽해의 활주로는 이제 비행장(飛行場)인가 비행장(卑行場)인가? 핏발 선 말과 말의 폭력, 먹이사슬의 한복판에서 폭설이 주먹을 쥐고 어퍼컷이라도 날릴 수 있으려나?
문학의 언어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드러내기보다 고요히 스며들고, 설득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마음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을 온전히 견딜 수 있게 하는 주술 같은 문장을 수혈해야 한다. 빠르고 날선, 교만의 언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눈처럼 천천히 쌓이는 언어의 힘은 더욱 고귀해질 것이리.
1m나 쌓인 눈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버스, 북해도의 대부분이 국립공원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설원에서 목이 긴 사슴과 어렵잖게 마주친다. 여우는 저만치서 눈짓을 보내며 서 있다.
이 한 폭 설원에서
길을 막는 사슴 너는
나처럼 겁이 많아
할 말 다 못하고
손톱 위
사위는 목숨
허들인 양 넘는다
—「눈 편지3」
눈길을 막아선 사슴 너는, 나처럼 겁이 많은가 보다. 손톱 위에서 지고 있는 그믐달 같은 목숨으로 장애물 경기를 하듯 가드레일을 훌쩍 넘는 겁쟁이, 그러나 그 사슴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온천이, 활화산 같은 사랑이 숨어 있지 않으랴?
눈은 언제나 조용하지만, 그 침묵은 가볍지 않다. 문학의 언어는 시대의 가장 느린 언어이지만, 그 느림 속에는 가장 깊은 사랑이 깃들어 있다. 눈이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듯, 문학은 단 한 문장으로도 존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행위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모든 것을 처음처럼 만든다. 발자국 하나 없는 설원의 아침처럼 다음 계절을 건너게 할 온기를 남긴다. 그것이 지금, 문학인이 시대 앞에서 펼쳐야 할 조용하고도 눈부신 약속일 것이다. 졸시 「첫눈」을 이 계절의 언어로 띄워 보낸다.
첫눈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란다
눈망울 속 고인 사랑이 홀씨로 떠다니다
연둣빛 당신 가슴으로
뛰어내리는 거란다
첫눈은 겨울에만 오는 것이 아니란다
해종일 반짝이다 소등한 자작나무숲
목이 긴
기다림 끝에
등불 들고 오는 거란다
—「첫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