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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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중 가장 춥다는 소한이 지나면서 내 삶의 계절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겨울이 한창이다. 추운 겨울에서 혹독한 계절로 지나고 있다. 소한에서 대한으로 지나면서 느끼는 감각은 해마다 다르다. 오십 대 다르고 육십 대 다르다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는 촉감이 외양간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소 입김에서 뿜어 나오는 하얀 김이 그려지듯 몸도 움츠려지고 말수도 줄어들며, 어설픈 겨울나기가 기온의 문제이면서 감각의 문제로 다가온다.
핸드폰 달력에 빨간 글씨로 빼곡히 그려진 일정 따라 아침 4시가 되자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라고 새벽부터 흔들어댄다. 창문을 열자, 밤새 눈이 내렸다. 아무도 모르게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들고,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가 좋다지만 삐끗하면 골반에 금이 가고 손목이 시릴까 봐 모자 쓰고 장갑 끼고 마스크 귀에 걸고 대문을 열고 조심조심 눈을 쓸었다. 안채 마당, 사랑채 큰마당, 장독대를 돌아 뒷산 언덕 아래 신도비가 서 있는 새반데기 가는 길,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랬듯이 눈을 쓸었다. 빛깔 고운 어릴 때 추억들이 싸라기 눈발에 묻혀서 차갑고 무겁기만 하다.
인생 후반기의 계절이 한 번 내려간 기온이 쉽게 오르지 못하는 겨울처럼 내게 오나 보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면서도 머리가 시리다고 모자를 쓰고 잔다. 개울물 가장자리 뽀송뽀송 돋아난 버들강아지처럼 가지런하게 돋아난 아내의 눈썹을 바라보면서 쇄골뼈가 드러난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기지개도 마음대로 켜지 못하고 하품도 안 했는데 따스한 물 한 컵을 건네고, 뉴케어 한 개, 고단백질 두유 하나, 속이 울렁거릴 때 먹으라고 콩알만 한 진정제와 소화제를 생수와 함께 커다란 비치 가방에 바리바리 묶어서 꺼내기 쉽도록 넣었다. 속기저귀, 겉기저귀, 깔개 매트도 챙겼다. 진료 시간은 오전 열 시 반, 두 시간 전에 채혈하라는 카톡 안내 문구를 확인하고, 운전할 때 졸음을 쫓으려고 구운 쥐포 한 봉지도 챙겼다. 서울 병원까지 가려면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밤사이 남몰래 내린 눈길을 헤치며 길을 나섰다. 이른 새벽임에도 서울로 가는 차도 많고 시골로 오는 차도 많았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엉킨 듯해도 걸리지 않고, 풀린 듯해도 흐트러지지 않는 길 위에서 저마다의 길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철새들의 행진 같다. 나도 철새가 되어 본다. 어딘가 날아가는 새로운 낯선 세상이 그립다. 내 것도 버리고 네 것도 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들을 안 버리고 있다가, 다른 누가 버려 주면 아픔만 더 크게 남을 텐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눈길을 헤쳐 가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참나무와 도토리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산허리까지 내려오던 11월 초 어느 날, 아내는 2년 전에 침상에서 떨어진 허리가 점점 아프고 입맛이 없어지고 변비와 함께 몸무게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찡얼거렸다. 의정부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입원을 시키더니 혈액검사, 엑스레이, CT, MRI를 촬영하고, 내시경을 통한 조직 검사를 하고 나서 의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췌장에 혈관과 같이 있어 수술이 안 됩니다.”
간호사도 우물우물 하다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아내는 삼일간을 울었다. 무게를 알 수 없는 서늘함이 엄습했다.
의사 소견서와 진단 내용을 CD에 담아 서울에 큰 병원에 달려갔다. 입원을 반복하면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윤기 나던 머리카락이 빛을 잃었다. 안방과 거실 구석구석마다 머리카락이 뒹굴었다. 의미 잃은 시간이 쓸어도 쓸어도 낙엽처럼 쌓여 갔다.
아내는 어딘지 모르지만 아파서 울고, 서러워서 울다가 아픔을 닦아 내듯 딱딱해진 심장을 쥐어짜며 두 달이 지났다. 엉켜서 뭉친 똬리처럼 매달린 머리카락을 아내는 3차 항암 치료를 받고 나서 깎아 냈다. 뒷밭에 잡풀을 예초기로 깎아내듯 미장원에 가서 이발기로 순식간에 밀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 모든 기억들을 단순하게 비워 버렸다.
스물세 살 되던 해 시월 그믐날 약혼 날짜를 잡아 놓고 세운상가 옷가게를 누비던 기억이 새롭다. 궁둥이까지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둥실거리며 상점 앞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가며, 양 어깨를 잔뜩 끌어올리며 사박걸음으로 걸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파르나니 깎은 머릿속이 하얗게 드러나자, 아내는 눈시울을 붉혔다. 중요해도 걸림이 되는 것부터 버려야 살 수 있는 시간이 호기를 부린다. 아내의 정갈한 눈썹과 오뚝한 콧날이 선명해지자 산속의 절간에 초연히 살고 있는 보살 같다고 아들 막내가 너스레를 떤다.
머리를 삭발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둠 속에 내려와 해 뜨면 사라지는 차디찬 이슬 같은 기억들이 바람처럼 밤새도록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아내가 잠시 잠깐만이라도 집을 비우면 하루가 불편했던 젊은 날의 기억들, 함께 있어도 언제까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 버린 세월, 침상에 닝겔을 걸어 놓고 기울어진 창틈을 비집던 햇살이 찌그러지면, 산그림자가 내려온다. 어둠이 내리기도 전에 어깨가 무거워지고 눈물부터 나왔다.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닦아질까? 얼마나 씻어내야 어둠이 씻어질까? 아프면서 살아야 하는 남아 있는 시간들, 급하다고 삐웅삐웅 소리 내며 달려가는 119구급차 소리처럼 지나간다.
마을 집집마다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꽤 여러 명인 줄 이제야 알았다. 동변상린이 되어서야 나의 아픔에 희망이 살아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 함께 보였다. 펫트 검사, 양성자 치료, 중입자 치료, 평소에는 잘 알지도 못하던 용어들이 내게 달려왔다. 몸속에 살고 있는 것들을 위해서 불필요한 것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소중함도 드러났다. 올바로 사랑하지 않으면 모르고 살고, 알고 나면 누구나 하나씩 말 못할 아픔을 약으로 삼고 살아간다고, 그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이 폐를 조이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눌러 가며 속삭거린다.
마을 사람들이 하루걸러 찾아왔다. 청주에 살고 있는 처제가 달려오고, 괴산에 살고 있는 오빠, 언니, 올케들도 달려왔다. “어떡해∼ 괜찮어?” 울지 말고 힘내라 하면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혼자 우는 것보다 함께 울어야 뜨겁게 녹아든다. 푸르스름하게 깎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내가 애써 웃었다. 청주 처제가 언니는 모자 쓴 모습이 어울린다며 여러 개의 모자를 꺼냈다.
“그래 이제 다시 사는 거야.”
아내는 빨간 모자를 골랐다. 귀 밑까지 덮이도록 눌러쓰자 바람이 불어와 가만히 서 있는 나뭇가지를 쉴 새 없이 흔들었다.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 같은 빨간 모자가 내게로 왔다.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