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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밭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영훈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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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사과밭으로 나갑니다. 사과밭은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족을 살려주는 젖줄입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아 사과밭을 많이 사랑합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 저도 아빠를 따라갈래요. 아빠 일을 돕고 싶어요.”
나는 오늘도 졸랑졸랑 아버지 뒤를 따라 사과밭으로 갑니다.
난 이번 겨울만 지나면 중학교에 갑니다. 아버지가 사과밭에 온 마음을 다 쏟아붓는 정성을 알 만한 나이입니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나와 함께 사과밭에 나가서 함께 일하고 싶어 합니다. 그 마음을 나는 잘 압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내 말에 아주 반색합니다.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말씀합니다.
“우리 동민이. 그렇게 해줄래? 사과를 다 수확했지만, 마무리하려면 할 일이 아직 많으니까 같이 가서 아빠를 도와주면 고맙지.”
아버지는 아들인 내가 사과밭 일을 도와주는 걸 이처럼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사과나무에 거름도 주고 가지 전지도 합니다. 사과알이 많이 맺히면 솎아내야 하고 봉지도 씌워 주어야 합니다. 소독도 주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때마다 난 나름으로 아버지를 돕습니다. 사과밭에 나가면 이렇게 할 일이 많습니다. 특히 요즈음처럼 사과를 수확할 때면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어저께는 많은 일꾼을 놉으로 들여 사과 따는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대부분은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지만 그들은 일을 아주 열심히 해 주어 우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그들이 없으면 아버지가 사과밭 일을 추슬러 나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과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일꾼들입니다.
어제는 그들과 늦게까지 사과를 따는 일을 한 겁니다. 사과를 딴 후에, 갈무리하는 야간 작업까지 했습니다. 그 바람에 수확한 사과는 모두 저온 창고에 잘 저장되어 있습니다. 바로 시장에 출하할 것과 구분해 겨우내 저장할 사과들은 어제저녁 늦게까지 저장 작업을 끝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수확이 끝난 사과밭에 나가 뒷정리를 하는 날입니다. 물론 오늘은 놉으로 얻은 일꾼은 없습니다. 아버지와 나 단둘입니다. 난 아버지의 사과밭에 나가 일을 시작합니다. 과수원 땅바닥 위에 떨어진 낙과도 주워서 모았고, 바람이 세게 불어 어쩌다 찢어진 사과나무 가지는 대강 쳐냈습니다. 군데군데 쌓인 풀 더미도 말끔히 치웠습니다. 며칠 전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 부지런히 일하는 데도 등줄기가 서늘한 날씨입니다.
나는 일을 잠시 멈추고는 끼룩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문득 하늘로 시선을 돌립니다. 철이 바뀌는 걸 아는지 이름 모를 철새가 멀리 창공을 끼룩끼룩거리며 날고 있습니다.
그 창공 너머로 까마득히 충주 시가지가 눈에 와 닿습니다. 지금은 충주 인근 교외에 있는 이 사과밭에서 일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곳이 아버지의 사과밭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아버지가 일하던 사과밭이 이 충주 근교에 있었던 건 아닙니다. 대구의 교외 동쪽 편 구릉지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의 사과밭이 아니었고 할아버지의 사과밭이었습니다. 그곳은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마을입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나처럼 할아버지의 사과밭에서 할아버지를 돕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입니다. 내게는 할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 대대로 살아온 그 고향 대구에서 할아버지께 사과 농삿일을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알아주는 으뜸 사과 농사꾼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사과 농사를 지어서 우리 집은 대구에서 이름난 사과나무 과수원집이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사과 농사로 일곱째 막내아들인 아버지를 농과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큰아버지들이랑 고모들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데 사과 농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아들, 딸 중에서도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사과 박사로 키운 겁니다. 사과 하나를 논 한 마지기와 바꾸지 않을 만큼 사과나무를 아끼던 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 그랬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나의 아버지 ‘박홍규’ 씨를 불렀답니다. 아버지가 내 나이 때쯤입니다. 이건 오래전에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홍규야, 우리도 이제는 사과밭을 옮겨야겠구나.”
“사과밭을요? 청송으로요?”
그 무렵 마을 사람들은 한 집 두 집 대구를 떠나 사과 과수원을 청송 쪽으로 옮기고 있었으니까요. 안동 쪽으로 옮겨 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걸 잘 아는 아버지였습니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합니다.
“아니야. 청송보다 아주 멀찍이 북쪽에 자리를 잡을까 한다. 우리 대구는 예전과 달리 사과를 키우기에는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어. 그래서 모두들 사과 재배에 알맞은 기후를 가진 곳을 찾고들 있잖니. 앞으로 기후 변화는 더욱 심해질 테니까 말이야. 물론 고향을 떠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할아버지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시려고요?”
“어디? 아버지가 얼마 전에 충청도 충주 인근에 다녀왔단다.”
“예? 충주요? 그렇게 멀리요?”
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고향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곳 사람들은 이미 자기 고장, 충주를 사과의 고장으로 만들려고 작정하고 있더라. 벌써 그곳 많은 사람이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도 했고 말이야. 기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충주가 사과를 키우기에는 아주 알맞은 곳이라고 했다는 거야.”
“사과 키우기에 알맞은 곳요?”
“그래 온난화 현상으로 사과밭이 차츰 고랭지 아니면 아예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는 거지.”
“그래요!”

 

여기까지가 할아버지 시절에 아버지의 사과밭이 충주로 옮겨 오게 된 사연입니다. 물론 나는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충주가 고향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오래전부터 충주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대구를 아예 떠나온 건 아닙니다. 대구에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십니다. 올해 93세가 되신 할아버지이지만 제일 큰아버지와 함께 사과밭 한 떼기를 아직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추석 또는 설 때는 꼭 대구로 가 할아버지랑 큰아버지와 함께 명절을 보냅니다. 할아버지 생신 때도 꼭 갑니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할아버지는 그 큰아버지와 함께 사십니다. 지난 추석 때도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그날 나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께 드리는 말씀을 옆에서 들었습니다.

 

“아버님, 사과밭을 강원도로 옮길까 합니다.”
“강원도로?”
“예. 아직은 충주가 괜찮지만, 동민이 사과밭은 좀 더 북쪽으로 가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기후 변화가 예전보다도 더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 경상도나 전라도는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고들 모두 야단이잖습니까. 이미 귤이나 바나나 농사를 시작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잖아요.”
“그래. 잘 생각했다. 어디 마땅한 자리를 보아 놓았어?”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더 관심을 보였습니다.
“예. 강릉 쪽에 마땅한 자리가 하나 있었습니다만….”
“강릉?”
아버지 말씀에 옆에 앉아 있던 큰아버지도 큰 관심을 보입니다.
“예. 우리 동민이의 사과밭을 만들 자리를 보고 왔습니다.”
“잘했다. 우리 집안이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사과 농사의 맥을 이어가려면 지금부터 그곳 강릉에 자리를 새로 마련하고 실한 품종으로 사과나무 묘목을 구해 심을 준비를 해야지. 잘했어. 우선은 동민이와 한 번 더 그곳에 다녀와라. 동민이에게 사과밭의 꿈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 애비는 이제 나이를 먹어 움직이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나보다 자네가 사과 박사니, 우리 가업을 이어가는 일은 자네가 책임을 지게나.”
대를 이어 사과 농사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생각은 젊은 시절처럼 확실했습니다. 그 말씀에는 지금도 힘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지난 추석 때 대구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낙과를 주워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쪽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아버지는 사과나무밭 허물어진 울타리 쪽 한 곳을 찬찬히 살피면서 개구멍을 막고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 향하던 시선을 돌려 다시 철새가 날아가던 늦가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합니다. 늦가을 날씨가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청명하게 보입니다.
이미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지난 주말에 강릉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보아둔 나의 사과밭 자리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주 알맞아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대구 사과밭이랑 이곳 충주 사과밭과 많이 닮아 있는 자리입니다. 아버지가 대구를 떠나 이곳 충주로 옮겨 왔듯이 먼 훗날 언제인가 나의 사과밭이 자리하게 될 그 강릉으로 갈 겁니다. 먼 훗날에 다가올 그날을 꿈꾸며 나는 머얼리 북녘 강릉 쪽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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