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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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 수건 가져가세요.”
은영이 엄마가 나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어요.
“에이, 오늘도 고생깨나 하겠네.”
화가 나서 나는 아무렇게나 몸을 구겨버렸어요.
나는 노랑색 수건이에요. 어린이날, 은영이네 유치원에서 받은 상품이지요.
나는 친구들이 많아요. 빨강이, 파랑이, 분홍이, 하양이도 있답니다. 가족 중에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은영이에요. 여섯 살 은영이에게는 좋은 냄새가 납니다. 어느 향수도 은영이 향기를 따라오지 못할 거예요. 은영이를 닦을 때에는 코를 벌름거리며 은영이 냄새를 맡아요. 단풍잎 같은 손을 닦을 때엔 간지러워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와요.
은영이가 세수하면 우리들은 몸을 밀치는 싸움까지 하면서 고개를 쭉 빼고 은영이가 집어 주기만 기다리지요.
우리들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은 은영이 엄마예요. 마트에서 일하랴, 집안일하랴 바쁘면서도 늘 박꽃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지요. 아주머니에게서도 향긋한 냄새가 나요.
우리들이 가장 꺼려하는 사람은 은영이 아빠예요. 아저씨 얼굴은 거칠고 손에 굳은살이 박혀 있어요. 까끌까끌한 손톱에 까만 때도 끼어 있지요.
우리가 아저씨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퀴퀴한 냄새 때문이에요. 아주머니가 담배 끊으라고 사정을 하지만 아저씨는 못 들은 척해요. 그래서 아저씨가 씻을 때 우리들은 잔뜩 목을 움츠린답니다.
오늘은 은영이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날이라 은영이를 예쁘게 닦아주고 싶었는데 아저씨를 따라가게 되니 속이 상할 수밖에요.
“오늘도 날씨가 무척 덥대요. 당신 고생 많겠어요.”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가방을 건네주며 말했어요.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려 있는 새벽에 아저씨는 씩씩하게 집을 나섰어요.
오늘은 공사장에서 철근을 옮기는 일을 하였어요. 아저씨는 나를 목에 두르고 “으샤” 철근을 들어 어깨에 메었어요. 그러자 얼굴은 붉어지고 땀이 후두둑 흘러내렸어요. 찝찔한 땀방울이 내게 젖어들 것 같아 나는 살짝 몸을 피했어요. 그러자 그 땀방울은 땅바닥에 떨어졌어요.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난 후, 아저씨가 일어났어요. 꾀를 피우며 더 쉬려는 아저씨들도 있지만 우리 아저씨는 언제나 묵묵히 일을 해요.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따가웠어요. 아저씨의 땀은 이제 빗방울처럼 주르르 흘러내렸어요. 땀에 푹 젖자 아저씨는 나를 비틀어 짠 다음 다시 목에 두르고 일을 했어요.
아저씨와 나는 해님을 배웅하고 달님을 마중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들어서니 은영이가 쪼르르 달려왔어요. 은영이는 코를 살짝 찡그린 채 손부채질하며 인사했어요.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어휴, 냄새.”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어요.
아주머니가 나에게 비누칠하고 씻겨 주었어요. 찬물에 헹굴 때는 어찌나 상쾌한지 몰라요.
아저씨가 씻고 나오자 은영이는 조약돌 같은 손으로 콩콩콩 아저씨 어깨를 두드렸어요.
유치원에서 먹었던 피자가 맛있었다는 둥,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다 대현이와 부딪쳤다는 둥, 엄마가 빨래를 널 때 도와드려서 칭찬을 받았다는 둥 쉴 새 없이 조잘댔어요.
아저씨는 “으흠” “저런, 저런” 맞장구를 치다가 “허헛” 웃었어요.
아저씨의 얼굴에 드리워진 피로는 저만큼 물러가고 행복한 기운이 밀려왔어요.
“아빠, 오늘 배운 춤 보실래요?”
은영이가 척, 허리에 손을 얹었어요.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은영이는 멋쟁이 토마토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도 살랑살랑 흔들었어요.
아저씨는 웃음꽃이 핀 얼굴로 손뼉을 쳤어요.
신나게 춤을 추던 은영이가 갑자기 이마를 짚었어요.
“아, 머리 아파.”
“요즈음 은영이가 자주 머리 아프다고 하네요.”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어요.
“감기 걸렸나? 내일 병원에 가 봐요.”
아저씨는 투박한 손으로 은영이를 토닥였어요.
빨랫줄에 널린 나는 노란 등불 아래 식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어요.
오늘은 해님이 구름 속에 숨었고 한들한들 바람도 불어서 일하기 좋았어요.
라디오에서 장마가 시작된다고 알려주고 있을 때, 아저씨의 휴대폰이 울렸어요. 전화 받은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지면서 벌떡 일어났어요. 반장 아저씨에게 다녀와 나를 가방에 넣는 아저씨의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아저씨는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은영이는?”
아저씨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어요.
“병원에 갔다 오더니 지쳐서 자고 있어요. 여보, 어쩌면 좋아요. 은영이가 뇌종양이래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데….”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어요.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럼, 수술을 받아야지.”
무거운 목소리로 아저씨가 말했어요.
“수술비가 있어야 할 텐데, 우리에겐 돈이 없잖아요. 사기만 당하지 않았어도….”
아주머니는 말을 맺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어요. 흐느끼는 아주머니 어깨가 크게 들썩거렸어요.
나는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잠을 못 자는지 밤새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은영이의 가는 숨소리만이 간간이 들려 왔어요.
아직 캄캄한 새벽에 아저씨가 빨강이와 함께 나갈 채비를 했어요.
밖에서 비가 주룩주룩 옵니다.
“여보, 그냥 집에 계시지 그래요. 비가 와서 일이 없을 텐데.”
“그래도 나가서 일을 찾아봐야지. 어서 은영이 데리고 병원에 가요. 수술비는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
아저씨는 빗속으로 멀어져 갔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은영이와 아주머니는 옷과 칫솔 등을 넣은 가방을 싸 가지고 집을 나섰어요.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파랑이와 하양이가 병원에 가게 되었어요.
밤이 이슥해진 후에야 아저씨가 돌아왔어요. 목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셨어요. 아저씨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빨강이 말에 의하면 아저씨가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돈을 구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사람을 쉽게 믿은 내가 바보지. 허어!”
아저씨가 탄식을 하더니 털썩, 주저앉았어요. 잠시 후, 땀방울이 툭, 떨어졌어요.
‘가만히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웬 땀방울이람.’
이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니 아저씨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은영아, 못난 애비로구나!”
아저씨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어요. 나는 얼른 아저씨의 눈물을 닦아드렸어요. 아저씨의 눈물이 나에게 스며들자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와 뜨거운 눈물이 솟았어요.
하느님도 나처럼 슬픈지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번개가 치고 천둥도 요란했어요.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지고 내 눈물도 마르지 않았어요.
“하느님, 어서 비가 그치게 해주세요.”
나는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비가 그쳐야 아저씨가 일을 해서 은영이 수술비를 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는 꼬박 사흘 낮과 밤을 더 쏟아졌어요.
영영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그치고 반가운 해님이 얼굴을 내밀었어요.
아저씨는 공사장으로 갔어요.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에요.
뙤약볕이 아무리 숨 막히게 내리쬐어도 이제부턴 불평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는 나를 목에 두르고 더 열심히 일을 했어요. 나도 부지런히 아저씨의 땀을 닦았어요. 쉬는 동안에는 햇볕에 이리저리 몸을 돌려 가면서 말렸어요. 그래야 다시 아저씨의 땀을 잘 닦을 수가 있거든요.
미루나무 잎이 유난히 반짝거리던 오후, 반장 아저씨가 불렀어요.
“김씨, 소장님이 부르시네. 어서 사무실로 가보게.”
아저씨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소장님이 반갑게 맞았어요.
“김씨 아저씨, 우리 건설사가 푸른 아파트 공사를 맡게 되었어요. 성실하신 김씨 아저씨와 같이 하고 싶습니다. 1년 동안 함께 일합시다.”
“그게 정말입니까?”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듯이 아저씨가 눈을 크게 떴어요.
“지난 번 딸아이가 수술한다고 했지요? 그때 미안했습니다. 6개월의 품삯을 미리 드릴 테니 어서 수술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소장님!”
아저씨 눈가에 이슬이 맺혔어요.
오늘은 은영이가 수술 받는 날입니다.
‘은영이가 수술이 잘 되도록 해 주세요.’
나는 마음을 모아 기도했어요.
일을 마치자마자 아저씨와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머리를 온통 붕대로 감아서 은영이 얼굴을 알아볼 수조차 없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 누가 내 마음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어요.
“여보, 수술이 잘 되었대요.”
초췌해진 아주머니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아주머니의 눈물을 닦는 나도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눈물은 힘들거나 슬플 때 흘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기뻐도 눈물이 난다는 걸 알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은영이를 보러 오셨어요.
“뇌종양이 빨리 발견되어서 다행입니다.”
“의사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아저씨는 몇 번이나 머리 숙여 인사하였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저씨의 티셔츠 주머니에 꽂혀 있는 담배를 보고 말씀하셨어요.
“담배 연기는 환자에게 해롭습니다. 환자 앞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됩니다.”
고개를 떨어뜨리는 아저씨의 얼굴이 붉어졌어요.
발걸음도 가볍게 집에 들어오더니 아저씨는 담배와 재떨이를 가져왔어요.
‘흥, 또 담배를 피우시려나.’
나는 못마땅하여 눈을 돌렸어요.
아저씨는 갑자기 가위를 들더니 싹둑싹둑 담배를 자르기 시작했어요. 이어서 담배곽을 확 구기더니 재떨이와 함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
아저씨가 담배를 끊으려나 봅니다.
“야호! ”
우리 수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은영이 수술이 잘 되었고, 아저씨도 담배를 끊게 되었으니 오늘은 최고로 좋은 날입니다. 이제 아저씨에게서 나던 퀴퀴한 냄새도 사라지겠지요?
가슴이 벅차올라 두둥실 떠가는 기분이었어요. 내 마음은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