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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의 슬픔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미연(경남)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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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설 눈발 날리는 초봄의 하룻저녁 닭이 몰살을 당했다. 족제비가 다녀간 것이다. 구사일생 살아남은 한 마리 암탉을 위해 수평아리 한 마리를 사들였다. 유정란 먹을 욕심이다. 두 그루 감나무 아래 망을 치고 닭의 에덴동산을 감상하리라 잔뜩 기대를 걸었다.
수평아리는 쉽게 놀이터로 나오질 않는다. 늘 갈고리에 잡혀 나가던 농장의 트라우마가 있는지 닭장 안 어둡고 좁은 구석에서 빙빙 돈다. 밖으로 몰아내려고 막대기를 들면 끔찍 놀라며 더 구석으로 숨는다. 농장에서 일찌감치 대우받으며 팔려 나가는 것은 암평아리다. 아웅다웅 버티다 생닭으로 목이 비틀리던 동료의 비명을 수탉은 고스란히 기억하리라.
한 주를 지나자 수평아리는 조심조심 놀이터로 나온다. 처음 맛보는 자유에 쑥스러운지 신부 걸음이다. 잔디를 깎아 퇴비로 쓰려고 모아 둔 거름 무더기를 빙빙 돌아본다. 한 번 나오니 자신감이 생겼는지 조금씩 어깨가 펴지고 얼굴상이 밝아진다. 유정란을 만지려면 한 달은 넉넉히 지나야 할 것 같다.
수평아리는 하루가 다르게 양기가 왕성해지고 태깔도 찬란해졌다. 검푸른 꽁지에 깃털은 비단 자락처럼 윤기가 흐른다. 그런데 이번엔 암탉이 자꾸 좁은 구석으로 들어간다. 별일이야, 낮에도 침실인 닭장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 가만 보니 수평아리가 암탉 등에 올라타는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암탉 머리털이 벗겨져 살갗이 붉게 드러난다. 알을 낳으려고 둥지로 들어가면 그 앞에 수컷이 턱을 받치고 앉았다가 나오면 순식간에 덮친다.
흐트러진 용체(龍體)로 곤룡포를 펄럭이며 궁녀들을 잡으려 쫓아다니던 연산군 같다. 정업원(淨業院) 비구니까지 간음했다는 연산군은 가정 윤리범이 아닌가. 선왕의 후궁이거나 왕족을 범했을 수 있다. 연산군의 트라우마는 어머니 윤 씨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수탉을 묶어 둬야 하나, 한 번 하고 나면 가둘까, 여러 궁리를 했으나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암탉의 비명과 파닥임은 에덴동산에 걸었던 기대를 내려놓게 했고 이 또한 수컷의 슬픔이기도 하다. 수탉의 잦은 죽음은 유전 인자를 퍼트려야겠다는 본능을 강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닭의 암수 비율이 6:1 정도란다. 닭의 생태도 모르고 유정란 먹을 욕심만 부렸나 보다. 가축은 인간의 욕심으로 진화된 산물이다. 비록 퇴계가 되어도 난용 암탉은 오히려 장수를 누린 셈이다. 생명은 모순을 뒤집어쓰고 진행되는 일종의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 불편한 진실의 달걀을 쥐려고 유정란과 무정란의 가치를 부여하며 애쓰는 우리도 슬프지 않은가.
너무 잦은 교미를 통제하려고 수탉을 가두었다. 한참 뒤 뒤뜰에 나가 보니 어떻게 들어갔는지 암탉이 격리된 수탉과 몸을 붙이고 한 방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참 얄궂어라, 그때부터 닭의 일은 닭에 맡기기로 했다.
이웃에 사는 한 여인은 남편과 멀리 떨어져 산다. 처음엔 일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일부러 먼 지역에 일터를 잡아 별거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정색하고 물었더니 남편이 밤마다 잠자리를 요구해 잠을 못 잘 정도라 했다. 어쩌면 그녀의 남편도 유아기에 처참한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상처 치유의 기회를 놓치고 성인이 되어 원만한 부부 관계를 못 하니 말 못 할 불행이다. 제때 치유가 안 되면 자신은 물론 이웃까지도 병들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쩌랴, 짐승의 생태에 맞춰야지. 따스한 봄날 암평아리 여섯 마리를 들였다. 그 농장에 남은 수평아리도 똑같은 전철을 밟으리라.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법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생명의 슬픔이 느껴진다.
칸막이로 성계와 영계를 분리했다. 한 달쯤 가고 병아리들은 어린 티를 벗고 성년기에 접어들었다. 놀이터 중간 칸막이를 살며시 열어 줬더니 겁도 없이 큰 닭 쪽으로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큰 닭이 쪼아댄다. 아직 어린 것들은 자신의 영역으로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난다.
두 부류가 자연스럽게 섞일 무렵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수탉의 눈빛이 야릇해지며 어린 것들의 옆구리에 다가가 비척비척 본능을 드러낸다. 토벌대를 피해 거문오름으로 숨어든 제주 4·3 민중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어린 것들은 거름 무더기로 달아난다. 대낮에도 숲이 무성해 어두웠다는 검은오름이 자연스레 거문오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검은 덮개를 씌워 둔 거름 무더기가 어린 닭의 피신처로 안성맞춤이다.
수탉은 오름까지 따라오르지는 않았다. 어린 것들을 탐하려는 수탉의 등을 막대기로 후려친다.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이놈은 맷집이 단단하다. 속이 시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갑갑하다. 아무런 효과도 없겠지만 나는 지나간 역사를 한 번 후려쳐 본 것이다. 생존을 위한 짐승의 자연스러운 행위를 제어한다는 것은 미련한 짓임을 알면서도 내 몸이 그렇게 반응을 보인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덜 성숙한 행위는 고통을 대물림한다. 짐승이야 먹는 것과 성욕이 생존인데 후려친다고 자제할 리는 만무하다. 나만 보면 수탉은 목을 삐쭉거리며 몸을 피한다. 두어 번 독방에 갇히기도 했다. 암탉의 숫자가 많으면 여유로운 교미를 할 텐데. 유정란은 평화로움의 결과물이 아니라 닭이 살아낸 고통의 산물이란 걸 깨닫는다.
수탉은 내 앞에서 가슴을 벌리고 홰를 친다. 나를 위협하는 건지, 자기가 여기서 최고라고 과시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손에는 막대기가 잡혀 있지만 막대기 끝에 두 손등으로 턱을 괴고 놀이터를 살핀다. 닭 나라의 평화와 질서가 저절로 잡혀 가길 기다릴 뿐이다. 닭 나라의 일은 닭에게 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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