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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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시내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런던 한인학교의 한국문화 체험이 있는 날이다. 학교 측에서 학생들에게 한복 착용을 권유해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참여했다. 참여 인원은 선착순 50명으로 제한했지만, 외국 방문객들의 참여로 한국의 명절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 한국문화는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K-팝과 K-드라마를 비롯해 전통문화까지 널리 퍼지며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처음 영국에 왔던 2000년만 해도 영국 사람들은 해초 냄새를 좋아하지 않아 김밥을 꺼리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김밥은 물론 비빔밥과 불고기까지 즐겨 먹는다.
런던의 뉴몰든은 ‘영국 속 작은 한국’이다. 라면과 김치, 코리안 바비큐에 대한 인기는 상당하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는 나도 부담스러운 불닭볶음면은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다. 식당은 물론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김치와 라면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할인매장인 티케이 막스(TK Maxx)에서도 한국 식품과 한국 화장품을 발견할 때 세계 속의 한국을 실감한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나도 러닝센터에서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배우고, 김치 담는 법까지 익혔다는 사람을 만나면 대견함과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영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문화 체험 행사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박물관 로비인 Great Court에서 진행된 전통놀이 체험은 많은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행객들 역시 공기놀이와 딱지치기, 제기차기를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How to play Gongi’라고 적힌 안내문을 받아 들고, 차근차근 따라 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무척 진지했다. 나도 손주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공기놀이를 해보았다. 예전의 돌 대신 플라스틱 공기를 사용했는데, 하나 둘 집어들 때마다 손가락마디가 바닥에 닿아 아픔이 느껴졌다. 다섯 개를 한 번에 집어 올리는 것도 실패하고, 어쩌다 성공해도 뒤집기 단계에서 다시 놓치고 말았다. 어린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하던 동작이 이제는 쉽지 않음을 실감했다.
손가락을 주무르며 윷놀이 코너로 이동했다.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윷가락은 팔뚝만 한 크기였다. 다섯 개의 윷을 던지려면 서서 힘껏 들어 올려야 했다. 빙 둘러 서서 장작을 던지듯 윷을 던지며 진지한 표정으로 게임에 몰입했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윷가락 한 개의 오차도 양보하지 않았다.
손주들이 윷놀이에 빠져 있는 사이, 나는 옆자리의 딱지치기 코너로 갔다. 딱지 역시 옛날 방식과 달리 두 가지 색의 가죽으로 커다랗게 접어 만든 놀이 도구이다. 어린 시절 남동생들이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껏 내리쳤지만 딱지는 뒤집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제기차기에 도전했다. 막대기에 줄을 달아 제기를 연결한 상태로, 전통 제기와는 조금 달랐다. 예전에는 남자아이들이 주로 하던 놀이였지만, 이날만큼은 모두가 함께 즐겼다. 막대에 매달린 제기를 차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몇 번 시도하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외국인 참가자들 역시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영박물관에서의 전통놀이는 마치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한국 음식처럼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퓨전 민속놀이’ 같았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전통문화였지만 런던에서의 체험을 통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김치 만들기나 한국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쿠킹 클래스, 김장 워크숍에도 참여해 보고 싶다. 또한 캄든의 Curzon Camden에서 열리는 자개 공예 워크숍 소식을 듣고 일정도 미리 기록해 두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해외에 사는 나에게 큰 자부심을 준다. 특히 외국 드라마에서 한국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때의 감동은 남다르다. 넷플릭스의 시리즈 <브리저튼4>의 주인공이 한국 배우임을 안 순간, 가슴이 벅차 올랐다. 중국 배우인 줄 알았지만 한국 여배우임을 알았을 때 손녀를 보는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 분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국내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사회자와 이야기하는 모습은 분명 드라마 속의 소피 백이었다. 원작에서의 Sophie Beckett를 Sophie Back으로 바꾼 것은 한국적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했다. 또한 여주인공 소품 중 목걸이를 한국이 주요 산지인 자수정 목걸이로 바꾼 것도 세계적인 한류의 영향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주인공 여배우 H는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하여 외국 이름을 갖지 않고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했다. 외국에 살면 당연히 외국 이름을 갖는 것이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듯했다.
며칠 전에는 런던의 영화관에서 한국 사극영화를 관람했다. 영어 자막과 함께 한국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럽게 다가왔다. 런던에서 이어지는 한국문화 체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