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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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내 안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던 무늬 하나가 고개를 쳐들었다. 종일 서재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문밖으로 끌어내던 힘. 누군가는 방랑벽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역마살이라 부르지만, 뭐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부름이 얼마나 깊고 확실한지, 길에 나선 내가 얼마나 자연에 동화되어 평온하고 행복해하며 깊은 사유의 뜰을 넓혀 가는지에 있다.
직장과 자영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과중한 업무, 능력보다 높은 기대치, 먹고사는 것에 옥죄어 살다 보니 감성 들녘은 서리 맞은 검불처럼 마르기 마련이었다. 역병을 핑계로 십여 년 하던 자영업도 손 떼니 갑자기 고삐 끊어진 말처럼 자유가 주어졌다. 처음엔 어찌해야 할지 몰랐으나 어느 순간 철없는 망아지처럼 호숫가로 바다로 산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짐 싸는 일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고, 배낭 하나만 둘러메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대청호 오백리길을 처음 걸었을 때, 바람에 실려오는 생강나무 꽃향기가 오래 묵은 번민을 쓸어내렸다. 충주호 종댕이길은 길지도 않은데다 도심을 막 벗어난 위치에 있어 접근성이 좋았고, 청풍호 자드락길 6코스에서는 신라의 장인이 왕비를 위해 만들었을 법한 기품 있는 귀걸이를 조롱조롱 매단 박쥐나무를 만나기도 했다. 스치는 바람에 흔들리던 박쥐나무꽃의 떨림은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손길 같았다. 그 길 끝자락에서 한숨 돌리며 먹었던 손두부와 막걸리 한 잔은 자드락길이 내게 건넨 작은 위로였다.
걸으면 마음이 씻긴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호수든 바다든, 물이 있는 길은 오래된 마음의 그늘을 적시는 힘이 있었다. 고복저수지, 신정호, 탑정호, 예당호, 대청호, 초평호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호수를 찾았다. 3월 초 전북 부안의 솔바람길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변산바람꽃, 노루귀, 솜나물을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웠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날씨에 여린 꽃들이 흙을 뚫고 올라와 피어 있는 모습에는 생의 고집스러움과 희망의 씨앗이 동시에 박혀 있었다.
틈만 나면 걷다 보니 아내의 체력도 어느새 단단해졌다. 철쭉으로 소백산이 붉게 물들 무렵 소백산 종주를 했고, 이어서 속리산과 덕유산을 한 바퀴 돈 뒤 마침내 성판악에서 관음사 코스의 한라산 종주까지 마쳤다. 힘들다는 말은 그 길에서 발을 딛는 순간마다 사라졌다. 자연 속에서는 피곤함보다 ‘살아 있음’이 먼저였다. 내친김에 설악산과 지리산 종주도 욕심을 냈으나 짧아지는 해를 구실 삼아 미뤘다.
무더운 여름이면 늘 찾던 속리산 세조길과 무주구천동 어사길은 걷는 내내 내어주던 그늘과 계곡 물소리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은 왕복 18km라는 장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걸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었다. 흐르는 계류 소리를 들으며 오래 붙잡고 있던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기도 했다.
풍광은 언제나 내가 길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대관령 선자령의 바람은 계절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색채가 달랐고, 발왕산의 오래된 주목들은 가혹한 자연을 견뎌온 존재만이 품을 수 있는 고요한 존엄을 뿜어냈다. 승용차로 한 시간여 걸리는 덕유산을 유독 자주 찾는 이유는 곤돌라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설천봉은 온전히 포근하게 품었고 식생도 다양했기에 향적봉을 거쳐 중봉까지 왕복은 필수였다. 탁 트인 풍광과 절기마다 달리 보여주는 자연경관은 절경이다. 서식하는 생명의 다양성, 시원한 바람, 산허리를 감싸고 시시각각 변하는 운무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되곤 했었다.
길은 점점 더 북쪽으로 이어졌다. 철원 한탄강을 바라보며 걷는 주상절리길의 아찔한 잔도에서 스릴을 느꼈고, DMZ에서 겨울 진객으로 찾아온 두루미 탐조는 백미였다. 사계절 좋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숲이 내뿜는 소리에 귀를 열게 했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오르는 길은 고요한 기도의 걸음 같았고, 설악산 십이선녀탕 물빛은 멋진 명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야생화가 피는 계절이면 곰배령, 분주령, 금대봉, 대덕산은 ‘꽃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청태산, 미약골, 화악산은 한국 특산 고유종이 살아 숨 쉬는 자리여서 해마다 찾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때면 서해를 찾았다. 부안 변산 마실길, 서천, 보령, 안면도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발걸음만큼 마음도 길게 뻗어 나가게 했다. 다만 횟집에서 겪었던 얄팍한 속임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은 단단히 마음먹고 찾은 길 위에서 스스로 기분을 달래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생겼다. 그러나 다짐도 길을 걸어 얻어진 평온 앞에서는 이내 희미해지곤 했었다.
생각해 보면 길은 언제나 정직했다. 발걸음만큼 나아가고, 숨을 고르면 기다려주고, 마음이 흔들리면 바람 한 번으로 다독여 주었다. 그에 비해 사람은 때로 너무 빠르고, 때로 너무 느리고, 때로는 이유 없이 서로를 속이기도 한다. 길을 많이 걸을수록 자연에 빠지며 깨달음은 깊어 갔다.
남들은 역마살이라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그것은 어디론가 떠도는 운명이 아니라 제 속에 일어난 목마름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능력이라는 것과, 걸어야만 살아나는 마음, 움직여야 비로소 들리는 내 안의 숨결, 가만히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생의 무늬가 길 위에서는 또렷해졌다. 하여, 오늘도 찾아나선 길은 들려준다.
“살아 있는 걸음으로 오라고.”
그런 부름에 정직하게 응답하는 일보다 더 명확한 삶의 방식이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