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6월 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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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 후 돌아온 집엔 아무도 없었다. 거실불을 키자 아빠가 늦은 흔적들이 보였다. 채 닫지 못한 서랍이며 지갑도 두고 나간 듯했다. 식탁 위엔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마치 글씨가 포스트잇에서 떨어질 것 같이 끄트머리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적혀 있었다. 아빠의 필기 습관이었다.
어린이날에 같이 저녁 못 먹을 거 같네. 늦게 말해서 미안.
그 뒤로도 공휴일이라 이른 시간부터 콜이 올 것 같다는 말들이 덧붙여 쓰여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글씨들이 포스트잇에 간신히 붙어 있다 싶을 정도로 아슬하게 밀려 적혀 있었기에 보기에도 불안함이 느껴져 끝까지 읽지 않고 내려놓았다.
대리운전기사인 아빠는 참 많은 것에서 늦었다. 출근 시간도 늦고 문자 답장도 늦고, 답답한 마음에 부재중 전화를 남겨놔 봤자 다시 연락하는 것도 늦었다. 입 안에서 계속 늦다란 단어를 굴리다 낮에 진로 상담 중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3학년은 많이 늦었지. 많이 늦어, 진로를 바꾸기에는….’
방으로 들어가 노트를 꺼냈다. 3주 정도 남은 백일장 예선에 투고를 해야 한다는 마음에 써 내린 글이었다. 어색한 문체로 어딘가 중구난방하게 쓰인 글의 몇 페이지 앞엔 빼곡한 노트 필기가 있었다. 촉박한 마음에 노트 끄트머리를 구기고 있을 때쯤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아침에 보낸 문자를 10시간이 지나서야 답을 한 것이었다. 사실 오늘 아빠에게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의 오월이라는 늦은 시점, 안 그래도 급한 마음에 아빠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도 점점 밀리고 있어 불안했다.
어버이날은? 그때도 안 돼?
아빠에게 문자를 보내 놓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 문자의 답장은 또 얼마나 늦을지 걱정이 됐기 때문에. 수신음이 끊기기 바로 직전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아빠가 먼저 나중에 전화하자며 입을 뗐다. 오늘 하루 동안의 긴장과 불안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더 오랫동안 가져온 불안이 아빠에게 화를 내며 이야기했다. 아빠랑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고. 진로를 바꾸고 싶은데 선생님은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고 화를 냈다. 화만 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아빠의 말을 끊고 전화를 끊었다. 몇 방울 흘리지도 않은 눈물이 속눈썹에 엉겨붙어 눈꺼풀을 무겁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 핸드폰에 장문의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아빠였다.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해. 그리고 아빠가 생각했을 때 오월? 전혀 늦지 않았어. 고등학교 3학년 1학기의 오월이 아닌 너의 19년째의 오월을 생각해. 아빠는 늘 딸 응원해.
내가 전화를 끊고부터 5시간이나 지난 후에 온 문자였지만 전혀 늦었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빠의 마음이 갓 담긴 듯 따뜻했다. 백일장이 3주 남은 지금 완전히 새로운 글을 쓰기에 늦었을지 몰라도 새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빠에 대한 글을 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