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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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자산동에 38년째 살고 있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살다가 직장 따라 마산에 왔을 때 바다가 잘 보이는 곳으로 방을 구하고 정착했다. 바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직장이 이곳과 가까운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바다가 보이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곳은 무학산 아래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다. 오래된 집들이 고만고만하게 모인 곳이다. 마을의 유래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본래의 토박이들과 한국전쟁 때 피난 와서 정착한 일부 사람들이 함께 형성한 마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항구가 개항될 무렵에는, 조창이 있는 시내 중심가에 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몰려와 바닷가 쪽으로 일본인 마을을 형성하였고, 그 중간 지점쯤 되는 자산동은 발전 없이 정감 넘치는 마을로 유지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이사 올 무렵에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때는 택지 조성으로 불도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을 파고 덤프트럭들이 돌을 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가 오면 발목까지 푹푹 빠지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싼값의 집을 구하려고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나곤 한다. 동네 위쪽의 공동묘지를 택지로 조성하는 공사였다. 그런데 그 아래 마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이 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재개발이 추진된다고 술렁대더니 철거가 시작되고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택지 조성 후에 지어진 구축으로 몇 년 전에 이사 온 곳이다. 비교적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고층에 살아서 창밖으로 멀리 바다가 보인다. 창밖의 길 건너에는 모여 있는 집들이 사라지고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30층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조망권의 침해니, 공사장 소음이니 공사 차량으로 안전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바다가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한다.
오늘은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산과 바다는 자연의 위대한 색깔로 감동을 준다.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포근하고 몸도 가벼워진다. 결혼하지 않은 다 큰 아들과 아직도 직장에 나가는 아내가 출근하면, 커피와 함께 베란다에 앉아 바다를 보며 음악을 듣고 시 한 편을 읽는다. 길 양쪽으로 심어진 은행나무 가로수가 짙은 신록을 자랑한다. 아침은 언제나 싱그럽다. 이 얼마나 행복한 아침인가.
이십 대의 마지막 해에 직장 따라 이곳 자산동에 와서 정착한 것을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눈이 거의 오지 않으며 무학산이 북풍을 막아주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철에는 남풍이 시원하게 불어서 서민들에게 유독 살기 좋은 자산동이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고 교직을 명예롭게 정년퇴직하였다.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한 것에 감사하고 도와준 가족과 이웃에 감사한다.
빗방울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베란다에 날아온다. 공사장 건너편 바다 쪽은 수채화 물감처럼 운무가 풀어져 있다. 비가 와도 공사는 계속된다. 타워크레인이 잠자리처럼 움직이고 망치 소리 같은 기계음도 둔탁하게 때로 날카롭게 들려온다. 그런데 난데없이 공해처럼 선거 방송이 들려온다. 아, 그렇다.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선거철만 되면, 정당 추천 후보니 낙하산 후보니, 의외의 후보니 등의 말이 난무한다. 몇 년 동안 지역을 위해 착실하게 준비하고 열심히 일해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은 곳에서 낙점되어 오는 사람, 옆에서 도와주던 사람이 생각지도 않게 선거에 출마하여 말이 말을 낳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배신을 했니, 배신을 당했니 등의 말들이 나오고 있다.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인물이 선거 본래의 취지에 적합한 사람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지역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지역의 현안도 제일 잘 알고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런 인물이 지방선거에서 지역민들에게 선택되기를 바란다.
어느 인문학 강연장에서 강연한 유명 시인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시인이었기에 청중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한 중년의 신사가 시인께 “그동안의 행보로 볼 때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시인은 답변에서 한 번도 정당에 가입한 사실이 없고, 다만 시인은 현실을 바르게 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충실했다고 답변했다. 일부 문인 중에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분도 있지만 대체로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실을 바르게 보아야 하는 냉철함은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산동은 지금 재개발 중이다. 발전을 위한 재개발은 어디에도 유효하다. 변신의 기간만큼 불편함도 있고 소음도 크겠지만 조감도처럼 멋진 아파트 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서 발전적 방안으로 도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지역의 현안뿐만 아니라 각종 문제로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사회 단체에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예술 단체는 더욱 그러하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돌아보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 단체의 발전과 권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지도자가 선출되어야 한다. 호손의 소설 속 주인공인 어니스트가 기다리던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나도 자산동처럼 재개발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루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바로잡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45년 동안 즐기던 담배도 끊고 매일 둘레길을 걷기를 시작했다. 바쁘다고 못 읽은 책도 읽고 부족했던 작품도 탈고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회개하고 계획적이고 보람된 일정으로 시간을 아끼며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재개발을 꿈꾸고 있다.
오월이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 여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주변은 온통 신록으로 우거져 있다. 젊음으로 완전하게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마음만은 청춘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계절에, 신록이라는 단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