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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와 허위 사이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춘란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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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열차 안은 한산했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나는 흔들리는 손잡이에 체중을 의지한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수확을 끝낸 빈 땅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울긋불긋 원색으로 물든 나지막한 야산, 그리고 은빛 억새들까지. 가을의 조각들이 빠르게 점멸하듯 지나갔다.
구파발역 안내방송이 나오고, 마침 내리는 승객이 있어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대림역까지는 아직 멀었다. 나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꺼냈다. 위챗을 열고 메시지 창을 훑고, 별 의미 없는 소식들을 무심히 넘겼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R의 모먼트였다. 며칠 전에도 사진을 올리더니 또 올렸네. 사진을 눌렀다. R은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옆에 서 있는 나는 고개를 약간 떨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한순간 잘못 잡힌 표정이었다. R은 뚜렷했고 나는 흐릿했다.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다. 사진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
‘***극 구경을 마치고…’ 마치 둘이서만 오붓한 시간을 보낸 것처럼 보였다. 그날은 여러 명이 함께였고, 공연이 끝난 뒤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왜 하필 이 사진일까. 잠시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R선생님, 모먼트에 올리신 사진 이제야 봤어요. 제가 눈을 감고 있어서 보기가 좀 그러네요. 죄송하지만 다른 사진으로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해요.’
대림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은 없었다.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자 R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방명록 앞에 서서 펜을 들고 있었다. R은 나를 보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오, 김노도 왔구나.”
회의가 막 시작되려던 참이라 우리는 더 말을 나누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짧게 떨렸다. R의 답장이었다.
‘참, 그리고 사진은 한 번 올리면 끝이지. 어떻게 다시 바꿔 올리나? 그건 안 돼.’
문장은 짧았고, 단정적이었다. 나는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답장을 보냈다.
‘올린 사진은 언제든 취소하고 다시 올릴 수 있어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R이 다가왔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미 올린 사진은 마음대로 내릴 수가 없어. 내가 지워도 내 폰에서만 없어지는 거야.”
말이 점점 빨라졌다.
“사진 하나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무리하게 요구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그 목소리에는 불쾌감이 노골적으로 묻어 있었다. 모먼트 기능에 대해 설명을 하려 했지만, 이미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걸 그 짧은 찰나에 직감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겠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곧 단체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R은 조금 전의 굳은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환한 웃음이 되어 나와 안면이 있는 B의 손을 잡아끌며 앞줄 한쪽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누군가 한 발짝 비켜서며 틈을 내주었다. 그 자리에 섰다. 뒤이어 셔터 소리가 몇 번 났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B의 페이스북에서 그날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R은 브이 표시를 하며 B와 함께 앞줄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맨 뒤편, 키 큰 사람들 어깨 사이 좁은 틈새에 끼어 있는 내 얼굴이 있었다. 몸은 보이지 않았고, 목이 거의 가려진 채 얼굴만 겨우 드러나 있었다. 마치 깊은 우물 속에 빠진 사람처럼 얼굴만 떠 있는 형국이었다.
그 사진은 설명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 R은 다른 테이블에 앉아 함께 자리한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며 웃고, 목소리를 높이고, 연신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투명인간 대하듯 나를 외면했다. 귀갓길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정리했다. R이라는 이름을, 내 인생의 목록에서 지우기로. 그날 이후 내 쪽에서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R의 이름이 다시 내 일상에 들어온 것은, 다른 단톡방에서 그녀가 직접 남편의 병환을 언급하면서였다. 지인과 통화 중에 알게 되었다. 이미 마음은 멀어졌지만, 모른 척 지나치기에는 개운치 않았다.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연결되었다.
“김노구나, 어쩐 일이야?”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가벼웠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연락도 못 드리고, 그냥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남편이 지금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어. 며칠 됐어. 원래도 섬망증이 있었잖아… 그런데 어두운 새벽에 담배 피우겠다고 나갔다가, 주차하던 차에 손가락을 크게 다쳤어. 거의 뭉개지다시피 했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말이 이어졌다.
“근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귀찮을 정도로 전화가 오네. 안 그래도 아픈 남편 돌보랴 수시로 간호사 찾아가랴 짜증나 죽겠는데, 병원까지 문병 오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파. 다 오지 말라고 했고 더 이상 전화도 안 받고 있어.”
힘든 간병은 이해됐다. 그러나 단톡방에 직접 소식을 올려놓고, 걱정의 전화를 짜증으로 받는 태도는 이해되지 않았다. 전화를 건 것이 후회되었다.
“아이고, 그런 줄도 모르고 나까지… 바쁘신데 괜히 전화드렸네요. 이만 끊을까 봐요.”
“아니야. 김노라서 받은 거야. 괜찮아, 계속 얘기해.”
‘김노라서 받았다’는 이 특별대우에 바로 전화를 끊을 수도 없어서 짧게 말했다.
“내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대화는 이어졌지만 어색한 감정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던 그때, 거실에서 켜진 채 소리 없이 번쩍이던 TV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광장.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지금 TV에 집회 장면이 나오네요. 얼마 전 서부법원 사건도 생각나고, 이 시국이 언제쯤 가라앉을는지.”
“그러게 말이야.”
그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그다음이었다. R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사람처럼 말했다.
“아, 맞다.”
잠깐의 정적.
“내가 이번에 정치 수필을 하나 썼는데… 거기에 김노 얘기를 좀 썼어.”
“나를 썼다고요?”
심장이 철렁했다. 이번에는 사진이 아니라 글이었다.
“왜 제 허락도 없이 제 얘기를 쓰세요?”
“통일에 관해 쓴다고 썼는데….”
말끝이 흐려졌다.
“어쨌든 그 수필 저한테 좀 보내주세요. 어떻게 썼는지 한번 봐야겠어요.”
“뭘 보려고 그래…. 아무튼 좀 그런 내용들이야.”
“통화 끝나면 바로 보내주세요. 잊지 마시고요.”
“정치 수필이라… 속마음을 다 못 썼어.”
“아무튼 알겠어요. 이해할게요. 그리고 병문안은 오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과일이라도 사 드리고….”
뚜우 뚜우 뚜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끊겼다. 설명도 인사도 없이. 나는 멍하니 꺼진 화면을 바라보았다. 수필 속에 내가 있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기분이 묘했다. 나를 왜 수필에 언급했지? 불쾌함이라기보다, 불편함이었다. 몇 시간 뒤 도착한 이메일을 열었다. 첨부파일을 클릭했다.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평화광장에 비가 내릴 때」그 순간, 기억이 먼저 움직였다. 보슬비가 내리던 날. 사람들의 발걸음. 기억은 생각보다 또렷했다.
도입부는 한 장편소설에 대한 감상에서 출발해 국내 대선 이야기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문단이 바뀌고, 갑자기 내 필명이 등장했다.
김노. 나는 멈칫했다. ‘나는 친구 김노를 불러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설었던 민주선거 현장인 평화광장으로 갔다.’ 첫 문장부터 어긋나 있었다. 그날은 충무로에서 문학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모임이 끝난 뒤, 내가 먼저 말했다.
“R선생님, 이왕 나온 김에 평화광장에 한번 가보시지 않을래요?”
혼자 가기엔 어색해 망설이던 차였다.
“한번 가보지 뭐.”
나는 그 동행이 고마웠다. 그런데 글 속에서는, R이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제안을 따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글 속에서 나는 줄곧 혼자가 아니었다. R은 ‘우리는’, ‘우리 둘은’, ‘나와 김노는’이라는 표현으로 나를 끊임없이 묶어두었다. 그 문장 속에서 나는 독립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R이 본 장면이 곧 내가 본 장면이 되었고, R이 듣고 느낀 감정과 생각이 그대로 나의 것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글 속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중간쯤에서 읽기를 멈췄다. 가슴 한가운데 소용돌이가 일었고 숨이 가빠졌다.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었다.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나의 존재가 타인의 방어막으로 끌려 들어가 있었다. 다시 R의 글을 보았다.
‘몇 년 후 나는 다시 김노 작가와 커피숍에 앉아 이런저런 세상사를 운운하게 되었다. 내가 이번 대선에서 어느 대통령 후보를 뽑겠느냐 물었다. 그도 나와 같은 귀화 2세다. 쉽지 않게 얻은 나라 대사에 자신의 가치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쓰디쓴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소란스러운 창밖을 내다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관찰력이 내성적이면서도 주관이 뚜렷하고 할 말을 하는 그녀의 개성을 생각하며 나는 진지하게 김작가의 그 어떤 유니크한 견해나 발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권!” 그의 입에서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 생각지 않은 대답이었다. 말없이 그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고 있던 그녀는 천천히 탄식을 하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그도 내가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문장에서 여러 부조화를 느꼈다. 단순한 대통령 후보의 선택을 묻는 질문에, ‘유니크한 견해와 발상’을 기대했다는 말은 장면을 설명하기보다, 문장을 꾸미기 위해 덧붙여진 듯 보였다.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나는 수면장애로 커피를 끊은 지 오래였다. 그 장면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한국의 민주주의 현장이 놀랍고 신비했다.’ 이 문장도 나를 멈추게 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전 고국 땅에 도착해 30년을 살아온 나는 이념 대립의 저변에 깔린 역사적 아픔과 뿌리 깊은 상흔에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서 그날의 장면이 특별히 새롭거나 경이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평화광장의 정경은 너무나 살벌했다. 분노에 꽉 찬 얼굴… 엎어 눌러야… 비방하고 무찌르려 한다’ 그런 표현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날 내가 본 사람들의 얼굴은 그렇게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촛불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각자의 이유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다양한 표정과 결을 하나의 감정으로 묶어내는 방식이, 나에게는 낯설었다. 이 나라 언론 보도를 ‘떠들고 있다’고 표현한 대목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와 김노는…’ ‘우리 둘은…’ 그 반복되는 문장 속에서, 나는 점점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한 것처럼 묶여 있는 그 문장들이 어울리지도 않고 내내 불편했다. R의 눈에 비친 한국의 정치는 스냅 샷 한 장으로 파노라마 전체를 설명하는 듯했다. 초반의 평화광장 묘사는 뒤로 갈수록 정치 논설문에 가까워졌다.
이 글은 무엇을 바탕으로 쓰였을까. 기억일까, 해석일까, 아니면 필요일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날의 진실은 함께 평화광장에 갔고 그 현장에 한 시간 정도 함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내용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수화기를 들어 R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편이 입원 중이라는 말을 들은 뒤여서 지금 당장 내 억울함을 풀겠다고 따지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삼키듯 보내는 동안, 하지도 않은 기권을 했다고 적어 놓은 문장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느 날부터 몸이 이상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왼쪽 허리와 허벅지에만 통증이 몰렸고, 이틀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웠다. 정형외과를 다니며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지만 낫지 않았다. 며칠 뒤 붉은 반점이 올라왔고, 결국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몸은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피로와 긴장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한 달 사이 내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그래도 마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통증이 가라앉고 몇 시간 통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R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김노.”
수화기 너머로 돌아오는 목소리는 무심했다. 수필을 받은 지 한 달 남짓 흘렀으니, 내가 이제 와서 수필 건을 문제 삼아 전화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 수도 있었다.
“R선생님이 보내주신 수필 잘 읽어봤어요. 바로 전화 드리고 싶었지만 남편분이 아프시다고 해서 여태껏 참고 이제 전화 드린 거예요.”
“어, 그랬어?”
“그런데 수필이 문제가 많네요.”
“뭐가?”
“내 필명을 그렇게 콕 집어서 대놓고 쓰면 어떡해요? 얼마든지 필명을 밝히지 않고도 수필을 쓸 수 있잖아요. 그리고 몇 년 뒤 단둘이 커피숍에 가서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는데, 저는 선생님과 단둘이 커피숍에 간 사실이 없고, 더군다나 기권한 적도 없는데 왜 그런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처럼 꾸며서 쓰셨어요?”
“아, 그거 문학이니까 그 정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나?”
R의 음성이 뾰족하게 높아졌다.
“그런 게 어딨어요. 내 허락도 없이 소설도 아닌 수필에 필명을 쓴 것 자체가 잘못인데, 정치적 판단까지 단정해버렸잖아요!”
“그건 김노랑 친해서 쓴 거고, 그렇게 쓰면 김노가 돋보일 거라 생각했어.”
“어디가 돋보인다는 건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저를 언급할 때마다 ‘우리’ 또는 ‘나와 김노’를 한 몸처럼 묶어 운운했는데 그런 게 기분이 안 좋았어요.”
R의 숨소리가 짧게 들렸다.
“아니, 그게 그렇게까지 문제 될 일이야?”
“문제 되죠. 없는 내용을 지어내 쓰셨으니까요.”
“아니 내가 너를 나쁘게 쓴 것도 아니고 친해서 쓴 거고 좋게 쓰려고 한 건데,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면 나더러 어쩌라고!”
“그게 말이 돼요?”
“그래도 글은 글이지. 수필이라고 해도 흐름이라는 게 있잖아. 문학 작품이라는 게 다 있는 사실만 딱딱 쓰는 건 아니야.”
R이 다시 말했다.
“그건 소설이죠. 수필이라면 적어도 제가 하지 않은 행동과 말을 했다고 쓰면 안 되지요.”
“아니, 김노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내가 너를 깎아내린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 작품에 같이 넣어준 거잖아.”
“제가 원하지 않는 걸 왜 마음대로 쓰셨어요? 잘못을 해놓고 왜 그렇게 당당해요?”
“그러면 어떻게 하길 원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솔직히 그렇게까지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김노가 사과를 원한다니까 그럼 사과할게. 됐지?”
“사과하는 말투가 아닌 것 같네요. 제가 이런 억지 사과를 받자고 전화 드린 건 아니잖아요.”
“그럼 사과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 마음대로 해!”
그녀는 몹시 흥분했는지 거친 숨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제가 뭘 더 바란다는 겁니까? 당사자 허락 없이 타인의 필명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정치적 판단까지 내린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주변에 알아보시라고요. 제가 주변에 물어보니 이건 분명히 문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문제’를 의식했는지 R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방금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내가 그런 부분에 대해선 무지했어. 잘못한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쓴 건 아니고, 글을 쓰다 보니 내 편의를 위해서 그렇게 쓴 것 같아. 아무튼 진심으로 내가 잘못했고 사과할게.”
한 시간 가까운 실랑이 끝에 사과를 받아냈지만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로부터 보름 뒤, 그 잡지가 궁금했다. R에게 문자를 보내 구매를 위해 잡지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혹 여분의 잡지가 있다면 한 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답장 없이 보름 만에 R이 보낸 소포를 받았다. 잡지의 이름은 『통일미래문학』이었다. 지난 2월 1일에 출간된 창간호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출판기념식과 창간호 관련 기사가 수많은 매체에 이미 나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여러 도서관에도 문제의 잡지가 소장되어 있었고, 대형 서점에서도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R의 수필이 실린 잡지가 이미 7개월 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공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이것은 개인 간의 구두 사과로 덮을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 수필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평소라면 글을 올리고, 누군가가 공유하고, 단체방에라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글은 잡지 외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록은 존재했지만,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단순 우연인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 달 만이었다.
“오, 김노.”
“저, 다른 게 아니고요. 그 수필 말인데요….”
내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다. R은 수필이라는 단어가 나오기가 무섭게 가로채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 수필은 내가 이미 미안하다고 했잖아! 지난번에 다 끝낸 일 아니야? 뭘 더 바라!”
“뭘 바란다고 언성을 높일 게 아니라, 천천히 내 말을 좀 들어나 보시고 얘기하세요. 『통일미래문학』 잡지가 창간호이고 2월 1일에 출간되었다는 것도 확인했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미 중앙도서관에도 소장이 되어 있고 대형 서점에서도 판매 중이라서, 구두로 사과할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말로 안 되면 어쩌라는 건데? 난 몰라! 사과로 이미 끝난 일인데 김노 맘대로 해!”
“그런 게 어딨어요? 선생님이 잘못해 놓고 왜 자꾸 화를 내요? 이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고 했어요.”
방금 전까지 큰소리치던 R의 말투가 갑자기 흐트러졌다.
“고의도 아니고… 내 나름대로 김노를 추켜세우려고 한 거야… 애틋하게 생각해서 그런 거고…. 아, 정말 왜 내가 이런 사람을 친구라고, 내 멋대로 썼는지… 엄청 후회하고 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나, 지금이라도 내 손을 끊고 싶은 심정이야….”
말은 이어졌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고, 같은 말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당황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R은 내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다며, 오히려 나를 무섭다고 했다.
“수필 속에서는 ‘우리’라고 하셨으면서, 정작 왜 본인은 기권에서 빠져 있나요?”
R은 좌우가 대립되는 상황에 나의 정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면 피해가 갈 수 있어,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설정했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그러다 R은 느닷없이 물었다.
“김노, 혹시 소속된 당원이야? 기권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서….”
“당원이든 아니든, 그게 기권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왜 문제를 그런 식으로 몰아가세요?”
“아니, 좋게좋게 정으로 풀 일을 굳이 문서로까지 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혹시 그런가 싶었지. 아니라면 됐고. 그래서 어떡하라는 거야?”
“사과문을 쓰셔야 해요.”
“사과문을 쓰라고? 하! 그런 걸 어떻게 써!”
“정정 사과문을 써서 동일 잡지에 게재해야 하고요. 그래야 독자들이 잘못 쓴 글인 줄을 알 수 있잖아요. 쓰기 싫어도 필히 당사자가 직접 써야 한다고 했어요.”
“그거 안 쓰면 안 돼?”
“안 돼요. 제가 법적으로 자문을 구해봤어요. 선생님의 글이 실린 잡지가 이미 출판·유통되고 있어서 반드시 정정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법을 언급해서인지 높아졌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럼 김노가 써주면 안 돼?”
“내가 쓰면 나의 사과문이 될 수도 있어서 그건 안 돼요.”
“아이참, 알았어! 꼭 필요하다니 그럼 쓸게. 그런데 어떻게 쓰면 돼?”
“수필 속에 저를 무단으로 언급한 필명을 비롯해서, ‘김노와 함께’ 혹은 ‘우리는’ 그렇게 묶어서 서술한 모든 내용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정확히 명시해줘야 돼요. 제가 안내문을 상세히 써서 보내 드릴게요.”
“알았어. 쓸게.”
말끝에 짧은 한숨을 달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8시, 잠결에 R의 전화를 받았다. R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달았다면서도, 여전히 악의가 없었고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앞세웠다. 그러면서 오늘 급히 만나자고 했다.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라, 집 가까운 구파발역 쇼핑몰에서 만나기로 했다. R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쇼핑몰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아래층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R은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어제 통화가 끝나고 사과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이 나이에 이게 뭔가!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한바탕 울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잘못하셨는데 억울하다니요?”
“내 입장에선 그랬어. 늘 씩씩하던 마누라가 울고 있으니까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묻더라고. 섬망증 환자랑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싶어서 작은방으로 들어갔는데 뒤쫓아와서 왜 말을 못해! 하더라고. 전혀 환자 같지 않았어. 그래도 가까운 사람은 남편밖에 없다 싶어서 김노랑 있었던 일을 다 얘기했지.”
R은 남편이 듣자마자 안방으로 들어가 작은 가방을 들고 나와, 그 안에서 돈 500만 원을 꺼내놓으며 잘못했으면 당장 찾아가 무릎 꿇고 빌고 이 돈으로 합의를 보라고 했다고 했다.
“실은 500만 원까지는 아니었는데, 김노를 한번 봤잖아. 착해 보였고, 사는 게 힘들 것 같아서 도움이 되라고 주더라고.”
그 말을 하면서 바로 내 옆 긴 좌석에 놓아둔 자신의 가방에서 돈을 꺼내려 했다. 나는 놀라 재빠르게 그 손을 제지했다.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에요. 합의금 때문에 만나자고 했다면 이만 갈게요.”
R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남편이 시켜서 어쩔 수 없어 가져왔노라고 했다. 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R은 다시 가방에 손을 넣었다. 순간 또 돈인가 싶어 움찔했지만, 꺼낸 것은 문제의 잡지였다. 우리는 수필을 펼쳐놓고 마주 앉았다.
“우선 여기, 귀화 2세… 이건 왜 쓰셨어요?”
“내가 뭐 틀리게 말했어? 귀화 2세 맞잖아.”
말투는 단호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방어가 끝난 사람의 말투였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귀화 2세가 아니었다.
“이건 사생활에 속하는 신상정보잖아요. 사실이라고 해서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말을 하다 문득 몇 년 전 지인이 보여줬던 사진이 떠올랐다. 관모를 쓰고 꽃다발을 안은 채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R의 모습이 있었다. 현수막에는 ‘학위수여 감사예배’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력을 R의 공식 이력서에서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이력은 감추면서, 타인의 이름과 내밀한 정보는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나는 다시 다음 내용으로 이어갔다.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고요. 이 장면도 없었던 일이에요. 우리가 경악했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어요. 여기 ‘나와 김노는’, ‘우리는’ 이런 표현들 전부요.”
R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친해서…”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우리가 그렇게 친하지는 않잖아요. 1년 전 이후로 연락이 없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나? 나는 기억에 없는데….”
말끝이 흐려졌지만, 부정은 아니었다.
R은 없는 장면을 썼다는 점은 인정했다. 편집위원의 조언을 듣고 뒷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커피숍 장면을 추가했다고 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설정이며 문학적인 허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이후, 정정 및 사과문을 둘러싼 공방이 시작되었다.
나는 세 가지를 요구했다. 내 필명을 사전 동의 없이 사용한 점, 해당 서술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 그리고 정정 및 사과문을 동일한 매체에 게재할 것.
R의 첫 정정 및 사과문을 보내왔다. 정정 및 사과문 안에서도 여전히 문학적인 설명이 이어졌고 핵심은 빠져 있었다. 날짜도 실수인지 한 달이나 앞당겨져 있었다. 나는 수용하지 않았다. 독자에게 전달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바로잡아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두 번째 보내온 정정 및 사과문에서는 일부 장면을 더 구체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역시 허위가 아닌 허구라고 했고, 표기 날짜도 여전히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수정문에서는 내가 보낸 안내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 쓴 듯했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표현은 빠져 있었다. 동일 잡지 게재 동의 역시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 같아 문자를 보내자 ‘동일 잡지 아니면 어디다 싣습니까? 굳이 왜 문서에 동의를 넣어야 하냐고’라는 답이 왔다. 나는 동의 문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네 번째 수정문에는 날짜를 또 틀리게 썼고, 이를 전화로 알리자 R은 무슨 소리냐며 발끈했다. 자신이 분명 고쳤다고 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시라고 했다.
“하! 내가 정신이 나갔나 봐. 안 고치고 그대로네.”
다시 보내온 수정문에도 표현은 흐려져 있었고, 동일 잡지 게재 ‘동의’ 대신 ‘바랍니다’로 바뀌어 있었다.
다섯 번째 보내온 수정문에서는 동일 잡지 게재 동의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허위’라는 단어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요구했다. 정정문에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R은 지쳤다며 여기서 끝이라고 했다. 맘대로 하라고도 했다. 그 말은 사과의 끝이 아니라, 책임의 끝처럼 들렸다. 돌이켜보면, 다섯 차례의 정정 및 사과문은 내가 보낸 안내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 쓴 것이었다. 다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만 비껴갔을 뿐이었다. 쓰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점점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잡지사와 총책임자에게도 문제를 전달했고,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 초반에 R은 제2호 발간 시기를 언급하며 협조하겠다고 했고, 총책임자에게 여러 번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달랐다.
R이 지쳤다며 합의를 중단한 후 문자를 두 번 더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감정이 쉽게 격해지는 R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것은, 결국 다툼이 될 것이 뻔했다.
나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로 했다.
그 기간 R은 남편 간병과 정정 및 사과문 작성으로 바빠 정신이 없다고 했지만, 여러 행사에 참석해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수필집 문학상을 수상하며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도 있었고, 잡지사 신년 차담회와 제2호 발간식에도 참석했다. 기념사진 속에서 R은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다. 잡지를 통해 R이 단순 편집위원인 줄 알았는데 임원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이미 문제 제기가 된 상태에서도 R은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발간된 제2호 수필 목록에도 R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이 사안이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R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정해준 기한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어 2차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제야 R의 긴 답장이 왔다. 문자의 내용은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아니었다. 여러 번 사과했고 수정을 시도했으며, 악의 없이 쓴 글에 내가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적 상상력을 법으로 재단하려는 나의 태도가 참담하다며 썼고 이어 “나야말로 이 일 때문에 매일 밤 참담한 나날을 보내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다”고 호소했다. R과도 잘 아는 지인과 통화 중에 나의 고민을 얘기하자 ‘다 같이 아는 사이인데 잘 합의해서 끝내야지, 굳이 법적으로까지 끌고 갈 사안인가, 구체적으로 받은 피해가 있었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안개 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지명도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는 문학이지만, 나에게 그것은 기록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민사 조정 신청서를 작성했다.
법원의 묵직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준비해 온 서류를 조심스럽게 제출했다. 실수 없이 마쳤다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기울어진 햇빛이 주황빛으로 건물 유리에 걸려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은 차갑고 시렸지만, 나는 코트 깃을 여미며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한 달 뒤, 우체국으로부터 하루 차이를 두고 두 통의 특별송달을 받았다. 하나는 법원의 조정 기일 안내서였고, 다른 하나는 R이 법원에 제출한 민사 조정에 대한 답변서였다. R의 답변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원고는 본 사실을 허위사실 유포로 주장하고 있으나, 특정 사실을 객관적 진실로 단정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 설정과 상징적 표현을 포함한 문학 창작물이었다는 점, 문학적 허구와 법적 의미의 허위 사실은 구별되어야 할 것이며 피고는 고의적으로 목적성 있는 허위 사실 유포를 한 사실이 없다.’ 또한 ‘해당 글은 첫 창간호 잡지에 실린 한정된 독자층을 가진 문학잡지에 등재된 것으로, 광범위한 대중 매체를 통한 확산이 이루어진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러나 문제는 확산의 범위가 아니었다. 이미 출판되어 유통된 이상, 그 글은 도서관과 서점이라는 경로를 통해 언제든지 다시 읽힐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정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사실과 다른 내용은 그대로 유지된 채 반복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상태였다. 잘못된 내용이 공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특히 나는 한 번도 ‘유포’라는 말을 쓴 적이 없었다. 그저 출판된 잡지의 유통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법원에 제출된 R의 답변서에는, 특정 날짜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내가 ‘유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쓰지 않은 단어가, 내가 허위사실 유포를 주장한 근거처럼 제시되고 있었다. 수필에서 사실과 다른 장면을 만들어내던 방식이, 이번에는 법원에 제출된 문서 안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확인했지만 ‘유포’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비로소 R라는 민낯을 알게 되었다. 기록이 남아 확인할 수 있음에도 R이 외면한다는 사실을. 쉽게 가라앉지 않는 감정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끝내 어긋나는 불편함과 함께 인간에 대한 회의로 번져 갔다.
나는 조정 기일을 위해 그동안의 기록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분노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것은 피로와 냉정함에 가까웠다. 이제 더 이상 R을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개인의 고유한 신념과 존엄은 결코 타인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R이 한 몸처럼 묶어 놓았던 ‘우리’를 떼어내느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의 경험으로 이 나라를 ‘화합하지 못하는 전쟁터’로 규정하고, 타협과 공생을 말하던 R이 정작 나와의 문제에서는 그 어떤 타협이나 책임도 보이려 하지 않았다.
R이 말하는 화합은, 누구에게 유효한 것일까.
이렇게까지 길게 끌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 안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나는 끝까지, 그리고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나를 기록하기로 했다.

 

*이 작품은 특정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허구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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