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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원정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상진(은평)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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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 살 노총각인 나의 요즘 관심사는 결혼이다. 그건 관심사라기보다는 어쩌면 거역할 수 없는 나의 굴레와도 같다. 4남매의 장남이자 장손인 나를 부모님은 이틀이 멀다 하고 며느리 될 여자 하나 데려오라고 닥달하는 통에 나는 늘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사실 요즘 결혼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지만 젊은이들은 결혼에 목매달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건 해도 그만이요, 안 해도 그만이라는 단지 선택 사항일 뿐이다. 그런데 경상도 유교 집안 출신인 나의 부모님은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들볶기 일쑤이다. 탈모에 새치가 희끗대는 장손을 더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던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반응은 늘 바쁘다는 핑계로 어물쩡 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시를 쓰며 혼자 생활하는 대학 후배 J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나보다 6살 어린 나이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선배님, 요즘 어떻게 보내세요? 선 한번 보지 않으시겠어요?”
“선은 무슨….”
나는 한편으론 호기심이 생겼지만 체면상 말을 얼버무렸다.
그는 병원비가 7만 원 정도 모자란다며 중매비 계약금조로 1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경제적 약자인 작가의 어려운 처지를 익히 아는지라 그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돈을 송금했다.

 

며칠 후 우리는 홍대 거리에서 오후 5시경에 만났다. 그는 전에 사귀던 나와 동갑 나이의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홍대 앞 식당에서 둘이 만나자고 제의했다. 내 얘기는 하지 않았다. 여자가 나오면 소개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빈털터리인 후배의 말에 ‘성의는 고맙지만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말로 일언지하에 청을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대를 나와 한지공방 원장으로 있는 그의 여친은 과거 두 사람이 데이트할 때 후배 대신 식사며 영화표며 모든 데이트 비용을 그녀가 부담했기에 식사를 대접한다는 그의 말에 신빙성이 없고, 또 그에 대한 관심마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결국 바람을 맞은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였다. 화도 내지 못하고 가까운 데 가서 5천 원짜리 갈비탕이라도 먹고 헤어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잘 아는 저렴하고 맛있는 조개구이 전문집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저렴하고 맛있다는 그의 말을 거절하기도 뭣하여 따라나섰다.
공원 옆에 자리한 조개구이 전문점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점심도 굶었다는 후배의 말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작은 공깃밥과 연어알 돌솥비빔밥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에게 양보했다. 그런데 그는 나의 동점심을 깔아뭉개며 식사를 몇 숟갈만 뜨곤 조개구이만 허겁지겁 혼자 80프로 정도 먹어치웠다. 나는 그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많이 먹으라며, 조개구이를 통째로 양보했다. 그러자 나의 뱃속에서는 허기를 알리는 꼬르륵 꼬르륵 알람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음식으로라도 허기를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요 앞 공원으로 가서 맥주나 한잔 하지.”
“하하… 좋지요.”
그는 신바람이 나서 나의 말에 동조했다. 나는 그에게 만 원짜리 지폐를 쥐여 주며 오징어에 캔맥주를 사 오라고 했다.
“지금 맥주가 문제가 아니고요.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게 생겼어요.”
마음이 여린 나의 심정을 간파했기 때문일까. 그의 뜻대로 나는 또다시 후배에게 3만 원을 건넸다. 그날 나는 여자도 만나보지 못하고 1차 식사값으로 3만여 원, 2차 술값으로 2만 원, 교통카드 충전비로 1만 5천 원 등 거의 10만 원 가까운 돈을 그를 위해 지불했다.
그런데 그는 바람맞힌 것도 부족하여 자기가 밥을 사기는커녕, 나를 봉으로 생각하는지 미안해하는 기색은커녕 당당했다. 인지상정이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텐데 말이다.

 

3주 후 나는 J로부터 3살 연상의 독신 여성 작가인 K와 함께 장충체육관에서 거행하는 노인 위로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낮 12시 정각에 체육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K 작가가 후배 J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몇 번의 전화 시도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전화는 불통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초청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15분의 시간이 흐르자 나는 K 작가에게 맞은편 태극당 옆의 함흥냉면집으로 가서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또다시 15분쯤 지났을까. 한창 냉면을 먹고 있는데 드디어 J에게서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선배님이세요?”
“왜 그리 전화를 안 받는가?”
“김밥 먹고 있느라고요. 다 먹어 가는데 전화가 왔네요.”
그는 조금의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지 태연히 대답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세상에 사람을 초대해 놓고서 혼자서 식사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럼 바쁜 우릴 왜 여기까지 오라 했담?”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에게 건너편 냉면집으로 오라고 설명했다. 그는 식당으로 와서도 또다시 냉면을 주문해 만두와 함께 먹었다. K 여성을 보내고 나는 그와 함께 다시 장충체육관 앞으로 가서 가판대에서 콘을 사서 그에게 건네며, 오늘의 결례를 조용히 훈계했다.
“자, 들게.”
“선배님, 그런데 지금 아이스크림이 문제가 아니라 카메라에 배터리가 떨어졌어요.”
그는 좀 전의 적반하장식 대접을 받고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불만에 찬 표정으로 “세상에 얼마 안 되는 카메라 배터리 살 돈도 안 가지고 다닌담” 하고 중얼거리며, 배터리 값을 지불했다.
이리하여 그날 세 사람의 식대 비용 등 모든 경비는 또다시 나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나에게 좋은 여성이 있다며, 또 다른 여성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나는 그에게 몇 번 당한 처지라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며 그의 청을 극구 뿌리쳤다. 그러나 소개료를 받으려는 그의 집요한 공작에 나의 단단한 마음의 성은 또다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J에게 3개월간 통신료를 못 내 휴대폰이 정지되었다 하여 새로운 중고 휴대폰을 하나 선물한 적도 있었다.
어찌 됐건 우리는 강남의 한국은행 광장에서 오후 2시경에 소개할 여성과 같이 만나기로 약속했다. 시간 맞춰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이번에도 역시 만나기로 한 C 여성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 여성과 한참을 통화했다. 나는 화가 났지만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궁금하여 집에 가는 척 지하철 출입구 속으로 잠적했다. 잠시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그냥 집으로 가 버릴까 망설이다가 곧 밖으로 나가 그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대체 그 여성은 왜 안 나왔는가?”
“집안에 일이 있어 못 나간다며…,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느냐는 거예요?”
사정인즉 후배가 여성을 소개하면서 내가 사준 새 휴대폰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여성은 정지된 후배의 옛날 휴대폰 번호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불통이더라는 얘기였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의 뺨을 후려치고 싶었으나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지라 마음을 가라앉히며 같이 가서 식사나 하고 헤어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일본에 유학한 청담동 개인 미술관 큐레이터를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에게 몇 차례 바람을 맞은 처지라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그의 말을 거절했지만 결국 식사 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8시까지 개관 시간임에도 여유 있게 6시에 들렀지만 그곳엔 여자 관장만 있을 뿐, 큐레이터는 자리에 없었다. 아마도 그가 온다는 말에 자리를 비운 듯했다. 이후 나는 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게 되었다.

 

몇 달 후 나는 다시 3040 만남 카페를 통해 울산의 대안학교 음악교사인 유미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8살 연하의 아리따운 여성으로 우연히도 나와 고향까지 일치했다. 그래서일까. 내 딴에는 유미와 나는 천생연분이라고 나름 믿게 되었다. 그리고 전화로 사귄 지 2년째 되던 구정 연휴에 고향인 부산에 내려갔다 상경하는 길에 울산에 들러서 유미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커피숍에서 대면한 유미는 162cm의 아담한 키에 지적인 여성으로 보였다. 그녀는 내 나이 또래의 음악학원 원장인 여성 M과 함께 나타났다. M 원장은 167cm의 늘씬한 키에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여인이었다. 전날 유미와의 통화에서 M 원장과 같이 나오겠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혼자 나오라고 했기에 막상 같이 대면하니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성인지라 마음이 쏠리는 것도 어쩜 본능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전날 유미의 통화에 의하면 그녀는 내 블로그에 게재된 문화해설가인 나의 화려한 프로필을 보고서 딱 자기 취향이라며 자신에게 양보를 부탁했다고 한다. 어찌 됐든 두 사람은 그 나름의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처음 본 그녀들의 아리따운 모습에 모든 마음을 빼앗겼다.
유미와 나는 M 원장의 지프차에 올라 횟집으로 이동했다. 명절 기간이라 횟집에는 우리 일행 외에는 손님이 없어 적막했다. 우리는 회를 시켜 나눠 먹으며 우의를 다졌다. 회를 뜨고 끓인 탕이 나왔으나 교회에 다니는 두 여자는 공깃밥이 제삿밥 같다며 젓가락으로 한 입 뜨더니 곧 수저를 내려놓았다.
우리는 기분 전환 차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춤을 췄다. 내가 18번인 <La Novia>를 부르자 두 사람은 곧 내 노래에 빠져드는 듯했다.
“어쩜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세요?”
“정말! 선생님 노래 너무 잘 하신다.”
“뭘요….”
M 원장과 유미의 칭찬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했다.
유미가 잠깐 화장실에 갔을 때 M 원장은 나와 블루스를 추자고 했다. 그러자 나의 가슴은 곧 흥분으로 콩닥거렸다. 블루스를 춘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왼손이 내 바지 속으로 들어왔다. 황홀감에 사로잡힌 나는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기 싫었으나 유미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녀의 손을 밀쳐냈다.

 

어느덧 벽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자 유미는 밤이 늦어 먼저 일어선다며 안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만나러 온 나를 두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 잠시 후 M원장이 말을 이었다.
“제가 한잔 더 살 테니 대신 대리운전비 3만 원만 주실래요?”
“그렇게 하지요.”
그러자 M원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밤도 늦었으니 어떻게 하실지 세 가지 중 선택해 주세요. 첫째, 저와 함께 호텔로 간다. 둘째, 여기서 밤새 술을 마신다. 셋째, 각자 갈 길을 간다.”
내 마음 같아선 당장 그녀와 호텔로 가고 싶었지만 유미 생각에 차마 첫째 제의는 수락하지 못하고, 각자 길을 가기로 하였다. 그날 밤 서울 갈 기차와 버스가 끊어진 나는 찜질방으로 가려 했으나 명절 휴무라 결국 PC방으로 가서 모니터 화면을 켜 놓은 채 눈만 감고 몇 시간을 보낸 후 그곳을 나왔다.

 

유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남편과 이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해명은 달랐다. 그녀는 매달 박봉인 교사 남편의 봉급은 받지도 않고 자신이 다달이 500∼600만 원씩을 용돈으로 건넸으나 남편이 그 돈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수천만 원을 날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모 학교의 이사장을 지냈다고도 했다. 나는 유미보다 나이가 많긴 했으나 M원장의 이런 조건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였다. 유미의 말에 의하면 M원장 아버지가 학교 이사장이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했지만….

 

유미와 알고 지낸 지도 어느덧 5년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유미는 보기와는 달리 몸이 약해 위궤양 등 여러 병을 앓고 있어 어머니와 오빠, 여동생 등 여러 사람 명의로 모두 12개의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었다. 그녀의 몸은 그야말로 성한 곳이 없을 정도여서 몇 달에 한 번씩은 병원에 입원했다.
어느 날 나는 입원한 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냈냐?”
“응, 오빠. 그런데 나 병원이야.”
수화기를 통해 그녀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넌 툭하면 입원이냐?”
“오빠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낸들 어디 입원하고 싶어 입원하겠나? 그런데 오빠, 나 과자 좀 부쳐줘.”
나의 핀잔에 그녀는 불평하는 투로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그녀의 말이라면 어떤 내용이든 반가워서 곧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알았다. 그래 뭐가 먹고 싶은데…?”
“초코볼도 먹고 싶고… 초코렛, 비스켓, 오징어땅콩볼 등등 오빠가 알아서 보내줘라.”
“그래,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마트로 달려가 그녀가 좋아할 만한 과자를 한 박스 포장하여 택배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소포를 받았는지 말았는지 한 달이 다가도록 전화는커녕 문자 하나가 없었다.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나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나다. 잘 지냈나?”
“그래, 오빠. 잘 지낸다”
그녀의 태연한 목소리에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넌 물건 받고 잘 받았단 문자 하나 없냐? 보낸 사람 성의도 좀 생각해 줘야지.”
“오빠야, 미안타. 그런데 옆 침대 뚱보 언니가 말도 안 코 내 초코볼 훔쳐 먹어서 내가 뭐라 켔다. 뭐 세상에 그런 인간이 다 있노?”
그녀는 오히려 미안함보단 자신의 불만을 털어놨다.

 

1년 후 나는 우즈베키스탄 결혼 전문 업체의 소개로 미인이 많기로 알려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다슈켄트로 결혼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 부산에 위치한 우즈벡 전문 결혼업체 대표인 K사장은 50대 후반으로 이미 이 바닥에선 닳을 대로 닳은 결혼중매업자였다.
“문 선생, 출국 날짜가 잡혔어요. 우리 카페에 올린 일정표를 참고해 주세요.”
결혼업체 인터넷 카페엔 행사 일정이 올라와 있었다. 기간은 4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5박 6일이었다. 일정표엔 투숙 장소가 우즈벡 4성급 호텔이고, 식사 메뉴도 한식, 우즈벡식, 러시아식, 양식 등 다양하다고 적혀 있었지만 이는 현장에서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출국 전날 저녁 나는 울산의 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냈나? 오빠 내일 선 보러 우즈베키스탄 간다.”
“응, 잘 지냈다. 축하한다, 오빠야. 그런데 오빠 진짜 이번에 결혼하는기가?”
“그래, 결혼한다. 그런데 유미는 오빠 결혼하는데 안 섭섭하나?”
“그래, 나는 오히려 속 시원하다. 드뎌 우리 오빠 노총각 탈출이네.”
유미는 약간 당황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음날 오후 나는 인천공항으로 나가 K사장과 만나 타슈켄트행 5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5월의 하늘에서 내려다본 조국 강산의 일몰 풍경이 한없이 아름답게 비쳐졌다. 덩달아 나의 마음도 장차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비행기는 타슈켄트국제공항에 안착했다. 공항에는 현지 담당인 루릭이 승용차를 가지고 공항 앞으로 마중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K사장이 현지 지점장 격인 루릭을 소개했다.
“두 사람 인사 나눠요. 이쪽은 이번에 선 보러 온 문 선생이고, 이쪽은 숙식 등 현지 모든 일을 담당할 루릭이오.”
“문 선생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문광준이에요.”
루릭이 나의 짐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자신의 집으로 출발했다. 그는 나보다 3살 아래지만 이마가 벗겨져 나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물론 나도 비록 원형탈모는 아니지만 머리숱이 적어 가발을 쓰고 있지만(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대머리가 아닌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는 그의 유창한 한국어에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어가 유창한데 어디서 배웠어요?”
“네, 저 5년 전에 부산에서 3년간 일했어요.”
“3년 살았는데, 한국어가 유창하네요.”
“감사합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말은 알아들을 수는 있었으나 외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얼굴을 보지 않고 소리만 듣는다면 그가 외국인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곧 타슈켄트 시내 중심가인 아프라시압 거리 한국대사관 인근인 루릭의 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 그의 아파트는 그곳에선 15층의 나름 고급 아파트였다. 실내는 한국의 서민 아파트와 비슷했는데, 27평형 정도로 현관에 들어서면 우측이 응접실 겸 방이었고, 반대편인 좌측이 주방, 주방 입구 쪽에 다시 방 1개와 샤워실을 겸한 화장실이 위치한 구조였다. 응접실 겸 방은 한국과는 조금 다른 구조였는데, 소파와 스탠드형 에어컨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곳에선 나름 중산층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5박 6일간 머문 이 아파트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아파트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였다. 벽체가 한국 같은 알루미늄이 아닌 나무로 단장하여 니스칠도 하지 않아 마굿간 같은 모습이라 눈에 거슬렸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세 사람이 같이 타기도 서로 몸이 부딪쳐서 버겁다는 것이었다.
“문 선생은 옆 침대방에서 주무시구려. 그리고 오늘은 돼지갈비를 사 왔으니 이것으로 저녁을 때웁시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루릭이 주방에서 요리한 돼지갈비와 밥과 김치, 김을 차려 놓고 K사장과 나를 불렀다.
“식사 준비 다 되었으니 주방으로 오세요.”
“알겠어요.”
응접실에서 TV를 시청하던 나와 K사장은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오랜만에 맛보는 갈비에 반주까지 곁들이며 맛있는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찬도 이것이 마지막이었고, 이후 식사는 라면에 김치, 혹은 밥을 말아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고급 러시아 호텔에 한식, 우즈벡식, 러시아식, 양식을 제공한다는 결혼중매 사이트의 공지와는 완전 딴판이었던 것이다.
이틀 후 오후 2시에 나는 결혼업체에서 주선하는 공식 맞선 장소로 나갔다. 교실 같은 실내에 7명의 현지 여성이 나와 마주 보고 앉았다. 현지 통역인 사르바르가 옆에 서서 우즈벡어로 나의 신상을 소개했다. 우즈베키스탄은 120여 개 민족이 거주하는 다민족 국가라 그녀들의 외모도 백인 같은 사람부터 얼굴이 검은 흑인 같은 여성 등 다양했다.
그녀들은 농장주의 딸과 현지 방송국 아나운서, 영어 강사 등 직업도 다양했다. 엘리트 출신 현지 여성들은 주로 나의 연봉을 물어왔다. 당초 타슈켄트에 오기 전 K사장과는 굴사남이란 우즈벡 여성과 맺어주기로 이야기가 오간 상태였다. 그녀는 큰 키와 글래머형의 체구에 순수해 보였는데, 이슬람교 국가인 그곳에선 보기 드물게도 전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한 특이한 케이스였다. 나 또한 크리스천인지라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검은 피부가 거부감을 불러왔다.
그때 나의 관심을 끈 여성이 금발의 러시아 민족 여성인 스베타였다. 그녀는 러시아 옴스크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재원으로 항공사에 행정직으로 일했고, 과거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172cm의 늘씬한 키에 하얀 피부를 가진 스베타에게 필이 꽂힌 것은 백인 여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글래머형의 체구였다. 나는 혹시 그녀가 돈 때문에 결혼하려고 하는가 생각되어 그녀의 진심을 알기 위해 영어로 왜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자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당신은 왜 한국 남성과 결혼하려 하세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 남성은 부지런하고 자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를 원해요.”
한국 남성이 부지런하고 자상하기에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돈만 따지는 다른 여성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또다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헤프닝이 이어졌다. 내가 그녀의 키가 크다고 했더니 그녀가 나를 보고 키를 재 보자는 시늉을 하며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내 옆에 서더니 자신의 두 다리를 굽혀 키를 작게 보이려고 했다. 우리는 마주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가 센스 있는 여성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면접이 끝나고 면접자들과 헤어질 때 나는 스베타에게 영어로 저녁에 전화하겠다고 언질을 줬다.
루릭의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곧장 서울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수차례 신호가 갔지만 부모님 집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겨우 아버지가 집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세요? 저 광준이인데요,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으세요?”
“나는 외국에서 걸려 온 사기 전화인 줄 알았지. 거 보이스피싱인가 뭔가 있지 않냐?”
“그래도 아들이 외국에 선 보러 갔는데, 전화 올 걸 예상해서 한 번쯤 받아보셔야지요.”
나는 짜증투로 말을 받았다.
“그래, 배필은 구했냐?”
“네. 러시아 백인 여성을 구했어요. 얼굴도 예쁘고 센스도 있고, 보시게 되면 아버지 맘에도 드실 거예요.”
“그래, 수고했다. 몸 성히 잘 있다 오너라.”
조바심에 나의 배필감부터 물어오던 아버지가 좋은 며느릿감을 구했다는 말에 안심이 되는 듯 수화기에서는 처음보다 느긋한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튿날 나는 결혼 승낙을 받으러 스베타와 함께 타슈켄트 외곽에 위치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의 집은 3층이었는데, 2층에는 고려인 남편과 결혼한 러시아 여성이 살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 부부를 보면서 한국 남성이 유난히 생활력이 강하고 자상하다고 느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녀의 집은 스베타가 잠을 자는 침대방과 어머니가 거주하는 방, 그리고 응접실 겸 주방, 한 사람이 앉기에도 비좁은 화장실로 나눠져 있었다.
장차 장모님이 될 금발의 어머니는 나보다 11살이 많았는데, 163cm 정도의 중간 키에 말수가 적고 온화한 외모를 간직한 여성이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둘째 딸을 먼저 독일로 시집보내고, 직장생활을 하며 스베타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스베타가 나를 주방으로 인도하여 미리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께 소개했다. 소개가 끝나자 모친은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말과 동시에 나를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영어로 감사를 표하며 절을 올릴 테니 자리에 앉으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나는 그녀를 향해 한국식의 큰절을 올렸다.
“한국에서 온 문광준이라고 합니다. 예쁜 따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녀는 나의 한국식 절에 호기심을 가지며 약간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딸과 헤어질 생각에 눈물을 훔쳤다. 나는 울적해진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영어로 농담 어린 말을 걸었다.
“Russia was a communist country founded by Lenin in the past(러시아는 과거에 레닌이 세운 공산주의 국가였어요). Stalin was a dictator.(스탈린은 독재자였고요).”
영어를 모르는 그녀의 모친은 러시아와 레닌, 스탈린 등의 단어로 말뜻을 간파했는지 껄껄 웃었다. 그녀는 준비한 차와 쿠키, 썰어 놓은 몇 조각의 빵을 권했다. ‘백년손님’이라는 사위 될 사람을 맞이하는 자리라 국물 요리 등 푸짐한 식사를 준비할 줄 알았던 나는 실망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서양식 문화는 그런가 보다며 애써 마음을 달래며 예의상 쿠키 두 조각과 빵 세 조각을 먹었지만 밀려오는 허기는 어쩔 수 없는지 배꼽시계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녀는 팔소매를 걷고 자신이 키우던 애완 고양이가 할퀸 팔뚝에 난 상처를 보여주더니 곧 자신의 방으로 나를 이끌어 침대방을 소개했다. 그리곤 한국산 모회사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자랑삼아 소개했다. 순간 나는 아래층 고려인 남자 이야기도 그렇고 그녀가 코리안 드림을 꾸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장모와 작별인사를 나눈 나는 스베타와 함께 그녀의 집을 나와 집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K사장이 나를 보고 반겼다.
“문 선생, 스베타 어머니께 결혼 승낙은 잘 받았어요?”
“예, 어머니 인상이 참 좋으시더군요.”
“아, 그래요? 참 결혼 일자를 모레 오후 3시 한국관으로 잡았으니 내일 스베타와 철수시장에 가서 반지와 속옷을 사도록 하시고, 모레 오전엔 사르바르와 셋이서 작스(혼인신고청)에 들러 혼인신고를 하고 2시까지 식장으로 오세요.”
“철수시장에요? 그런 시장도 다 있나요?”
“우리 한국인은 그냥 그렇게 부르는데 그곳은 가격도 저렴하고 없는 물건이 없다오.”
한국인들은 ‘초루스 바자르(Chorsu Bazaar)’를 한국어 발음과 유사한 철수시장이라 부른다고 했다. 초르수는 우즈벡어로 ‘네 개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라는 뜻인데, 이곳 타슈켄트에서 현대화된 제일 큰 재래시장이었다. 어쨌든 나는 스베타와 철수시장에서 쇼핑을 한 후,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했다.
결혼식 날이 밝아오자 나는 통역인 사르바르와 스베타를 데리고 10시쯤 작스로 가서 여자 공무원 앞에서 혼인서약과 반지 교환 등 하객 없는 약식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마쳤다. 특이한 것은 이곳 결혼식이 한국처럼 결혼식을 마친 후 혼인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혼인신고 기관인 작스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후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오후 3시에 있을 결혼식 시간에 맞춰 우리는 타슈켄트 교외에 위치한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국관으로 갔다. 말이 결혼식이지 이미 오전에 혼인신고를 마쳤기에 피로연이라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행사가 시작되어 정장을 한 내가 2층 대기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스베타와 1층 식장으로 내려가 입장하자 하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우리 두 사람은 장모와 그녀의 여동생이 되는 처이모와 처이모부에게도 머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처이모부가 유리잔에 독한 보드카 한 잔을 가득 따르면서 쉬지 말고 단숨에 원샷을 하라고 권했다. 내가 독한 러시아 술을 고통스러운 인상을 쓰며 단숨에 들이키자 그는 또다시 내 술잔을 가득 채우며 원샷을 하라는 시늉을 하며 러시아말로 권했다.
그러는 사이 하객들은 차려 놓은 빵과 음료, 술을 들며 담소를 나누었고, 흥이 무르익자 반라의 팔등신 러시아 여성 무용수 8명이 나와 춤을 추는데 나는 그녀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K사장이 나에게 앞으로 나가 스베타와 춤을 출 것을 권하자, 나는 스베타의 손을 잡고 블루스를 추었다.
“문 선생, 블루스 잘 추네요. 언제 춤을 배웠어요?”
“네. 추긴 추지만 오리지널은 아닙니다.”
나는 머쓱해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문 선생, 춤만 추지 말고 댄서들에게 팁 좀 줘요.”
“네….”
나는 이 결혼을 위해 거금을 지불하고 왔는데 돈도 안 주면서 별도로 팁까지 주라는 K사장의 말에 반감이 생겼지만 원만한 결혼식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무용수마다 그 나라 화폐인 숨을 몇 장씩 나눠줬다. 그러자 K사장은 그제야 기분이 좋은지 빙그레 웃었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친 스베타와 나는 그날 밤 루릭의 아파트에서 황홀한 신혼초야를 치렀다. 이튿날 나는 스베타와 통역인 사르바르를 데리고, 레기스탄 광장, 독립공원, 일본 정원 등을 둘러보고 귀갓길에 올랐다. 순간 나의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액정 화면을 보니 K사장이었다.
“여보세요?”
“문 선생, 난데 나중에 내 돈 줄 테니 들어올 때 마트에 들러 생선 한 마리만 사다 주소.”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속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거액의 중매 소개비를 받으면서 고급호텔에서 러시아식, 우즈벡식, 한식으로 대접한다는 그의 결혼 홈피의 내용이 모두 거짓임을 알아채고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사 호텔에는 투숙시키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비록 가정식일망정 좋은 반찬으로 대접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내 처지로선 그가 갑질을 하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괜히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아직 와이프의 입국 수속도 마치지 않았는데,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못 먹을 것을 먹은 양 얼굴이 일그러지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그의 말을 받았다.
“새, 생선을요? 아, 알겠습니다.”
결국 생각했던 대로 그의 말은 립싱크로 끝나고 말았다.

 

이튿날 스베타와 나는 사마르칸트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어,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타슈켄트역에서 8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고 서둘러 택시에 올라 출발했다.
스베타와 열차에 자리를 잡은 나는 음료를 파는 여승무원에게 커피를 두 잔 시켰다. 통로에는 입석표를 산 현지인들이 몇 명 서 있었다. 5월의 무더위에 창문이 개방된 상태라 강한 바람이 밀려들어 왔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들이킨 후 머리의 가발이 바람에 날아갈까 염려되어 몇 번을 통로에 나가서 핀을 고정하고 돌아왔지만 고정이 잘 되지 않았다. 스베타가 나의 부산한 움직임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 빠른 그녀도 내 행동으로 내 머리카락이 가발임을 이미 짐작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전에 루릭이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도 머리숱이 별로 없었는데, 내가 잠자면서 벗어 놓은 가발에 물욕이 생겨서 자신에게 주면 안 되느냐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가발을 살펴보니 이미 핀의 살이 여러 개 부러져 있었으니 고정이 안 되는 것 또한 당연했다.
가발로 인한 나의 고초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스베타와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과 타슈켄트 박물관을 관람하고 택시를 탔는데, 여름이라 창문을 개방하여 차가 달리면서 돌풍이 밀려들어와 손으로 하차할 때까지 가발을 잡고 오느라 진땀을 뺐던 것이다. 마음이야 창문을 닫고 싶었지만 한여름에 창문을 닫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질 것이고, 더구나 스베타에게 가발임이 들통나서 실망할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한 달 후 입국 수속을 마친 스베타가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방 두 개와 거실로 구성된 나의 작은 빌라에 실망했는지 화를 냈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그녀는 내가 고급 아파트와 승용차를 소지하고 살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후 우리는 사흘이 멀다 하고 여의도 63빌딩을 구경한 후 한강 유람선을 타기도 했고, 남산타워와 명동의 인도식당, 동대문 우즈베키스탄 식당 등을 돌며 외식을 하고, 전국 관광도 여러 달 다녔다.

 

5개월 후 그녀는 직장생활을 하던 친정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면서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되어 꺼림칙하여 보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보냈는데, 그것이 그녀와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장남의 결혼에 기뻐하시던 나의 부모님은 잘 다녀오라며 그녀에게 20만 원의 여비까지 보태주었다. 그녀가 출국하고 난 후 나는 그녀에게 사용하라고 빌려준 노트북에서 그녀와 함께 놀러 다니던 사진이 모두 삭제되었음을 알고, 그녀가 마음의 정리를 하고 떠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스베타에게 영어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스베타, 잘 지냈어? 어머님도 잘 계시지. 그런데 언제 올 거야? 면목동에 사는 당신 친구 옥산나 얘기로는 다음 주에 온다고 하던데…. 그리고 노트북에 사진은 왜 삭제한 거야?”
“아직 모르겠어요. 사진을 삭제한 것은 당신이 용량이 차면 속도가 느려진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녀가 거짓말로 변명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사진 용량이라야 겨우 1기가 정도로 300기가의 컴퓨터 용량으로는 새 발의 피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괜한 질문을 하여 그녀의 귀환 의지를 꺾었나 후회가 되었다. 물론 그녀는 예상대로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3년이 흘렀다. 두 해만 넘기면 쉰 줄의 나이가 된다. 나는 부모가 강조하는 장손이어서보다, 외로워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 배우자를 얻고 싶을 뿐이다.
좋은 배필감의 조건은 무엇일까? 돈, 지위, 명예, 가문, 외모, 성격…. 나는 중얼거리며 가발을 벗어 손질한다. 머리가 소름이 돋을 만큼 시원하다. 나는 오늘도 또 다른 배필감을 찾아서 결혼 원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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