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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도 맘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고재동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여름호 2026년 6월 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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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봄날이다. 낙동강변 벚꽃축제가 일주일 연장되어 이번 주말에 마침표를 찍나 보다. 이 축제가 시작된 이래 기간을 늘려서 2주일간 축제를 연 건 처음인 듯.
전국적인 현상이긴 했다. 날짜를 잘못 예측하여 꽃 없는 축제를 전국적으로 펼친 올해이다. 예년과 비교하여 해마다 당겨지는 꽃 피는 시기를 예상하여 3월 말에 초점을 맞췄던 것. 얄궂게도 날씨가 사람들의 예상을 비껴갔다. 꽃의 장난인지, 날씨가 심술을 부린 건지 알 듯도 하지만 알쏭달쏭.
꽃도 마음이 있을까? 아마 그런 것 같다. 세상이 맘에 들지 않으면 꽃 피우는 시기를 늦추기도 하고 당기기도 한다. 일주일 정도는 고무줄처럼 팽팽히 당겼다가 놓은들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드디어 황토방 뒤 수양벚꽃도 만개했다. 장관이다. 마침 대구 큰딸네와 서울의 막내 식구들 방문에 때맞춰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환영인사가 격하다.
상주에서 열리는 탁구대회 때문에 우리가 집을 비운다고 전했건만 기어이 안동으로 행차를 감행하는 아이들. 시집 식구와 행사를 갖는 둘째는 이미 제외된 상태여서 모임이 성사 안 될 듯했으나 막내까지 ‘우리도 출발했다’라는 통보를 해 온 것. 아마 이곳 친정 꽃, 꽃향을 만끽하고 외가에 아이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모양.
12년 전 이곳에 정착할 때만 해도 어린 묘목이던 산벚나무가 수양벚나무와 키를 재며 연분홍 향을 뽑는다. 어쩜 꽃 피는 시기가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수양벚꽃과 경쟁하듯 함께 피었다. 저 나무들은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누가 식재했는지 자생하는 나무인지 분명하지 않다.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 만무하다면 전에 이곳에 살던 낭만객의 손에 의해서 뿌리를 묻었으리라. 누구 손으로 심어진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누가 애정 어린 눈으로 곱다 곱다 하며 보아주느냐에 따라 꽃도 맘을 쓰지 않을까? 벌 나비를 위해 외진 곳에서 꽃피우기도 하지만 보아주는 사람이 저를 보고 감탄하면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게 저 벚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 또한 꽃의 마음이다.
아이들은 낮부터 낙동강변 벚꽃을 감상하고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 둔 놀이기구 등 싫증나도록 즐기고는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온 모양. 마당에는 캠프파이어에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밤 날씨는 꽤 쌀쌀했지만 아이들은 불놀이에 열중이다.

 

아이들 깔깔깔깔/ 기다린 듯 산벚 핀다/ 오는 날 용케 알고/ 산에서 내려오네/ 별이가/ 꼬마들 불러 모아/ 꽃마중 데려간다

 

우리 때문에 8남매는 하루 늦추어 합류했다. 작년 여름 나비가 되어 아버지 곁으로 떠나신 어머님 첫 생신을 기리기 위해 8남매 중 7남매가 모였다. 증손주들까지 합세하고 보니 계곡이 넘친다. 모두 열아홉. 그제야 생신임을 깨달은 할머니께서 손주들과 자식들을 반갑게 안는다. 앙증맞은 노란 양지꽃으로 피어난 할머니는 노랗게 웃으셨다. 차려온 간단한 음식을 놓고 내가 대표해서 먼저 잔을 올렸다. 모두 함께 인사를 여쭈었다.
“여기 할머니 얼굴 알지, 해담아?”
“그럼, 알다 말다.”
내가 손녀한테 물었더니 제 엄마가 대답한다. 해담이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병원에 계실 때가 더 많았지만 할머니께서 너희들 오면 참 많이 반가워했는데….”
대표 사위로 매부와 함께 잔을 올렸다. 42년 전에 떠나신 아버지까지 웃으시며 잔을 받았다. 불과 1, 2년 모셨던 둘째 사위 얼굴을 기억해내신 듯했다. 다음에는 큰딸과 큰며느리가 함께 잔을 올렸다. 아버님 얼굴은 알 리 없는 맏며느리가 공손하게 절을 한다. 그때 호랑나비 한 마리가 느닷없이 나타나 산소 주위를 맴돌며 우리 일행과 조우한다. 낯익은 듯 경계 태세도 않는다. 작년에도 산소 주위를 호랑나비가 맴돌았는데…. 그 호랑나비일 턱은 없다. 나비로 야생에서 겨울을 나지 못하는 게 나비류 등과 같은 곤충이다. 그렇다면 그 2세?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주위가 그들의 터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닐까? 호랑나비는 대체로 활동 시기가 여름에서 가을까지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봄에 큰 호랑나비가 웬 말인가? 분명 어머니와 연관이 있을 거란 억지 상상을 해본다.
다음에는 손주를 대표해서 우리 큰딸아이와 큰사위에게 잔을 올리게 했다.

 

유년의 뒤뜰에서 보릿고개 추억 먹고/ 중년의 목젖으로 노을이 타고 넘네/ 벌 나비 꽃술 탐하다가 떠나가 버린 빈 산// 선돌길 앞산에는 진달래 활보한다/ 한밤의 유혹에도 꿈쩍 않던 그니가/ 별이와 등산 가더니 산을 품어 안았네

 

산소를 내려와 고향 마을 언저리 동생 집에 자리를 잡았다. 진달래가 만발했다. 60년 전에 따먹던 그 진달래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한 잎 따먹었다. 왠지 그때 그 맛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쑥을 뜯고 씀바귀를 캤다. 남자들은 정자에 앉아 고스톱 삼매경에 빠졌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아이들이 노을 벗 삼아 뛰어놀던 빈 뜰/ 샛별마저 서성이다 떠나간 초저녁/ 동산 위/ 달님이 은은히/ 우려낸 빛을 내리네// 강아지의 가슴도 텅 비어 버렸는가/ 얄미운 고 녀석들 할아비 눈에 밟혀/ 보름달/ 언저리에다가/ 손주 이름 새기네(「빈 뜰」)

 

아이들이 모두 떠났다. 오늘, 사위 셋이 세워준 시비가 빈 뜰을 지키고 섰다. 그 옆에 나도 섰다.
산에서 진달래가 아장아장 걸어 내려왔다. 천천히 내 맘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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