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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설문대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기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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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_ 설문대(제주 설화 속의 창조자)|시공지(時空地; AI 기자)|수령, 형방, 백성, 방장, 구사일, 이삼삼, 공공칠 등
때_ 태초부터 현재를 오간다
곳_ 설화 속 바위동굴 입구와 옛날 동헌 뜰, 현대의 상징적 감방을 오가는 상황의 자리
무대_ 왼쪽 높은 곳에 바위를 타고 올라간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바위동굴이 있고, 그 아래엔 현대의 상징적 감방이 자리한다. 바위동굴 앞은 설문대와 시공간 기자의 대담이 이루어지며, 무대 대부분은 동헌 뜰과 감방의 공간이다.

 

무대는 짙은 어둠에 깔렸다. 태풍과 벼락, 거칠은 파도 소리 절정의 순간 컷되며 오른쪽에서 시공지 기자가 등장 리포트하며 왼쪽으로 간다. 바위를 오르면서도 리포트를 하고 바위 동굴 앞에서 멈춘다.

 

시공지        전 우주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간과 공간 그리고 땅을 오가는 탐사 전문 시공지 기자입니다. (중앙에서) 오늘 특별하고도 역사적인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험한 취재에 나셨습니다. (동굴 입구에서) 바위 위를 걷는 게 정말 힘드네. (목을 가다듬고) 설문대 여신이시여! 설문대 여신이시여!

 

시공지 기자가 여신을 계속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무대는 동헌 뜰로 옮겨진다. 수령이 앉아 있고 형틀에 백성, 형방이 고개 숙여 있다.

 

수령          네 이놈! 사람이 어찌 금수 같은 짓을 하느냐. 아니, 금수도 제 부모를 알아보거늘, 내려다보는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백성1         사또 나으리 모든 일을 오해하고 있사옵니다. (간절하게) 소인이 죄가 있다면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수령          어허! 이놈 봐라. 사또를 어찌 보고 내 앞에서 거짓을 고해? 여 봐라! 이놈이 이실직고할 때까지 곤장을 치렸다.
백성1         (당황하여) 사사또오우! (공포에 질려) 곤장을 거두어 주시면 솔직히 아뢰겠나이다.
수령           (위엄을 갖추며) 내 넓은 아량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 치의 거짓이라도 고한다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백성1         (애절하게) 어찌 소인이 사아또 안전에서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사또 나으리의 넓은 아량으로 소인의 죄를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수령          뭣이라? 죄를 모른다고? (화를 삭이려 노력하면서) 좋다! 이봐라 형방! 귀가 뻥 뚫어지게 고해주어라.

 

형방이 목을 가다듬고 힘을 주어 고발장을 읽는다.

 

형방          돌쇠 아비, 넌 지난 섣달, 백리길 너머 입산 장날. 양식이 없으니 입도 덜고, 운 좋으면 구흘미도 받을 수 있다며 노망나신 어미를 버리겠다고 이웃에게 말하고 다녔다. 그 후 니 어미가 보이질 않는다는 발고가 있었다.
백성1         (간절하게) 모함이옵니다.
수령          발고가 거짓이란 말이냐?
형방          사또 나으리 안전에서 모함이라고 했겠다. 어미는 지금 어디 있냐고?
백성1         (훌쩍이며) 노모 있는 곳은 모르옵니다. 허지만 마음에서 노모를 버린 적이 없사옵니다. 하늘과 땅이 알고 계실 겁니다. 소인이 마음에서 노모를 버렸다고 생각하신다면 죽여 주옵소서.
형방          그날 이후 보이질 않는데도 변명이라고 하느냐? 이놈은 입에서 나오는 게 모두 거짓입니다.
수령          (잠시 하늘을 보다) 이놈이 죽기로 부인하니 후덕하다고 온 고을 백성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이 몸이다. 체면상 결정이 어렵다. 실토하도록 정신이 번쩍 들게 곤장을 친 후 철저히 확인할지어다. 판결은 다음에 내리겠다.

 

곤장 치는 소리와 비명이 최고조 SPOT 동굴 입구를 비친다.

 

시공지        여러분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는 영원 속 설문대 여신. 제주를 탄생시킨 여신은 현 상황에 대한 시각이 궁금합니다. 뵙게 되어 가문의 영광입니다. 영원한 세상 계시다 나와 본 세상에 대한 소감은?
설문대        (큰 한숨을 내쉬며) 강산이 변하니 사람도 많이 변했군
시공지        어떤 의미의 말씀이신지?
설문대        (물끄러미 쳐다보다) 제주섬을 얼마나 아시는가?
시공지        만팔천여 신들이 함께하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섬, 여신께서 창조하신 섬이라 말하기도 하구요. 오늘날엔 그리스, 로마 못지않은 구비신화의 중심지. 또, 세계적인 아주 세계적인 관광지로 뜨고 있는….
설문대        나의 섬엔 매우 진한 배고픔의 아픔이 새겨져 있지.
시공지        진한 아픔을 함께 새겨두고 싶습니다.
설문대        태초에 한라산과 백록담 (사이) 곶자왈 원시림, 오름들 신비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섬이었어. (긴 한숨을 쉬며) 안타깝고 슬픈 문제가 생겼지.
시공지        여신님이 문제라면 아주 심각하겠죠.
설문대        난 500명 아들을 두었어. 흉년이 들자 아들들을 양식을 구해오라며 내보냈지. 돌아올 자식들 먹이려 죽을 쑤다 내가 그만 가마솥으로….
시공지        (긴장) 여신께선… 아드님들은 사실을….
설문대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들은 돌아와 허기에 죽부터 먹었어. 막내가 어머니가 죽 속에 빠진 걸 알고 비탄에 빠져 통곡하다 차귀섬이 되고, 형들 사백아흔아홉 명도 영실에 돌로 변하고. (강하게) 태초부터 배고픔은 슬픔과 고통을 주는 큰 문제였지.

 

설문대가 슬픔에 잠기는데 무대는 동헌 뜰, 수령이 중앙 의자 앞에 서 있고 백성2가 무릎 꿇어 있고 형방은 서 있다.

 

수령          형방!
형방          네이이, 사또 나으리.
수령          (백성2를 내려다보며) 저놈의 자변은 믿을 수 없다. 허니 수사된 사실을 고해주렸다.
수령          네이이 사또, 왕손이 너는 산에 꽃이 만발하여 휘드러지고 볕이 따뜻한 삼월 초나흘날이었다. 어미에게 꽃구경 가자며 지게에 지고 산속엘 갔다. 그리고는 어미가 좋아하는 산딸기를 한 아름 따온다며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사라지셨다고 했다.
백성2         하늘에 맹세하고 사실입니다.
형방          노망든 어미를 산속에 혼자 두고도 버릴 마음이 없었다구? 어린 자식들 끼니는 걸러도 어미는 세 끼 모두 챙기고 있는데 하루 종일 굶게 한다고 동네방네 다닌다며 분통 터트렸지. 모든 정황이 사실을 말해줄 증인과 대질할까?
백성2         사또 나으리, (애원하며) 소인이 자리 비운 시간도 짧았습니다. 울며불며 가시에 찔려 피가 나도록 노모를 찾았습니다. 나흘 동안 새벽부터 찾았지만 (울음) 찾질 못하자 관아를 찾아 자변한 것입니다. 무지랭이 소인이 어찌 사또 나으리를 기망하겠습니까.
형방          이놈! 감히 관아의 수사를 우롱해?
수령          (날카롭게) 증거를 보여 줄 수 있느냐? (시니컬한 순간 미소) 잘들어라. “세상에 비밀은 없으니, 담벼락에도 귀가 있어 고변하는 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백성2         (무슨 말인지 몰라 수령을 쳐다보기만 한다.)
형방          쉽게 말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사또 나으리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맹추야!
수령          마지막이다.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능지처참하리라! (언성을 높여) 고할지어다!
백성2         (겁에 질려) 사, 사실은 (생각하다) 소, 소인이 죽일 놈이옵니다. (울음을 새기려 노력하며) 소인은 워낙 가난합니다요. 식구가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하며 살아가는 형편에 (사이를 두고) 노모가 갑자기 크게 변한 걸 알았구먼요.
수령          계속하렸다.
백성2         (한숨을 내쉬며) 어느 날, 보리죽 한 사발에 사단이 났습니다. (다시 큰 한숨) 열 식구에 먹을 것이라곤 보리죽 한 사발, 허기에 축 늘어져 있는 앙상한 아이들, 병들어 신음하는 마누라, 그래도 노모께 보리죽을 올렸습니다.
수령          노모는 아이들이나 먹이라고 했겠다.
백성2         아, 아니올시다. 노몬 죽 한 사발을 게 눈 감추듯 드시고 나서 새침하게 더 달라고 했습니다.
수령          세상에 어떤 노모가 손주, 자식을 두고 혼자 먹는단 말이냐. 거짓을 고해도 정도껏 해야지. 이놈!
백성2         (화들짝 말을 막으며) 사또 나으리, 소인도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노모의 행동 (사이) 노망이 나셨단 생각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형방          사또 나으리, 이제 이실직고를 시작했습니다.
수령          그래? 어디까지 얘기가 나가는지 보자.
백성2         노모의 이상한 행동이 계속되자 천벌 받을 생각도 했습니다.
형방          사또 나으리, 천벌 받을 생각을 했다고 자변합니다.
백성2         (개의치 않고) 만발한 꽃 속에 어머님이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는 순간, 제 생각이 부끄러워 자리를 피해 더 깊은 골짜기로 갔습니다. 산딸기 따다 노모를 생각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화살같이 노모가 기다리는 곳에 왔는데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목 놓아 어머님을 불렀습니다. 다음 날, 또 다음 날도…. 관아는 무섭고 겁나는 곳이지만 노모 찾을 요량에 갔던 것입니다.
형방          사또 나으리, 관아를 농락한 이놈은 능지처참에 처해 불효와 관아를 농락하면 어떻게 되는지 고을 백성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백성2         사또 나으리, 소인이 순간 천벌 받을 생각을 했던 것은 맞습니다. 관아에 자변하면서 거짓말을 보탬도 사실입니다. 소인이 노모를 찾지 못했으니 어떤 벌도 달게 받겠나이다. 그러나 노모를 버린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수령          (심각하게) 순간적으로 노모를 버릴 생각은 했으나 후회한다…. 한 톨에 거짓 없는 진심이렸다.
백성2         사또 나으리, 이제 거짓을 왜 고하겠나이까. 죽여주옵소서
형방          사또 나으리, 저놈이 관아를 우습게 만들고 있습니다.
수령          (서성거리다 결심하듯) 형방! 이놈이 진실을 고함에 확신은 서는데, 사안이 사안이라 신중에 신중을, 치죄하기가 아주 어렵네.

 

수령은 퇴장하는데 형방도 궁시렁거리며 백성2를 끌고 나간다.
무대는 어두워지다 암전 순간 동굴 입구를 비친다. 설문대와 시공지 기자 위치가 바뀌고 키 차이도 워낙 나고, 실루엣으로 설문대 긴 다리와 비교해서 시공지 기자의 짧은 다리.

 

시공지        설문대 여신님, 감회가 있으십니까?
설문대        나의 아픔이 다시 떠오르는군.
시공지        세월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겠어요?
설문대        기자 양반! 온 우주를 감정은 빼놓고 오직 진실과 팩트만 찾는다며 이 아픔을 몰라? 실력이 이 정도?
시공지        최고라며 인터뷰까지 오케이하고서는.
설문대        실망했단 말일세. 지금은 겉만 번드레한 기자로 보이니까.
시공지        전 우주를 넓게 파고드는 열공, 설문대 여신님이 제주와 내륙 지방을 잇는 다리를 놓기를 제안한 영원의 안목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혜.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기억하는 기자, 객관적이고 진실한 보도로 많은 기자상이 국보적 기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설문대        저 동헌 뜰의 가슴 서린 아픈 메시지를 느끼지도 못하면서? 
시공지        서민 백성의 애환, 인류 태생의 보편적 문제 말인가요.
설문대        물정 모르고 자란 사람들은 단순하고 자기만 생각하지. 밑바닥 인생들이 아우성치며 흐르는 절규! 삶의 소리! 들리지 않겠지. (사이를 두고) 마음에 배고픔 문신이 새겨 있으면, 배고픔을 알지. 배곯으면 보이는 것은 온통 먹잇감뿐.
시공지        배고픔이 최고에 달하면 일어나는 현상이요? ‘고려장’ 말씀이세요?
설문대        ‘고려장?’
시공지        우린 너무 익숙한데 모르시다니.
설문대        역사 사기꾼에 당하는 한심한 기자님.
시공지        (언성을 높인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설문대        그럼 우리 민족이 노부모를 산에다 유기할 수 있다고 믿어요? 
시공지        많은 분의 입에 오르내리는 <고려장> 영화도….
설문대        아, 1963년 김기영 감독의 <고려장>, 사실 고증 다큐멘터리가 아니지. 다만 유사한 설화를 모티브로 한 거지. 학계에선 고려 때 ‘고려장’이 없었고, 효(孝)를 어기면 엄벌하던 사회란 거야.
시공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설문대        역사 사기꾼이란 충격적 얘기를 많이들 해. 아직 학술적 체계적 증명은 없지만,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봐.
시공지        뜸 그만 들이고 말씀해 주세요.
설문대        직접 취재하세요. 그게 진짜 기잡니다. 쉽게 하는 취재에 익숙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꼰대 기자의 길로 들어서요.
시공지        명심하겠나이다. 그래도 오늘은 아량을 베풀어 주세요.
설문대        (자세를 바로하며) 사람의 원시적 고통 중 일 번이 ‘배고픔’이지. 모든 문제가 배고픔에서 출발해.
시공지        고려장도 같은 맥락인가요?
설문대        노부모 유기한 설화나 전설은 아시아 쪽에서 많이 찾을 수 있어. ‘고려장’과 유사한 이야기는 일본 ‘우바스테야마 전설’, 인도, 중국의 ‘기로설화’에서 유사함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시공지        우리나라는 어디에서 출발을 찾아야 할까요?
설문대        일본 전설은 우리 사회에 퍼진 이야기와 겹치는 점이 너무 많아 의심의 눈으로 들여다보고들 있어요.
시공지        (가로채며) 어떤 부분이요?
설문대        증거 출처에 대한 과학적 증명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공지        중요한 점 같으니 내용을 말씀 주시면 안 되나요?
설문대        일제강점기 일본 일부 학자들이 우리의 역사를 무척 폄하하려고 했지. 교활하게 왜곡된 기록을 만들고, 민족성을 조롱하는 유언비어 확산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고.
시공지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요.
설문대        일본 도굴꾼들은 사리사욕의 도굴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고, 일본 정부 또한 우리 민족을 도륙할 의도를 갖고 ‘고려장’ 이야기를 부추기기도 했다. 이런 썰이 지배적 흐름으로 보고 있어요.
시공지        사악한 사람들!
설문대        우린 역사의 교훈 속에서 큰 아픔의 진실 앞에 서게 되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고픔 앞에는 나라도 없고, 백성도, 부모 자식도, 남편도, 마누라도 없게 된다는 것을.

 

무대는 현대 감방,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다. 수형인들은 모두 잠들고 있어 평온의 감방으로 보인다. 누군가 등지어 일어나며 부시럭거린다. 돌연 객석을 향해 야릇한 미소를 짓는데 방장 사기칠(수형자 번호 427)이다.

 

사기칠        신사 숙녀 여러분, 인사드리겠습니다. 이 감방의 수형인 우두머리 사기칠 방장입니다. 편히 자야 할 수면시간에 방장인 제가 기상한 것이 불안하죠. 맞습니다. 이 감방의 자유와 평화는 오직 저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감방 안을 한번 휘둘러보고) 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송 온 신입들 신고식을 위해섭니다. (감방을 이리저리 다니며) 이번 신입들이 죄질이 엄청 좋지 않아 군기를 잡지 않으면 미꾸라지처럼 감방을 어지럽힐 점이 아주 높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허지만 제가 누굽니까. 감방업계 탑인 427호텔 방장 사기칠,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보십시오. (감방을 돌아본 뒤 목소리 높여) 전원 기상!

 

모두가 놀라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사기칠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호통칠 기회를 찾고 있다. 잔뜩 긴장한 이삼삼, 구사일, 공공칠은 서로를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사기칠 고성이 떨어진다.

 

사기칠        감히 방장인 내 명령도 없이 잠에 골아 떨어져?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업계 탑인 427호텔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941번!
구사일        (큰 소리로) 넷, 구사일입니다. 존속폭행죄에 가중처벌입니다.
사기칠        장난하냐? 수인번호 말고 사회적 명성을 대란 말이야.
구사일        사회적 명성도 구사일입니다.
사기칠        구사일생이라, 반의사불벌죄로 처리가 안됐어?
구사일        넷, 그렇습니다.
사기칠        아주 쓰레기 같은 놈이군.
구사일        전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사기칠        허접한 소린 그만둬! 다음은 너, 이름이 이삼삼이냐?
이삼삼        넷, 사회 명성도 이삼삼 사이칠호텔서도 이삼삼입니다.
사기칠        (혼잣말) 오늘 일진 더럽네, 고약함이 배인 놈들만 들어왔어. 이삼삼, 넌 무엇 때문에 427호텔을 찾았어?
이삼삼        존속감금과 사문서위조 행사입니다.
사기칠        육시럴! 그게 자랑이다. 삼삼하게 생긴 놈이 거칠고 무서운 짓만 했네
이삼삼        인간은 겉보고 모르는 이중성을 증명해주는 겁니다.
사기칠        (매몰차게) 알았어, 공공칠 넌?
공공칠        (능글맞게) 명성 그대로 차원이 다르게 글로벌합니다.
사기칠        놀고 있네. 주둥이 터지기 전에 빨랑 뱉어.
공공칠        혹시 중(重)존속유기죄라고 아시겠습니까?
사기칠        존속유기죄는 알겠는데 중(重)존속이라니…?
공공칠        (아무렇지도 않게) 해외 유기인데다 부모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려 형벌이 더블이나 다름없어요.
사기칠        (어이가 없어) 야! 너희 모두 똑같은 놈들이구나. 노부모를 폭행하고, 해외로 원정, 유기하는 파렴치한인데다, 멀쩡한 부모를 정신병원에 가두어 재산이나 뺏는…. (힘주어) 난! 형법 260에 반하는 행동은 안 한다구.
공공칠        보살인 척하지 마세요, 꼭 같은 족속이거늘.
사기칠        너희들이 감히 방장하고 맞짱 뜨겠다?
구사일        그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삼삼        (살살이처럼) 방장니이님, 저희들 활활 타는 억울함을 위대하신 방장님께 하소연하여 감형의 미꾸라지 자문받고 싶어서….
사기칠        야 야, 그만해라. 낯뜨거워진다.
구사일        존속폭행 가중 처벌은 곱빼기 처벌이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삼삼        존속감금 사문서위조 행사,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공공칠        더블로 벌하는 중(重)존속유기죄, 너무합니다.

 

구사일, 이삼삼, 공공칠 함께 ‘억울합니다’ 말한다.

 

사기칠        (헛웃음) 그리 억울하다고? 한 번 들어나 보자.
구사일        (회상에 잠겨) 어린 시절 매일 부모님이 저를 때렸습니다.
사기칠        맞을 짓을 했으니 때렸지. 어떤 부모가 이유 없이 때려?
이삼삼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서 맞기도 해요.
사기칠        가만있어. 구사일이 말하잖아. 둘, 끼어들지 마. 계속해!
구사일        부모님이 싸우시다가 갑자기, “태어나면 안 될 새끼가 태어나 속썩인다”며 마구 때렸습니다. 부모님만 보면 겁이 나 오줌지렸어요. 방장님, 제 부몬 자식을 자주 때렸지만 한 번도 벌 받지 않았습니다. 난 존속폭행죄에다 가중처벌까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넘넘 억울하지 않냐구요?
공공칠        에이, 65살 이상 노인 학대는 형법에 가중처벌이 있어요. 지금은 18살 미만을 ‘신체적으로 학대’하면 징역 살아요. 형씨 말대로 잘못 태어나면 옴팡 뒤집어쓰는 거지. 빈복(貧福)하면 어쩔 수 없지만, 알고는 다니세여.

 

화가 난 구사일이 공공칠 멱살을 잡자 싸움이 된다.

 

구사일        이 새끼 너가 판검사가 돼, 변호사야?
사기칠        둘 다 손 놓지 못해! (사이 두고) 어디 똑똑한 법학자님은 뭐가 억울하신지 말씀해 보실까.
공공칠        부모님은 이기주의자세요. 제가 사업을 시작할 때 도움을 청하니 칼같이 짜르셨어요.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지, 부모의 도움 받고 성공한다면 그게 너 성공이냐? 부모 성공이지”하면서.
이삼삼        공자님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웬 불만이세요.
사기칠        또 끼어든다. 입 다물고 너 얘기나 정리하세요.
공공칠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자 저에게 요구가 엄청 많아지셨어요. 남들은 자식들이 해외여행 시켜준다 뭐다 하는데 넌 뭘 하느냐.
사기칠        사업도 잘 나가는데 해외여행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닐 텐데.
공공칠        지난날 생각이 자꾸 떠올라 보내드리지 못했죠. 무척 어려운 때 도움을 청했더니 단칼에 거절하며 무안 주신 거, 잊으셨어요? 망녕 나셔서 잊으셨나요? 하고 따졌죠. 그 순간부터 전 이 악물고 오늘을 만들었습니다.
이삼삼        잘 따졌어.
공공칠        자세히 두 분을 살펴보니 노망이 나신 게 틀림없더라구요. 번개 같이 전율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신나서) 확장 사업자금 부족으로 쫓기고 있었는데 하늘이 돕는다. 절호의 찬스라 판단해 일을 저질렸죠.
사기칠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동남아 여행 중 유기했다?
공공칠        주위에서 이민 가 노부모를 버렸다는 소식이 종종 전해져서…. 손톱만큼도 없었어요.
이삼삼        아버진 제 첫사랑 훼방 놓고 인생을 엉망진창 만들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잔소리는 기본이고 술주정까지. 이웃이 부끄러울 정도죠.
구사일        스트레스 엄청 받았겠다.
이삼삼        그런데다 알콜성 치매로 난리났죠. 내 인생도 작살났죠. 상속도 안 되지, 노망은 심해지지. 에라 모르겠다, 내 남은 찬란한 인생을 위해서 토지, 건축 문서 몽땅 위조하고 아버지도 유기하려다 인생 조졌어요.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원인은 아버지가 제공했으니까.
사기칠        하아, 인간 말종 가운데 최고 말종들이구나.

 

사기칠 낙담 때 스포트는 설문대와 시공지 기자를 잡는다.

 

시공지        인상을 계속 찌푸리고 계시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나요?
설문대        태초엔 배고픔의 삐걱거림도 진실로 인간적인, 진정으로 양심적인 매듭이되 모두 제자리에 돌아왔지. 배고픔의 원죄값을 갚으려 살아온 긴 세월 생각하면 (허공에다) 배고픔이 없어지고 나니 법망(法網)만 피하면 된다는 간사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오늘이 역겨워.
시공지        삶의 중심이 오직 법과 내가 되어야 생존한다는 오늘입니다. 법꾸라지란 말까지 생겼으니까요.
시공지        도덕의 가치도, 양심의 눈물도 잃어버린 세상, 욕망덩어리를 법으로 감싸는 사람들, 너무 안타까워. 양심과 따뜻한 정(情)이 도히 흐르는 세상이…. (중얼거리듯) 차귀도와 영실의 내 아들이 처절하게 그립네.

 

무대가 암전되면서 스포트로 설문대와 시공지 기자는 OUT 되며 감방의 대화는 소리로만 들린다.

 

공공칠        난 존속유기죄라 최소 3년 이상은 살아야 할 것 같아.
이삼삼        그 정도면 땡큐잖아, 교도소를 나가면 신세계 열릴 거구.
구사일        난 변호사만 잘 구하면 2심에서 ‘반의사 처벌죄’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거야. 그럼 그냥 나가는 거지 뭐.

 

이삼삼, 공공칠 함께 “넌 좋겠다” 하는데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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